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난 네가 누군지 몰랐어
너는 햇살이었고, 바람이었고 즐거운 충동이었지
너는 가루 같은 물방울이었고, 춤이었고
맑고 높은 웃음소리
항상 내게 최초의 아침이었어
-황강록 '검고 푸른 날들'
2.
나는 네가 비싸도 좋으니 거짓이 아니기를 바란다
나는 네가 싸구려라도 좋으니 가짜가 아니기를 바란다
만약 값비싼 거짓이거나
휘황찬란한 가짜라면
나는 네가 나를 끝까지 속일 수 있기를 바란다
내 기꺼이
환하게 속아넘어가주마
함부로 애틋한 듯 속아넘어가주마
-정유희 '함부로 애틋하게'
3.
주제를 알면서 감히 꿈을 꿨다
남루하고 깨진 마음에 버겁게도 밀어 넣었다
내 마음에 절망이 스미고
결국 가라앉아 강바닥에 묻힌다 한들
기어코 담고 싶었다
당신을 구겨 넣고 이 악물어 버텼건만
내가 다 산산이 깨어지고
강바닥에 무력히 스러져 눕고서야 알았다
그대는 그저 흐르는 강물이었음을
-서덕준 '강물'
4.
너 누구냐?
꽃이에요
너 누구냐?
나, 꽃이에요
너 정말 누구냐?
나 꽃이라니까
꽃하고 물으며 대답하며
하루해가 짧다
-나태주 '하늘아이'
5.
나로 하여 네가 아름다울 수 있다면
네 몫의 축복 뒤에서
나는 안개처럼 스러지는
다만, 나의 배경이어도 좋다
마침내는 너로 하여
나조차 향기로울 수 있다면
어쩌다 한 끈으로 묶여
시드는 목숨을 그렇게
너에게 조금은 빚지고 싶다
-복효근 '안개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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