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중에 오고가는 감정들 중 우리를 우울의 늪에 빠뜨리는 감정 중 하나가 ‘섭섭함’이다. 섭섭함은 분노나 슬픔이나 죄책감 만큼 커다란 무게로 마음을 압도하지는 않지만, 찰싹거리는 파도처럼 하루에도 몇번씩 평온한 마음을 흔드는 불편한 감정이다. 상담을 청할 만큼 심각한 감정은 아니지만 상담 중 내담자들에게서 어렵지 않게 듣는 감정 중 하나다.
화가 크게 나는 것도 아니고 죽도록 미운 것도 아니지만 계속 마음에 똬리를 틀고 앉아있는 불편한 감정이 섭섭함이다.
스쳐가는 가벼운 섭섭함은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오랫동안 마음에 쌓아둔 해묵은 섭섭함은 한번쯤 분명 짚고 넘어가는 게 정신건강에 좋지 않을까 싶다. 섭섭함이 문제가 되는 건 추측과 상상이 더해지면서 머릿속에 자신만의 스토리를 쓰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이쯤 되면 처음 섭섭함을 느끼게 한 정황과는 상관없이 혼자 쓴 오해와 추측의 스토리가 기정사실화 되면서 분노와 우울증으로까지 발전되곤 한다.
‘섭섭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기대에 어그러져 마음이 서운하거나 아쉽고 불만스럽다’ 이다. 섭섭함에는 항상 그 마음을 일으킨 대상이 있고, 그 대상에 대해 내가 품기 시작한 ‘기대’가 있다. 상대가 없이 스스로 섭섭한 경우는 없고, 기대가 전혀 없었는데 마음이 섭섭한 경우 또한 없다.
어떤 이는 “전 진짜 기대가 전혀 없었어요”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게 마음이 섭섭했다면 거기에는 분명 의식하지 못한, 아니면 드러내기에는 너무 유치하고 창피해서 눌러놓은 무의식적 기대가 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섭섭한 마음은 그날의 컨디션과 자신의 심리상태가 얼마나 건강하고 성숙한가에 따라 두가지 방향으로 흘러간다. 첫째는 섭섭함을 느끼게 한 그 사람의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추측하고 확대해석한 후, 스스로를 사랑받지 못한 존재로 느끼고 거부나 무시당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섭섭함을 토로하는 내담자들에게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내가 이렇게 힘든데 하나도 안 도와주니 섭섭하죠. 날 싫어하는가 봐요” “생일인데 어떻게 잊어버릴 수 있죠? 너무 섭섭해요. 사랑하지 않으니까 그런 거죠.” “어떻게 키웠는데 … 고맙다는 표현도 없으니 섭섭하죠.”섭섭함의 연결고리가 이쯤에서 끝나면 그래도 다행이다. 더 심화되면 그 화살이 다시 자신에게 돌아와 자신의 옹졸함과 성격을 비난하면서 자괴감과 죄책감의 고리로까지 연결되기도 한다. 특히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종종 일어나는데 처음의 소소한 섭섭함에 자괴감과 죄책감까지 얹어져 우울증으로 심화되기도 한다.
둘째는 “참 섭섭하네”하고 느껴지는 감정을 인정하고 수용한 다음, 후에 따라오는 슬픔이나 미움 등 이차적인 감정들을 확인하고 마음속의 감정과 생각을 정리해주는 것이다. 섭섭함에는 ‘어그러진 기대’가 숨어있다고 하니, 혹시 나의 기대가 상대에게 적합한 기대인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렇게 감정을 가라앉힌 후 상대의 입장에 한번 서보는 것이다.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지만, 자라온 환경과 가치관과 처한 상황이 다르니,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게 할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의 전환을 연습하는 것이다.
가끔씩 섭섭함이란 불청객이 찾아올 때 두가지 중 어떤 방법을 택할지는 나의 선택임을 기억하자.
한국일보 2015/08.05
모니카 이 심리 상담사
http://www.koreatimes.com/article/20150817/935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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