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뒷꿈치
w.클라렌
꼭 눈이 올 것만 같은 날씨였다.짙은 먹색깔 머플러에 얼굴을 묻은 준회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내 머리에,내 성격에,내 가치관에 공부는 무슨 공부야….중학교 1학년,함수를 배울 그 즈음부터 공부에 흥미를 잃은 준회는 가까스로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파란만장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하루의 시작은 교무실이요,끝 마저도 교무실이어라.교무실에 비치된 2학년 부장 선생님의 캐비넷 옆 빈자리엔 준회의 무릎에 문대어 진 반질반질한 윤기가 나있었다.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어언 반 년이 가까이 지났다.100일이 넘는 출석일수 중 60일 즈음은 무단 지각,20일 즈음은 무단 조퇴,남은 20일 즈음은 무단 결석으로 출석부를 화려히 장식한 준회의 기말고사 성적은 좋을 리 만무했다.지난 학기 까지만해도 어느정도 남아있는 한국사와 생명과학의 열정을 불태워 시험을 치면 70점을 웃도는 두 과목 점수 덕에 겨우 평균 50점을 넘겼었는데,이젠 잔 지식 만으로는 성적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기말고사 총 평균 30점 대를 기록한 준회는 결국 이 길에 서게 되었다.
[푸르지요 2차 106동 702호,조심해서 와^^]
뿔이 난 엄마의 선택은 역시나 과외였다.암,그럼 그렇지.중학교 3학년,준회의 고등학교 입학을 위해 온 동네를 수소문 해 악랄한 과외 선생님을 모셔왔던 그 때와 별 다를 바가 없었다.과외를 시킬거면 방문과외로 시키지,귀찮게 시리.투덜대는 발걸음엔 연신 불만이 가득했다.어느덧 현관문 앞에 선 준회가 숨을 힘껏 들이마시고 문을 두드렸다.둔탁한 소리가 서너번 쯤 울렸을까,문이 열리고 눈 앞에 보이는 건 웬 중학생처럼 보이는 사내놈 하나였다.
5초 간의 정적.
“중딩도 여기서 과외받냐,선생님 어디계셔?”
“응?”
“어쭈,어디서 반말이야 쪼그만한 게.”
“뭐?”
“너희 선생님은 집에 누가 왔는데 학생을 내보내냐,웃긴 곳이네.”
“……나야,선생님.”
풉. 준회는 그 자리에서 웃어버리고야 말았다.
“웃기고 있네.”
“넌 지금 이 상황이 웃기니?”
이제보니 이 녀석,아니 이 사람,마치 본인이 선생님인 양 매우 심기가 불편한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만약 정말 선생님이라면 난 무슨 실수를 저지른걸까.머릿속이 새하얘진 준회가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난 미친 놈이다,미친 놈…….기분이 나빴다면 미안하다고,너무 동안이라 몰라 뵀다고 사과의 말을 전하려 고개를 들자 거실 쪽으로 홱 돌아서는 앙증맞은 뒷모습,그것만이 보이는 것의 전부였다.
“존나……,귀여워.”
본인보다 작고 앙증맞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귀여워하는 준회에게 진환은 마치 눈도 못 뜬 새끼강아지와 동일한 급으로 귀엽게 보였다.나이 쳐먹고 존나 귀엽네…….한참을 제 자리에 서서 귀여움의 여운을 만끽하던 준회가 표정을 싹 굳히고 진환이 간 길을 따라 밟았다.
“선생님,너무 동안이라 몰라뵀어요,죄송합니다.”
“내가 만약에 중학생이였어도 기분 나빴을 행동이랑 말투야,조그맣다고 무시해?처음보는 사람을?”
“너무 작길래,보이는 그대로 작다고…….”
“대들지 마.”
“……네.”
보통 내기는 아니겠네.아까 귀엽다고 생각한 거 취소.진환이 잠깐 딴 곳을 보는 사이 조그만 머리통 위로 꿀밤 놓는 시늉을 한 준회가 입을 대발 내밀고 툴툴댔다.콩알 만한 게,선생이면 다냐.거실 한 가운데에 마련된 탁자 의자에 걸터앉은 진환이 제 앞자리를 손바닥으로 툭 쳤다.여기 와서 앉아.얼핏 스쳐 본 손이 작았다.그래 귀엽네,손만.의자에 앉기까지,준회의 시선은 자그마한 그 손에서 거두어 질 줄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