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추웠다.
두꺼운 패딩 자크를 목까지 끌어올린 백현은 꽤나 소란스럽게 전화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 도착했지. 10분만 있으면 도착인데 네가 데리러 와라. 서울 처음이라니까? 여기가 어딘지 나도 몰라."
지하철 안에서 통화를 하던 백현이 눈으로 주위를 한 번 훑어보다 자신을 향한 몇몇 시선을 느끼고 소리를 죽였다.
"못 온다고? 혼자 어떻게 가. 5번 출구? 알았으니까 내가 조금 있다가 전화할게. 휴대폰 손에 꼭 쥐고 있어라."
제법 괜찮다는 듯 굴었던 백현은 전화를 끊자마자 겁에 질린 강아지마냥 눈동자를 이러저리 굴려댔다. 서울은 20년 동안 딱 한 번 와봤다. 그것도 엄청 어릴 적이라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았다. 여기서 길 잃으면 끝장이다, 싶은 마음에 잔뜩 긴장을 한 채 산만하게 눈동자를 굴리다가 내릴 때가 됨을 느낀 백현은 곧바로 난관에 봉착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 문쪽으로 쉽게 갈 수 없었던 것이다. 어쩔 줄 몰라하던 백현이 곧 작은 목소리로 죄송합니다, 를 연발하며 사람들을 헤치고 나아갔다.
"저기, 잠시만."
"...."
"저기요, 조금만 비켜주세요.."
앞으로 전진하다 누군가의 가슴팍에 부딪힌 백현이 비켜달라고 말해 보았지만 백현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상대는 꿈쩍 않고 있었다. 백현은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냐, 싶었지만 실은 키가 커 보이는 상대에게 겁을 집어먹는 중이였다. 당장 급했던 백현이 슈렉에 나오는 고양이처럼 애절하게 눈을 올려뜨며 상대방을 올려다 보았다. 하지만 그 마저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한참이나 올려다 본 남자의 얼굴은 지독히도 잘생겼기 때문이었다. 모델인가, 키도 되게 크다. 내가 본 사람들 중에 제일 잘생겼어. 멍하게 저를 올려다보는 백현을 느낀 남자가 몸을 옆으로 비켜주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백현이 조그만 목소리로, "감사합니다" 하고 웅얼거렸다. 멈춰선 지하철이 곧 문을 열자 백현은 빠른 속도로 그곳을 빠져나왔다. 지하철을 빠져나오자마자 사람들에 밀려 정신이 없어진 백현은 지하철의 잘생긴 남자를 생각할 틈도 없이 바쁘게 휴대폰을 꺼내들어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 ※ ※
"아, 피곤해."
"촌놈 새끼. 여기를 못 찾아와서 한 시간을 헤맸냐."
"그러는 지도 촌놈이면서."
"나는 서울 사람 다 됐다."
웃기시네, 마지막 말은 조용히 마음 속에서 꿀꺽한 백현이 정말로 피곤한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제 어깨를 주물렀다. 5번 출구로 나가는 데만 10분이 걸렸는데 밖으로 빠져나오니 정말 막막하기만 했다. 휴대폰 홀드 버튼을 눌러 길찾기 앱의 도움을 받아보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데이터가 없는 바람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렇지 않은 척 해도 겁이 많았기 때문에 속으론 안절부절 해도 겉으로는 태연했던 백현이었지만 오늘은 정말로 길가에 버려진 강아지같이 잔뜩 울상을 지은 채로 서울 시내를 돌아다녔다. 여차저차 친구의 도움으로 길은 찾았지만 기가 다 빠진 데다가 어둑해져서 바로 친구네 집으로 향했다. 축 처진 솜처럼 침대에 퍼질러 누워있다가 스르륵 잠든 백현을 보며 친구가 쯧쯧 혀를 찼다.
"변백현, 일어나."
"아, 왜.."
"저녁 형진이 만나서 같이 먹기로 했잖아."
"나 그냥 안 가면 안 되냐, 졸린데."
미쳤냐는 듯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 잠이 쏟아져 오는 눈꺼풀을 느릿느릿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다 몸을 일으켰다. 여덟 시가 다 돼가는 시간이었다.
"나 잠은 어디서 자냐."
"우리 집에서 자든가, 아니면 김형진 집에서 자든가."
"서울 있을 때 동안 계속 있어도 돼?"
고개를 끄덕인 백현의 친구가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참 좋은 친구를 뒀다며 은근 감동을 받은 백현은 빨리 움직이지 못하겠냐는 친구의 타박을 듣고도 실실 웃었다.
※ ※ ※
술에 잔뜩 취해 호프 집에서 나온 백현이 흥에 취해 트로트를 부르며 휘청휘청 골목길로 들어갔다. 제 주량을 생각하지 않고 술을 들이부은 결과였다. 큰 거리를 벗어나자 바로 인적 드문 길이 나왔다. 백현은 바닥 더러운 건 생각 안 하고 그 자리에 털썩 앉아 담배를 꺼내 물었다. 원체 술이나 담배는 잘 하지 않는 백현이었지만 원하는 대로 따라주지 않는 제 몸뚱아리가 원망스러워, 사두고 한 번도 피지 않았던 담배를 꺼내 문 것이다.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이곤 콜록인 백현이 담배를 내팽겨치곤 울먹이기 시작했다. 내 인생은 언제부터 이렇게 꼬였나, 지금 호프집에서 자신보다 더 취한 채 맥주를 들이키고 있을 세 명의 친구와는 고등학교 친구였다. 학창 시절을 행복하게 보냈던 터라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찾은 친구들이지만 재수하기로 결심 하고 지방으로 내려간 후 얼굴을 보지 못해 반 년만에 다시 보게 된 친구들이었다. 수능 결과는 최악이였다. 손으로 제 턱을 받친 백현이 코를 훌쩍이더니 이내 엉엉, 하고 울었다. 섬섬옥수 같은 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치는 백현의 얼굴 위로 자동차 헤드라이터가 비추더니 울고있는 백현의 앞에 멈추어섰다. 불빛 때문에 얼굴을 찡그린 백현이 자신이 길을 막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 훌쩍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차는 비킬 기미를 안 보였다. 곧 차 문이 열리더니 남자 한 명이 나왔다.
"すみません"
당황한 백현이 붉어진 눈가를 슥슥 비비곤 입을 달싹였다. 일본어 못 하는데 어쩌지.
"I.. don't speak japanese."
슬금슬금 뒤로 물러선 백현이 길을 터주었다. 자신의 얼굴을 스캔하듯 바라본 남자가 곧 얼굴로 손을 뻗어왔다. 그 손을 멍하니 바라보던 백현의 코에 무언가가 닿아왔다.
"으..읍,"
눈 앞이 흐려지곤 시야가 땅과 가까워 졌다. 곧 누군가가 저를 부축하듯 잡아세웠다. 백현은 사라져가는 의식 속에서 짧게 생각했다. 이거 술기운인가, 아니면 꿈인가. 그리고 백현은 잠들었다.
※ ※ ※
어디서 햇살이 들어와 저를 따사롭게 감싸줬다. 춥진 않았지만 발이 시려울 정도는 되었던 고시원이 아닌 따뜻한 곳이었다.
반쯤 눈을 뜨고 멍하니 누워있던 백현이 눈을 번쩍 떴다.
여기가 어디지?
윗몸을 일으켜 자리에 앉자마자 머리에 통증이 일었다. 어제 과음한 탓이었다.
"起きた。"
소리의 장본인을 찾았다. 머리를 틀어올려 묶은 젊은 여자가 제가 누워있는 침대 근처에 앉아있었다.
"여기가.."
목소리가 잔뜩 갈라져 나왔다. 말하는 도중에도 목이 꽉 막혀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물.. 물 좀 주세요."
여자가 곧 물이 가득 든 잔을 내왔다. 받아들어 들이키니 조금 나았다.
"여기가 어디에요?"
"ここは..."
"일본입니다."
여자가 말을 끝내지 않은 시점에서 들려오는 중저음의 낮은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어제 제 코에 이상한 천을 가져다 대었던 남자였다. 일본이라는 소리에 잠시 얼이 빠져있다가 재차 물었다.
"일본?"
"예, 일본입니다."
"제가 왜 일본에 있는데요?"
빠르게 반문한 백현은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아직도 정신이 없는 듯 했다. 꿀꺽, 침을 삼킨 백현이 남자의 대답만을 기다렸다.
"변재현 님이 빚을 졌습니다. 13억 8천만원."
백현은 입이 떡 벌어졌다. 재현은 백현과 나이차이가 꽤 많이 나는 친형이었다. 백현이 다니던 대학을 관두고 수능을 준비하면서부터는 가족과의 연락도 모두 끊어서 형이 뭐 하고 지내는지 전혀 몰랐지만 형은 13억이나 빌릴 만한 대인배가 아니었다. 대체 왜?
백현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왜 나를 데려왔지? 장기를 팔 생각인가?
형은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가족들은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까?
형은 왜 갑자기 이렇게 큰 돈을 빌렸지? 아니, 이 사람 말을 내가 어떻게 믿어?
수백개의 질문의 백현의 머릿속을 상공했지만 백현은 아무런 말도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었다. 백현은 잘 모르고 있는 듯 했지만 백현의 눈동자는 사시나무 떨듯 흔들리고 있었고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집에는 언제 가요? 한국이요."
겨우 꺼낸 말이 이거였다. 남자는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백현을 내려다보았다.
"빚을 다 갚으면."
남자의 말에도 백현은 생각을 정리할 수 없었다. 이게 꿈인가 싶었다. 그래, 꿈이겠지. 황당하네.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손으로 눈을 부벼보았다. 그리고 주먹을 세게 말아쥐어 제 손톱으로 손바닥을 찔렀다. 아팠다, 꿈이 아니다. 이 어이없는 일이 현실로 백현에게 다가왔을 때 백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곧 다리에 힘이 풀려 다시 침대에 주저앉고 말았다.
"일어나지 마요."
남자의 말에 백현이 주위를 빠르게 둘러보았다. 넓은 방이었다. 제가 누운 침대는 벽 쪽에 붙어있었는데 벽에는 그닥 크지 않은 창문이 붙어있었고, 침대를 제외한 가구는 얼마 없었다. 이렇게 좋은 방에 있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빚을 돌려받기 위해 데려왔다면 이렇게 좋은 방을 줄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모든 생각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저 아래로 쳐진 눈꼬리가 잔뜩 붉어져선 눈알을 굴리기만 할 뿐이었다.
"주인님이 곧 오십니다. 그 때까지 얌전히 앉아 있어요."
남자가 나갔다. 머리를 묶고 있던 여자는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백현은 생각을 정리했다.
형이 13억 8천만원 빚을 졌고, 그것 때문에 나는 일본에 왔다. 돈을 다 갚을 때까지 집에 돌아가지 못한다.
생각 할 수록 어이없고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었다. 돈은 내가 갚는 건지, 형이 갚는 건지도 모르겠고 일본까지 왜 데려왔는 지도 모르겠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다가 느껴지는 아릿한 고통에 손가락으로 입술을 훑자 피가 묻어져 나왔다. 제가 세게 깨물어 입술이 터진 것 같았다. 눈을 감았다. 바쁘게 뛰던 심장이 조금 가라앉자 곧바로 백현의 쳐진 눈꼬리를 따라 눈물이 흘렀다. 이제 뭘 어떻게 해야하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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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유지태 못알아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