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랑 나는 어릴 때부터 참 징 하게도 붙어 다녔지. 싸우기도 징그럽게 싸웠긴 한데 대충 우린 정말 좋은 친구였다고 말할 수 있을 거 같다. 일단 매일 같이 붙어 다녔고 밥 먹듯 싸워도 밥 먹듯 다시 붙어 다녔고. 그렇게 18년 인생을 같이 지내왔으니 너나 나나 서로 모르는 게 없지만 넌 모르는 게 하나있거든 지금 까지 꾹꾹 참아왔는데 이젠 좀 시원히 물어보고 싶다.
“우리가 무슨 사이냐.”
-
“갑자기 뭐라는 거야-. 우리야 뭐 원수? 좋게 포장하면 친구?”
그래 그렇지. 찬열이랑 백현이는 같이 지낸지 벌써 18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그냥 봐도 긴 시간이지만 시간만 18년이지 둘 나이가 18살이니까 사실 둘 다 서로 지금껏 평생을 같이 있던 것이다. 거기에 좋다해야할지 나쁘다해야할지 그동안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까지 계속 같이 다녔고 현재도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그것도 같은 반 2년째. 웬만한 사람들이면 다 알 수 있는 옛 마을 어딘가에서 모름지기 손에는 나무 막대기 등엔 빨갛고 파란색의 보자기를 휘두르고 온 마을을 휘젓고 다니던 말썽쟁이 골목대장 놀이는 지들이 다 하며 고1생활을 보냈는데도 또 같은 반을 시켜주다니 당사자들은 환장할 노릇이다. 기쁨의 환장인지 절망의 환장인지는 모르고.
설상가상 부모님들 까지 애들과 같은 식이라 학교는 물론 집에서도 하루라도 얼굴을 안 보는 게 이상할 정도다. 부모님 세대부터 서로 배넷 친구였는데 지금까지 친한 그런, 그 이유가 가장 큰 것 같다. 의도치 않은 건지 의도 한 건진 모르겠지만 집도 항상 앞집이나 옆집. 이런 식이였기 때문에 더 많이 붙어있게 되었다. 싸워도 화해를 안할래야 안 할 수 없게 만드는 구조랄까. 또 관심을 안 가질래야 안 가질 수 없는 구조일 수도 있고.
오늘도 그렇다. 얼마 전 백현네가 이 동네로 먼저 이사를 왔지만 일주일이 지난 지금 여전히 둘은 옆집이다.
“아가야. 엉아를 왜 이렇게 따라다니는 거야.”
응-? 백현은 찬열의 어깨를 툭툭 치며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투덜거렸다. 참네, 저 조그마한 게 엉아라니. 코웃음을 치는 찬열을 벌하기라도 하듯 가부좌를 트고 앉아 핸드폰 게임하기에 바쁜 찬열의 허벅지를 발로 꾹꾹 괜히 건드린다.
“쪼그마한 게 또 나대지. 엉아 게임 다 했는데 놀아줄까요? 우쭈쭈.”
우쭈쭈는 개뿔…. 왠지 붉어지는 얼굴을 숙인 백현이의 머리통을 헝클어 놓고는 정리가 덜 마쳐진 자기 집이 아닌 이미 다 정리 된 백현네 집으로 들어가 딱 봐도 백현이 방으로 보이는 깔끔하지만 곳곳에 유치함이 어울려진 그 곳으로 자연스럽게 발을 돌려 들어가 자신의 방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 큰 몸뚱이를 백현이 작은 싱글 침대에 풀썩 누이니 침대가 작아 보이기까지 했다.
“아 이게 또. 왜 남에 침대에 막 눕냐고, 니가 눕고 나면 침대가 꺼지는 기분이라고 했지 내가.”
눈을 팔로 가리고 지금이라도 당장 잠에 들 듯 누워있던 찬열게에 땍땍대는 백현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굳이 안 봐도 백현의 하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해져서는 강아지 같은 눈을 되도 않게 찍 째고 있을 걸 생각하니 화난 강아지 같아 크흨…. 비웃음인 듯 비웃음 아닌 비웃음 같은 웃음소릴 진짜 작게 흘렸는데 청력까지 강아지를 닮았는지 백현이는 찬열에게 다가가 하얗고 예쁜 손으로 통통, 아니 퍽퍽 치는데 얘가 요새 경기 나간다고 운동을 너무했다. 힘이 엄청 붙었네. 하는 생각을 잠시 한 찬열이지만 콩깍지가 씌인 찬열한텐 미친 척하고 그저 귀여운 정도라 말할 수 있는 패기가 있다. 그 둔탁한 소릴 내는 손을 붙들고는 알았어. 하며 아이 달래 듯 띄워준 후에 몸을 일으켜 앉았다.
“…미친.”
앉자마자 백현의 얼굴을 마주하니 역시 자신의 생각과 같아서 인지 괜한 감탄사와 함께 웃음이 났다. 다만 다른 걸 말하라면 실제로 보니 상상보단 훨씬 귀엽다는 정도?
“뭘 쪼개, 조개처럼 반으로 쪼개 버릴라. 니네 집 정리 다 됐어 당장 너희 집으로 꺼져.”
“네-. 라임왕 납셨네요. 알겠어 백현아-. 여리 엉아 갈게?”
다른 사람이 했다면 분명 오만 인상 다 찌푸리며 온몸으로 괴리감을 표현했을 라임에도 백현이니 그저 넘기고 끙차. 일어서서 한손은 예쁘고 고운 목덜미를 또 한손은 토실토실한 백현이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말하자 또 얼굴이 붉어져서는 정강이라도 깔듯이 역정을 내는 백현에 웃으며 제 빨리 옆집=본인 집으로 도망가는 찬열이다. 어휴 귀여워
가만히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백현이가 요새 찬열의 스킨쉽에 평소와 다르게 쫌 과하다 싶을 정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게 미심쩍은 박찬열(김칫국 매니아)은 잠시 변백현이 날 좋아하나 싶은 생각을 하다가도 평소처럼 또 괜한 생각이라고 결단을 지었다. 하지만 또 더 이상 손에 들려 있는 핸드폰 게임 따위에는 도저히 시선이 가지 않는다.
“이야. 변백현 보고싶네.”
미친 게 분명하지. 고럼, 변백현에게 미쳤지. 방금 봐놓고 뭐가 보고싶다고 핸드폰에선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애처롭게 카운트다운을 세는 게임을 무시한 채 찬열은 얼굴을 배게에 묻었다. 아이고야 엄마. 아들 진짜 게이 되려나 봐요. 찬열은 진정되지 않는 마음이지만 요새 들어 가끔씩 깊게 해보게 되는 생각을 해봤다. 가끔이니까 하루에 한 18시간? 잘 땐 그런 생각 안 해. 차라리 몽정을 하고 말지.
일단 처음에는 이 정도는 전혀 아니었다. 물론 이런 식이라도 그냥 친구니까 라는 식으로 부정하기만 바빴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뭔가 지금 찬열이는 제 마음을 이젠 부정할 수 조차 없다랄까. 근데 또 사실 박찬열은 워낙 낙천적이고 긍정적이라 그런지 원채 이런 감정을 부정하지도 딱히 자괴감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냥 좋은 게 좋은 거지.
그런 찬열에게 혹시 지금 니가 뭔 상황인지 모르는 게 아니냐고 누군가 물어 와도 대답할 수 있을 자신이 있는 사람이 박찬열이다. 지금 저가 좋아하는 변백현은 18년 인생을 지겹도록 붙어있던 부랄 친구인데 내가 얘를 좋아하는 게 친구 좋아하듯이 아니라 뭔가 더 특별한 감정이라는 거. 백현이는 보면 막 이렇게 조물조물해버리고 싶은 사람? 더 말하자면 찬열이 이대로 백현이한테 인생배팅을 한다 치면 아마 박씨 집안 대를 이어가긴 힘들겠다는 정도? 그 정도로 설명 할 수 있을 것이다.
찬열은 어느 순간부터 백현이가 화사하게 활짝 웃는 얼굴을 보면 가슴 떨리다 못해 쿵쾅거리고 섬섬옥수를 보면 잡고 싶고 동그랗고 아담한 뒷모습을 보일 때면 안고 싶고 백현이가 오물 오물거리며 입을 움직일 땐 그 입술이 참 예뻐 뽀뽀를 왕창 해주고 싶고 평소엔 마냥 귀엽게만 생긴 애가 가끔씩 보는 찬열이 자제하기 힘들만큼 섹시할 땐 정말…. 거기다가 웬만한 여자애들 볼기짝을 한 백대쯤은 후려갈길 정도로 귀엽고 훨씬 예쁘고 사랑스럽다. 네, 그냥 박찬열에게 변백현은 세상 혼자사시는 분이시죠. 이런 생각을 할 땐 문득 스스로가 변태인가에 깊은 고뇌도 해 본 찬열이지만 그건 아닌 게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그냥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그런 게 당연하기 때문에. 그렇게 요즘 들어 찬열이의 눈엔 콩깍지가 단단히 씌인것이 분명하다.
“아오 변백현 진짜.”
아무리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라 본인이 백현이를 좋아하는 건 단숨에 인정하고 과장을 보태자면 가끔 즐기기까지 하지만 일단 쌍방향인지 아닌지 모르는 아니. 당연히 찬열이의 나 홀로 짝사랑일 게 뻔한 데 이렇게 계속 마음은 커지고 정작 고백을 하자니 유치하다는 걸로 애써 포장을 하지만 사실 흔한 남녀간의 고백도 아니라 괜히 틀어질 사이 걱정에 아무 것도 못하고 그냥 가만히 있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어 저렇게 탄식을 내뱉었더랬다.
“야, 박찬열!”
그때 찬열의 방 문 앞에서 제가 좋아하는 백현이가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대답할 틈도 없이 바로 방문이 힘차게도 열렸고 역시나 백현이가 있었다.
멀뚱멀뚱 쳐다보는 찬열을 뒤로하고 자연스럽게 컴퓨터 앞으로가 의자에 세상 제일 편한 자세로 앉는 와중에도 여태껏 침대에서 멀뚱대며 자신을 쳐다보는 찬열을 저도 뚫어저라 쳐다보다 할 말이 있는지 입을 오물거리는데 그걸 보고 있는 찬열은 저도 모르게 같이 입을 오물거렸다.
“뭐야 백현이 뚫어져. 그만 봐.”
“뭐야…. 삼인칭 자제 좀 님아.”
아- 예-. 시덥지 않은 대답을 하곤 다시 고개를 돌려 모니터를 향한 백현의 시선에 또 정말 백현이가 뚫어지도록 뒷모습을 보며 방금 말하면서 더듬지는 않았나. 당황하지는 않았나. 등등 별 걸 다 확인하는 자신의 모습에 웃음이 나서 바보같이 웃고 있는 중에 백현이가 왜 우리 집에 다시 왔나 싶어 말을 하려고 입을 열려는 순간 백현이 먼저 말을 꺼냈다.
“너희 부모님 우리 부모님이랑 저녁 드시러갔다. 우리끼리 밥 알아서 먹으라고 해서 왔음.”
“뭐야, 존나 독심술 쓰세요?”
“찬열이가 그렇게 계속 게임하는 백현이 부담스럽게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당연히 알 수밖에 없지 않겠니?”
“별로 뚫어지게 안 봤거든? 김칫국은.”
겉으로는 똑같이 대하지만 속은 저가 쳐다보는 게 들켰다는 데에 온 관심이 쏠려 있다. 눈이 뒤통수에 달렸나? 쟤 원래 눈치 빠른데 설마 지금까지 맨날 내가 쳐다보는 거 다 들킨 거 아니야? 찬열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너무 어색하다. 괜히 또 저 혼자 우물쭈물하는 것도 어색하고. 지금 컴퓨터 하는 변백현이 또 눈에 들어와서는 예뻐 보이는 제 눈도 새삼 어색하다.
“그래서 뭐 먹을 건데. 나보고 만들라고 하진 않을 거고. 시켜?”
“당연. 박찬열 니가 만들어 주는 걸 먹으면 백현이 아야해요-."
“미친…. 또 삼인칭 쓰지. 내가 자제하라 했다.”
귀엽고만 괜히 지랄. 백현은 찬열의 말을 대충 받아치고는 다시 게임에 집중했다. 진짜 저거 요새 삼인칭 쓰는 거 맛 들여서는 엄연히 짝사랑 중인 찬열이에게 아무렇지 않게 시전하실 때 마다 심장이 쿵. 떨어지는 기분이 드는 찬열이다. 이건 뭐 진짜 병신도 아니고 무안함을 떨치기 위해 빨리 전화를 한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변백현 저거 내가 좋아하는 것도 눈치 채고 더 저러는 거 아니야?
거실에 나와 이 달의 배달 책자를 살펴보던 찬열이 평소 시키던 동네가 아닌 이사 온 옆 동네의 중국집에 전화를 걸었다. 흔한 중국집의 광고 노래가 금방 멈추고 건너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찬열은 언제나 그래왔듯이 짬뽕 하나, 짜장면 하나, 탕수육 중 하나를 시켰고 주소를 부르려는 찬열을 다급하게 부르는 백현에 의해 고개를 돌려 방을 쳐다봤다.
“백현이도 짬뽕-.”
“새삼스럽게 뭔 짬뽕이래.”
“닥치고 하던 주문이나 마저 하시죠?”
대충 고개만 끄덕이고 다시 전화로 짜장면 지우시고 짬뽕으로 바꿔주세요. 네, 짬뽕 둘 탕수육 중 하나에 수만동…. 주소까지 말하고 간단하고도 긴 통화를 마친 후에 다시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
백현이는 아직도 게임 중이시다. 아니 추억 팔이라도 하나. 요새 갑자기 붕붕이를 외치던 백현이 게임에서도 붕붕이를 운전하며 물풍선을 쏘고 바나나를 던진다. 끽 해봐야 다들 초등학생 아니면 뜨문뜨문 백현 같은 추억 팔이 중이신 제 또래의 애들일텐데 완벽한 몰입도를 보이며 하는 걸 보니 저것도 변백현이니 귀엽구나 싶었다.
찬열은 의외로 게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백현이가 가끔 같이 하자고 할 때만 같이 해주는 편이다. 딱히 흥미는 없지만 백현이와 같이 하면 다 재밌는 찬열이니까. 사실 같이 하는 것 보단 게임을 하면서 시시때때로 표정이 바뀌는 백현이를 보고 있는 편이 더 재미있긴 했다. 그래서 지금도 침대에 살짝 몸을 틀어 누워 백현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방향으로 돌려 게임에 집중한 백현이를 흘끔흘끔 보면서 백현이가 탄식하면 저도 안타까워 탄식하고 또 백현이가 웃을 땐 저도 좋아져 실실 웃는 제 모습이 꼭 무슨 어린 애 좋아하는 변태 아저씨 같아서 크흠. 괜히 목을 가다듬고선 표정 관리를 하며 보고 있었다.
"박찬열!"
자꾸 자기를 쳐다보는 찬열이를 또 의식 한 건지 아니면 말 한 마디 없이 가만히 있는 찬열이를 의식 한 건지 백현이는 하던 게임을 멈추고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순식간에 찬열에게 달려들었다. 분명 당황한 찬열의 얼굴은 열이 올랐을 것이다. 그렇게 잠시 넋 놓고 코 앞의 백현이를 보던 찬열은 진짜 당황 한 건지 딸꾹질이 나올 뻔 했다. 끕.
“뭐야. 박찬열이 나 좋아하나? 얼굴이 왜 빨개지실까-.”
“뭐?”
“장난이야 장난. 너 그렇게 정색해도 한 개도 안 무서움.”
“그냥 좀 당황…. 아니, 열이 나서…. 열이 나서 그런 거야.”
그리고 정색 안했거든. 열이 난다는 찬열에 멀쩡하다가 갑자기 붉어져서는 조금 후끈 거리기까지 한 얼굴로 말도 더듬으니 정말 찬열이 아프다고 생각한 건지 백현이는 코앞에 있던 얼굴을 더 밀착시켜 그대로 자기 이마를 찬열의 이마에 가져다 댔다. 아니 가져다 댄 거 치고는 좀 센데, 쿵 소리가 살짝 크게 날 정도로 가져다 댔다. 아니 가져다 박았다.
“아. 머리 깨지겠네.”
“그 정도로 아파? 갑자기?”
“응. 누구 돌 마빡 덕에.”
찬열은 이마를 때며 장난을 치는데도 백현은 진짜 찬열이 아픈 줄 알았는지 찬열을 방으로 끓고 가서 침대에 던지 듯 몸을 뉘이게 한 후 이불을 눈 바로 밑까지 꽁꽁 덮어주고 찬열의 가슴께를 톡톡 치고 나서야 그나마 만족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찬열은 이 어이없는 상황에 당황하기도 잠시 그냥 백현이 좋은데로 해줄까 싶어 어린 동생 소꿉놀이에 장단 맞춰 주 듯 슬쩍 눈을 감았다. 그냥 잠깐 자고 일어나지 뭐.
“배달 오면 깨워줄게 자고 있어.”
백현이가 찬열이 방의 불을 끄고 문까지 꼭 닫고는 거실로 나갔는데 웅성거리는 걸 보니 아마 티비를 보고 있는 거 같았다. 그냥 그 티비 소리에 집중 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잠이 슬금슬금 오는가 싶더니 쥐도새도 모르게 진짜 잠에 들었다.
“끄으아악-.”
자고 일어나서 기지개를 피면 저도 모르게 육성으로 나오는 이상한 비명 같은 신음. 신음 같은 비명을 내며 얼마나 잤나 하고 핸드폰을 켜 시간을 보니 딱 40분 정도 지났다. 슬금슬금 거실로 나가보니 빈 그릇 하나와 거의 먹지 않은 탕수육과 배달 온 상태 그대로인 짬뽕이 식탁에 차려져 있었다. 행주로 닦은 듯 보이지만 조금 얼룩덜룩 짬뽕 국물이 바닥에 흘러 있었다. 아이고야 지저분하게도 쳐드셨네.
일단 시간을 보면 못해도 배달 온지 30분은 지났을 건데 정작 배달 오면 깨운다던 백현이는 집에 간 듯 보여 찬열은 대수롭지 않게 입 찢어지도록 하품을 하고서 배를 긁적이며 화장실로 향했다.
으흥흥-. 자고 일어나서 인지 뭔가 가뿐한 기분에 뭔 되도 않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문을 여는 순간.
“악. 시팔 깜짝이야!"
“엇. 왜 거기서 나와.”
찬열이 화장실 문을 열려고 손을 뻗자마자 문이 마치 자동문처럼 슥 열리더니 동그란 머리통이 불쑥 튀어나와서는 소리를 지르며 수건을 던졌다. 정작 집에 간 줄 알았던 백현이 화장실에서 나오는 걸 본 찬열보다 나오는 백현이가 더 놀래서는 기겁을 하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휴.
“뭐야. 집 간 거 아니었어?”
“뭐래-. 먹으려고 하는데 바로 엎어서 못 먹었어. 아, 나 그냥 씻고 너 옷 빌려 입었다. 이의 없지?"
“괜히 안하던 짓 하니까 그렇지. 그러게 그냥 짜장면 먹지 뭔 짬뽕.”
찬열의 말과 동시에 찬열을 때리려는 듯 주먹을 꼭 쥔 손을 피해 웃어 보이니 백현이도 찬열을 따라 같이 웃어주면서 정강이를 깠다. 악!
“아오. 개 아프네 진짜. 반칙이지 운동하는 애가 발 쓰는 건!”
“그건 뭔 개같은 논리? 밥이나 먹어.”
이미 다 불었을지도. 정강이를 소중하게 감싸고 끙끙 앓는 찬열을 지나쳐 어디서 찾았는지 구급상자를 익숙히도 꺼내더니 티를 까고 배에 하얀 연고를 바르는 걸 보고서야 아, 다쳤겠구나. 싶었다. 찬열은 자고 일어나서인지 정신이 몽롱했었나 왜 그땐 뜨거운 짬뽕을 바로 엎었다는데 다쳤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건지 의문이 들기도 잠시 지금은 정신이 들었으니 두 말할 것도 없이 백현이에게 다가갔다. 사실 좀 더 주의 깊게 봤더라면 싱크대에 그대로 버려진 짬뽕의 잔해들도 보였을 거고. 다 먹고 간 게 아니란 걸 알 수도 있었을 건데 박찬열은 스스로 빠가라고 자책을 했다.
“뭐야 엄청 빨개졌잖아. 병원 안 가냐?”
“병원은 무슨. 지금 9시도 넘었는데 그냥 내일 더 아파지면 가지 뭐."
“이게 더 아파지고 난 뒤라하면 이미 니 배엔 물집이 자리잡고 있겠지.”
“그래서 약 바르고 있잖아. 뭐가 문제야-.”
“됐다. 줘 봐 엉아가 발라줄게. 옷이나 잡고 있어.”
한 손으로 옷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약을 배에 바르는 백현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헐렁한 제 옷이 자꾸 흘러 내리 길래 찬열은 저가 발라준다며 백현의 손에 들려있던 연고를 뺏어 들었다.
“자꾸 엉아 속상하게 다칠래. 운동하다 다치고 이제 하다못해 짬뽕한테 다치냐. 어휴.”
“또 엉아랜다. 네- 엉아 근데 엉아보다 다친 백현이가 제일 속상하거든요.”
“알면 조심을 하던가 해야 할 거 아냐-. 옷이나 잘 잡아라.”
새하얀 백현의 속살과 대조되게 빨개져 곳곳에 이미 몇 개가 울퉁불퉁하게 자리 잡으려는 부위에 더 열심히 연고를 바르며 인상을 찡그려졌다. 연고를 바르느라 저가 어딜 만지고 있는지도 모르고.
"아흣…."
순간 정적이 흐르며 손길을 멈춘 찬열이 눈을 크게 뜨고서 쇼파에 앉은 백현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던 찬열은 백현이를 올려 보았다. 엄마 내가 뭘 들은 거죠?
“…응…?”
진짜 내가 뭘 들은 걸 까요 엄마. 백현도 제 입에서 요상한 소리가 난 후 정적이 부끄러웠던 건지 허공에 방황하던 두 눈이 마주치자 놀란 토끼처럼 눈이 동그래져서는 입을 앙 다물고 부끄러운 듯 멋쩍게 웃어 보이는 백현을 보고 있자니 순간 잊었던 걸 깨달았다. 그저 백현이가 다친 데 신경을 쓰다 보니 찬열은 저가 백현이를 좋아하는 걸 잠깐 인지하지 못했던 거 같은데 다시 한 번 더 정신 차리고 보는 지금의 변백현은 예뻐도 너무 예쁘고 색정적이어도 너무 색정적이네?
“살… 살살해! 니가 아픈데 꾹 눌러서 그런 거….”
대답은 못하고 물끄러미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진짜 잠도 달아난 판국에 좀 늦었지만 서도 알아차린 후에 보는 변백현은 너무 예뻤다. 백현의 평소 둥그렇고 몽글몽글한 강아지 갔던 머리카락은 씻고 시간이 좀 흐른 지금까지 물방울이 머리끝에 맺혀있고. 눈을 살짝 덮는 정도의 앞머리에 씻은 후라 그런지 평소보다 훨씬 더 뽀얀 피부와 붉은 입술은 백현의 몸에 난 물집 자국보다도 훨씬 더 살색과 대조 되어 찬열의 눈에 틀어박혔다.
그것도 모자라 지금 백현은 그런 찬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품이 큰 찬열의 반팔 티와 반바지를 입고 서 볼과 귀를 한껏 빨개진 상태로 상체를 드러내고 있는데 그런 큐티 섹시의 완결판인 변백현인데 그걸 보는 자가 찬열이라니 말 다 했다싶다. 순간적으로 다 깼던 정신이 또 다시 몽롱해 지는 기분에 손에 들고 있던 연고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찬열의 커다란 양 손이 백현이의 마른 양 무릎을 잡고 고개를 숙여 몸을 지탱하는 꼴이 되었다.
안 그래도 같이 있으면 딴 맘먹게 되서 애국가를 하루에 몇 십 번이나 불러 본 경력이 있는 찬열이지만 오늘이 가장 강력한 듯싶었다. 대체 지금 어쩌자고 저를 사모하는 굶주린 찬열의 앞에 저런 위험한 모습으로 있는지 1도 모르겠는 찬열이다. 날 잡수시죠-. 하는 거랑 뭐가 틀려-! 그래. 사실 틀리다. 하지만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하는데 찬열이는 혼자 이미 잡수실 마음가짐을 끝내고 있는 듯 보였다.
“뭐야. 왜이래…. 또 열나?”
“아이고… 변백현 진짜.”
갑자기 자기 무릎에 고개를 숙이고 힘이 쭉 빠진 듯 보이는 찬열에 백현은 적잖이 당황한 듯 앉아 있던 쇼파에서 스르륵 내려와 찬열의 볼을 양 손으로 잡아 눈을 마주쳤다.
“진짜 아파? 애가 왜이래…. 병원가자 병원.”
“…아까 내가 가자고 할 땐 벌써 밤이라고 됐다했으면서. 그리고 아픈 거 아니거든-.”
그거랑 이거랑 같냐. 툴툴 거리며 약통을 뒤지기 시작하는데 안 아프다는 말을 안 믿는 눈치다. 오늘따라 왜이렇게 내 건강에 신경을 쓰시는지 몰라 백현이가.
“어떡하냐. 해열제나 두통약은 없는 거 같은데. 내가 사올까? 박찬열. 응?”
대답이 없는 찬열에게 깜찍하게도 응? 하면서 어느새 쇼파에 기대 앉아 멍하니 있던 찬열에게 다가가 살짝 허리를 굽혀 고개를 찬열이의 얼굴 쪽으로 푹 숙여서 눈을 맞추는데 또 얼굴이 붉어졌다. 망할. 지조 없는 볼따구같으니.
“너 또 열 엄청 나는 거 같은데? 혹시 병 걸린 거 아닐까. 옮진 않겠지?”
“병은 무슨…. 됐으니까 손이나 치워-.”
아닌 거 같은 데…. 중얼대면서 찬열의 볼 위에 얹혀 있던 손에 더 힘을 줘 자기 쪽으로 쭉 끓어 당겨서 또 이마를 대보는데 진짜 찬열이 심장 떨어질 뻔 했다. 아니 이미 떨어졌을 수도. 와 엄마. 하느님. 얘가 왜이래요 오늘.
찬열은 혹여 심장이 콩콩 뛰는 소리가 들리진 않을까 등을 더 뒤로 빼 쇼파에 푹 기댔다. 그러다가도 꼭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제 모습이 정말 무슨 첫사랑 겪는 사춘기 여자 고등학생 같아서 소름이 돋았지만 변백현이 바로 눈앞에 와있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랴 싶었다.
“이야 이렇게 뜨거운데 뭐가 아니야 아니….”
더 이상 생각이고 뭐고 다 치워버리고 그냥 바로 앞에서 오물오물 움직이던 변백현의 입술에 찬열은 제 입술을 그대로 박아버렸다. 뿅뿅뿅뿅뿅. 띠리릭-. 서로 뜨겁게 맞닿은 입이 열릴 쯤 문도 함께 열렸다.
-
오랜만에 글 올리넼ㅋㅋ 원래는 씬까지 쓰려했지만 뭔가 이 글 분위기랑은 어울리지 않을 거 같아서 불맠 없는 글로~! 'ㅅ'
저번 글하고는 완전 다른 분위기! 아하핫 근데 이게 아마도 내가 제일 처음 썼던 글인데 파일 정리하다 보이길래 손 좀 봐서 올려여
그때 프라이머리 입장정리 들으면서 썼던 기억이나네여 임시 제목도 입장정리였는데 말이조 찾아보니까 이미 있는 제목이더라구여..;ㅅ;
그래서 그냥 생각나는데로~ ! 하핫 댓글 쓰시구 아까운 포인트 다시 받아가세여 싫음 말구요..! ;ㅅ;
그나저나 결말 내가 써놓고도 뭔가 찬백이들 부짱... 뭐 알아서들 잘 하겠지~! 행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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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티즈앱 ![[찬백] 우린 짬뽕이 이어준 사이다!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412284/679dc3a9210b31018b182ba9634f3424.jpg)
현재 서로 충격받고있는 올해 유행음식..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