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종에 일어나 우걱우걱 가득 채운 가방을 메고 뭣 모르고 아버지를 따라 나선 아이는 10살치곤 작은 키를 가진 채 아버지 옆에서 카메라와 눈을 마주쳤고 몇 주 뒤 1월 6일 그 모습을 자기 집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김민국의 10대는 그렇게 참 요란스럽게도 막을 열었습니다. 특별하다면 특별하고 남다르다면 남달랐던 선로에서 그렇게 출발한 10대의 열차를 통해 김민국은 1년 간 평생 가볼 여행보다도 많은 여행을 떠나보았고 그 많았던 여행만큼 많은 것을 보고 배웠습니다.
좋았습니다. 비슷한 또래 네 명과 캠핑을 하는 것도 책에서 보던 동네와 마을을 구경하고 배우는 것도, 많은 사람을 여행 가면서 만나게 된 것도, 여행이 끝나도 금방 또 다음 여행을 갈수 있다는 걸 알았던 것도,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모르시는 분들에게서 과자를 받거나 살갑게 인사를 받는 것도, 학교 친구들에게 여행 이야기를 해주는 것도, 자주 뵐 수 없었던 아버지랑 하룻밤 여행을 떠나는 것도 내색은 안하고 말로는 안 꺼냈지만 참 좋았습니다.
아버지가 첫 여행을 떠나기 몇주전 1년간 자신이랑 여행을 떠나게 될거고 좋은 일만 있지 않을건데 지금과 네가 많이 달라질지도 모르는데 네 생각은 어떠냐 물어보셨을 때 고개를 끄덕인 것을 아직까지 한번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그렇게 열차 한칸에 꽉 채워진 10대의 첫 1년의 기억은 나머지 칸들이 채워져 나갈 때도 묵묵히 그 자리에 있어주었고 제가 어디 가서도 쉽게 웃을 수 있고 당당해질 수 있는 원천이 되어주었습니다.
시간은 계속해서 지나갔고 열차 칸의 색은 바래갔지만 그래도 그게 싫지 만은 않았습니다. 조금씩 커가고 변해가는 모습에 맞춰 더 이상 길가에서 이름이 불리지도 사진을 찍지 않아도 되게 되었지만 못 가보던 피시방도 가보고 맘껏 친구들과 다투고 화도 낼 수 있게된 모습도 좋았습니다.
남다르게 시작한 선로는 서서히 남들과 비슷한 선로 모습으로 물들어갔고 어느 새 제 열차는 번쩍번쩍 알록달록한 선로에서 평범한 갈색 선로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비록 그때의 특별함은 사라졌어도 혼자 달렸던 그때와 달리 이젠 다른 열차들이 옆에서 함께 달려주었고 달리는 선로가 중요한 것이 아닌 어떤 열차가 그 선로를 달리는 지가 더 중요함을 알게 된 김민국은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 얼룩지고 더러워졌지만 나름 채워진 열차는 어느새 종착역에 섰습니다.
요란히 티비에서 시작한 김민국의 십대는 그렇게 조용히 방에서 막을 내렸습니다. 기적 소리는 잠잠해졌고 낡고 헤진 바퀴는 더 이상 돌아가지 않았지만 새 열차가 곧 들어오고 새 선로가 곧 세워질 것을 압니다. 그때까지 열차안을 다시 한번 헤집어 보고 찬찬히 살펴볼 생각입니다. 큰 고민거리가 얼추 끝났으니 요새는 좀 퍼져서 지내 보려구요. 히히히 침대 히히히 쇼파 하며 누울 수 있는 곳에선 다 누워 살 겁니다.
이 이야기는 요즘엔 최대한 안하려 하는 편이긴 합니다. 꽤 오래 시간이 지나서기도 하지만 예전 모습으로만 남고 싶지 않은 게 사람인지라. 사실 저런 거 먼저 말 꺼내고 그러면 솔직히 좀 재수 없어 보이기도 하고. 그래도 이번 만큼 만은 추억팔이 좀 하고 꼴값 좀 떨게 해주십쇼. 여러분들도 올 한해 즐거운 기억들로만 열차칸을 꽉꽉 채어나가시길 진심으로 빌며 십대 김민국은 이만 여기서 인사드리겠습니다.
아빠어디가 10주년 겸 20살 딱 되면서 올린 글
덕후들 미치는 포인트는 일부러 1월 6일에 올림
= 아빠어디가 첫방송 날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