


"일본군이 부딪힌 두번째 난관은 조선군이 궁여지책으로 서로 단결하여서 연합군을 편성, 수많은 배에 승선하여 공격해온 사실이었다.
그들의 배는 견고하고 높았으며 무기,탄약,식량을 가득 싣고 있었다. 그들이 바다를 휘젓고 다니면서 해적질을 하였는데,
일본 배를 발견하면 곧바로 습격하고 약탈하였다. 조선군은 일본군보다도 해전에 훨씬 익숙했기 때문에 일본군에게 많은 손해를 입혔는데
이러한 일본군의 재난은 끝없이 계속되었다. (계속 이런 약탈전의 반복)
.... 관백의 두 지휘관 곧 가토 도라노스케(가토 요시아키를 일부러 가토 도라노스케라 적음: 실제로 명량해전 참전)와
아와노쿠니의 영주인 다른 한 사람
(하치스카 이에마사:실제로 명량해전 참전)는 바다에서 조선인이 일본군에게 끼쳤던 막대한 손해를 보고서 가지고 있던
300척의 함대를 조선으로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이 회전會戰에 필요한 무기,탄약을 (300척 함대에) 적재하고서 유능한 정예병력을 승선시켰다.
그들은 수많은 총포,창,활과 화살을 휴대하였다.
이렇듯 일본군은 자신들의 우수한 장비를 믿고서 약간의 배 밖에 보유하지않은 조선의 해적을 찾아서 출격하였다.
그런데 이전부터 조선인은 일본 배를 찾는 데 혈안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그들과 조우하자 큰 소리를 지르고
기뻐하며 배를 몰아 일본의 함대를 공격했다.
조선의 선박은 높고 튼튼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일본 배를 압도하였다. 우선 조선 수군 쪽에서 화기에 의한
공격이 있었는데, 이것이 일본인을 몹시 애먹이고 괴롭혔다 .....
조선인들은 일본인들이 노를 저어 배와 함께 달아날 수 없게끔 튼튼한 갈고리로 만든 쇠사슬을 ... 사용하여
....일본 배들은 쉽게 빠져나갈 수 없게 되었다. .....
이 해전이 몇 시간 지속되면서 일본군은 의기소침해지고 전황은 이미 그들에게 불리하게 되었다.
이 해전에서 가토 쪽(가토 요시아키)의 장수 한 사람이 전사하였다. 그는 대단히 용감한 전사로 그의 용기와 뛰어난 전술 덕택
으로
시코쿠라고 불리는 4개의 령국을 정복하였기 때문에 관백이 매우 총애하는 심복이었다.
(구루시마 미치후사?島通?. 1585년 히데요시의 시코쿠 정벌군을 맡아 1만 4000석의 영주가 된 인물이다.
명량해전에 참전하였다가 전사하여 목이 잘린 놈이다.)
아와노쿠니의 다른 장수도 패배를 당하고나서 자신들이 불리하다는 것을 깨닫고 적의 손에 사로잡히기 전에
할복하기도 했다. 이 싸움에서 조선인들은 70척의 일본 배를 빼앗고 병사 대부분을 살해하였다.
나머지 병사들은 겨우 목숨만 건지고서 도망쳤다."
-루이스 프로이스 일본사의 명량대첩 기록-
전언으로 전해듣고 기록한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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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진짜 호빠 선수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