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집안이 원한대로 살아오다 계속되는 선자리, 결혼요구에 딱 한번 일탈을 시도한 방석.
그래봤자 정석대로 살아와서 담배 펴보기, 클럽가서 밤새고 술마시기가 최고의 반항이다.
그마저도 금방 지루해져 구석에서 사람들은 구경하며 머리를 쓸어올린다.
이래저래 흐트러진 머리칼 사이로 마주치는 눈.
저 남자 아까전부터 나를 쳐다본다.
우연이겠지. 애써 고개를 돌리지만
시끄러운 음악소리 가운데 남자가 걸오는 발소리가 들려오는듯 하다.
-안녕.
건조하게 건내는 인사에 대답없이 빤히 얼굴만 쳐다보는 방석.
-대답 할 기분은 아닌가보네.
저 남자가 뭐라하던, 별로 엮일 생각이 없다. 침묵을 유지하며 고개를 돌려 정면을 응시한다.
남자는 방석의 흐트러진 머리칼을 만지며 살짝 웃는다.
- 그냥. 여기 오늘 지루해서. 너도 그런것 같은데
내가 더 재밌게 해줄게 원한다면.
- 글쎄. 너랑 별로 엮이고 싶지 않은데
남자가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조소를 띄운다.
- 난 밖에서 10분만 기다릴거야.
남자는 뒤돌아서 망설임없는 걸음으로 출입문으로 걸어간다.
아무관심 없었는데. 혼란스러운 방석. 남자가 만지던 머리카락의 느낌이, 그의 당당하던 조소가, 낮은 목소리가. 방석의 마음을 흔든다.
그래. 난 지금 저 남자에게 끌리고있다.
10분 다 된 것 같은데 이미 갔으면 어쩌지?
천천히 걷던 걸음이 뜀박질이 됐을때 어깨를 잡아채는 손.
- 아직 안갔어. 많이 급했나보네 자기야.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꽂아주며 피고 있던 담배를 방석에게 물려준다.
천천히 타들어가는 담배연기를 보며 달려서 찼던 숨을 고르는 방석.
- 우리오늘 재밌게 놀자. 기대해도 좋아.
가볍게 오른쪽 볼 위로 키스하는 남자.
강렬했던 첫 만남보다 더 아찔했던 그날밤 이후 남자와 방석은 점점 더 가까워진다.
( 뭘 했는지는 알아서 생각하셈 )
분명 잠깐의 일탈이었는데 이 남자. 방석과 너무 가까워졌다. 이러면 안되는데... 분명 그를 사랑하지만 나에게 잃는 것이 너무 많다. 사랑만 붙잡고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기에는 이 세상이 녹록치 않다는 걸 잘 아는 방석. 결혼압박도 심해지고 어쩔 수 없이 선자리에 나간다.
뒤숭숭한 마음으로 준비하다보니 20분이나 늦어버린 방석. 키를 발렛에게 맡긴 후 급하게 호텔레스토랑으로 뛰어가 이름을 얘기하자 직원이 안내해준다.
창가에 앉은 남자. 도심의 야경이 빛을 내고 있고 살짝 열린 창문사이로 바람이 그의 머리칼을 흩트리는데, 남자는 차분하게 차를 마시고 있다. 도심의 빛인지 남자에게 나오는 빛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안녕하세요.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웃으며 가볍게 인사한다.
- 죄송해요. 제가 늦었네요. 첫만남인데...
- 저도방금 왔습니다. 자리에 앉으세요.
젠틀한 인상의 남자다. 매너 또한 깔끔하다.
단정하게 맨 넥타이, 쓰리피스 수트에 커프스까지. 완벽이란 말은 그를 위해 탄생한 단어처럼 이상형의 정석 그 자체다.
무엇보다 저 남자의 눈빛... 방석에 대한 망설임이 없다. 분명 이 자리는 불편한 자리인데...
대화도 자연스럽게 이끌어나가면서 곤란한 대화인 것 같으면 알아서 주제를 바꾸기도 한다.
생각보다 이 자리가 나쁘지 않다.
이런사람이라면 결혼? 괜찮을지도.
- 저는 방석씨가 마음에 듭니다. 다음에 또 볼 수 있을까요?
언제 준비했는지... 살며시 웃으며 꽃다발을 건낸다.
불필요한 스킨십은 하지 않던 그였으나
꽃다발을 받을때 방석의 검지손가락을 살짝 잡았다가 쓸어내린다.
그 순간, 묘한 시선이 나에게 닿아왔다.
잠시 그의 눈을 바라보다 방석은 눈을 감는다.
살며시 닿은 입술은 과하지 않게 머금었다가 가볍게 물러난다.
그의 눈빛에는 확신이 있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방석의 미래는 탄탄대로일 것이다. 이런촉은 틀린적이 없지. 강렬한 사랑은 아니지만 잔잔히 스며들듯 마음을 녹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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