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뜬다. 새하얗다.
나도 저렇게 새하얗고 순수했을까.
다시 눈을 감는다.
『OOO.』
다시 한번 눈을 뜬다.
고개를 돌렀다. 그 사람이다. 그였다.
『일어나.』
이번엔 조금 힘을주어 눈을 감았다.
그는 손을 뻗어 내 손목을 말아쥐었다.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의 앞에 두발을 딛었다.
『... 일주일 째에요.』
『그래, 일주일.』
『..나를 놔줘요.』
내 말이 들리지않는듯 아무렇지않게 흐트러진 머릿카락을 정리해주는 그의 손길에 소름이 끼쳤다.
『초밥 사왔어,』
『크리스.』
그가 나를 잡아당겼다.
거의 끌려나오다싶이, 아니 끌려나와서. 식탁의자에 억지로 몸을 앉힌 그가 내 손에 젓가락을 말아쥐어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초밥 좋아하잖아.』
『...』
『연어랑 새우, 한치,』
『...크리스.』
『계란말이에 설탕도..』
『크리스!』
소리나게 젓가락을 집어던졌다.
그의 완벽한 미소가 사정없이 찡그려진다.
『왜 이렇게 떼를 써.』
『...당신은 미쳤어요.』
『미쳐? 아니, 너를 사랑해.』
『이건 사랑이 아니에요. 크리스.』
『너도 나를 사랑하잖아.』
『...사랑했었죠.』
『그럼 다시 나를 사랑하면되겠군, 그렇지?』
초밥이 가지런히 담긴 예쁜 접시를 통째로 쓰레기통에 쳐박은 그가 넥타이를 풀어헤친다.
두려움이 온 몸을 뒤덮는다.
『OOO.』
『...』
『너는 나를 사랑해야해.』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그에게서 벗어나야했다.
나도 몸을 일으킨다, 뒤로 물러선다.
하지만 곧 그의 손에 낚아채어진다.
두 팔목이 엉키고, 그의 넥타이가 이리저리 감겨온다.
어깨 위로 그의 손이 올라온다.
식탁위로 나를 누르는 그의 무게에 온몸을 비튼다.
무서웠다.
온몸에 퍼지는 유리의 차가운 감촉에 온몸을 비틀었다.
그의 손이 머리위로 올라가는가 싶더니, 순간 눈앞이 번쩍였다.
비릿한 맛이 입 안쪽에 가득 차오른다.
『크리스.. 제발.』
『쉿, 조용히해.』
『...』
『나 지금 굉장히 화났으니까.』
얇은 티셔츠 안으로 그의 차가운 손이 자연스럽게 들어온다.
익숙한 손짓이 등 뒤의 후크를 풀어내린다.
『그래, 조용히.』
숨이 막힌다.
입술에 부딪쳐오는 또 다른 입술이 뜨겁다.
뜨겁다, 뜨겁다, 뜨겁다
눈물이 뜨겁다.
『울지마.』
다정스럽게 내 눈가를 쓸어내리는 그의 손길에 괜히 더 눈물이 차오른다.
『...나는 당신이 미워요.』
그는 대답하지 않는다. 나는 눈을 감는다. 다시 눈을 뜨면 이 지옥이 끝나있으면 좋으련만.
『어쩔 수 없어.』
『...』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
눈을 감는다, 천사가 속삭인다.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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