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백현과 박찬열은 그냥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친해져 있었어.
연애영화에 나오는 흔한 어릴적 소꿉친구도 아니요, 같은 초등학교나 중학교 출신도 아니고 그저 고등학교 2학년때 처음 만났을 뿐이야.
그럼에도 둘은 가장 친한 친구의 이름을 묻는 사람에게는 주저 없이 서로의 이름을 가장 먼저 댔음.
백찬은 그냥 늘상 함께했어. 함께 급식실로 튀어나가고, 매점을 털고, 운동장 가장자리에서 그늘을 쬐고, 야자를 땡땡이쳤지.
" 야, 변백현, 너 이거 하냐 ? "
" 담배? 안 해,새끼야. 넌 하냐? "
" 안하냐? 난 하는데… "
" 성인 되서 해도 안늦어. 키 안큰다. "
" 난 이제 클만큼 컸으니까 너나 좀 커라. 말티즈만한 변백현."
박찬열의 성격좋게 빙글빙글 웃는 얼굴과 장난스러운 말투는 누구에게나 호감을 얻기 쉬운 그런 타입이었어. 대학에 가면 여대생 깨나 울릴법한.
백현은 그와 함께 붙어다니면서 거리나 학교를 배회할때면 여학생들의 핑크빛 시선이 바로 옆 위쪽에 열렬히 쏠리는것을 느낄 수 있었어.
그래서 백현은 어쩌면 변백현에게 자격지심을 느꼈던지도 모를 일이야.
그것이 자격지심이었던가? 무슨 심리였었던가? 둘의 사이는 어느 일을 기점으로 묘하게 틀어져버려.
" 야 변백, 누구한테 그렇게 카톡을 열심히 보냄? "
" 응?? 어엉. 아니. "
" 여친 생겼지? "
" 아니야… , 아 쫌! 야 !!!! "
" 이쁘냐? 이뻐? 우리학교냐? "
" 여친 아니라고!!! "
백현이 관심 가던 여자애는 사실 박찬열과도 아는 사이임.
점심 먹고 학교를 배회할때 우연히 마주쳐 박찬열과 다소 친근하게 말 섞는걸 몇 번 본 이후로 자꾸 생각나고 신경쓰이게 된 거야.
여태껏 학교의 예쁜 여자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주고받고는 했지만 이번만은 찬열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음. 찬열과 자신이 똑같이 여자아이들과 놀면서 말을 섞을때면 항상 관심을 더 차지하는건 찬열 쪽이었단 말이지. 사실 변백현도 내가 여자라면 당연히 찬열쪽이 더좋겠지 하고 마음속 한깊은곳에서 인정하는 부분임.
항상 공부든 여자든 나쁜짓이든 자기한테 제일 먼저 말하고 이야기하던 백현에 익숙해져있던 찬열은 적잖이 섭섭함을 느꼈어.
차라리 가르쳐주면 쿨하게 이리저리 상담도 해주고 할 수도 있었을텐데. 여자애한테 관심두면서 자기한테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니까 더더욱.
그것이 섭섭함이었던가? 무슨 심리였었던가? 얼마나 이쁘고 귀한 년이길래 그러나 싶기도 하고. 그럴수록 더 궁금해지기도 하고.
결국 그런 미묘한 신경전이 둘 사이에 균열을 일으키고 그 균열이 큰 절벽만큼 벌어져서 말싸움도 자주 하고 몸다툼도 몇 번 하게된거지.
마침 그 시기에 대학 입시,수능도 맞물려서 3학년 2학기즈음에는 같은반에서 지내면서 마주쳐도 인사도 안하고 어색하게 지나쳐버리는 사이로까지 되버렸음.
청춘드라마처럼 여자 한명때문에 이러는게 자기자신이 우습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했지만 에라 모르겠다 싶고 그냥 공부나 하자고 생각했어
그리고 서로 다른 대학교를 가면서 완전히 마주칠 일도 없는 남남이 되버린거지.
그렇게 친하게 붙어다니던 몇 달 전이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 일 같이 느껴졌음. 하지만 둘은 끝끝내 서로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고 헤어져.
그렇게 서로를 잊고 대학에가서 신나게 청춘을 즐기다 3년이 흐르고 군대도 갔다와서 각각 대학교 2학년이 되있더라.
**
변백현은 신학기 OT자리가 너무 기대되고 설렜어. 고단한 군대를 마치고 오랫만에 학교로 돌아오는 거기도 하고, 자기가 군대가있는동안 어떤 예쁘고 풋풋한 애들이 입학했을까 너무 설레는거야.
신입생들 앞에서 한껏 폼 재면서 입담을 뽐낼 생각을 하니 오티 전날부터 엉덩이가 들썩들썩했음.
막 새로 기른 머리를 매만지니까 일반인 된 기분이 제대로 와닿는게 너무 상쾌하고 흐뭇해. 이리저리 머리를 넘기고 왁스도 발라보다가 결국 어려보이게 앞머리를 내리고 옷도 캐주얼하게 입고 신발끈까지 싹 새로 다 조여매고 오티 약속장소로 나감.
신입생들은 약속 30분 전부터 일찌감치 나와서 선배들한테 인사하느라 바쁘네?
예쁜애들이 한둘이 아닌것같음. 인사받는족족 마음에 다 드는것 같아. 얘 남친 있을까? 얘는 있겠지?
흐뭇하게 어린애들을 뚤레뚤레 둘러보는데 갑자기 어떤 한 얼굴을 마주하고 머리에 하얀 페인트탄을 엊어맞은 충격이 오는거임.
뭐지? 잘못봤나? 싶어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눈을 비비고 크게 떠서 봐도 … 맞는것 같애.
" …???박..."
신입생들 틈에 박찬열이 끼어있었어.
그 큰 키에 인상적인 호감상은 분명 흔한 것이 아니지.
고딩때 그랬듯이 빙글빙글 웃으면서 농담을 한두마디 던지다가 선배들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중이네.
변백현은 벌써부터 방광이 간질간질 저려오고 자리를 뜨고싶은 불편함이 몰려오는걸 느꼈어.
뭐지? 박찬열이 여기 왜? 다른학교 간 거 아니었나? 더군다나 우리학과일리가 없는데?
이윽고 등에 찔끔찔끔 식은땀까지 흐르는게 느껴짐.
슬쩍 자리를 뜨려다가 든 생각, 내가 왜? 죄진것도 없는데?
남자답게 자리를 지키는게 맞다(?)는 생각이 들어 일어나다가 다시 자리에 착석함.
그래도 신경쓰이고 안절부절하는거는 어쩔 수가 없는거야.
안보는척하면서 힐끔힐끔 거리는데 박찬열하고 눈이 딱 마주침.
" !!!! … "
" … "
박찬열은 변백현하고 눈이 마주치자마자 기다렸다는듯이 입꼬리를 올려 씩 웃어보였음.
박찬열하고 마주치면 모르는체 할 작정이었던 변백현은 적잖이 당황함. 쟤가 뭘 어쩌려는건가?
" 야 변백현, 왜그래? 어디 아프냐? 아까부터 똥마려운 강아지마냥 … "
동기가 옆에서 허리를 쿡쿡 찌르는데 " 어어 … "하는 탄식에 가까운 대답밖에 안나오네.
죄진것도 없는데 왜 찔리고 안절부절하지? 변백현도 자기심리를 몰랐음. 그런데 큰 눈으로 빙글빙글 웃으면서 레이저를 쏘아보내는 박찬열에게 뭔가 압도당하는 기분이었어.
결국 고딩때랑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단 말이지.
자기 심리를 박찬열에 대한 경쟁심리로 인식했던 변백현은 또한번 박찬열에 대한 자신의 열세를 인정 할 수 밖에 없었어.
과대표가 도착해서 본격적으로 오티행사가 시작되었어.
오티의 포문은 역시 신입생 자기소개지. 신입생들답게 어찌나 목청이 좋던지. 술집이 떠내려갈것같아.
60명쯤되는 신입생들이 돌아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다 끝마쳤음. 역시 박찬열은 신입생은 아니었나봐. 끝날때까지 자기소개를 안 해.
그럼 대체 뭐란 말이지????
이쁜 애 좀 물색하려던 변백현 계획은 완전히 수포로 돌아갔고.지금 신입생같은게 눈에 들어올 턱이 있나? 빨리 자리를 피하고 싶고 너무 불편했어.
" 자, 그럼 신입생들 소개는 다 들었고, 이번학기에 우리과 편입생이 한명 있거든? 보다시피 조올라 잘생겼어. 자기소개좀 들어보자. 박수!! "
편입생이라네? 편입을 하더라도 하필 내 과에 오냐. 혹시나 자기 과 친구 따라 놀러 온 게 아닌가 싶은 기대를 은근 하던 변백현은 또 탄식을 내뱉어.
앞으로 3년, 어쩌면 그 이상이나 같은 과에서 강의 듣고 얼굴 마주할 생각하니 눈앞이 아뜩해.
박찬열 인기는 예전이나 지금이나지. 여학생들 박수소리가 특히 더 뜨거워.
" 안녕하십니까! 제대하고 ㅇㅇ대학교에서 편입한 박찬열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예전보다 더 멋있어 진것같다. 목소리는 여전히 참 좋다.
식은땀 흐르는 와중에 변백현은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해.
" 사실 이 과에 전부터 아는 사람이 있는데요 … "
하고 박찬열이 주저없이 변백현한테 시선을 던짐.
설마 나 말하는건가? 아니겠지 싶어서 오른쪽왼쪽을 재빨리 한번씩 살펴봤지만 저 처다보는게 맞는 것 같아.
" 니 친구야? 변백현? 진작 말하지!! 왜 모르는척 하고 있었어? "
" 너한테 저런 잘생긴 친구도 있었냐? "
옆에서 동기들이 한마디씩 속닥속닥 던지는데 가느다란 신음소리밖에 낼 수가 없었어.
박찬열은 무슨 속셈인걸까? 차라리 모른척 지내줬으면 하고 바랬는데.
변백현은 앞으로의 학교생활이 눈앞에 뻔히 그려져. 벌써부터 거하게 취한듯 뒷골이 빡빡 땡기고 가슴이 둔탁하게 방망이질쳤지. 입술 사이에서는 턱턱 한숨이 새어나와.
제 속을 알 턱이 없는 동기들은 오티 술자리 내내 박찬열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댔어. 어디서 알았냐? 언제부터 알았냐? 사진 있냐?
오티자리에서 인물좋고 성격좋은 박찬열은 그 어떤 귀여운 신입생들보다 더 화제거리였지. 친구라는 변백현에게도 자연히 질문이 쏟아질 수밖에 없었어.
이윽고 변백현은 오래 견디지 못하고 화장실에 간다며 도망치듯 자리를 떠나와.
화장실은 가게 야외에 따로 설치되어 있어서 문 밖을 나서면서 담배 한 가치를 빼어 물어.
일단 현장을 도망쳐 나오니 답답하던 가슴이 조금은 풀리는 느낌임. 막막하긴 마찬가지였지만.
이제 어쩌나 싶어서 라이타를 탁탁 튀기며 탄식하고 있는데 뒤에서 귀에 익은 굵은 목소리가 들려.
" 담배 피세요? "
" 헉 ! "
온몸의 피가 발끝에서 머리꼭대기까지 와르르 역류하는 기분이 들어. 무심코 라이타를 땅바닥에 떨어뜨려 버림.
화들짝 하고 뒤를 돌아보니 와이고야, 예상대로 박찬열이야.
" 담배 … 이제 피네? "
" 야 … "
" 그래서 키도 하나도 안컸나? 변백현씨. "
예나 지금이나 박찬열은 참 속을 알 수 없는 인간임.
다음편에 계속~ (포켓몬스터 나레이션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