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금이 안넣어져서요 '성시경 - 한번의 사랑' 들으면서 읽으면 좋으다. 쓴이 똥글 솜씨 배려해주면서 읽으면 더 좋으다.하세요.
" 약속할게, 정호야.
너가 그라운드를 다시 밟는 그 날에 네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서 응원하기로."
녹빛 그라운드 위에서 다시 뛰는 나.
그리고 경기장에서 내 유니폼을 예쁘게 입고 응원하는 너.
1이 될 수 없었던, 1/2에 머무른
375일, 9000시간, 54000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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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내 모든 꿈이 산산조각 나 날아가 버린 끔찍한 날이었다.
나는 대표팀의 붙박이 스쿼드였고
런던올림픽 역시 난 모두가 생각하는 당연하고 필수적인 선수였다.
그 날의 리그 경기만 아니었더라면.
올림픽을 위해 뛰었던 나에게 떨어진 것은 부상.
오진으로 인해 난 올림픽 출전이 불가피해졌다.
동료들과 가족들의 위로도 형식적인 인사치레로만 들렸고,
삶이 끝난 기분이란게 이런 걸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네가 없었다면 난 정말 세상을 등지고 돌아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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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항상 자주 아프고, 연약한 아직은 많이 여리고 어린 아이였다.
보호본능을 지극히도 일으키고 또 사랑스러운.
하지만 반대로 멘탈적인 면에서 그 어떤 누구보다 강인했으며,
내 모든걸 감싸안아줄만큼 강단있는 그런 여자였다.
내가 부상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낼 때에도
힘든 기색 하나 없이 날 보살피고 지켜주었으며
너 또한 지치고 힘들었을텐데 매일 짜증만 부리던 나를 웃음으로 받아주었다.
난 내 기분에만 충실한 아직 어리숙한 남자였기에
널 좀 더 생각해주는 법을 이해하지 못했고,
결국 그 결과는
우리의 끝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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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그리던 런던올림픽을 너와 함께 지켜보고,
마음을 추스리고 자철이형을 따라 독일로 가기전 너와의 데이트를 마음껏 즐겼다.
여느 커플 부럽지 않을만큼 달콤했고, 또 행복한 시간이었다.
"정호야."
라고 그 예쁜 목소리로 날 불러 널 쳐다보면
쪽-하고 내 볼에 수줍게 키스하며 부끄러워했다.
손 잡고 늦여름빛이 가득 물든 가로수길도 같이 거닐고,
바닷가에 가 몇 시간이고 물장구를 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넌 먼저 사랑한다는 말을 해줄 수 있는 용기있는 여자였으며
내가 사랑한다는 말을 했을 땐 날 꼭 껴안아주는 부드러운 카페모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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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나는 자철이형과 함께 독일로 재활을 위해 떠났다.
그 선택은 쾌유를, 나를 위한 선택이기도 했으며
나 때문에 자신의 생활을 등졌던 너를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만약 이 선택으로 인해 너와 보내는 시간이 짧아질 줄 알았다면
내 두 다리를 영영 못쓰는 한이 있었더라도 난 이 선택을 내리진 않았겠지.
앞에서 말했듯이 넌 무척이나 몸이 연약한 여자였다.
네 자신은 신경쓰지 않은 채 나에게만 온 관심을 쏟던 너는,
나 모르게 서서히 병으로 물들어갔다.
내가 모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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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가 떠나고 나서야 지인에게 듣고 알아챈 사실이지만
넌 내가 독일로 떠난 그 시간동안 참 많이 앓았다고 했다.
종양으로 얼룩진 뇌 속을 애써 나로 가득 채우고 밤마다 날 불러가며.
난 나에게만 신경쓰기 바쁜 그런 이기적인 사람이라
아픔을 꾹꾹 눌러가며 겨우 쥐어짜낸 너의 목소리는 알아채지 못했다.
그때라도 알았떠라면, 둔감했던 내 청각세포가 조금 더 널 위해 예민했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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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국으로 다시 귀국했을 때, 전의 너와는 달리 나와의 만남을 피하는 너에
난 괜스레한 배신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것이 너의 아픔을 숨기기 위한 너 나름대로의 최선책이었다는걸 여전히 알아채지 못한 채.
매일같이 보던 너의 얼굴이 이틀, 사흘 꼴로 멀어져갔고
그 시간동안 계속해서 너는 병에 잠식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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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복귀전을 위한 막바지 준비에 이르렀을 때 쯤
너는 날 만나 물었다.
" 있잖아 정호야, 만약 넌 내가 아파서 죽는다면 어떻게 할 것 같아? "
난 아무 생각 없이, 대수롭게 대답했다.
그런 생각은 한 적도 없고 하기도 싫다고.
어쩌면 그 질문은 너의 상태를 그만 알아봐달라는 부탁과 애원이었을지도.
난 너의 그 청을 무심히 넘기고,
여느때처럼 리그 복귀에 대한 말만을 늘어놓았다.
" 나 곧 복귀해. 약속한거 기억나지?
유니폼에 직관, 응원까지. 잊지 마. "
핸드폰을 바라보며 던진 말 덕에 나는 슬프게 일그러진 너의 웃음을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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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8일, 내가 다시 축구화 끈을 동여매고 녹빛 잔디 위에 올라선 날.
너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 아픈 몸으로 환자복 위에
내 이름 석자가 마킹된 유니폼을 덧입고 경기장을 찾았다고 했다.
관중석 멀리서 나를 지켜보다, 지켜보다, 그렇게 떠났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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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을 위해 자신을 등졌고 나만을 생각해준 너는,
꼭 마지막까지도 그랬다.
경기가 끝나고 난 뒤 전화를 받은 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마지막까지 날 부르던 너처럼,
그렇게 널 애타게 부르며.
으아아아앙 망했어 똥글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