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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은수ll조회 1988l
이 글은 1년 전 (2022/6/30) 게시물이에요

네가 수진이라는 이름 대신에 링링이라고 불러달라 했던 날을 기억해 | 인스티즈




네가 수진이라는 이름 대신에 링링이라고 불러달라 했던 날을 기억해 | 인스티즈

링링, 웃어줘. 그녀는 내 말에 습관적으로 입꼬리를 내려 웃었다. 사람의 입꼬리에서 삶을 대하는 방식을 엿볼 수 있다고 했다. 그녀는 우는 듯 웃었다. 나는 소주 한 잔으로 해결되지 않는 링링의 삶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없으면 안 될 것처럼 행동하는 그녀의 슬픈 입꼬리가 사랑스러웠다. 어쩌면 링링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내가 정말 하찮은 인간이라 안쓰러워서 나를 잡아두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닮았다. 그래서 좋았고 사랑했고 한편으로는 혐오스러웠다. 더욱 잘 나가길 바랐지만 그게 나를 넘어서진 않았으면 했다. 불우한 사람끼리는 연애를 하면 안 되는 이유가비로소 증명됐다.



네가 수진이라는 이름 대신에 링링이라고 불러달라 했던 날을 기억해 | 인스티즈

링링이 눈을 뜨지 않은 지 일주일 째다. 나는, 링링이 죽었다는 걸 알고 있다. 세상에 혐오하는 것들 투성인데 첫 번째는 폭력이다. 가정학대, 학교폭력, 직장 내 괴롭힘 등등다 같은 폭력인데 다른 형태로 우리에게 비춰진다. 상황만 달라졌을 뿐이다. 학교에서 폭력을 저질렀던 사람이 어엿한 직장인이 된다고 그 본질을 바꿀 수 있을까.



네가 수진이라는 이름 대신에 링링이라고 불러달라 했던 날을 기억해 | 인스티즈

그럼에도 가장 두려운 건 스스로를 향한 폭력이다. 자기혐오와 자기연민. 링링은 이것들에서 벗어나지 못해 매일 자신을 학대했다. 정신적인 학대도 자해와 비슷한 형태라고 생각된다. 자신이 바라던 이상향을 도달하지 못해 목숨을 끊은 나약한 여자애다.

'나는 천 만원만 있으면 돼. 남들은 억소리 나는 집을 갖고 싶어들 하는데. 천 만원. 그거면 되는데.' 천 만원이 사람을 죽였다. 링링의 인터넷 기록, 일기 등등 눈에 보이는 죽음이 한가득이었다. 살라고 하기엔 링링은 연약했고 세상은 무거웠다.

그냥, 애초에 링링은 이 세상에 잠깐 들린 존재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링링의 아름다움을 설명하기엔 존재하는 단어에도 한계가 있었으니까.



네가 수진이라는 이름 대신에 링링이라고 불러달라 했던 날을 기억해 | 인스티즈

링링은 재가 되어 바다에 흩뿌려졌다. 앞으로 이곳에서 링링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던 습하고 어두운 원룸보다는 훨 나은 것 같다. 생각보다 좋은 곳으로 갔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생전에 스킨쉽을 싫어했는데 이제 온전히 링링을 안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링링의 가족들이 집으로 돌아간 후에야 옷을 다 벗고 푸른 바다를 유영했다. 입안으로 들어오는 바닷물에는 짠기가 가득했다.

링링의 눈물과 비슷한 염도였다.




네가 수진이라는 이름 대신에 링링이라고 불러달라 했던 날을 기억해 | 인스티즈네가 수진이라는 이름 대신에 링링이라고 불러달라 했던 날을 기억해 | 인스티즈

링링에게

안녕, 링링. 나는 너의 여자친구이자 오랜 벗 수진이야. 너는 오늘을 손꼽아 기다렸겠지? 오늘 밤 네가 죽는다는 걸 알고 있어. 옆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너를 깨워서 묻고 싶지만 참아야겠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링링아. 우리가 처음 만났던 게 열여덟이었지. 이름이 같아서 신기했고 그만큼 금방 친해졌었지. 우리도 참 어렸어, 그게 뭐 특별하다고. 네가 수진이라는 이름 대신에 링링이라 불러달라고 했던 날을 기억해. 살아온 모든 순간을 부정하는 너를 밤새 안고 있었지. 날을 꼬박 새고 너를 불렀어. ‘링링, 일어나.’ 너는 막 태어난 아기처럼 환하게 울었어. 기억해?

링링. 입이 닳도록 너를 부르고 싶어. 앞으로는 너를 부를 날이 있을까.너를 링링이라 부르는 사람이 나뿐이었는데. 담백한 걸 좋아하는 너한테 어울리는 끝인사를 찾고 찾았어.

안녕, 링링.
다음에 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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