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은
다친 감정의 방향이다
그대가 얼굴이 긴 것은
그대 안의 짐승 때문이다
심장 속에 펄럭이는
혁명의 깃발
붉다
누가 검은 짐승을 풀어두고 갔나
그대를
일곱 번 묶겠다
몸 안의 칼을 뽑아
녹슨 짐승의 배를 가르면
아픈 떠돌이 별이 뜬다
슬픔은 개인적이라
가끔 투명하다
/소년들, 서안나
아픈 마음과 광활한 외로움은 잠시 뒤로할게
세상에 당신 하나 남을 때까지 철없이 빛나기만 할게
나 아닌 아침과 오후를 사랑해도 좋아
밤이면 내가 너를 쫓아갈게
/달의 이야기, 서덕준
사랑하는 마음을 다 보여줄 수 없어
가끔 가슴이 아프다
그리움을 말로 전하고 돌아서면
또 다른 그리움이 앞을 이슬처럼 눈물처럼 막아선다
멀리 있어 그리운 것을 지금 인연으로 어쩔 수 없다면
지금 이 순간 같은 하늘, 같은 공간에 마음을 나누고
정을 나누었던 순간처럼 그렇게 서로에게 물들어
서로의 마음을 가슴에 묻고 늘 그 자리에 그 곳에서 바위처럼 나무처럼
그렇게 태양빛에 바다물이 마르는 그날까지
내 사랑은 혼자 있을 때도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
/혼자 있을 때도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 장현수
그는 늘 나 때문에 슬퍼한다
모래사막에 나를 그려놓고 나서
자신이 그린 것이 물고기였음을 기억한다
사막을 지나는 바람을 불러다
그는 나를 지워준다
그는 정말로 낙관주의자다
내가 바다로 갔다고 믿는다
/멜랑콜리아, 진은영
한때는 내가 나를 버리는 것이
내가 남을 버리는 것보다
덜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쓰러지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당신 앞에
한 그루 나무처럼 서 있다
/자살, 류시화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나의 사람아
눈이 내리는 먼 하늘에
달무리를 보듯
너를 본다
오직 너를 위하여
모든 것에 이름이 있고
기쁨이 있단다
나의 사람아
/너를 위하여, 김남조
살다가 살아보다가 더는 못 살 것 같으면
아무도 없는 산비탈에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누워 곡기를 끊겠다고 너는 말했지
나라도 곁에 없으면
당장 일어나 산으로 떠날 것처럼
두 손에 심장을 꺼내 쥔 사람처럼
취해 말했지
나는 너무 놀라 번개같이,
번개같이 사랑을 발명해야만 했네
/사랑의 발견, 이영광
밤이 사람을 데려간다 더 먼 쪽으로
죽은 사람의 곁에 누워 밤새 이름을 불러 본 적 있다
그 밤을 얘기할 수 없다 물도 물의 규율도
알지 못하니까
발밑을 흐르는 구름
육교와 가로수를 잊고 온도와 뼈를 버렸다
흔한 노래를 듣고 같은 식사를 반복했다
물속에서 평생을 보내는 바다 생물들
몸은 물주머니인데
익사할 수 있다니 불가해하지 않니
……
거울 속에서만 나를 마주보는 나와 두 눈 속에 시선을 가둔 너 가진 적 없는 이름처럼, 본 적 없는 모래처럼, 잠겨 있다 어깨를 흔들다 어떤 여백으로도 가질 수 없는 간격
무엇도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
가지가 부러지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작은 부리들
푸른 얼굴을 한 네가 푸른 얼굴 위를 걸어간다
우리는 모두 사로잡힌 사람이다
한참을 빗속에 서 있는다
익사하지 않는다
/동세포생물, 백은선

인스티즈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