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 펼쳐 보게 되는 저 낯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 알베르 카뮈 (소설 이방인, 페스트 등)

장 그르니에의 섬
저마다의 일생에는, 특히 그 일생이 동터 오르는 여명기에는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다시 찾아내는 것은 어렵다. 그것은 다른 수많은 순간들의 퇴적 속에 깊이 묻혀 있다. 다른 순간들은 그 위로 헤아릴 수 없이 지나갔지만 섬뜩할 만큼 자취도 없다. 결정적 순간이 반드시 섬광처럼 지나가는 것은 아니다. p.21
그러므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서 도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은 불가능한 일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하여 여행한다고 할 수 있다. 예수회 신자들이 육체적 단련을, 불교 신자들이 아편을, 화가가 알코올을 이용하듯이, 그럴 경우 여행은 하나의 수단이 된다. p.92
세비야에서는 궁전, 성당, 과달키비르강 등등을 무시해 버리고 나면 삶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유쾌해진다. 그러나 그 고장의 의미심장한 ‘매혹’을 참으로 느끼려면, 히랄다의 꼭대기에 올라가려다 그곳 수위에게 제지당해 보아야 한다. “저기는 두 사람씩 올라가야 합니다.” 하고 그는 당신에게 말한다. “아니 왜요?” ― “자살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지요.” p.95-96
섬들을 생각할 때면 왜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이 일어나는 것일까? 난 바다의 시원한 공기며 사방의 수평선으로 자유롭게 터진 바다를 섬 말고 어디서 만날 수 있으며 육체적 황홀을 경험하고 살 수 있는 곳이 섬 말고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섬에 가면 ‘격리된다(isole).’ ―섬( Ile)의 어원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섬, 혹은 ‘혼자뿐인’ 한 인간. 섬들, 혹은 ‘혼자씩일 뿐인’ 인간들. p.120
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수없이 꿈꾸어 보았다. 그러면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그렇게 되면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 자신에 대하여 말을 한다거나 내가 이러이러한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 보인다거나, 내 이름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바로 내가 지닌 것 중 그 무엇인가 가장 귀중한 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일이라는 생각을 나는 늘 해 왔다. 무슨 귀중한 것이 있기에 p.178
/ 해당 글은 예스 24 책 속으로 에서 가져왔습니다. 장 그르니에의 에세이로 목차 별로 담겨있는 그의 관점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읽어보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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