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형광등이 간혹 깜빡거리는 방안이 잠깐 추워지나 싶더니 거칠게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유권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우지호를 보지는 않고 어 왔어, 하고 중얼거렸다. 우지호는 대답도 않고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휙 구석으로 던져버리며 동시에 넥타이를 남은 손으로 익숙하게 풀어버린다. 유권이 무거운 가방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에 살짝 놀라 우지호를 쳐다봤더니 그 표정이 유머가 아닐 수 없다. 구겨진 종이마냥 찡그린 표정은 우지호가 얼마나 화가 난 상태인지 알려주었다. 그렇게 집 와서 화풀이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오늘은 또 뭔데?"
비아냥거리며 지호에게 말했다. 고개를 다시 보고 있던 모니터에 고정시켰지만 녀석의 욕지거리는 아주 잘 들렸다.
"내가 집에 와서까지 그러지 말라고 했잖아."
유권은 신경질적으로 몸을 우지호쪽으로 휙 돌렸다. 진짜 짜증나게. 얼굴을 확 뒤틀며 노골적으로 짜증을 보였다. 유권의 불평에도 우지호는 허공을 멍하게 쳐다보면서 무겁고, 메마른 한숨만 땅에 뱉어낼 뿐이었다. 세번째 한숨을 뱉어냈을 때, 유권의 시선과 자신의 시선을 맞추었다. 시계 째각이는 소리조차 심장을 파고들 만큼 크게 들렸을 침묵이었지만, 누가.먼저랄 것도 없이 입술이 맞추어졌을 때 이미 시계소리 따위는 들리지 않았다. 공격적으로 입 안을 휘젓는 우지호를 겨우 받아내며 유권은 속으로 매번 번거로운 녀석이라 생각했다.
이건 키스도 아냐. 한숨을 목 뒤로 삼키며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타액들과, 주체할 수 없는 혀를 겨우 추스렸다. 무대포로 들이대는 우지호의 행동을 적정선에서 저지하는 일은 이제 숨쉬기처럼 익숙해졌으니까. 치열을 더듬어가며 입안을 탐색하는가 싶더니 금세 혀를 휘감아버린다. 배려? 그런 건 없었다.
유권은 연인사이인데도 이렇게 거칠게 스킨쉽을 해야하는 자신과 우지호의 관계에 화가 났다. 이제사 만족을 한 셈인지 아니면 숨이 찼는지 지호는 맞춰졌을 때만큼 거칠게 입술을 뗐다. 그리고는 여전히 성난 얼굴로 유권을 바라보았다. 의자 대용인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유권의 입술은 직전의 키스로 타액 범벅이 되어 있었고 그는 타액을 손등으로 비벼닦고 있었다. 그리곤 자기 눈 앞에 있는 남자더러 들으라고 시위하듯 삼켰던 한숨을 무겁게 내쉬었다. 소리 없는 짜증을 내며 입 근처를 분주하게 닦는 유권은 지호의 표정 변화는 물론, 그의 붉은 혀가 잠깐 입술 밖을 핥았다는 것 조차 몰랐을것이다.
금방 입술을 뗀 유권의 얼굴은 짜증 가득이었지만 갑작스런 키스에 귀 끝부터 뺨까지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런 유권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우지호는 유권의 어깨에 얹었던 손을 밀어내며 몸을 침대에 눕혔다. 어깨를 미는 지호의 손바닥에 밀려 자연스럽게 유권의 등이 침대와 닿았다. 유권은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했지만 곧 다가오는 지호의 시선을 피하진 않았다.
"하지마."
하지 말랬어.
무작정 유권의 와이셔츠 단추를 풀어버리려는 지호를 말로 저지했다. 급하게 움직이던 손가락이 우뚝 멈췄다. 김유권과의 이러한 관계가 답답한건 우지호도 마찬가지였다. 유권이 연인이라는 단어를 달고선 키스 이후의 진도를 전혀 허락 하지 않았던것. 지호에겐 이 사실 자체만으로도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김유권. 언제까지 입술만 부비고 있을건데?"
"왜, 그럼 안 되나?"
지호 아래에 누워있음에도 유권은 눈을 치켜들어 지호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도발했다.
"씨발..."
짝, 지호는 손바닥을 펼쳐 유권의 뺨을 내리쳤다. 폭력이라고 하기엔 약했고 그저 자신의 분노를 우발적으로 표출한 것 뿐이었다. 유권은 이런 행동을 하는 지호가 익숙했고, 익숙해진 자신이 싫었다. 타격으로 얼굴이 돌아간 채로 우지호에게 쏘듯이 말했다.
"너 안 하고 싶잖아. 존나 티나."
미친년이.
욕지거리를 읊조리며 유권이 고개를 돌린다. 틀린 말은 아니다. 우지호는 진도를 나가야 한다는 압박감, 무언가의 의무감으로 매일 저녁 이렇게 유권에게 욕구로 위장한 분풀이를 해대는 것이다.
야, 김유권.
이제 손이 날아갈 어이조차 남아 있지 않은 지호가 헛웃음과 함께 입을 열었다.
"너 나 사랑하긴 하냐?"
"넌 나 사랑하잖아. 그래서 술 처먹고 덮친거 아냐?"
"씨발 그럼 넌 아니라는 거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유권의 답변에 지호는 속에서 받쳐오르는 감정을 억누를 수 밖에 없었다. 웅웅거리는 머리속으로 비속어를 몇번씩 되새기며 유권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유권도 지호의 시선을 굳이 피하지 않았다.
"안 찢고 싶으면 키스로 만족 하던가. 난 섹스 할 필요도 없고, 할 생각도 없어. 남자 새끼들이 연애질 하는 데 뭘 바래? 그 때 술만 아니었으면 이러고 있지도 않았어."
엄연히 우지호를 대놓고 비꼬았다. 유권은 일부러 그랬다. 사실은 지겹다. 이제 그만 하고 싶다. 술 먹고 일 한번 친 걸로 이런 골치 아픈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진 않았다. 키스 할 때 까지는 기분이 좋아졌다가, 우지호가, 아니 굳이 우지호가 아니더라도 남자 새끼가 이렇게 자기 위를 올라 다니는 것이 탐탁치 않았기 때문에 찢고자 한다면 누구보다도 쌍수를 들고 환영할 입장이었다.
"......"
밥먹듯 듣는 유권의 짜증도 지호에겐 한계였다. 지호는 여전히 시선은 떼지 않은 채로 몸을 일으켜 벗어두었던 겉옷과 가방을 챙겨들었다. 유권은 짐작했다. 오늘이 마지막일 거라고.
"이런다고 내가 널 미워하지도 않을거고, 너도 나 원망하지 마라."
말없이 나가는 지호의 등에다 대고 유권이 말했다. 문은 들어올 때만큼 세게 닫혀 집안을 웅웅 울렸다.
드디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고, 당연하겠지만 정 따윈 없었다. 유권은 생각했다. 너도 마찬가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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