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예약
호출 내역
추천 내역
신고
1주일 보지 않기
카카오톡 공유
주소 복사
공지가 닫혀있습니다 l 열기
요원출신ll조회 6056l 7






그날 이후 / 진은영



아빠 미안
2킬로그램 조금 넘게, 너무 조그맣게 태어나서 미안
스무 살도 못 되게, 너무 조금 곁에 머물러서 미안

엄마 미안
밤에 학원 갈 때 휴대폰 충전 안 해놓고 걱정시켜 미안
이번에 배에서 돌아올 때도 일주일이나 연락 못 해서 미안

할머니, 지나간 세월의 눈물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해서 미안
할머니와 함께 부침개를 부치며 나의 삶이 노릇노릇 따뜻하게 익어가는 걸 보여주지 못해서 미안

아빠 엄마 미안
아빠의 지친 머리 위로 비가 눈물처럼 내리게 해서 미안
아빠, 자꾸만 바람이 서글픈 속삭임으로 불게 해서 미안
엄마, 가을의 모든 빛깔이 어울리는 엄마에게 검은 셔츠만 입게 해서 미안

엄마 여기에도 아빠의 넓은 등처럼 나를 업어주는 뭉게구름이 있어
여기에도 친구들이 달아준 리본처럼 구름 사이에 햇빛이 따뜻하게 펄럭이고
여기에도 똑같이 주홍빛 해가 저물어
엄마 아빠가 기억의 기둥들 사이에 매달아놓은 해먹이 있어
그 해먹에 누워 한숨 자고 나면
여전히 나는 볼이 통통하고 얌전한 귀 뒤로 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아이

슬픔의 대가족들 사이에도 힘을 내는 씩씩한 엄마 아빠의 아이

아빠 여기에는 친구들도 있어
이렇게 말해주는 국어 선생님도 있어

“쌍꺼풀 없이 고요하게 둥그레지는 눈매가 넌 참 예뻐"
“너는 어쩌면 그리 목소리가 곱니, 생머리가 물 위의 별빛처럼 그리 빛나니"

엄마! 아빠! 벚꽃 지는 벤치에서 내가 친구들과 부르던 노래 기억나?
나는 기타 치는 소년과 노래 부르는 소녀들 사이에 있어
음악을 만지는 것처럼 부드러운 털을 가진 고양이들과 있어
내가 좋아하는 엄마의 밤길 마중과 분홍색 손거울과 함께 있어
거울에 담긴 열일곱 살, 맑은 내 얼굴과 함께, 여기 사이좋게 있어

아빠, 내가 애들과 노느라 꿈에 자주 못 가도 슬퍼하지 마
아빠, 새벽 세 시에 안 자고 일어나 내 사진 자꾸 보지 마
아빠, 내가 친구들이 더 좋아져도 삐치지 마

엄마, 아빠 삐치면 나 대신 꼭 안아줘
하은 언니, 엄마 슬퍼하면 나 대신 꼭 안아줘
성은아, 언니 슬퍼하면 네가 좋아하는 레모네이드를 타줘
지은아, 성은이가 슬퍼하면 나 대신 노래 불러줘
아빠, 지은이가 슬퍼하면 나 대신 두둥실 업어줘
이모, 엄마 아빠 지친 어깨를 꼭 감싸줘
친구들아, 우리 가족의 눈물을 닦아줘

나의 쌍둥이, 하은 언니 고마워
나와 손잡고 세상에 나와줘서 정말 고마워
나는 여기서 언니는 거기서 엄마 아빠 동생들을 지키자
나는 언니가 행복한 시간만큼 똑같이 행복하고
나는 언니가 사랑받는 시간만큼 똑같이 사랑받을 거야
그니까 언니, 알지?

아빠 아빠
나는 슬픔의 큰 홍수 뒤에 뜨는 무지개 같은 아이
하늘에서 제일 멋진 이름을 가진 아이로 만들어줘 고마워
엄마 엄마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들 중 가장 맑은 노래
진실을 밝히는 노래를 함께 불러줘 고마워

엄마 아빠, 그날 이후에도 더 많이 사랑해 줘 고마워
엄마 아빠, 아프게 사랑해 줘 고마워
엄마 아빠, 나를 위해 걷고, 나를 위해 굶고, 나를 위해 외치고 싸우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성실하고 정직한 엄마 아빠로 살려는 두 사람의 아이 예은이야

나는 그날 이후에도 영원히 사랑받는 아이, 우리 모두의 예은이

오늘은 나의 생일이야





⎆ 오는 4월 16일은 세월호 10주기이다. 단원고 2학년 3반 유예은은 4월 16일 침몰 당시 세월호에 탑승해 있었고 집을 떠날 때의 그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2014년 10월 15일, 예은의 열일곱째 생일을 앞두고 시인 진은영은 예은의 목소리로 발화해야 하는 시, 소위 ‘생일시’를 청탁받고 이 시를 썼다.

추천  7

이런 글은 어떠세요?

 
ha haha 무  이제 집냥이
😥
12일 전
안녕, 잘 가  워더
😥
12일 전
로그인 후 댓글을 달아보세요
 
카테고리
  1 / 3   키보드
닉네임날짜조회
팁·추천 1화부터 미쳤다 대작냄새 난다는 드라마는 뭐였어??504 엔톤05.23 11:1382946 8
이슈·소식 개근거지라는게 그냥 밈인줄 알았는데 우리아들이 겪어버렸네요216 담한별05.23 14:2087167 12
유머·감동 다들 대변본후 씻으시나요?143 NCT 지 성05.23 11:0259250 1
이슈·소식 폐업 속출하는 여수시113 He05.23 20:4654045 3
이슈·소식 네이버 웹툰 '신의 탑' 충격 근황..100 수인분당선05.23 21:2645892 3
귀가했을때 고양이들 행동.gif 알케이 05.22 10:57 4364 1
잘때 몸이 회복하는 신비한 과정17 jeoh1485 05.22 10:43 25998 7
30대 중반인데 전재산 700 있다는 사람 논란210 단발머리 소 05.22 10:35 104679 0
넷플볼때 꿀일거 같은데 써본사람? 지나가요1 05.22 10:22 1567 0
공차 음료 주문하다가 J가 뭔지 몰랐던 사람.jpg9 윤정부 05.22 09:56 19267 0
여러분 발좀 봐봐요………….겁나크고 귀여워요1 헤에에이~ 05.22 09:55 3371 0
파우더 많은 빵 먹을 때 코로 숨쉬는 안되는 이유3 대치동신발브 05.22 09:08 7591 0
20대 암환자의 마지막 소원4 마카롱꿀떡 05.22 09:00 17680 6
이거 어떻게 읽어?4 218023_return 05.22 09:00 2489 0
"소주 한 잔만 주세요"…이번주부터 식당서 '잔술' 판매한다2 임팩트FBI 05.22 09:00 3148 0
고양이 머리 위에서 트월킹 추는 새.gif2 친밀한이방인 05.22 08:55 3019 0
신입 우는데 귀엽게 울어서 다 웃음 참기 챌린지함....246 호롤로롤롤 05.22 08:54 95091 42
@: 아니 선재가 대체 그걸 어떻게 기억하는건데...????2 완판수제돈가 05.22 07:50 10197 1
보는 시청자도 같이 혼났던 방송2 유기현 (25) 05.22 07:32 12336 2
요즘 많이 보이는 버뮤다 팬츠.jpg102 킹s맨 05.22 07:32 90143 6
예전에 심각했던 중학생 문신.....3 Twenty_Four 05.22 07:31 14204 1
유재석 앉아2 311103_return 05.22 07:26 2817 0
첫콘서트에 자기 실친들 초대했었다는 장원영.jpg94 패딩조끼 05.22 07:25 81948 25
'놀아주는 여자' 엄태구-한선화-권율, 달콤살벌 3인 포스터..핑크빛 전쟁 NCT 지 성 05.22 07:24 2274 1
쩌리에 일빠 나타날 때마다 퍼오는 글 (우리나라 찐 국민성) 백구영쌤 05.22 07:24 185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