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본 것도 벌써 몇 번 째인지 모르겠다.
하나의 영화를 이토록 많이, 자주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언제 보아도, 이틀을 연달아 보아도
지루함이 전혀 없는 정말 희한한 작품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영화관에서 볼 때는 몰랐는데
집에서 다시 보니 영화관에서는 못 보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답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나름의 의미를 파악할 수도 있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제니바가 치히로에게 건네준 머리끈의 용도다.


친구들이 직접 짜서 만들어 준 이 머리끈.
제니바는 이 머리끈이 수호신이 되어줄 것이라 했는데,
애니메이션에서는 그 용도가 무엇인지 직접적으로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처음 봤을 때에는
도대체 저 머리끈이 어디서 도움이 되었을까 궁금했었다.
그런데 집에서 좀 더 집중을 하고 보다보니
제니바가 선물한 이 머리끈의 용도가 무엇이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제니바와 가오나시와 헤어진 후, 하쿠의 등에 탄 채 돌아가던 치히로.
이 날아가던 장면에서 치히로의 머리끈이 살짝 빛난다.
머리끈이 빛난 후, 센은 예전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치히로가 하쿠의 이름을 기억해내고 그것을 하쿠도 알게 되었으니,
이제 유바바의 주술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미, 하쿠의 몸에 유바바가 심어놓았던 벌레는 치히로가 죽였지만
하쿠 자신의 본래 이름을 찾지 못하면 어디도 갈 수 없다던 그의 말에 의하면,
이제 자신의 이름을 알았으니, 유바바 곁을 떠날 수 있게 될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이 때 머리끈의 주술이 첫 번째로 작용한 듯 하다.
치히로가 어린 시절을 기억해낼 수 있도록.


엄마 아빠 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치히로를 배웅하는 하쿠.
치히로를 보내준 후 힘 없이 떨어지는 하쿠의 손 때문에
이후 하쿠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를 또다시 짐작할 수 없게 만들었다.
단순히 치히로를 볼 수 없게 되어서,
치히로가 자신에 대한 기억을 잃게 될 것이기에 슬픈건지,
혹은, 유바바의 처형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는 저 하쿠의 손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난 이래서 열린 결말이 싫다.
아무튼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재차 경고하는 하쿠를 뒤로 한 채
열심히 달려 엄마 아빠와 재회한 치히로.




그리고 그 때,
치히로는 뒤를 돌아보려고 한다.
하지만 머리끈이 반짝이면서
고개를 돌리려던 치히로를 멈칫하게 한 후, 다시
엄마 아빠 곁으로 달려가게 한다.
즉, 머리끈의 주술이 고개를 돌리지 못하게 도와준 것 같다.



터널을 빠져나온 후, 시간이 꽤 흘러갔음을 알려주는듯, 온갖 풀이 무성해져있다.
엄마 아빠가 투덜대는 소리가 들리고,
치히로는 그제서야 뒤를 돌아 터널 쪽을 바라본다.
그런데 이 때 치히로의 표정을 보면
정말 무표정이다. 아무런 감정도 없어보인다.
이 순간에는 온천에서의 기억이 남아 있지 않음을 예측해볼 수 있다.
만약 기억이 모두 있었다면
하쿠의 이름을 불러 본다든지, 하쿠에게 인사말을 한다든지,
눈물을 보인다든지,
혹은 엄마아빠에게 지난 일에 대해서 물어본다든지 할 텐데
오직 무표정으로 지나왔던 쪽을 바라보고있고
엄마의 부름에 아무 말도 않고 자동차로 돌아간다.
엄마가 치히로를 부를 때
머리끈이 또다시 반짝인다.
그리고는 아무 미련 없이 뒤돌아가면서 끝이 나는 것이다.
아마 이 때에도 머리끈의 주술이 작용하여
'저 세상'에 대한 기억을 지운 동시에 미련을 없애준 듯하다.


인스티즈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