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야, 내가 술래 할게. 너는 숨는 거야.'
'응, 알았어!'
'30초 센다.'
'…… 28, 29, 30. 찾는다.'
술래잡기를 하자는 말에 신이 난 남자아이는 비가 오고 그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촉촉한 들판을 힘차게 뛰어나간다. 똑, 똑. 아직 비가 채 마르지 않아 똑, 하고 떨어지는 허름한 지붕 밑으로 몸을 숨긴 아이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술래가 자신을 잡으러 올 때까지 기다린다. 숨죽이고 있기를 2분 남짓. 들키지 않을 거라는 확신에 키득 거리며 웃는 아이의 웃음이 싱그럽다. 더 시간이 지나 아이의 위로 햇살이 쏟아지자 아이는 눈이 부신 햇빛을 손으로 가리려 했다. 하지만 햇빛을 가리려던 손이 무색하게 누군가 햇빛을 가려버렸다. 술래였다.
"찾았다."
"또 찾았네."
"네가 어디에 있든 난 찾을 수 있다고 했잖아."
"어떻게 찾았어? 이번엔 진짜 못 찾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몸에서 냄새가 나나."
아이가 옷에 코를 묻고 킁킁 거렸다.
"냄새 나. 네 특유의 냄새."
도경수만의 냄새가. 술래는 아이를 향해 환하게 웃어 보였다.
[됴총] 술래잡기
? X 도경수
"도경수 씨. 듣고 있습니까?"
"예? 예."
"전 여기가 다른 직장보다 비교적 자유롭다고 한 거지, 도경수 씨가 자유로워지란 말은 아니었습니다."
"아… 예. 죄송합니다."
"도경수 씨 자리는 저깁니다. 간단하게 짐 정리하고 인수인계해야 되니까 회의실로 오세요."
"예."
경수는 관자놀이를 짓누르며 한숨을 쉬었다. 새로 옮긴 직장이었다. 20살, 대학에 합격하긴 했지만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취업을 선택한 지 2년이 지났다. 22살인 지금은 보통 남자라면 군대를 다녀와야 하는 나이지만 시력이 좋지 않은 상태라 면제를 받았다. 취업에 뛰어든 경수는 전에 다니던 회사가 부도가 나 어쩔 수 없이 직장을 옮겨야 했고,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자리가 여기였다. 25층짜리의 건물로 대기업 쪽에 속하는 이 회사, 경수가 소개받은 부서는 주로 디자인을 겸하는 부서였다. 책상이 넓네. 최대한 간단하게 추려와서 그런 걸까, 책상이 휑해 보였다. 그래도 나름 책상을 정리하곤 바로 회의실로 뛰어갔다. 상사를 기다리게 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회의실에 들어가자 말끔한 양복 차림에 머리는 올백으로 멋스럽게 넘긴 상사가 앉아있었다. 꾸벅, 인사를 하고 들어가자 경수에게 앉으라며 자리를 권했다.
"일단 이 디자인 부서 자체가 만들어진지는 얼마 안 돼서 인력 충원이 되고 있는 상태가 아직은 사람이 많이 없을 거예요."
"예."
"경수 씨가 내 빈자리를 채우게 된 사람인 건 알고 있죠?"
"예. 들었습니다."
남자의 목소리는 조곤조곤한 거 같으면서도 위압적인 목소리였다. 상사로 보이던 이 남자는 자신의 공부를 위해 유학을 떠나기로 했고, 그래서 경수가 들어올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 거였다. 빈자리에 신입사원이 충원된 거니 서열은 뒤바뀌겠지만 말이다. 상사는 경수에게 간단한 주의사항을 설명해주곤, 업무에 관해서는 회사에서 인수인계할 수 있는 대로 하고 나머지는 파일로 정리해서 보내준다고 말했다. 경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고개를 푹 숙이자 내려가는 안경을 다시 올렸다. 경수는 안경을 꼈음에도 불구하고 시야가 흐릿한 걸 보니 조만간 안과를 다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원칙대로라면 첫날부터 업무를 시작해야 하지만 간단한 인사만 끝내고 내일부터 정식 출근하라는 말에 끄덕인 경수는 같은 부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려 걸음을 옮겼다. 회의실을 나와 복도를 걸으면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틈에서 경수는 최대한 피해 주지 않으려 움직였다. 그러나 사람은 언제나 방심하는 법. 앞에 오던 사람을 피하려다 옆에 서 오던 사람과 부딪혀 넘어지고 말았다.
"괜찮으세요?"
"아, 예……."
어찌나 세게 부딪혔는지 경수의 안경은 경수에게 멀리 떨어져 있었다. 앞에 가던 상사가 놀라서 뛰어왔을 정도였으니. 부딪힌 건 경수인데 남자가 더 당황해서 경수의 안경을 줍곤 경수에게 손을 내밀며 다시 한 번 괜찮으냐고 물었다. 중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진 남자였다. 여긴 목소리 보고 뽑나. 상사도 그렇고, 이 남자도 그렇고. 남자가 내미는 손을 잡고 일어나서 안경을 찾자 남자가 안경을 건네주었다. 아, 감사… 안경을 고쳐 쓰고는 남자를 쳐다봤다. 전형적인 미남, 미남 중에서도 호감형의 얼굴을 가진 남자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 봤어야 됐는데……."
"괜찮습니다."
"아, 혹시 이번에 새로 들어오신다던…?"
"예. 도경수라고 합니다."
"박찬열입니다. 처음 인사 치고는 격렬했네요."
웃으며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는 남자, 찬열의 손을 맞잡았다. 일어나고 나서 느낀 거지만 찬열은 경수의 키보다 한 뼘 반은 더 차이가 났다. 경수가 올려다봐야 찬열이 보일 정도니 말이다. 눈이 마주치자 찬열은 경수에게서 눈을 떼지 못 했다. 뚫어질 듯 바라보는 눈빛에 경수가 시선을 피하는 걸로 마무리됐지만 말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상사는 경수 씨 아프면 의무실 가보고, 찬열 씨 일 마무리됐으면 따라와서 보고하세요. 네. 경수 씨, 나중에 또 봬요. 찬열이 큰 키를 자랑하 듯 빠른 걸음으로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이후, 간단하게 인사를 나눴다. 아까 인수인계를 해줬던 상사보다 더 높은 팀장과의 인사는 물론, 경수가 배정받은 자리의 주위 사원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아까 격렬하게 첫 만남을 가졌던 찬열은 경수의 뒷자리였다. 인사를 다 마쳤으면 퇴근하고 내일 정시에 출근하라는 상사에 말에 이만 가보겠습니다, 하며 사무실을 나왔다.
고단한 여정이 될 거 같은 느낌이었다.
오늘은 운이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안 좋다고 정의하는 게 맞겠다. 엘리베이터에서 로비로 나오던 도중 시야가 흐릿해지는 느낌에 잠시 비틀 거리며 걸었더니 애쉬 컬러의 머리를 한 차갑게 생긴 남자 -무표정이었고, 인상 또한 강렬해서 잊을 수가 없었다.- 와 부딪혀버려 또 한 번 사과를 했고, 남자는 경수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짓더니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와 고개만 까딱하고 지나가질 않나. 또 잘 해보자는 마음에 집 오는 도중 마트로 가 항상 1+1 행사를 하던 맥주를 찾았으나 다 떨어졌지를 않나.
결국 경수가 항상 먹던 맥주가 아닌 다른 맥주를 샀고 날씨가 추워져 따뜻한 게 먹고 싶어 어묵과 꼬치까지 사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경수의 집은 남자 혼자 살기에는 넉넉하다고 해야 할지, 넓다고 해야 할지. 성인 남자가 혼자 살기에 넉넉한 집은 맞았다. 부모님을 어렸을 때 여의어서 혼자 살고 있긴 했지만 부모님이 남겨준 재산으로 학창시절을 여 유 있게 보냈었다. 살아있었을 때 경수의 아버지는 경수를 강하게 키우고 싶어 했다. 그래서 혼자 사는 법을 가르쳤고, 경수는 그걸 배워 자립심을 키웠다. 그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다.
"나와 계약해. 그럼 네가 원하는 걸 들어주지."
"대가는요?"
"네 어미의 피."
"좋아요."
집안이 조용한 게 마음에 들었지만 그거보단 허전한 느낌이 강해 경수는 맥주 한 캔과 쇼파 앞 미니 테이블에 내려놓고 쇼파에 앉음과 동시에 TV를 틀었다. TV에서는 영화를 상영해주고 있었다. 악마로 보이는 남자와 가련하게 생긴 여주인공이 나왔다. 악마는 여주인공에게 계약을 하자며 꼬드겼고, 여주인공은 어미의 피를 달라고 하는데도 좋다며 계약을 성사 시켰다. 악마는 웃으며 여주인공을 어디론가 데려갔고, 계약이 성사된 듯 싶었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빠져들어 영화를 관람하던 경수는 맥주 한 캔을 다 비웠다.
"…아, 맥주."
맥주를 가지러 부엌에 가 캔을 딱 따는데 환했던 집이 묘하게 어두워진 느낌에 고개를 들어 집 안을 살펴보았다. 경수의 집은 부엌에서 발코니가 훤히 보이는 탓에 경수가 부엌에서 야경을 감상하는 경우도 없지 않아 있었는데 오늘은 좀 이상했다. 달은 그냥 달도 아닌 유난히 밝은 보름달이 떠 있었고, 집에는 불을 켜놨기 때문에 환했다. 그런데 묘하게 어두웠다. 형광등이 나갔나. 하지만 며칠 전에 형광등을 다 갈았기 때문에 그건 아니었다.
펄럭, 하는 소리와 함께 바람도 부는 것 같았다. 분명 집의 문이란 문은 다 닫아놨을 텐데 말이다. 경수는 의아한 마음에 혹시 문을 다 닫지 않았나, 하고 발코니를 향해 걸어갔다. 발코니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가 다시 닫으려고 하는 순간 검은 무언가가 경수의 눈앞으로 튀어나와 발코니에 앉았다. 날개…? 경수는 동그랗게 눈을 떴다. 분명 날개였다. 아니, 날개가 달린 사람…? 발코니에 다리를 꼬고 태연하게 앉은 남자는 경수를 향해 웃었다.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걸까. 경수는 눈을 비비곤 안경을 고쳐썼다. 그래도 그대로였다. 날개를 쫙 펴고 앉아있는 남자는 검은색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흔히 만화에서 보던 천사의 날개는 아니었다. 흡사, 아까 영화에서 보던 악마의 날개와 비슷해보였다.
"악마…?"
"찾았다, 내 신부."
| 주저리 |
장편으로 이어갈지, 단편으로 끝낼지 아무도 몰라요. 저도 모르겠어요... 무려 판타지네요... + 암호닉 (뿌요) 님 |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EXO/됴총] 술래잡기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501071/ce26271a236839a23517273239496a7a.jpg)
(피폐주의) 현재 모두가 주작이길 바라는 애인썰..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