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h liebe dich 01]
(BGM은 끄고 들으셔도 무방합니다.)
#01
유난히 햇살이 따뜻한 어느 봄 날, 조용한 강의실 속 들려오는 교수님의 목소리에 학생들의 고개는 책상에 내려놓인 전공 책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앞 줄의 학생들은 다리에 샤프로 쿡쿡 찔러가며 어떻게든 집중하려 노력했고 뒷 줄로 가면 갈수록 모습은 가관이었다. 마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진화과정을 보고 있는 것 같달까. - 충분히 어떤 모습인지 알 것이라고 믿는다 - 여느 학생과 다를 게 없는 세훈과 종인도 교수님의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램 수면 상태로 빠져가고 있었다. 간간히 눈을 떠 어디쯤 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종인과는 다르게 세훈은 벽에 머리를 기댄 채 정신을 잃어 가고 있었다. 한창 열정을 담아 책을 읽던 미하엘 교수님이 시선을 들어 학생을 쭉 한 번 둘러보곤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에 반응이 없는 터라 이상하게 생각할 법도 했을 것이다.
교수님의 시선은 벽과 사랑에 빠지고 있는 세훈을 향했다.
“Sehun. Lesen Sie, bitte. (읽어보세요.)”
“......”
“Se, hun. Lesen Sie.”
세훈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은 종인이 점점 딥 슬립에 빠져가려는 세훈을 급히 흔들었다.
“야, 야.”
종인이 급히 흔들자 경기를 일으키며 깬 세훈이 풀린 눈으로 종인을 쳐다보았다.
“뭐. 아, 왜.”
책을 툭툭 치며 친히 손으로 읽을 부분을 짚어준 종인이 세훈에게 눈치를 주었다.
하지만 지금껏 자고 있던 세훈이 그걸 알 리가 있나.
“여기 읽으라고.”
“내가 왜.”
지져스. 이 새낀 분명 눈치를 학식에 말아 쳐 먹은게 분명하다.
읽으라 하면 닥치고 좀 읽었으면 좋겠다. 뭔 말이 그렇게 많은지. 도와줘도 지랄이야.
그래도 친구라고 도와주려 했더니 저런 한심한 놈을 도와주느니 차라리 눈 감고 귀 막는게 마음이 편할지도 모르겠다 라고 생각을 한 종인이었다.
“Sehun, Dösen Sie nicht während der Veranstaltung. (강의 중에 졸지마세요.)”
왠일인지 미하엘 교수님은 점수를 깎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세디 센 독일어 발음으로 욕을 된통 퍼 부어 주었을텐데. 이상하다 싶었다.
“Und Geben Sie die Entschuldigung bis diese Woche freitag ab. (그리고 금요일까지 반성문 제출하세요.)”
그럼, 그렇지. 그냥 넘어가실 분이 아니지. 종인은 꿈 속에서 해메던 세훈을 지긋이 바라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곤 한숨을 푹 내쉬며 그의 어깨를 몇 번 두드려 주었다.
참으로, 안됐다는 듯이.
시간을 보니 수업이 끝날 시간이었다. Auf Wiedersehen! (다음에 봐요!)를 외친 교수님이 강의실을 나섰고 나머지 학생들도 짐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세훈은 쓰러지듯 다시 책상에 누웠다. 그리곤 중얼중얼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기 시작했고.
“아, 존나 개빡치네. 야, 나만 잤냐?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너도 잤잖아. 근데 저 새끼는 왜 나보고 지랄이야. 아오! 진짜 내가 왜 독일어를 한다고 지랄해가지곤.”
“자랑이다, 이 새끼야. 참고로 반성문 독일어로 써야 된다. 잊지 마라.”
미친, 진짜 지랄이다. 별의 별 쌍욕을 거하게 해대는 세훈이 이해가 간다는 듯 몇 번 끄덕여 보이곤 종인이 일어났다.
“당구나 한 판 치러 가자.”
그게 바로 그들의 새 학기가 시작되고 일주일이 지난 순간이었다.
.
.
#02
준면은 어김없이 도서관으로 향했다. 다음 수업까지 남은 시간까지 2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과탑의 공강보내는 모습이겠지. 도서관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는 잠시 들고있던 전공서적을 내려 놓았다. 유일하게 학교에서 준면이 책을 내려놓는 순간이기도 하다.
“민석이 형!”
“어, 준면이 왔어? 또 공부하러 가는거야?”
“그렇죠, 뭐. 저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테이크 아웃, 아시죠?”
“알고말고. 샷은 평소 같이?”
“음, 네! 아, 아니요. 오늘은 샷 한 번만 추가해주세요!”
그가 죽고 못사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이다. 도서관 내에 카페가 있다는 게 준면에겐 신의 한 수였기도 하다. 그리고 민석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있었고.
“자, 여기. 공부는 잘 되가?”
“어휴, 복학하고 보려니까 잘 안 들어오네요. 그래도 해야죠 뭐..”
“모르는 건 없고?”
“많죠. 완전 많아요.”
마냥 모범생 이미지와는 다르게 칭얼칭얼 거리는 준면이 귀여워 보였던 민석은 준면의 품에 안긴 책을 뺏어들었다. 자, 어디보자.
“아아, 봐봐. 여기선 sein 동사가 아니라 haben 동사를 써야 돼.”
“정말요? 아, 제가 잘못 알고 있었나봐요. 아휴.”
민석이 잠시 카운터를 비우고 테이블로 나와 준면의 앞에 앉았다. 그리곤 준면이 모르겠다는 부분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해주었다. 손님이 오기 바로 직전까지.
“헐, 형 완전 고마워요! 제가 언제 밥 한 번 살게요.”
“뭘 이런 걸 가지고! 됐어 됐어. 그 돈으로 너 맛있는 거 사먹어.”
“그럼 술? 어때요.”
“흠.”
“구미가 당기죠?”
“알았다, 알았어. 조만간 날 잡자! 우리 준면이가 사주는 술 한 번 먹어보게.”
“딱 기다려요! 그럼 전 올라가볼게요.”
“오야, 공부 열심히 해!”
준면이 열람실로 올라가고 민석은 그런 준면의 뒷모습을 아빠미소로 바라보았다.
.
.
.
#03
“야, 도경수 형! 당구 치러 가자니까?”
“싫다 했다. 그리고 형한테 뭐, 야?”
“경수 형아, 오늘 세훈이가 기분이 매우 안 좋은데. 당구 치러 한 번만 같이 가주면 안돼요?”
“오세훈, 너 기분 안 좋은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아잉, 경수 형아. 그러지 말구.”
“나 바빠.”
이렇게 말하곤 바람을 쌩 일으키며 일어난 경수가 뒤도 안 돌아보고 커뮤니티 존을 나갔다. 오늘은 더 이상 너희 둘과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똘끼충만 김종인이 포기할 리가 있나.
“형이 가기 싫으면 납치하면 되죠.”
사람이 차고 넘치는 캠퍼스 한복판에서 보쌈을 해 버리는 종인이었다. 아마, 미친거겠지?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대는 경수를 개무시하고 어깨에 들쳐업은 경수를 다시 바로잡더니 휘적휘적 걸어갔다. 오세훈, 빨리 와. 라는 말과 함께.
“아무튼, 김종인. 넌 존나 또라이야. 싸이코패스같다고.”
당구장 쇼파에 앉은 경수가 종인을 보며 말한 것이다. 이마 옆에 검지손가락을 피곤 빙빙 원을 그리면서 말이다. 뭐 이런 걸 가지고. 라는 표정의 종인이 큐를 집어들었다.
“으아, 얼마만에 당구장이냐. 안 친지 너무 오래 됐는데.”
“미친놈아. 1주일도 안됐어 임마.”
종인이 말하고 이어서 세훈이 답했다. 정말로 당구를 칠 생각이 없어보이는 경수는 쇼파에 앉아 중국집 메뉴판을 뒤적이고 있었다.
“김종인, 200점 내기다.”
“콜. 진 사람이 밥값내기.”
“야, 당연히 너네가 밥 사주는거지? 억지로 보쌈까지 해 왔으면 적어도 보상은 받아야지.”
“......”
들었는데 못 들은 척을 한 건지. 듣질 못한 건지. 아무 대답이 없는 둘이었다.
“씨발, 나 간다.”
“에헤이. 혀엉~ 넝~담~ㅎ 장난이죠. 장난! 제가 낼게요!”
중국집 책자를 집어던지고 쇼파에서 일어나려는 경수를 극구 말리는 세훈이었다. 그러던가 말던가 라는 표정의 종인도 힐끔 돌아보다 자신을 째리고 있는 경수를 보곤 흠칫 놀라 표정을 풀었다.
“아, 존나 너네 짜증나.”
“그래도 형 밖에 없는 거 알죠? 난 이래서 형이 좋더라.”
경수는 사탕 발린 말을 줄줄 내뱉는 세훈이 시끄러워 전화번호를 누르던 손을 가져다 입을 막았다.
“항상 먹던 걸로 시키면 되지?”
셋이 입을 모아 말했다.
“진리의 3번 세트.”
경수가 전화를 걸고 당구 내기를 하다 멈춘 종인과 세훈이 계속 플레이했다.
비등비등한 실력에 실수 한번으로 가려지는 내기인 만큼 둘 다 눈에 불을 켜고 집중했다. 그런 둘을 보는 경수는 쇼파에 누워 배달이 올 때까지 잠깐 눈을 붙이려다 문득 세훈에게 말했다.
“야, 근데 너 기분 안 좋다며.”
“아, 그거요. 아오, 또 생각하니까 짜증나네.”
“수업시간에 자다가 반성문 쓰게 생겼대요.”
“엥? 누구 시간이었는데.”
“미하엘 교수님이요.”
“벼엉신. 그 교수님 시간에 자다 들키는 게 병신 아님?”
“운이 안 좋았던거라고 생각하죠, 형.”
반성문 쓸 생각에 다시 시무룩해진 세훈이 초크만 만지작거렸다. 속으론 미하엘 교수님을 곱씹으면서 말이다. 경수가 힘쇼라며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지만 퍽이나 위로가 될 법도 했다. 배달이 올 때까지 세훈과 종인은 당구를 쳤다. 거의 끝이 날 무렵 세훈의 삐끗함으로 인해 종인이 승리를 거머쥐었고 환호하는 종인의 면상에 대고 연신 머피의 법칙이라며 중얼거리는 세훈이었다.
“아아, 짜증나!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냐.”
“오늘만 날은 아니지~ 자자, 오늘은 오세훈이 쏜다, 쏜다, 쏜다!”
앞에서 약올리는 종인에게 원 투 펀치를 날리고 싶었지만 코뼈라도 부숴버린다면 정말 날이 아닌게 될 것만 같아 참고 참았다. 지갑을 꺼내들자마자 타이밍이 좋게 도착한 배달부가 중국요리를 꺼내고 세훈은 눈물을 머금은 채 초록 지폐 3장을 꺼내들었다.
“맛있게 드세요.”
“그럼요, 맛있게 먹고 말고요. 수고하십쇼!”
신문지 세팅을 마친 종인이 배달부의 뒷통수에 대고 말했다. 그리곤 드물게 볼 수 있는 개죽이 웃음을 지어대며 짜장면을 비볐다.
“야야, 그러지 말고 공부를 좀 하는게 어때, 세훈아.”
“형, 지금 저랑 장난쳐요?”
“내가 뭘?”
“아직 형이 날 잘 모르는구나..”
“잘 알아서 그러는거야 임마. 공부 좀 해! 그러다가 너 훅간다니까?”
“형, 오세훈은 책 폈다 하면 나자빠지는 놈인거 알잖아요. 무슨 공부,”
“그러니까! 공부 좀 하라고. 그러지 말고 너네 과 선배들 중에 유명한 사람 있다면서.”
공부를 안하는 종인과 세훈이 알 리가 있나. 그런 소문은 상위권 애들한테만 자자하지 애초에 그런 경우엔 신경조차 안 쓰는 그들이었다.
“아, 그.. 아, 아! 김준면! 맞어. 이번 학기 복학생! 소문 쫙 났던데. 독일어과 복학생 중 과탑이 있긴 드문데 걘 과탑이라고.”
세훈은 처음 듣는 이름이라 고개를 갸웃거리며 탕수육만 우물우물 씹어댔고 종인은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듯 아. 하며 떠올리는 듯 했다.
“누군지 알 것 같아요.”
“엥, 니가 어찌 알아.”
“그 있냐, 맨날 지각도 안하고 앞 줄 앉는 형 하나 있잖아. 허얘가지고.”
“그런 사람이 있었어?”
“아, 세훈아. 제발 세상 좀 보고 살자.”
“노 상관.”
“야, 형이 진지하게 말하는데. 걔한테 가서 공부 좀 배워라.”
“싫다니까요.”
“됐어. 저리 치워. 소 같은 새끼. 으휴.”
혀를 끌끌 차며 종인이 세훈을 바라보자 브이를 만들어 자신의 눈을 겨냥하는 세훈이 보여 주춤하는 종인이었다. 그리곤 짜장면에 코를 박고 흡입하기만 했다지.
어느 정도 배가 부른 경수는 뒷정리를 하고 있었고 계산은 자기가 했다며 생색을 낸 세훈이 쇼파에 누워 트림을 꺽꺽해대가며 핸드폰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디리리링-’
학사공지가 떴을 때 울리는 알람소리였다. 매번 도서관 주최 행사나 토익 시험을 보라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공지가 종종 오는 편이라 오늘도 역시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셋이었다.
핸드폰을 쥐고 있던 세훈이 푸시 알림을 보고 눌렀고 머리에 손을 올리며 긴 탄식을 내뱉었다.
“아아-”
“왜.”
종인의 눈 앞에 핸드폰 액정을 들이 민 세훈이 욕지거리를 뱉었다.
“씨발, 수업 다 끝났는데.”
‘학사공지. 김종대 교수님의 피치 못할 사정으로 내일 수업이 오늘로 당겨졌으니 4시까지 본관 2104 강의실로 오기 바랍니다. -조교-’
“아, 김 교수님! 피치 못할 사정은 개뿔. 또 여행갈꺼면서 이런다.”
“너네 교필(교양필수)이냐?”
“네..”
“그럼 나는 안가도 되네~ 아싸.”
복수전공인 경수는 독일어과 전공만 들으면 됐으니 당연히 안 가도 되는 수업이라 콧노래를 불렀고 독일어과 학생인 종인과 세훈은 김 교수를 죽이네 살리네 어쩌네 하며 30분도 채 남지 않은 시간을 확인하고 짐을 챙겼다. 뒤에 들려오는 경수의 조롱같은 말을 등 진채.
“수업 열심히 들어, 애들아~”
[♥암호닉♥]
한혜
연두
안녕하세요 슈니입니다!
오늘부터 1편을 가져 오게 되었는데 조금 지루하죠?ㅠㅠ
인물들의 관계도를 그리다 보니까 조금 지루해 진 것 같아요ㅠㅠ
준면이와 세훈이의 첫 대면은 다음편에 이뤄질 것 같아요! 기다려 주실꺼죠?
암호닉 신청 꾸준히 받고 있구요!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려요! 감사해요!
독자님들의 댓글과 암호닉으로 저 슈니가 먹고 산답니다...the love♡
아차, 답댓은 달아드리려고 굉장히 노력하고 있어요! 칭찬해주셔야되요!ㅎㅎㅎㅎ
그럼 다음 편에 뵈요~ 뿅♡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다들 펑펑 울었던 한국 영화 적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