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열다섯살때,
나는 처음으로 맨땅을 밟아봤다.
근원을 알 수 없지만 서늘하게 불어오던 기분좋은 봄바람과
따뜻하게 날 비추던 햇빛.
나에겐 처음이였다.
처음엔 모두가 그렇게 사는줄만 알았다.
아니 세상이라는게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애초에 내가 태어나고 자라는동안 본 사람들이라고는
고작해야 흰 가운을 입은사람과 검은옷을 입은사람들뿐이였고
나에게 허락된 곳은 'B연구동'뿐이였으니.
검은남자들에게 양쪽팔을 붙잡힌채로 밖으로 끌려나오던 날.
나는 거칠게 반항했다.
"싫어요."
온통 검은사람들은 내 말에 팔을 거칠게 잡아끌며 말했다.
"친구 만들어줄께."
친구.
늘 혼자였던 나는 친구란 말의 의미를 알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존재또한 모르는것이 당연했다.
연구동의 긴 복도의 끝에 비추는 밝은햇빛은
너무나도 눈이 부셔서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던걸로 기억한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몸이 붕 떳다가 가라앉는듯한 그 기분.
뭐더라.
학연이형이 얘기해준적 있었는데.
아.
'홍빈아. 그건 나른함이라고 하는거야.'
맞아.
나른함
그렇게 이끌려 도착한 곳은 B연구동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A연구동이라고 말했다.
그곳에는 나와 나이가 비슷해보이는 남자아이들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봤더니 세명은 형이였고 한명은 친구 한명은 동생이였는데
난생처음 만난 또래들이 신기하기라도 했었는지
혼자 지냈던 시간들이 무색하게 나는 잘 어울려나갔다.
검은남자는 틀렸다.
그 날 이후
나에겐 친구가 아니라
가족이 생겼다.
*
재환은 남자가 비릿하게 웃으며 던져준 붕어빵을 한손에 꼭 쥐고
나올때와 마찬가지로 양팔을 붙잡혀서 그 곳으로 되돌아갔다.
소중한 사람들이 있는곳.
내 동생들이 있고 내 형들이 있는곳.
양팔을 결박하고 있던 남자들은 입구에 다다르자
기다리고있는 또다른 검은남자들에게 나를 넘겼다.
"이거뭐야"
남자는 비웃으며 나를 툭툭쳤다.
"붕어빵? 동생 생각 끔찍하게도 하네. 하긴 걔가 니들 보ㅎ..."
남자가 말을 끝까지 잇기도 전에 복도끝에서 부터
검은무리들이 줄을지어 걸어나오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남자는 뒷말을 삼킨채로 내 팔을 꽉 잡아챈뒤
옆에있던 남자와 함께 무리들이 지나갈때까지 고개를 숙였다.
물론 내 머리도 누르며 인사를 시킨채로.
"이재환."
내 이름 석자가 불리고 내가 고개를 들면.
비릿한 입꼬리와 함께 나에게 말한다.
"작품치고는 눈빛이 제법 훌륭하군."
기분나쁘게 내 턱을 쓸어내리면서 말한다.
언젠간 아저씨도 내 손으로 죽여버릴거야.
오늘을 잊지 않고 기억해둘께.
"하지만 주인을 물려는 충견은 일찍이 죽기 마련이지.
주인을 대할때는 눈빛을 조금 죽이도록 해. 아니면 니 형제들이 어떤수모를 당할지 몰라."
개같은 소리하고있네.
정말 아저씨. 잘못한게 없어?
우리한테 정말로 하고싶은말 없어?
조금의 양심을 아직까지 바라고있는 내가
정말로 멍청한거야?
남자는 내 손에 들려있던 흰 봉투를 뺏어 안을 들여다보더니
바닥에 내던졌다.
이내 발을 들어 흰 봉투를 밟으려할때 나는 필사적으로 남자들에게
잡혀있던 팔을 빼내고 바닥에 엎드려 남자가
밟지 못하게 막았다.
남자는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옳지. 주인앞에서는 엎드려야지."
그렇게 길게 줄지어있던 남자들은 밖으로 빠져나가고
나는 다시 양쪽의 남자들에 의해서 일으켜 세워졌다.
재환이 방으로 돌아왔을때는 택운과 원식이는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분명 또 훈련을 받으러 갔을테지.
아무것도 모르는 두 막내들은
재환이 쥐고온 흰 봉투에 시선이 빼앗겨서
이게뭐냐고 서로 떠들었다.
"형. 이거 뭔데요?"
홍빈이가 봉투에서 붕어빵을 꺼내 이리저리 돌려보면
이내 상혁이 말한다.
"어? 형. 이거 붕어빵!"
제가 먼저 먹겠다며 티격태격하는 둘을 보며
재환은 봉투를 빼앗아 들어 하나씩 나누어줬다.
"왜 싸워. 형이 많이 사왔는데"
그래. 어쩌면 재환은 이런 동생들을 위해서
그런 궂은일과 수모를 참고 참아낸 것일수도.
*
학연은 쥐 죽은듯 침대에 누워있다.
점점 찾아오는 한기에 학연은 떨리는 눈을 내리감았다.
한바탕 열이 올라 땀을 흘리고 난 뒤여서 그런지
급격하게 떨리는 몸을 웅크려 모아본다.
그때, 문이 열리고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들어온다.
"차학연"
남자는 학연의 상태를 이리저리 확인하더니
얇은손목을 잡아올려 옷 소매를 걷어올리더니
이내 부러질것만 같은 상처투성이 팔목에 주삿바늘을 밀어넣었다.
학연은 한숨을 내쉬면서
떳던 눈을 다시 감았다.
'참자. 이런것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