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일성 - 8월 종파사건(1956)
소련공산당에서 흐루쇼프가 스탈린 격하 운동을 벌이자, 공산권 국가 전역에서 개인숭배에 대한 비판 분위기가 고도화했고 조선로동당에서도 김일성의 개인숭배와 중공업정책에 대한 비판 분위기가 고개를 들게 됩니다.
이를 간파한 김일성은 선수를 쳐 타 계파를 종파분자로 몰아 숙청하였고, 당을 완전히 장악하여 절대권력으로 가는 첫발을 디뎠습니다.

김정일 - 심화조 사건(1997)
김정일 집권 후 고난의 행군이 찾아오며 민심이반이 크게 일어나자, 김정일은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뜬금없이 ‘서북청년단을 색출하라’는 지시를 내리며 경찰인 사회안전성 내에 심화조라는 특수조직을 설치합니다. 담당자는 채문덕이었습니다.
3년 간 심화조는 엄청난 피바람을 일으키며 3000명이 직접 사형당하고 총 2만 5천명 숙청당합니다. 수십년 전 서울에서 활동한 서북청년단을 뜬금없이 북한에서 색출하라는 말도 안 되는 명분으로 일으켰죠.
너무 과격한 피바람으로 오히려 민심이 악화되자, 김정일은 ’심화조가 억울한 누명을 씌워 죄없는 사람들을 죽였다’며 심화조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채문덕도 사형시킵니다. 그리고 본인은 인민들을 위로하고 용서한 ‘은덕의 화신‘이라는 이미지를 띄우게 됩니다.

김정은 - 장성택 사형 (2013)
한국으로 치면 사회초년생 연령인 27세에 집권한 김정은은 당내의 온갖 원로들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특히 킹메이커나 다름없는 장성택은 사실상 가장 강한 권력을 휘둘렀고 그에게 줄을 대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수렴청정을 하듯 정치했습니다.
2013년 겨울, 장성택의 양대 최측근이 공개처형 당한 것을 시작으로 장성택에게 위험이 찾아왔고 결국 12월 당 회의에서 김정은이 장성택을 공개비판하며 그 즉시 체포되었으며, 국가전복음모죄로 사형당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장성택과 연관된 수많은 사람들이 숙청되는 피바람이 불었으며, 고모부고 죽인 김정은을 보고 고위 원로 그 누구도 김정은의 권위에 도전하지 못하며 김정은에게 납작 엎드리게 됩니다. 이제 아무도 김정은을 어리다고 깔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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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종파사건으로 김일성에 맞서던 독립운동가들이 대거 숙청되면서 1인체제가 되고 중국으로 망명한 일부만 살아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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