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F
정말 오랜만에 보는 말하는 원식의 모습이였다.
비록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택운은 원식의 입모양을 읽었다
'탕- 다 쏴서 죽여버리고 싶다.'
언젠가 부터 부쩍 말도 표현도 없어진 원식.
그 날 부터였을까-
*
"김원식"
이름이 불리고 밖으로 불려나가던 원식은 아마도
홍빈이와 상혁이처럼 밖으로 나간다는 사실에
기뻐하지 않았던것같다.
알고있었겠지.
훈련이랍시고 끌려가
그 어린손에 연필대신 총을 쥐고
처음으로 넘겨받은 나이프에 익숙해지기 위해
몇번이나 제 손에 상처가 생기기도 하고
직감적으로 알아차렸을것이다
훗날 원식이의 말을 빌려말하면,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아. 난 악이 되겠구나.'
그 말을 듣고 난 축처진 원식이의 어깨를
토닥거려주는것 밖에는 할 수 없었던걸로 기억한다.
'형, 형은 그런생각 해본적 없어요?'
'무슨생각'
'차라리 이세상이 다같이 망해버렸으면 좋겠다- 뭐 이런생각?'
원식이는 축 처진 눈을 한껏 내리고선
슬프게 웃으며 말했다.
'형, 근데 제가 하고싶은일이 있거든요.'
'......'
'그 일을 마무리짓기전에 세상이 망해버리면 안될텐데.'
손에 쥐어진 나이프를 던져서
표적에 딱 맞춘 원식은 훈련실 문을 열기직전 나를 돌아보며 말했었다.
'형, 택운이형. 세상이 망해버리기 전에. 모든건 내 손으로 끝내요.'
그로부터 며칠뒤, 원식이 밖으로 나갔던날.
같이 갔던 요원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저격한탓에 한참을 우리랑 떨어져서 지냈다.
재환이와 둘이서
거의 보름만에 본 원식이의 모습은
처참하다라는 말로는 표현할수도 없을만큼
망가져있었다.
구릿빛이지만 매끈하던 피부결에는
온통 베이고 찔린 상처들 뿐이였고,
튼자국 하나 없던 입술은
얼마나 많은 고통들을 삼켰길래
피가맺히고 터져있었다.
철장 너머로 혼자 덩그러니 앉아있는 모습은
매우 상처를 받은 모습이였다.
재환이는 철장을 더듬으며
원식이의 이름을 불렀지만 원식이는 끝까지 우리를 쳐다보지 않았다.
'형'
'원식아. 얼굴좀 제대로 보여줘. 응?'
'자유를 되찾아주고 싶은데, 너무 어려워서. 내가 스스로 어둠속에 걸어들어가,
아니, 이게 아닌데, 형, 형. 우리 언제쯤 자유로워질까요. 아니야.
내가 다할께. 내가 하면되잖아. 아직 많이 약해서 그런거야.
힘이 없어서 그런거니까, 그냥 가만히 있어요.
내가 더 강해져서 꼭 자유롭게 해줄께.
제발. 나만 나빠지면 돼. 나만, 왜 안돼.
우리는 왜 평범할 수 없어요? 응?'
'식아'
'왜 우린 이래야만 해요.'
원식이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말했다.
횡설수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재환이의 무릎이 풀썩 앞으로 꺾여지고
철장을 잡고있던 손이 미끄러져 내릴때
'돌아가요'
원식은 우리로부터 등을 돌려 누워 이불을 뒤집어 썼다.
*
맞다, 그때부터.
택운은 생각했다.
*
그일이 마무리된 이후로 원식은 정을 떼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누구보다 자상하던 녀석이
어느순간부터 표정을 굳히고 차갑게 말하는것쯤은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을만큼 그렇게 변했다.
굶주린 맹수의 눈빛.
딱 그 눈빛이였다.
그일이 있고난뒤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서
다시 소년들에게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지난날의 원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택운은 그런 원식을 쳐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저보다 어린아이가 너무 일찍 커버린것같아서.
너무 혼자만 짊어지려는것 같아서.
택운은 또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이 상황을 원망하면서.
*
홍빈과 상혁이 무료하게 오후를 보내고 있을때
이곳으로 온 뒤 처음으로 검은남자가 홍빈을 찾았다.
"이홍빈. 나와"
"네?"
"나오라고"
홍빈은 너무 놀라 벌떡 일어서며 크게 대답했다.
곧 다리를 움직여 한발한발 밖으로 걸어나간다.
처음이라 그런지 홍빈이는 방밖으로 나가는 문앞에서
발을 떼지 못하고 움찔거렸다.
남자는 홍빈의 팔을 거칠게 잡아채 밖으로 끌어당겼다.
엉거주춤 끌려나가며 홍빈은 상혁이 있을 뒤를 돌아봤다.
"형도 나가보는구나. 부럽다.
"
그리 말하며 상혁은 혼자 침대에 앉아 다리를 흔들며 홍빈이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홍빈은 이상한 느낌을 애써 부정하며 손을 마주 흔들었다.
"형도 다녀올께. 기다리고 있어"
"응. 나중에 이야기 해줘야해."
문이 닫히고 검은남자가 거칠게 홍빈을 끌고
긴 복도를 걸어간다.
끝없이 이어진 긴 복도를 걷다가 흰 가운을 입은 남자를 만났을때
남자는 노발대발하며 소리를 질렀다.
"조심히 다루란 말이야! 얘가 얼마나-"
"죄송합니다."
검은남자는 잡고있던 홍빈의 팔을 급하게 풀며 대답했다.
흰 가운을 입은 남자는 손을 치켜올렸다가 제자리로 내리며
남자를 노려봤다.
이내 흰 가운을 입은 남자는 홍빈의 앞으로 걸어와서
씩 웃으며 말했다.
"잘 부탁할께. 홍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