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야 너도 알다시피 나는 일찍부터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어. 영화를 통해 사회에 냉철하고 날카로운 시선을 주는 게 내 꿈이었잖아. 영화를 사랑하는만큼 아이돌이 연기하는 게 싫었어. 잘해도 싫었다고 이야기 했었잖아. 난 정말 죽을듯이 연기만 하는 배우가 좋았고 오직 연기만 하면서 사는 배우가 좋아서 그러다가 네 영화를 보고 마음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내가 좋아하는 김향기를 닮았대서 관심을 갖고 별 생각없이 영화를 보았다가 나는 망설임없이 같이 작업해보고 싶은 배우 리스트에 너의 이름을 적었어. 우리가 만나는데 의외로 오래 걸리지 않았어. 내가 무작정 영화판에 잔업이라도 하게 뛰어들었을 때 너가 주연배우라는 것을 알고 얼마나 놀랐던지 너 실물이 잘생겨서 더 놀랐었잖아 잘 나가는 아이돌이면서 주연배우인 너는 내 생각과 다르게 겸손하고 모두에게 친절했어. 그래서 또 다르게 널 봤던 거 같다. 단순히 잔업을 하는 나에게도 꼬박꼬박 인사해주고 따뜻한 커피를 챙겨주는 너의 모습이 좋았어 진지하게 연기에 임하는 모습은 날 반하게 만들었잖아. 물론 배우를 보는 미래의 감독의 마음으로 사실 너가 다른 사람들은 따뜻한 레쓰비 챙겨주면서 나는 내가 즐겨먹는 아카페라 카라멜 마끼야또 챙겨줄 때라던가 춥다고 네가 덮고 있던 담요를 내게 둘러주었을 때는 설레기도 했다 그래도 단순히 내 착각인 줄 알았고 헛꿈 꾼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촬영까지 끝나고 회식할 때 너가 나한테 눈치 없냐고 좋아한다 말해서 얼마나 당황스러웠던지 너는 술 취해서 따지듯이 고백하고 나는 오랜만에 먹는 고기에 허겁지겁 상추쌈을 우겨넣다가 얼결에 저도 좋아해요 했잖아. 지금 생각해보니까 정말 웃긴다. 로맨틱 코미디도 아니고 그런 모습으로 고백이라니 얼떨결에 너랑 애인이 되어 처음으로 너 번호를 받아서 '자기♥'로 저장할 때 솔직히 정말 좋았어. 내 핸드폰에 처음 저장된 자기였으니까. 그런데 집에 오고 나니 후회되더라. 혹시 기자들에게 모습이 잡혀서 인터넷어 '인기 아이돌 E그룹의 D멤버의 여자친구'로 신상 다 공개될까봐 무섭기도 하고 자랑스러운 너의 모습에 비해 내가 초라하기도 하고 넌 그런 내 마음을 알아서 불안하지 않게 더 잘해줘서 너무 고마웠어. 오히려 나 때문에 데이트다운 데이트 못해도 내 얼굴만 보고 있을 수 있어서 좋다며 웃는 너의 얼굴에 미안해서 울었잖아 그 때 당황해서 네 큰 눈이 도륵도륵 구르는 게 어찌나 귀엽던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다시 생각해도 너는 정말 내게 잘해줬다. 바쁜 와중에도 꼬박꼬박 연락해주고 바쁜 스케쥴에도 휴식시간만 나면 공부에 지친 내게 힘내라며 재잘재잘 이야기 해주던 너의 모습. 사실 이번 작업하면서 지칠 때면 네 생각이 많이 나더라. 너가 그 정도 내게 잘해줬으니 나도 너한테 반의 반만큼이라도 했어야 하는데 맨날 너한테 틱틱대고 끝내 나는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 해 너에게 상처만 줘 미안하다. 3년동안 너랑 길다면 긴 연애의 종지부를 내 멋대로 찍어서 정말 미안해. 그 후 너가 방송에서 피곤해보인다는 리포터에게 요새 좀 힘드네요 하고 웃는 모습에 어찌나 울었는지 몰라. 내게 웃음만 주던 너에게 나는 상처만 주었다. 그 뒤로 오늘 있던 내 첫 영화 시사회에서 널 2년 만에 보았을 때도 눈물이 났다. 너에게 미안해서 그리고 날 향해 박수를 쳐주고 웃어주는 너에게 더 미안해서 사실 이번 영화는 널 잊으려고 작업에 매진한 결과물인데 오늘 너를 보니 너는 잊지 못하고 그냥 좋은 영화만 나온 거 같더라 이제 오늘로 나는 호평을 얻으며 기대되는 신인감독으로 데뷔하게 되었어. 아직도 그 때의 너랑 어울리려면 부족한 사람이지만 이만큼 성장한 것은 너 덕분이야. 마지막으로 고백하자면 사람들은 이게 내 처녀작이라고 하지만 내 처녀작은 로맨틱코미디였다. 아마 그게 내 인생 최고의 영화일 거라고 생각해 너무 리얼한 영화를 만들어 여전히 그 감상에 젖어 있어 그보다 좋은 로맨틱 코미디 혹은 로맨스는 못 만들 것 같아서 아마 그런 영화는 찍지 못 할 거야. 경수야 내 인생 최고의 영화를 선물해줘서 고마워. 정말로 고맙고 미안해. 사랑했고 사랑해. 갑자기 헤어진 연인에게 편지를 쓰는 컨셉으로 쓰고 싶어져서 그만.. 사실 영화 쪽 전혀 모릅니다. 다 제 상상이에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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