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혁] 헬로, 줄리엣 Ⅱ
개같은 새끼, 나쁜 새끼, 씨발 새끼, 좆같은 새끼··· 구준회는 생각나는 욕이란 욕은 모두 입으로 뱉어댔다. 김동혁은 구준회 평생 가장 미워할 존재 1위였다. 김동혁이 없는 곳으로 왔는데, 정말 뭐같은 인연이 또 없다,고 구준회는 생각했다. ××× 03 : Quelle est sa 'faute'? 김동혁이 구준회에게 있어 '평생 가장 미워할 존재 부동의 best 1'이 된 날은 중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가던 겨울방학의 어느 날이었다. 구준회는 여느 때와 비슷했던 그 겨울방학 중 어느 하루, 제 절친한 친구이자 가장 믿을만한 친구 - 그러니까 제 비밀을 알고있는 유일한 친구였던 강민규에게 카톡이 왔다. [야 니 게이인거 딴애들이 어케암?] 편안하게 침대에 기대앉아 귤을 까먹으며 원피스 신간을 읽던 구준회의 머릿속에 띵-하고 종소리가 울렸다. 뭐라고? [이거봐] 강민규가 보낸 사진은 제 카톡대화내용을 캡쳐한 것이었다. 대화 상대는 구준회와 같은반이면서 동시에 김동혁의 절친이기도 했던 송윤형이었다. 송윤형이 강민규에게 처음 건넸던 말은 "너 구준회에 대해서 얼마나 아냐."였다. 그리고 이어진 대화 중에서 구준회의 눈에 띄었던 말은, 구준회 "게이"래, 아니, 확실한건데. 걔가 김동혁한테 "고백"했다더라. 근데, 거절했더니 "자살시도"했대. 존나 "징그러워". 솔직히 그거듣고 걔 좀 "무서움" [얘가 니 게이인거 어케암.. 존나 소문 다난듯] [어캄? 난 일단 모르는척함; 아닌거같다고 그랬는데] [송윤형은 확신하는 눈치임..] [야 그리고 자살시도는 뭐임; 소문존나 이상하게 났···] 구준회는 계속해서 울리는 카톡 알림음에 잠금 버튼을 누르고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뒷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3분 정도 지난 뒤, 생각이 정리된 후에야 차츰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읽고있던 만화책을 맞은편 책상에 내다던졌다. ××× 김동혁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초점이 어느 한군데에 머무를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러니까 어··· 내가 '동성애자'에 막 편견이 있고 그런건 아닌데,- 김동혁은 긴장하거나 거짓말을 할 때 제 검지와 중지를 입에 갖다대는 버릇이 있었다. 흥, 편견이 없기는 무슨. 이미 제 두 손가락이 입술에 닿아있는데. 니가 싫은게아니라, 어···, 아직 잘 모르겠어··· "알겠어 " "어?" "그렇다는데 내가 뭐 어쩌겠어. 대신 마음바뀌면 그때라도 말해." "···어어···." 김동혁이 고백을 받아줄거란 기대는 애초에 크지 않았다. 착해빠지고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어쩌면 받아줄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역시나 결과는 'NO'였다. 구준회가 살면서 가장 소중히여기고 좋아하는 것 3가지를 고르자면 빛, 예술, 그리고 김동혁이었다. 김동혁은 구준회에게 빛이고 예술 그 자체였기에 3가지 중에서도 가장 절대적인 대상이었다. 죽도록 미운 동시에, 여전히 기억속에 남아 저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는 그의 뮤즈이기도 했다. 김동혁을 좋아했던 것은 아주 어릴적부터라서 기억이 나지도 않았다. 한 7살? 그쯤부터 였을려나. 김동혁은 눈치가 더럽게도 없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마음을 티내는데도 단 한번을 의심치않았다. 사실 뭐, 티를 내도 '설마 남잔데, 나를 좋아하겠어.'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게 일반적인 반응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김동혁은 고백하는 순간 직전까지도 제 감정을 몰라줬던 것 같다. 다친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밴드가 손목 안쪽에 둘러져있었다. 손목을 다친 이유는 "자살 시도"따위가 아니라 조각칼에 베여서였다. 구준회는 제 상처마저 그렇게 더럽혀져서 소문으로 돌아나고있었다는 사실이, 분노를 넘어서 두렵기까지했다. 얼마나 많은 애들이 그 사실을 알고, 오해하고 있는걸까. 구준회가 김동혁에게 고백했다는 사실은 둘 중 한명이라도 입을 열지않는다면, 퍼질 리가 없는 사실이었다. 구준회는 강민규에게도 고백사실을 알리지 않았을 뿐더러, 고백장소도 아무도 없는 김동혁의 집 현관 앞이었다. 그러니까, 그 일이 잔뜩 왜곡되어서 돌고 돌아 제 귀까지 들어오게된 경로의 시작은 '김동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구준회가 김동혁을 좋아하는 3만 5천가지 이유 중 하나는 김동혁이 착해빠졌다는 것이었다. 그런 김동혁이 아주 비밀스러운 제 고백을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다는 것은 아무래도 믿기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를 미워하기 전에, 확실히 확인부터 해야겠다고 구준회는 생각했다. 고백 이후에 김동혁과의 사이는 서먹해지고, 어떻게는 저를 두려워하는 것 같기도해서 2주가량 둘은 서로에게 말을걸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번 일은 꼭 확인을 해야했기에 용기내어 통화버튼을 눌렀다. 구준회는 전화기를 들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 그거 누구한테 말했어? 조그맣게 "···아니?"하는 김동혁의 대답이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목소리가 얇게 떨리고있었다. 그런데, 송윤형이 그걸 어떻게 알아. 김동혁은 한참이나 대답이 없었다. 미안, 윤형이한테만 말했어. 윤형이한테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했는데··· 김동혁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구준회는 전화기를 쾅,하고 끊어버렸다. ××× 04 : Se il vous plaît pardonnez-moi 오랜 소꿉친구. 그것도 '동성'친구에게 고백을 받고온 그 날, 김동혁의 머릿속은 밤새도록 핑핑 돌고있었다. 나를 좋아한다고? 줄리엣- 아니, 구준회가? 왜? 남잔데? 나를? 언제부터? 일단 구준회의 고백은 너무도 갑작스러웠다. 사실 한번도 그런 생각을, 그러니까 '구준회가 저를 좋아할 수도 있다는' 그런 생각을 안해봤다면 거짓말이다. 그러기엔 구준회가 저를 좋아하는 티를 너무도 많이 냈기에. 그래도 설마, 같은 남잔데 나를 뭣때문에 이렇게 오랫동안 짝사랑하겠어, 싶어 김동혁은 '이런 상황이 닥친다면 어떻게 행동할 것 인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제일 김동혁을 혼란스럽게 했던 것은 고백받았을 때 김동혁이 느꼈던 감정이었다. 왜 제 앞에 서서 좋아한다고 고백을 내뱉는 것은 「부랄친구 구준회」인데,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말을 이어나가려는 목소리가 덜덜 떨렸는지. 아니야, 김동혁 니가 모태솔로라서 심장이 맛이 간 걸 거야. 연애세포가 다 병들어서 절친한테도 반응을 하는구나.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홀로 고뇌에 빠져있던 김동혁이 구준회의 늪에서 헤어나오기 위해 택했던 방법은, 새벽 3시에 핸드폰을 열고 절친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 김동혁이 넌씨눈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떤 친구가 좋은 친구인지 못알아볼 정도로 멍청한 애는 아니었다. 분명히 송윤형은 좋은 애였고, 믿음직한 친구였다. 하지만 김동혁이 8년차친구 송윤형에 대해 미처 몰랐던 사실이 딱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송윤형이 '호모포비아'라는 것이었다. ××× 맹세코 송윤형 이외의 사람에게는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변 아이들이 차츰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갔다. '힘내라, 김동혁. 어쩌다 그런 싸이코 게이한테 걸려서',하고. 송윤형은 김동혁에게 구준회가 얼마나 끔찍한 존재인지 계속해서 얘기했다. 야, 너 게이들이 얼마나 더러운줄 알아? 쟤가 밤에 니 생각하면서 딸친다고 생각해봐. 존나 역겹다 진짜. 게다가 니가 쟤 깠다매. 쟤 손목에 칼자국있더라. 까였다고 죽을생각한게 정신병자지 뭐겠냐고. 쟤 별명 줄리엣일때부터 존나 마음에 안들었어. 지가 여자였음하나? 미친놈. 김동혁은 그 말들이 하나같이 말도 안되는 말들이라는 사실을 알고있었다. 처음엔 에이, 그 정도는 아니야. 구준회 그런 애 아닌데··· 하며 주변친구들의 오해를 풀어보려했다. 하지만 사람이 산다는게, 10명 중 9명이 네모를 보고 동그라미라고 하면 그것은 결국 동그라미가 되고만다. 김동혁은 그 상황에 점점 젖어갈 뿐이었다. ××× 야, 쟤가 걔다. 버스 앞자리에 앉은 여학생 둘이 머리를 맞대고 킥킥거린다. 그 옆에 선 애는 아직 소문을 듣지 못했는지 뭔데, 뭔데? 하고 고개를 내민다. 공공의 적, 만인의 가쉽거리가 된 놈에게는 더이상 '눈치라도 봐주며 뒷담화를 하는' 둥의 기본적 예의조차 존재하지 않는 듯 했다. 쟤가 걔, 김동혁한테 고백했다가 까인 애. 못들었어? 헉, 그게 쟤라고? 남자였어? 야 그러니까 애들이 뭐라그러지, 여자면 그랬겠냐. 나 쟤 아는데.. 이전에 같은 반이었··· ···는데, 하고 말하려던 앞자리의 여학생은 저를 노려보는 구준회와 눈이 마주치자 입을 곧장 다물었다. 앞자리가 조용해지자 이젠 뒷자리에서 나는 목소리들이 선명하게 들려온다. 오히려 앞자리에서 떠들던 기집애들의 목소리만 듣고있는 편이 나았겠다고, 구준회는 후회했다. 야구준회다ㅋㅋ씨발저새끼는진짜게동보고서고그러나?게동이다뭐냐김동혁만봐도서겠지진짜게이새끼들은다어디파묻어야함더럽게진짜같은학교다니는것만해도냄새난다호모냄새어떻게좋아할게없어서남자새끼를좋아하냐같은거달린새끼들끼리야그만얘기해라토나올라그럼게이진짜개씹극혐임웩야제일불쌍한건김동혁이야쟤가찾아가서고백했대잖아나였으면그자리에서한대날렸지김동혁도보살이야걔는진짜인생최대의수치를겪은거야상상을해봐라저새끼가집앞에찾아와서동혁아너만보면심장이뛰거든?아씨발하지말라고진짜ㅋㅋ존나싫어진짜쟤네엄마도참불쌍하다아들새끼들어떻게키우면남자를좋아하게돼요왜우리나라는게이들안죽이냐고왜막중동이런데는쏴죽이지않냐?솔직히게이는기형아들이야아진짜니새끼게이얘기그만하라고속울렁거리니까알았다임마하여튼저새끼는왜또같은버스를타고지랄이야씨발갑자기버거킹먹기싫어짐 야근데쟤다들리는거아니야?우리목소리너무큰거같은데 호구야들리라고이러잖아ㅋㅋ 구준회 씹창, 더 러 운 새 끼 ㅣ -머리가 하얘질만큼 무자비하게 제 귀를 때려오는 말들에 구준회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어보는 비난세례였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입속에서 저런식으로 오르내리게 될거라 상상조차 하지못했다. 폐가 쪼그라들어 기도가 탁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숨을 쉬는것이 불편했다. 무슨 노래가 목록에 있는지 보지도않은 채 급하게 재생버튼을 눌렀다. 뭐라도 좋으니 무엇이든 다른 소리를 듣고싶었다. 귀에 익은 기타소리의 전주가 들려왔다. 그제서야 참았던 숨을 크게 내쉬었다. We are never, ever, ever, getting back together 음악에 집중해보려해도 간간히 들려오는 '호모새끼'나 '개보다더러운새끼'와 같은 저를 칭하는게 분명한 목소리들이 꾹 눌러넣은 이어폰 사이로 흘러들어왔다. 가슴이 꽉 막힌 기분이었다. 억울한게 아니라 미안했다. 누구에게? 모두에게 미안하고 죄송했다. 이렇게 태어나서 죄송하고 좋아해서 미안하고, 나같은게 살아있어서 정말로 미안합니다. 그 날 이후로 구준회의 손목에는 정말 조각칼에 베인 상처가 아닌, 자의적인 상처들이 선명하게 늘어만갔다. ××× 고백을 한 이후 처음엔 저를 아무렇지않게 대하던. 그러니까, 피하긴 피하지만 딱히 어떤 감정을 실어보이진 않던 줄리엣이 어느 순간부터 저를 죽일듯이 노려고보고있자 김동혁은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지나갈 때 마다 살기가 가득해서 저를 노려보는데, 불쾌함보다 그에 대한 두려움이 앞설 정도였다. 안그래도 한참 주변에서 구준회에 대한 끔찍한 말들만 들려오는와중에 저만을 저렇게 노려보고 다니니 구준회가 더 이상 그 이전의 '좋은 친구'로 보일 리가 만무했다. 구준회는 고백, 학교 아이들이 '호모왕고백사건' 이라고 부르던 그 사건 이후로 얼굴이 창백하고 까칠하게 변해갔다. 원래 상냥한 인상이었던건 아니지만, 좀 무뚝뚝하긴 해도 따뜻한 얼굴을 하고다녔는데. 얼굴 상태도 말이 아니었지만, 구준회의 손목에는 밴드가 하나씩 늘어가더니 결국엔 붕대로 감고다닐 지경이 되었다. 그런 구준회의 상태를 보자, 정말로 저를 위협하는 '끔찍한 동성애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오랜 친구에 대한(사실 오랜 친구가 아니라 다른 어떤 것이었을지도 모르는) 동정과 연민으로 구준회와 마주할 때면 늘 불편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김동혁은 그 이면의 감정을 똑바로 인지하지 못했다. 무언가 크게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던 봄 - 그 봄에 이미 구준회는 김동혁이 볼 수 없는 먼 곳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 김동혁은 상상하는 것을 좋아했다. 어릴 적에 잠이오지 않을 때 제 엄마에게 칭얼대면, 그의 어머니는 기분좋은 상상을 해보라고 김동혁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부터 김동혁은 틈만나면 상상속에 빠져있었다. 안좋은 일이 생기면 잘 풀리게되는 상상을 하고, 기분이 나쁘면 즐거운 상상을 했다. 말도없이 어디론가 다른학교로 가버린 구준회가 못내 마음에 걸렸다. 예술학교로 갔다는 말도 있었고, 외국으로 유학을 갔다거나 자퇴를하고 검정고시 학원에 나타났더라는 말도 있었지만 확실한 건 없었고 소문만 무성할 뿐이었다. 그래서 김동혁은 구준회와 화해하는 상상을 했다. 이미 김동혁의 상상 속에서 구준회와 자신은 예전처럼 절친한 사이였다. 상상 속의 구준회는 저를 째려보지않았고,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냥 김동혁이 제일 좋아하던 옛날의 구준회였다. 시간이 흐르자 상상은 거짓기억으로 머릿속에 남아버렸다. 구준회에게 '당장 꺼져'라고 한바탕 소릴 들은 후에야 기억을 천천히 되짚어보았다. 생각해보니 제가 구준회였더라도 한참 사이가 틀어져, 인사는커녕 쏘아보던 사이었던 놈이 대뜸 '동혁아!'하고 정답게부르면 인상을 찌푸리고 쳐다볼만했다. 아, 김동혁 멍청이. 왜 현실이랑 구분을 못해, 이 바보야.. 혼자 머리를 쥐어박으며 자책을 해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구준회와 파리 한복판에서 이렇게 재회하게 된 것은 관계를 풀어보라는 신의 계시임에 틀림없다고 김동혁은 생각했다. 구준회가 저를 얼마나 싫어하고, 얼마나 좆같은 학창시절을 보냈는지 전혀 모르는 김동혁의 단순한 결심이었다. _____ 암호닉> 토끼님 초아님 다람님 민트님 파란밤님 코랄님 구구콘님 수박님 라면님 김뿌요님 레퀴엠수니님 리연님 초코콘님 준혁님 뿌요구르트님 욷둥님 뱔뱔님 초코송이님 햇님님 초코콘님 세니님 항상 받으니 아무때나 신청해주셔도 됩니다! 읽어주시는 독자여러분 항상 감사드리구 주말에올리려다 해피동혁데이니까요 오늘올리네요 훠우 동혁아 너의 행복한 생일날 이런거올려서 미안해.. 생일축하해 우리 도녁이T-T BGM] Taylor swift-We are never ever getting back together이런 글은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