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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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고서도 민석은 한참동안 천장만 응시했다.
블라인드 사이로 조각이 난채로 새어 들어오는 오전의 볕이 민석의 오른 뺨에서 부서지는 일도 반복 되었다.
내리 놓고만 있던 넋이 아직도 온전히 되돌아오지 않은 듯 하다.
민석은 멍한 눈을 이따금 깜빡거린다.
너무나 터무늬없는 소식이라, 무슨 생각을 해볼 겨를도 없었다.
루한이 자신을 두고 중국에 홀로 가버린다는 소식.
최근 루한이 이상한 건 사실이었다.
지난 새벽에, 집 앞으로 찾아 왔다가, 서럽게 울더니,
얼굴 한 번 쳐다 보지 않고 홀연히 돌아서버린 루한의 앞에 마주선건 길어야 10분.
루한은 설명없이 울었다.
중국에 있는 제 가족의 그리움때문일까, 몇 년을 있어도 낯선 한국의 위화감때문일까.
왜 우는 지 이해할 수 없는 루한은 제게서 더욱 짙어 보였다.
" 집에 있네. 다행이다. 연락 안 하고 와서... "
일순간 잠잠했던 감정을 일깨워주는 건, 현관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다.
힘없이 거실의 소파에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누워있는 민석에게 루한의 시선이 오롯이 꽂혀왔다.
민석의 창백한 안색을 흘긋 내려다본 루한의 입이 굳게 다물어진다.
눈이 마주치니 심장이 고장난 듯 삐걱거린다.
뜻도 없고 필요도 없는 침묵이 이어진다.
깨어낸 것은, 의외로 루한이다.
" 우리 남산타워 갈 까? "
루한의 행동을 되짚어 봤을 때, 그 소식은 맞는 것일 지도 몰랐다.
지그시 저를 향하는 루한의 시선을 민석은 외면한다.
정말 저렇게 순진한 얼굴을 하고, 나를 배신할 준비를 하고 있었더라면.
그래, 루한은 예전같지 않다. 예전같이 밝게 웃지도, 튼튼하지도 않다.
언제 날아가버릴 지 모르는 새처럼 불안하기 짝이 없다.
루한을 다른 생각 않고 한국에서 행복하게 살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은 나라고 믿었는데.
차라리 그럴까, 네가 내 뒤에서 뒤통수치듯 배신할 준비를 하고 있었듯이,
나도 네가 날아가지 못 하게 네 날개를 꺾어버릴까.
" 민석아, 빨리가자. 베이징 봄 날씨는 쌀쌀한데, 그래도 서울은 따뜻한 것 같아. "
민석과 둘만의 외출에 들뜬 마음을 숨기려들지만,
환하게 비치는 미소가 지금 루한이 얼마나 설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듯 하다.
그와중에도 베이징이라니, 루한의 몸은 한국에 살면서도 마음은 여전히 그곳에 사는 구나.
" 그래, 얼른 가자. "
내가 그 소식을 접한 후에 가슴이 아팠던 만큼. 너와 함께 하고 싶었다는 걸.
*
남산 타워 전망대에 도착한 루한과 민석은 난간을 밟고 올라 서울을 내려다 보았다.
새파란 하늘 아래 서울은, 그 어느 때 보다 아름답다.
루한과 민석은 서로 말을 잊고 난간에 기댄 채 한참이나 서울을 감상했다.
민석은 민석대로의 감상에 빠져있고, 루한은 루한대로의 생각이 많아 보였다.
" 뭐 적는 거야, 루한? "
난간에서 꼼지락거리던 루한에게 다가가니 무얼 꾸물대며 적고 있었다.
루한은 저 혼자 생각에 빠져 민석이 제 곁으로 온건지 인기척조차 못 느꼈다.
안 보이잖아. 비켜봐, 루한.
민석에 의해 밀려난 루한은 민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뜨겁게 달아오른 눈시울을 루한은 손바닥으로 꾹 눌러본다.
이 아픈 사랑이 그만 추억 속에 묻히길 빈다.
민석아, 나는 서울에 살면서 아무런 흔적도 못 남겼어.
내가 존재했었단 사실이나 이 곳은 기억해 줄 까?
" 뭐야, 루한 왔다가다? "
적은 뜻을 이해하지 못 한 민석의 고개가 기울어진다.
들은 게 있어 어렴풋이 가늠은 오지만 선뜻 물어볼 수가 없다.
루한의 눈은 금방이라도 울 듯 처연해 보인다.
루한의 얼굴에는 설핏 쓴 웃음이 번지다 사라진다.
내일 내가 중국으로 떠난다면, 정말 오늘이 한국에 있는 마지막 날일지 몰라, 민석아.
숨막힐 듯 이질적이고 외로웠던 곳.
가족이 너무 그리워서 숨죽여 울기도 했었지.
하지만 이곳엔 분명 즐거었떤 시간, 기뻤던 일들, 행복했던 순간이 존재해.
잊고 싶지 않아, 잊혀지고 싶지 않아.
한국에는, 너와 함께한 시간들이 고스란히 살아 있으니깐.
" 갔다가, 다신 안 오겠다? "
민석이 루한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가 입술이 닿을 듯 가까워진 거리에서 루한을 보며 말했다.
민석의 갑작스런 행동에 루한의 숨이 뜻 모르게 잠시 멎었다.
민석의 눈동자에 자신의 모습이 비치는 것을 루한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지켜봤다.
" 널 이해할 수가 없어. 좋다고 덤벼들 땐 언제고,
지금은 다른 한 쪽으론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으니깐. "
" 민석아. "
" 한계를 벗어난다고 생각하면 나도 가차없어지는 인간이야.
그러니 저런 낙서나 하며 투정부리는 짓, 그만해. "
루한의 미련함에 화가 난다.
제가 힘들어서, 오로지 저의 행복을 위해 한국을 떠나는 루한이면서 끝까지 자신을 챙기려 한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은, 저렇게 쓸쓸한 표정으로도루한은 끝내 울지 않는 것이다.
민석은 루한을 좀처럼 볼 수 없어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시선의 끝에는, 루한의 뒤로 펼쳐진 서울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힘이 풀려 민석은 루한의 앞에 털썩 주저 앉아 버렸다.
루한. 가지고 싶다고, 욕심 난다고 모두가 가질 수 있는 건 아닌 가 봐.
너한테는, 자유가 눈부시게 어울리는 걸.
" 민석아, 왜 그래. 어디 아파? "
어깨를 잡는 손. 저도 같이 앉는 소리. 당황한 목소리가 연이어 들려온다.
보내주고 싶은데, 막상 너를 보니 보내주기가 힘들어서 눈물이 흐른다.
중국에 가지 않으면 안 되냐고 매달려 보고 싶고,
너도 그냥, 나랑 같이 미칠 생각없느냐고 하소연도 하고 싶다.
하지만 모두 바람일 뿐이다.
행동하지 못 하기에 새겨나는, 한낱 바람.
" 루한, 알아? "
크게 숨을 들이 마시고 내뱉는 민석의 목소리는 담백하다.
많은 갈등과 고민 끝에 큰 결정을 내린 사람의 특유의 차분함이 엿보이고 있다.
눈빛이 얽히는 동안 많은 감정이 교차하는 듯한 민석이,
한참동안 저를 응시하는 것을 루한은 최대한 담담하게 마주본다.
" 내 여동생은 나보다 너한테 관심이 많아서
우연히 내 친구한테 들은 네 좋은 소식에 눈물까지 흘렸어.
그렇게 어떤 사람한테 너는 종교와도 같아.
사람들은 널 아끼고, 또 많이 좋아해. "
" ..... "
" 그 마음들은, 짝사랑으로 만들지 마. 루한. "
아니라고 믿고 싶었는데, 내가 하는 건 도피가 아니라고, 이기적인 선택이 아니라고.
그렇게 믿고 싶었는데..
민석의 단호한 어투와 그 눈빛에, 제 잘 못이라는 걸 알아버렸다.
끓어오르던 가슴이 뜨거워졌다.
의식 없던 숨소리가 거칠어 졌고, 꽁꽁 숨길려던 마음이 드러났다.
" 영원히 기억 할 거야. "
" .... "
" 만약 내가 네 옆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나는 이 순간을 결코 잊지 않을 거야. "
잠잠하던 루한이 나직한 어투로 민석에게 말을 걸었다.
민석의 눈이, 이게 정말 마지막이라고.
내 할 말은 이쯤인 것 같다고 그리 말해 주고 있다.
" 평소랑 다르게 매섭게 날 타이르는 네 모습을,
한국에서의 시간들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너를. "
" ...... "
" 무엇보다, 바보같은 내 잘 못을. "
민석아, 나는 너에게 상처일 거야.
사랑도 상처가 되고, 그리움도 상처가 되고, 죄책감도 상처가 되고.
너와 함께 하는 동한 여린 행복이 넘쳤으니, 그 행복을 베어낸 상처가 깊을 수 밖에.
지금 너는 내게 사랑이 아닌, 사람을 가르쳐.
너를 버리고 내 자신을 택한 내게.
사랑이 아닌 사람을 알려주는 너는.
어떻게 너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만났을까.
한국에서 지치는 일만 있는 것 같아 외면하고 버렸다고 믿었는데,
사실 신은 나를 많이 아끼셨던 걸까.
" 민석아. "
루한이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미미하게 떨리고 있는 것을 민석은 느꼈다.
" 여전히 사랑해. "
" ..... "
" 그냥, 네가 오해할까봐 말 하는 거야. 내가 편히 가고 싶기도 하고.
널 정말 많이 사랑해. 후회없을 만큼. "
" 얼른.., 얼른 가.
다음에 다시 한국에서 만나면 오늘 처럼 네 생각 안 할 거야.
마음가는 대로 행동 할 거야.
붙잡고, 안 놓을지도 몰라. 나는 그래, 루한. "
끝까지 아득하게 웃어주는 너. 그런 너에게 나도 눈물을 보일 수는 없겠지.
울지 않을 게. 그리고 너를 위해 열심히 내일을 살아보려 노력할 게.
루한이 민석을 향해 미소를 보였다.
짧게 끄덕이는 민석을 보며, 루한 또한 짧은 고갯짓을 한다.
루한이 돌아섰다.
떠나는 길위에 봄날의 햇볕이 내리 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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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캡말고 찐 남주혁 최근얼굴..........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