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ano Concerto
No.1 3rd mov
(BGM- DJ Okawari-Flower Dance, bgm은 끄셔도 내용과는 무관합니다.) (작가의 추천 음악일 뿐이에욯ㅎㅎㅎ) W. 두번째손가락 08. 윤형은 최근들어 부쩍 예민해진 스스로에 납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왜. 김진환 때문에 긴장하고 있어야 하는거지? 내가 지금 김진환에게 긴장하고 있다고? 그도 그럴 것이 진환은 부쩍 당당해졌다. 모자를 쓰며 가리고 다녔던 얼굴도 이제는 고개를 쳐들며 심지어 몇몇과는 인사를 나누기까지 했다. 수업시간에도 얼굴을 비추는 일이 잦아진 진환은 윤형과 마주칠때마다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윤형은 그 행동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피하지도 않았다. 진환과 시선이 얽힐때마다 벌어지는 몇 초간의 기싸움은 항상 주변에서의 술렁거림으로 인해 흩어지곤 했다. 윤형은 진환이 두렵지 않았다. 다만 문제는, 이제 진환도 윤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거다. " 하. " 무엇이 진환을 저렇게 만들걸까. 저렇게 한순간에. 윤형은 문득 고개를 돌리다 걸어가는 인영에 그대로 멈추었다. 진환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 구준회? " 의외의 조합에 윤형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김진환과 구준회가 친했던가..? 아니, 애초에 진환은 날 제외하고 그 누구와도 친하지 않았지. 변수는 구준회다. 김한빈이 아니면 딱히 누구와 어울리는걸 본 적이 없는데. " 형! " 나란히 걸어가는 두 사람을 눈으로 쫓던 중 누군가 윤형의 시선을 가로챘다. 그 곳에는 자신을 꼭 닮은, 하지만 조금 더 앳된 얼굴이 서 있었다. " 어어, 찬우야. " " 경합은 잘 준비되가요? 벌써 다음주던데. " " .. 그럭저럭. " " 그럭저럭? 빡세게 해야 되는거 아니에요? " 찬우의 말에 심기가 불편해진 윤형은 찬우에게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두 실루엣을 다시 쳐다보았다. 윤형의 시선을 따라가 두 사람을 발견한 찬우가 '아'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를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어쩐지. 내용이 너무 좋더라. " " 뭐? " " ppt 말이에요. 수업을 하나도 안들은 사람치고 되게 잘 만들었더라구요. " " ..... " " 구준회가 도와줬나봐요. 그게 아니면 말이 안되니까. " 구준회가 김진환을? 왜? 의아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윤형에게 찬우는 고개를 저었다. 구준회는 무슨 생각일까. " 내용이 좋으면 뭐해요. 무대공포증이라던데. 발표는 자기 혼자해야 되는걸요. " " .. 그렇지. " " 이제 착한척은 아예 끝난거에요? 김진환 그렇게 챙기더니. " " 김진환한테 잘해주던건 진심이었어. " 내 '봉사' 였다니까. 윤형의 말에 찬우는 어이없다는듯 실소를 터뜨렸다. 형은 진짜 이상한 사람이라니까. " 우리쪽이랑 약속한거 잊지말아요. " " 너네 쪽 갈 일 없다고 했다. 강승윤한테 가서 전해. 경합에서 진 떨거지 데려가라고. " " 그니까 그게 형이 될 지 어떻게 알아. " 맞을래? 기어코 손을 들어올린 윤형에 찬우는 기겁을 하며 알았다는 제스쳐를 취했다. 우린 그만큼 형이 탐난다구요. 김한빈 팀에 대적할만한게 우리 팀 뿐이니까. 찬우는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 기대되지 않아요? 1학년 수석 김한빈 팀과 2학년 수석 강승윤 팀. " " ... 넌 이게 재밌나보다. 다들 피 말리는데. " " 경합에서 지면 우리 쪽으로 오는거 맞죠? " " 안져. " 단호하게 말하는 윤형에 찬우는 점차 작아지는 진환과 준회를 바라보며 말했다. 두고보면 알겠죠. " 오~ 병아리! 오늘 발표지? " " 아.. 안녕하세요. " " 무슨 안녕하세요야? 너 2학년 아냐? " 자신을 보고 반갑게 달려오는 지원에게 진환은 고개까지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지원은 황당하게 진환을 쳐다보다 으학학 웃으며 진환의 어깨를 퍽퍽 두드렸다. 반말해, 반말! 지원의 억센 힘에 온 몸이 비틀거리는 진환이었지만 어색하게 웃으며 그.. 그래. 하고 대답했다. " 너 구준회한테도 아직 존대하지? " " 네? 아, 아니.. 응. " " 싸가지 없는 놈. 형한테 반말이나 찍찍하고. 너 앞으로 걔한테도 반말해. " " 어어.. " 옆에 뚱하니 서 있는 준회의 눈치가 보였지만 생각해보면 진환이 눈치 볼 일은 전혀 없었다. 지난 일주일 가까이 준회가 발표 준비를 도와주면서 조금은 친해진 것 같기도 하고. 막상 말을 놓는다고 해서 달라질 일도 별로 없다. 대화 자체가 적었던 두 사람이니까. 준회는 정말 필요한 말만 하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진환이 느끼기엔 그랬다. " 아가, 떨려? " " 네? 아뇨. 아.. 아니, 별로. " " 다행이네. " 진환의 대답이 만족스러운지 지원은 검은자가 안보이게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지원에게 대답한 말은 사실이었다. 진환은 이상할 정도로 떨리지 않았다. 의자에 앉자 얼마 되지 않아 양교수가 들어왔다. 지원이 옆에서 '재수없게 생겼네' 하고 중얼거리는게 들렸다. 양교수가 손짓하자 진환이 자동적으로 일어나 교탁 앞으로 향했다. 진환이 등장하자 강의실이 쥐 죽은듯 조용해졌다. 그 사이로 미소 짓고 있는건 지원뿐이었다. " 안녕하세요. 이번에 발표를 맡게 된 피아노과 2학년. 김진환입니다. " 진환의 인사에 지원이 힘차게 박수를 쳤고(준회도 옆에서 규칙적인 박자로 쳤다. 손에는 힘줄이 세게 서 있었다) 눈치를 보던 학생들도 하나 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박수 소리가 잦아들자 진환은 빙긋 웃으며 스크린에 ppt를 띄웠다. 준회와 열심히 준비했던 ppt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나오자 진환은 묘한 뿌듯함을 느끼며 설명을 시작했다. " 제가 이번에 발표하게 된 주제는 협주곡의 역사로.. " 진환이 설명을 시작하자 굳어있던 학생들의 표정이 점차 풀어졌다. 그 중 몇몇은 벌써 고개를 끄덕이며 진환의 설명에 빠져들었다. 준회는 강의실을 슥 둘러보고 지원에게 속삭였다. 괜찮은 것 같지? " ... 무대공포증이라고? " 반면에 진환이 설명을 막힘없이 술술 할수록 지원의 표정은 굳어갔다. 이상한데.. 중얼거리자 뭐가? 하고 묻는 준회에게 지원은 대답없이 애꿎은 책상만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지나치게 자연스러워. 그래서 어색하다. " 자네 이 수업을 3주동안 나오지 않았는데 발표가 나쁘지 않군. " 가만히 발표를 듣던 양교수가 손을 들어 중단하고 입을 열었다. 그 모습이 꼭 케이팝스타의 YG를 떠올리게 한다고 학생들은 생각했다. 진환은 ppt를 가리키려다 허공에 어정쩡하게 길을 잃은 손을 천천히 내렸다. " 아.. 네.. 어떤 학우가 도와줘서.. " 말하는 동안 준회와 시선이 부딪혔다. 쿵. 하고 무언가 진환의 가슴 속에서 추락했다. 뭐지? 진환은 황급히 눈을 돌려 양교수를 쳐다보았다. 양교수는 쩝쩝거리며 출석부인지 무엇인지를 펄럭였다. 준회의 눈을 보자마자 무너지는, 아니 떠오르는. 아니.. 이상했다. 그저 이상했다. 무언가 추락해서 쿵쿵 튀어다니는 느낌이다. 무대공포증이 도진걸까? 하지만 지금이라도 당장 다시 발표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출석이 하도 드물길래 F를 주려했는데 발표덕에 낙제는 만회하겠군. " " .. 감사합니다. " " 감사는 그 도와준 학우에게 해야할 것 같군, 그래. " 왠지 저를 쳐다보고 있을 것 같은(발표 시작부터 준회는 계속 진환을 보고 있었지만) 준회에 진환은 뻣뻣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발표를 이어갔다. " ... 이상으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 그리고 발표가 끝나는 순간까지. 준회를 다시 쳐다보지 못했다. " 나도 갈래. " " 왜.. 왜 자꾸 온다는거야. " " 한빈이가 찜한 실력이 어느 정돈지 보고 싶어서 그래. 응? 나도 데려가. " 진환이 울상을 지었지만 지원은 막무가내였다. 이유는 즉슨, 진환의 피아노 연습실에 따라가겠다는 것. 발표와 강의가 끝나자마자 전공수업이 있다며 휙 떠나버린 준회와 달리 지원은 진환에게 껌마냥 붙어서 징징거렸다. 물론 지원은 자신의 다음 시간표 또한 전공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알았어도 신경은 안썼을 것 같다만. 아니, 네가 있으면 연주를 못할 것 같단 말야.. 진환은 이제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 동혁이 말곤 연습실에 온 사람도 없고.. " " 동혁이? 그건 또 뭐야. " " 내 룸메이ㅌ.. " " 어!! 그때 걔다!! Hey, Buddy!! " ... 내 말 좀 들어줘.. 열심히 지원이 와서는 안되는 이유를 설명하려던 진환은 해탈하고 지원이 뛰어간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원이 달려간 곳에는 음악사 반장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지원을 맞아주고 있었다. 둘이 아는 사이인가. 진환은 토토토 달려가 지원의 옆에 섰다. 지원도 큰 키라 생각했는데 음악사 반장은 더 컸다. 구준회도 그렇고. 다들 뭘 먹고 이렇게 큰거지? 하고 생각하는 진환의 작은 머릿통에는 지난 세월 마신 우유가 가득 찼다. " 그렇게 많이 마셨는데.. " " 응? 뭐라고, 아가? " " 아.. 아냐. " " 와우!! 그나저나 너도 이거 듣는구나! 반갑다! " " .. 제가 이 수업 반장인데.. " " 오오!! 그래? 넌 이름이 뭐야? " " 정찬우... " " 난 김지원이야. 팀파니과 2학년. 어어.. 넌 뭐하는 애냐? " 말이 이상한데. 뭐 치는.. 아니 뭐 켜는.. 아니, 전공이 뭐야? 맞다. 이거다. 넌 전공이 뭐야? 몇 번이나 질문을 수정하는 지원은 유학생 티가 팍팍 났다. 찬우는 지원의 한 없이 밝은 표정에 순순히 대답했다. 플룻이요. 지난번에도 그랬지만 뭔가 말리는 느낌이다. 찬우는 진환을 흘끗보고 지원을 쳐다보았다. 설마 이 사람도 김한빈 팀인가.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김한빈의 입맛은 알 수가 없다. 전혀 통일성 없어보이는 사람들을 끌어다가 팀으로 만든다. 근데 그게 또 어울린다. 일각에서는 그게 김한빈의 천재성이라며 칭찬하곤 했다. " Buddy, 너도 오케스트라야? " " 그런데요.. " " 오! 혹시 우리 팀?! " " .. 아니, 전 강승윤 팀이요. " 강승윤? 왜 이렇게 모르는 사람이 많은거야. 지원은 누구냐는 표정으로 진환을 쳐다봤지만 진환이 알 턱이 없었다. 찬우는 학교를 통틀어 가장 무지한 두 사람을 어이없이 쳐다보다 이만 가볼게요. 전공이 있어서. 하고 등을 돌렸다. " 강승윤? " 어디서 많이 들었는데. 두 사람은 생각했다. 동혁은 제 영역을 빼앗긴 동물과 같은 느낌을 받으며 가방을 끌어 안았다. 결국 연습실까지 진환을 졸졸 쫓아온 지원은 미친 친화력으로 동혁에게 반가움을 표시하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누웠다. 동혁은 진환이 데려온 낯선 남자에 잔뜩 경계하며 진환을 쳐다봤다. 이 사람 누구에요? 진환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 나느은~ 김지원이야~ 병아리 친구! " " ... 술 마셨어요? 왜 자꾸 웃으세요? " " 뭐? 으학학!!! 아니!!! " 목소리는 왜 저렇게 큰거야. 좁디 좁은 피아노 연습실이 쩌렁쩌렁 울렸다. 이런 사람이 진환이 형 친구일리 없어..! 소매치기 바라보듯 지원을 보던 동혁은 가방을 좀 더 끌어 안으며 슬금슬금 지원에게서 떨어져 앉았다. 그 사실을 알리가 없는 지원은 싱글벙글 웃다가 박수를 짝짝쳤다. " 시작!!! " " 아니 근데.. 이게.. " " 시자악!!! " " ... 못 칠 수도 있... " " Let's go!!!! " .. 지원이 클래식을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진환은 그 와일드한 목소리에 털썩 앉아 건반에 손을 올렸다. 동혁에 이어 자신의 연주를 듣는 사람이 생기다니. 경합전에 좋은 연습이 될 것 같긴 하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하는 진환은 손가락을 움직여 연주를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지원의 눈썹이 씰룩였다. 한빈의 판단은 정확했다. 누가 들어도 충분히 훌륭한 솜씨다. 지원은 숨 죽이고 연주를 듣고 있는 동혁은 한 번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역시, 그거였나. 톡- 톡- 톡- 톡- " ......? " 지원의 손가락이 연습실 바닥에서 리듬감있게 튕겨졌다. 그 소리가 진환의 연주 속에 파고들자 아름답게 이어지던 음들이 잘려나갔다. 진환은 깜짝놀라 건반에서 손을 떼고 지원을 쳐다봤다. 지원은 무표정으로 계속해서 바닥을 두드렸다. " 뭐해? 연주해. " " 어..? 어어.. " 톡- 톡- 톡- 톡- " ..... " " .. 형? " 진환은 손에 땀이 차는 것을 애써 감추곤 다시 건반 위에 손을 올렸다. 지원의 손가락이 두드림을 멈추자 진환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아까와 같은, 문제 될 것 없는 연주였다. " ..... " 탕- 탕- 탕- 탕- " 아, 이봐요!! 뭐하는거에요, 지금?! 형 연주하잖아요!! 방해하러 왔어요? " 이번엔 아예 대놓고 손바닥으로 바닥을 쳐대는 지원에 동혁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진환의 연주가 멈춰있는것은 당연한 전개였다. 지원은 동혁의 역정을 무시하고 피아노로 다가가서 팔을 걸쳤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진환에게 허리를 숙여 눈을 맞춘 지원이 말했다. 흠.. 있잖아, 아가. " 너 무대공포증 아니야. " Student ID 안녕하세요 M-FLOW 음악학원입니다. Student ID는 성명(영어), 학생 고유 번호, 학년, 전공, 클래스가 기본적으로 표기되어있습니다. 학생 고유 번호는 현재 클래스, 입학당시 석차_학과번호, 입학년도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재 클래스를 제외하고 고유번호는 변하지 않습니다. 학생증을 소지하고 있어야만 도서관, 식당, 휴게실 등 M-FLOW의 각종 시설이 이용하실 수 있으며 분실시 입학 당시 서류를 접수하셨던 본강의동 1층에 오셔서 재발급 신청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학생증은 졸업하는 년도까지 이용가능하며 이를 남용할시에는 불이익이 있으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두번째손가락/암호닉와. 방학이에요 여러분! 앞으로 글도 언제든 쓸 수 있겠네요! 어제 가요대전은 보셨나요? 전 못봤다는..ㅁ7ㅁ8 그나저나 암호닉 분들이 늘어나고 있어여...!!!!! ㅠㅠㅠㅠㅠㅠ퓨ㅠㅠㅠㅠ 몇 편 쓰고 포기하려했는데 관심주시니 그저 사랑합니다!@_@ [암호닉] : 제가 글을 쓰는 이유!ㅠㅠ 사랑합니다. 좀 늦었죠? 김지원, 텐션, 휴지, obsession, 보나, 짜잔, 잔디, 레모나
(BGM- DJ Okawari-Flower Dance, bgm은 끄셔도 내용과는 무관합니다.)
(작가의 추천 음악일 뿐이에욯ㅎㅎㅎ)
W. 두번째손가락
08.
윤형은 최근들어 부쩍 예민해진 스스로에 납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왜. 김진환 때문에 긴장하고 있어야 하는거지? 내가 지금 김진환에게 긴장하고 있다고?
그도 그럴 것이 진환은 부쩍 당당해졌다. 모자를 쓰며 가리고 다녔던 얼굴도 이제는 고개를 쳐들며 심지어 몇몇과는 인사를 나누기까지 했다.
수업시간에도 얼굴을 비추는 일이 잦아진 진환은 윤형과 마주칠때마다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윤형은 그 행동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피하지도 않았다.
진환과 시선이 얽힐때마다 벌어지는 몇 초간의 기싸움은 항상 주변에서의 술렁거림으로 인해 흩어지곤 했다.
윤형은 진환이 두렵지 않았다. 다만 문제는, 이제 진환도 윤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거다.
" 하. "
무엇이 진환을 저렇게 만들걸까. 저렇게 한순간에. 윤형은 문득 고개를 돌리다 걸어가는 인영에 그대로 멈추었다.
진환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 구준회? "
의외의 조합에 윤형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김진환과 구준회가 친했던가..? 아니, 애초에 진환은 날 제외하고 그 누구와도 친하지 않았지.
변수는 구준회다. 김한빈이 아니면 딱히 누구와 어울리는걸 본 적이 없는데.
" 형! "
나란히 걸어가는 두 사람을 눈으로 쫓던 중 누군가 윤형의 시선을 가로챘다. 그 곳에는 자신을 꼭 닮은, 하지만 조금 더 앳된 얼굴이 서 있었다.
" 어어, 찬우야. "
" 경합은 잘 준비되가요? 벌써 다음주던데. "
" .. 그럭저럭. "
" 그럭저럭? 빡세게 해야 되는거 아니에요? "
찬우의 말에 심기가 불편해진 윤형은 찬우에게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두 실루엣을 다시 쳐다보았다.
윤형의 시선을 따라가 두 사람을 발견한 찬우가 '아'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를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어쩐지. 내용이 너무 좋더라. "
" 뭐? "
" ppt 말이에요. 수업을 하나도 안들은 사람치고 되게 잘 만들었더라구요. "
" ..... "
" 구준회가 도와줬나봐요. 그게 아니면 말이 안되니까. "
구준회가 김진환을? 왜? 의아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윤형에게 찬우는 고개를 저었다. 구준회는 무슨 생각일까.
" 내용이 좋으면 뭐해요. 무대공포증이라던데. 발표는 자기 혼자해야 되는걸요. "
" .. 그렇지. "
" 이제 착한척은 아예 끝난거에요? 김진환 그렇게 챙기더니. "
" 김진환한테 잘해주던건 진심이었어. "
내 '봉사' 였다니까. 윤형의 말에 찬우는 어이없다는듯 실소를 터뜨렸다. 형은 진짜 이상한 사람이라니까.
" 우리쪽이랑 약속한거 잊지말아요. "
" 너네 쪽 갈 일 없다고 했다. 강승윤한테 가서 전해. 경합에서 진 떨거지 데려가라고. "
" 그니까 그게 형이 될 지 어떻게 알아. "
맞을래? 기어코 손을 들어올린 윤형에 찬우는 기겁을 하며 알았다는 제스쳐를 취했다. 우린 그만큼 형이 탐난다구요.
김한빈 팀에 대적할만한게 우리 팀 뿐이니까. 찬우는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 기대되지 않아요? 1학년 수석 김한빈 팀과 2학년 수석 강승윤 팀. "
" ... 넌 이게 재밌나보다. 다들 피 말리는데. "
" 경합에서 지면 우리 쪽으로 오는거 맞죠? "
" 안져. "
단호하게 말하는 윤형에 찬우는 점차 작아지는 진환과 준회를 바라보며 말했다. 두고보면 알겠죠.
" 오~ 병아리! 오늘 발표지? "
" 아.. 안녕하세요. "
" 무슨 안녕하세요야? 너 2학년 아냐? "
자신을 보고 반갑게 달려오는 지원에게 진환은 고개까지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지원은 황당하게 진환을 쳐다보다 으학학 웃으며 진환의 어깨를 퍽퍽 두드렸다.
반말해, 반말! 지원의 억센 힘에 온 몸이 비틀거리는 진환이었지만 어색하게 웃으며 그.. 그래. 하고 대답했다.
" 너 구준회한테도 아직 존대하지? "
" 네? 아, 아니.. 응. "
" 싸가지 없는 놈. 형한테 반말이나 찍찍하고. 너 앞으로 걔한테도 반말해. "
" 어어.. "
옆에 뚱하니 서 있는 준회의 눈치가 보였지만 생각해보면 진환이 눈치 볼 일은 전혀 없었다.
지난 일주일 가까이 준회가 발표 준비를 도와주면서 조금은 친해진 것 같기도 하고. 막상 말을 놓는다고 해서 달라질 일도 별로 없다.
대화 자체가 적었던 두 사람이니까. 준회는 정말 필요한 말만 하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진환이 느끼기엔 그랬다.
" 아가, 떨려? "
" 네? 아뇨. 아.. 아니, 별로. "
" 다행이네. "
진환의 대답이 만족스러운지 지원은 검은자가 안보이게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지원에게 대답한 말은 사실이었다. 진환은 이상할 정도로 떨리지 않았다.
의자에 앉자 얼마 되지 않아 양교수가 들어왔다. 지원이 옆에서 '재수없게 생겼네' 하고 중얼거리는게 들렸다.
양교수가 손짓하자 진환이 자동적으로 일어나 교탁 앞으로 향했다. 진환이 등장하자 강의실이 쥐 죽은듯 조용해졌다. 그 사이로 미소 짓고 있는건 지원뿐이었다.
" 안녕하세요. 이번에 발표를 맡게 된 피아노과 2학년. 김진환입니다. "
진환의 인사에 지원이 힘차게 박수를 쳤고(준회도 옆에서 규칙적인 박자로 쳤다. 손에는 힘줄이 세게 서 있었다) 눈치를 보던 학생들도 하나 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박수 소리가 잦아들자 진환은 빙긋 웃으며 스크린에 ppt를 띄웠다. 준회와 열심히 준비했던 ppt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나오자 진환은 묘한 뿌듯함을 느끼며 설명을 시작했다.
" 제가 이번에 발표하게 된 주제는 협주곡의 역사로.. "
진환이 설명을 시작하자 굳어있던 학생들의 표정이 점차 풀어졌다. 그 중 몇몇은 벌써 고개를 끄덕이며 진환의 설명에 빠져들었다.
준회는 강의실을 슥 둘러보고 지원에게 속삭였다. 괜찮은 것 같지?
" ... 무대공포증이라고? "
반면에 진환이 설명을 막힘없이 술술 할수록 지원의 표정은 굳어갔다. 이상한데.. 중얼거리자 뭐가? 하고 묻는 준회에게 지원은 대답없이 애꿎은 책상만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지나치게 자연스러워. 그래서 어색하다.
" 자네 이 수업을 3주동안 나오지 않았는데 발표가 나쁘지 않군. "
가만히 발표를 듣던 양교수가 손을 들어 중단하고 입을 열었다. 그 모습이 꼭 케이팝스타의 YG를 떠올리게 한다고 학생들은 생각했다.
진환은 ppt를 가리키려다 허공에 어정쩡하게 길을 잃은 손을 천천히 내렸다.
" 아.. 네.. 어떤 학우가 도와줘서.. "
말하는 동안 준회와 시선이 부딪혔다. 쿵. 하고 무언가 진환의 가슴 속에서 추락했다. 뭐지? 진환은 황급히 눈을 돌려 양교수를 쳐다보았다.
양교수는 쩝쩝거리며 출석부인지 무엇인지를 펄럭였다. 준회의 눈을 보자마자 무너지는, 아니 떠오르는. 아니.. 이상했다. 그저 이상했다.
무언가 추락해서 쿵쿵 튀어다니는 느낌이다. 무대공포증이 도진걸까? 하지만 지금이라도 당장 다시 발표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출석이 하도 드물길래 F를 주려했는데 발표덕에 낙제는 만회하겠군. "
" .. 감사합니다. "
" 감사는 그 도와준 학우에게 해야할 것 같군, 그래. "
왠지 저를 쳐다보고 있을 것 같은(발표 시작부터 준회는 계속 진환을 보고 있었지만) 준회에 진환은 뻣뻣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발표를 이어갔다.
" ... 이상으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
그리고 발표가 끝나는 순간까지. 준회를 다시 쳐다보지 못했다.
" 나도 갈래. "
" 왜.. 왜 자꾸 온다는거야. "
" 한빈이가 찜한 실력이 어느 정돈지 보고 싶어서 그래. 응? 나도 데려가. "
진환이 울상을 지었지만 지원은 막무가내였다. 이유는 즉슨, 진환의 피아노 연습실에 따라가겠다는 것.
발표와 강의가 끝나자마자 전공수업이 있다며 휙 떠나버린 준회와 달리 지원은 진환에게 껌마냥 붙어서 징징거렸다.
물론 지원은 자신의 다음 시간표 또한 전공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알았어도 신경은 안썼을 것 같다만.
아니, 네가 있으면 연주를 못할 것 같단 말야.. 진환은 이제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 동혁이 말곤 연습실에 온 사람도 없고.. "
" 동혁이? 그건 또 뭐야. "
" 내 룸메이ㅌ.. "
" 어!! 그때 걔다!! Hey, Buddy!! "
... 내 말 좀 들어줘.. 열심히 지원이 와서는 안되는 이유를 설명하려던 진환은 해탈하고 지원이 뛰어간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원이 달려간 곳에는 음악사 반장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지원을 맞아주고 있었다. 둘이 아는 사이인가. 진환은 토토토 달려가 지원의 옆에 섰다.
지원도 큰 키라 생각했는데 음악사 반장은 더 컸다. 구준회도 그렇고. 다들 뭘 먹고 이렇게 큰거지? 하고 생각하는 진환의 작은 머릿통에는 지난 세월 마신 우유가 가득 찼다.
" 그렇게 많이 마셨는데.. "
" 응? 뭐라고, 아가? "
" 아.. 아냐. "
" 와우!! 그나저나 너도 이거 듣는구나! 반갑다! "
" .. 제가 이 수업 반장인데.. "
" 오오!! 그래? 넌 이름이 뭐야? "
" 정찬우... "
" 난 김지원이야. 팀파니과 2학년. 어어.. 넌 뭐하는 애냐? "
말이 이상한데. 뭐 치는.. 아니 뭐 켜는.. 아니, 전공이 뭐야? 맞다. 이거다. 넌 전공이 뭐야?
몇 번이나 질문을 수정하는 지원은 유학생 티가 팍팍 났다. 찬우는 지원의 한 없이 밝은 표정에 순순히 대답했다. 플룻이요. 지난번에도 그랬지만 뭔가 말리는 느낌이다.
찬우는 진환을 흘끗보고 지원을 쳐다보았다. 설마 이 사람도 김한빈 팀인가.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김한빈의 입맛은 알 수가 없다.
전혀 통일성 없어보이는 사람들을 끌어다가 팀으로 만든다. 근데 그게 또 어울린다. 일각에서는 그게 김한빈의 천재성이라며 칭찬하곤 했다.
" Buddy, 너도 오케스트라야? "
" 그런데요.. "
" 오! 혹시 우리 팀?! "
" .. 아니, 전 강승윤 팀이요. "
강승윤? 왜 이렇게 모르는 사람이 많은거야. 지원은 누구냐는 표정으로 진환을 쳐다봤지만 진환이 알 턱이 없었다.
찬우는 학교를 통틀어 가장 무지한 두 사람을 어이없이 쳐다보다 이만 가볼게요. 전공이 있어서. 하고 등을 돌렸다.
" 강승윤? "
어디서 많이 들었는데. 두 사람은 생각했다.
동혁은 제 영역을 빼앗긴 동물과 같은 느낌을 받으며 가방을 끌어 안았다.
결국 연습실까지 진환을 졸졸 쫓아온 지원은 미친 친화력으로 동혁에게 반가움을 표시하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누웠다.
동혁은 진환이 데려온 낯선 남자에 잔뜩 경계하며 진환을 쳐다봤다. 이 사람 누구에요? 진환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 나느은~ 김지원이야~ 병아리 친구! "
" ... 술 마셨어요? 왜 자꾸 웃으세요? "
" 뭐? 으학학!!! 아니!!! "
목소리는 왜 저렇게 큰거야. 좁디 좁은 피아노 연습실이 쩌렁쩌렁 울렸다. 이런 사람이 진환이 형 친구일리 없어..!
소매치기 바라보듯 지원을 보던 동혁은 가방을 좀 더 끌어 안으며 슬금슬금 지원에게서 떨어져 앉았다. 그 사실을 알리가 없는 지원은 싱글벙글 웃다가 박수를 짝짝쳤다.
" 시작!!! "
" 아니 근데.. 이게.. "
" 시자악!!! "
" ... 못 칠 수도 있... "
" Let's go!!!! "
.. 지원이 클래식을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진환은 그 와일드한 목소리에 털썩 앉아 건반에 손을 올렸다. 동혁에 이어 자신의 연주를 듣는 사람이 생기다니.
경합전에 좋은 연습이 될 것 같긴 하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하는 진환은 손가락을 움직여 연주를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지원의 눈썹이 씰룩였다.
한빈의 판단은 정확했다. 누가 들어도 충분히 훌륭한 솜씨다. 지원은 숨 죽이고 연주를 듣고 있는 동혁은 한 번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역시, 그거였나.
톡- 톡- 톡- 톡-
" ......? "
지원의 손가락이 연습실 바닥에서 리듬감있게 튕겨졌다. 그 소리가 진환의 연주 속에 파고들자 아름답게 이어지던 음들이 잘려나갔다.
진환은 깜짝놀라 건반에서 손을 떼고 지원을 쳐다봤다. 지원은 무표정으로 계속해서 바닥을 두드렸다.
" 뭐해? 연주해. "
" 어..? 어어.. "
" .. 형? "
진환은 손에 땀이 차는 것을 애써 감추곤 다시 건반 위에 손을 올렸다. 지원의 손가락이 두드림을 멈추자 진환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아까와 같은, 문제 될 것 없는 연주였다.
탕- 탕- 탕- 탕-
" 아, 이봐요!! 뭐하는거에요, 지금?! 형 연주하잖아요!! 방해하러 왔어요? "
이번엔 아예 대놓고 손바닥으로 바닥을 쳐대는 지원에 동혁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진환의 연주가 멈춰있는것은 당연한 전개였다.
지원은 동혁의 역정을 무시하고 피아노로 다가가서 팔을 걸쳤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진환에게 허리를 숙여 눈을 맞춘 지원이 말했다. 흠.. 있잖아, 아가.
" 너 무대공포증 아니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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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와. 방학이에요 여러분!
앞으로 글도 언제든 쓸 수 있겠네요! 어제 가요대전은 보셨나요? 전 못봤다는..ㅁ7ㅁ8
그나저나 암호닉 분들이 늘어나고 있어여...!!!!! ㅠㅠㅠㅠㅠㅠ퓨ㅠㅠㅠㅠ 몇 편 쓰고 포기하려했는데 관심주시니 그저 사랑합니다!@_@
[암호닉] : 제가 글을 쓰는 이유!ㅠㅠ 사랑합니다. 좀 늦었죠?
김지원, 텐션, 휴지, obsession, 보나, 짜잔, 잔디, 레모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