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有/100kb/약스] 난중일기 읽으면서 이순신이 진짜 개지린다고 생각했던 점.txt - DogDrip.Net 개
나도 어릴 적 막연하게 이순신이라고하면 광화문의 동상이 떠오르면서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구국의 영웅"이라는 이미지였는데,대학 시절 우연찮게 난중일기를 읽으면서 생각을 많이 바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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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어릴 적 막연하게 이순신이라고하면 광화문의 동상이 떠오르면서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구국의 영웅'이라는 이미지였는데,
대학 시절 우연찮게 난중일기를 읽으면서 생각을 많이 바꾸게 되었다.
실은 이순신은 너무나도 마음이 여린 사람이었다.
특히 명량해전이 있었던 해(1597년)의 일기를 보면 안쓰럽다 못해 눈물이 날 정도다.
일단 배경을 모르는 사람을 위해 가볍게 내용을 읊자면,
연일 승전보를 울리면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질시하는 왕과 모함하는 세력에 의해 한양까지 압송된다.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고, 모든 관직에서 해임당한 뒤 백의종군을 하게 된다.
그 해 이순신의 나이 53세.
이순신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극도로 피폐해진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1597년 4월 11일, 어머니마저 돌아가신다.
이순신은 이틀 후 그 소식을 서신으로 접하게 된다.
난중일기를 보다보면 이순신이 얼마나 가족을 아끼는지 알 수 있다.
틈만나면 어머니와 아이들을 그리워하는 이순신인데,
인생에서 가장 힘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절, 그 와중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다.
1597년 4월 19일, 난중일기엔 비참하고 서글픈 이순신의 마음이 나와있다.
일찍이 길을 떠나며, 어머님 영전에 하직을 고하고 목놓아 울었다.
어이할꼬, 어이할꼬. 천지 간에 나 같은 자 또 어디 있으랴.
차라리 빨리 죽느니만 못하도다.
난중일기를 보면 한동안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오질 못한다.
밥 먹다가 울고, 글을 짓다 울고, 이순신이 이렇게 눈물이 많은 사람인가 싶더라.
하지만 이순신의 불행은 끝이 아니었다.
1597년 7월 중순,
원균이 칠천량 해전에서 참패하고, 이순신이 통제사 시절 갖춰놓은 조선의 강력한 수군마저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린다.
이 시기의 난중일기를 읽으면 이순신이 아무도 오지 않는 뱃머리 아래에서 혼자 쭈그려앉아서 번민을 거듭하는 모습이 자주 나오게 된다.
이 때 일기를 보면 이순신이 가지고 있던 그 깊은 고뇌의 끝이 보이질 않는다.
그러던 8월 15일, 선조는 사실상 소멸한 것과 마찬가지인 수군을 없애려고 한다.
하지만 이순신은 희망이 절멸한 듯한 그 상황에서 그 전설적인 장계를 올린다.
지금 신에게 아직 12척의 전선이 있사오니 죽을 힘을 다해 막아 싸우면 능히 대적할 방책이 있습니다. 전선이 비록 적지만 미천한 신이 죽지 아니했으니 적이 감히 우리를 가벼이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9월 16일 명량해전이다.
너무 유명한 얘기니 자세한 건 생략.
명량해전의 승리를 기뻐하기도 잠시,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킨 답은 면사
당시대에 면사첩은 항복한 왜군에게나 주던 것이었다.
이걸 받았을 때 이순신의 기분은 어떠했을까.
심지어 이순신의 불행은 계속된다.
10월 14일, 가장 사랑하고 아끼던 막내 아들이 일본군의 손에 전사당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반년 만에 막내 아들도 이순신의 곁을 떠나버린 것이다.
일기에서도 수시로 챙기던, 그토록 아꼈던 막내아들이었다.
아들의 죽음을 전해들은 당일 난중일기엔 찢어지는 부모의 마음이 절절하게 표현되어 있다.
저녁에 천안에서 사람이 와서 집 편지를 전하는데 겉봉을 뜯기도 전에 골육이 떨리고 심기가 혼란해졌다. 겉봉을 대강 뜯고 열의 글씨를 보니 바깥 면에 통곡이란 두 자가 쓰여 있기로 면이 전사했음을 알고 간담이 떨어지는 것도 모르고 목놓아 통곡, 통곡하였다. 하늘이 어찌 이리 어질지 못하시더냐, 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듯 하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에 맞거늘 네가 죽고 내가 살아 있으니 이렇게 어긋난 이치가 어디 있으랴. 천지가 흑암에 덮이고 해조차 빛이 변했구나. 슬프다 내 아들아. 네가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네 재주가 뛰어나 하늘이 이 세상에 놔두지 않는 것이냐. 내 죄가 많아 네 몸에 미친 것이냐. 내 지금 세상에 살아 있으나, 이제 어디에 의지하랴. 너를 따라 죽어 지하에서 같이 울고싶지만 네 형, 네 누이, 네 어머니가 의지할 곳이 없겠으니 아직은 참고 살겠으나 마음은 죽고 몸만 남아 통곡하고 통곡할 따름이다. 하룻밤 지내기가 1년 같도다.
이순신은 그 후에도 일기에서 자신의 슬픔을 가누지 못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차마 부하들 앞에서 울 수가 없어서 혼자 창고에 들어가서 엉엉 울었다는 표현이나, 하여튼 이 시기의 일기를 보면볼수록 짠내난다.
이 형용할 수 없는 비참한 상황에서 이순신은 제멋대로인 명군을 통제해야 했고,
자신의 상관이나 다름없는 진린 제독을 다독여야 했다.
한양의 질시꾼들을 설득해야 했고 군율을 세워야 했으며 민정을 다스려야 했다.
그렇게 이듬해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이순신은 그 전장에서 목숨을 거둔다.
싸움이 급하다. 부디 내 죽음을 말하지 말라.
보통 이 문구가 유명하지만, 개인적으론 노량해전을 앞두고 이순신이 했다던 한 마디가 굉장히 인상적이다.
이 원수를 갚을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왕은 그를 인정해주지 않았고, 정적은 자신이 일궈놓은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나라를 위기에서 구했건만 돌아온 것은 고문과 백의종군, 그리고 면사첩과 은자 몇 냥이었다.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들이 죽어서 정신을 가다듬지 못해 툭하면 목놓아 울었고,
해전을 앞두고 불안함을 견디지 못해 뱃머리 아래 쭈그려 앉아 번민을 거듭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명량해전과 노량해전이 저 와중에 일어난 전투라고 생각하니 솔직히 소름이 돋더라.
그래서 나는 난중일기 읽고나서부턴 이순신이 조금 다르게 보이더라.
여러분들도 할 거 없으면 난중일기 한 번 읽어보는 것을 권함.
생각보다 술술 잘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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