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원장은 ‘쇠붙이들’이 처음 나왔을 때 크게 중요한 유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세척한 쇠붙이에서 한글이 드러난 걸 보곤, 흥분이 시작됐다. 활자 전문가들을 불러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정조 시기 사회가 발달하고, 문화 저변 확대 같은 게 일어나다 보니, 조선 후기 금속활자는 남은 게 수십만 점 정도 돼요. 그런데 조선 전기 금속 활자가 거의 없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세조 즉위년인 1455년 주조한 ‘을해자’가 30점 정도 있죠. 이 항아리 하나에서 대여섯 종류 활자 1600여 점이 나온 거예요. 전문가들도 ‘못 보던 게 나왔다. 을해자, 갑인자일 수도 있다. 이건 국보급이다. 활자 연구를 다시 해야 할 정도’라며 격앙됐어요.” 동국정운식 표기는 인쇄물로만 확인할 수 있었다. 세종 때 4개만 만든 일성정시의도 문헌에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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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쇠붙이인 줄 알았다..씻어보니 한글, '흥분이 시작됐다' [금속활자 출토 공평동 유적 현장]
[경향신문] “슬슬 내려가 보죠.” 지난달 20일 오후 오경택 수도문물연구원 원장을 따라 서울 종로구 공평동 유적 발굴장 철제 대문에서 공사 차량이 오가는 길을 내려갔다. 오 원장이 ‘공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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