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후, 고뿔이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한밤 중에 이리 나와계십니까." 황제가 빨간 비단자락을 휘날리며 황후의 옆에 다가섰다. 황후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윤기를 곁눈질로 흘끔 보더니 이내 고개를 휙, 돌리고선 앞으로 걸어간다. 윤기는 그런 황후가 귀엽다는 듯 살풋 웃고서 황후의 두 보 정도 뒤에서 따라간다. "폐하 따라오지 마십시오." "아직도 아까 전의 일로 이리 삐죽거리는 것 입니까?" "제가 저잣거리에 뛰어다니는 아이들도 아니고 그런 것에 삐죽거린단 말입니까?" "그럼 왜 그러시는 겝니까아-" 말 끝을 길게 늘이며 총총 걸어와 황후의 옆에 서는 황제를 본 황후는 그제서야 희미하게 웃음을 띈다. 뒤 따라오던 신하들은 못 말린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나랏 일을 볼 땐 어느 나라의 왕보다 근엄한 모습의 윤기와는 달리 황후와 있는 윤기는 어느 나라의 왕보다, 어느 별의 지아비 보다 아이같고 다정하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환한 달빛을 보며 걷던 황후가 치마의 비단 자락을 밟고는 곧 넘어질 태세를 보이자 윤기가 재빠른 몸짓으로 황후의 허리를 쓱, 감싸안았다. "조심해야지." "폐, 폐하 신하들이 지켜보고 있사옵니다..." "괜찮아." 엄격한 호칭을 사용해야 하는 이 나라이건만. 반말이라니, 놀란 신하들이 죄를 지은 사람처럼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번쩍 들어 황제와 황후를 바라보다 황후를 안고 있는 윤기 때문에 얼굴을 붉히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윤기가 손을 살짝 들어 잠시 물러나달라는 손짓을 해보였다. 신하들과 궁녀들은 그대로 종종 뒷 걸음질로 소리가 안 들릴 정도의 거리를 두고 물러났다. 윤기가 만족한 듯이 미소를 짓더니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하는 황후의 얼굴을 한 손으로 감싸쥐어 자신과 눈을 마주치게 했다. "어디 봐, 나 봐야지." "부, 부끄럽사옵니다아..." "푸흐흐, 진짜 어린 아이같다." "저 어리지않사옵니다!" 윤기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더니 물었다. "그걸 어떻게 증명해?" 황후가 고개를 휙 들더니 얼굴을 붉힌다. "아아, 우리 지난 합방일 밤, 웁" "조, 조용히 하세요!!" 황후가 급히 윤기의 입을 틀어막았다. 윤기가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어대니 황후가 윤기의 품에서 빠져나오려 어깨를 밀어낸다. 황제는 더욱 더 세게 껴안았다. 황후가 본 황제의 얼굴에 푸른 달빛이 가득 차 있다. 윤기의 빨간 옷과는 상반되는 분위기었지만, 어둡게 가라앉아 조화를 이루었다. 황후는 소매를 매만지다 이내 윤기에게 폭삭 안겼다. 한참을 서로의 온기만 느끼던 윤기가 장난스레 한 마디를 던졌다. "오늘 합방일 입니다, 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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