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준
마리오네트
레몬치약
세상이 흐릿하다. 준면은 생각했다. 이 세상이 선명하게 보인다면 나는 아마 포기한 삶의 끝자락에서 살기위해 버둥거리고 있을 때이지 않을까. 버러지 같은 인생인데 끝내볼까 생각을 안한것도 아니다. 다만 가끔 느껴지는 온기가 잡고있었을 뿐이다.
"이건 뭐.. 지.."
흔한 브랜드의 초콜렛이었다. 아.. 왔다갔구나. 약에 지친 걸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천사가, 이런 한심한 꼴이라니. 너의 세계는 아마 조금씩 금이 가고 있을지도 몰라. 그걸 울면서도 이어 붙이고 있겠지. 미안해. 준면은 눈을 감았다. 볼을 타고 흐르는건 너의 믿음, 신념에 대한 죄책감일런지. 안타까운 현실의 고리에 대한 원망일런지.
"깼어요?"
"아..?"
세훈이 아니었다. 낮은 목소리가 몇년전 지나가던 길거리에서 들은 베이스 기타와 비슷했다. 남자는 준면의 손에 들려있던 초콜렛을 가져가며 따뜻하게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상황파악은 끝났다. 이따금씩 세훈이 자신과 친한 형이 올것이라며 잠자코 있으라고 할때 들렸던 목소리였다. 세훈이는 이걸 아는걸까.
"여기."
"고.. 마워요.."
"별 말씀을."
살짝 보인 치아가 참 사람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건넨 머그컵의 따뜻한 온기가 준면의 발긋한 볼을 데웠다. 둥둥 떠다니는 마시멜로우가 보기만해도 달아보였다. 한 모금 마신걸 보니 남자는 더 활짝 웃어보였다. 준면도 맞대어 웃었다. 남자는 헛기침을 하더니 준면과 눈을 마주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 이 상황은.. 제가 모른척 해야하는건가요?"
"세훈이의 친한 형이라면서요."
"..신경쓰지 마세요. 당신이 원하는걸 말해주세요."
"이뤄질수 없을거에요."
슬핏 보였던 준면의 웃음에선 목구멍이 메인듯한 기분이었다. 남자는 준면의 딱딱한 손을 잡았다. 사람의 체온을 이렇게 부드럽게 느껴보기는 실로 오래간만이었다. 남자는 준면의 손가락 마디 하나하나를 만지작 거리며 금방이라도 울듯한 눈을 하고 있었다. 아마 친한형이라면 이 아이의 바램 정도는 알고 있겠지.
"가세요. 세훈이는 모르니까."
"어렵네요.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도."
"나는 세훈이가 행복하길 바래요. 비록 지금 제 정신이 정상은 아닐지라도 이미 그렇게 박혀버린걸 뽑았다간 더 썩을거에요."
처음보는 사람임에도 매일 생각하던 말을 술술 내뱉었다. 단 한마디만을 제외하고. 썩어도.. 그 자리를 잘라내도 좋으니 날 구해주세요. 어쩌면 모순을 이루고 있는건 준면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아이의 행복을 바라는 천사는 막 돋기 시작하는 날개를 누군가 찢어주길 바랬다. 나는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걸까. 약기운인지 쉽게 자괴감에 빠진다.
"제가.. 그 썩은 부분을 치료해드릴게요. 다시 새롭게 자라도록.."
"..으.."
준면은 눈물을 흘렸다. 죄책감도 원망도 아닌 희망을 본 기쁨에서였다. 튼 볼에 눈물이 흐르니 따끔거렸지만 도무지 멈출 생각을 않았다. 남자는 그런 준면을 안아주었다. 바깥의 바람냄새와 향수냄새가 준면의 마음을 안정시켰다. 어느 약을 먹어도 이젠 안정을 할수 없었는데 단지 사람의 체향 하나로 뒤섞여 얼려진 마음이 녹아내렸다. 하지만 들킬것 같았다. 이 새롭고 달콤한 희망이 깨질 것 같아 밀어냈다.
"세훈이는 오늘 안 와요. 금식을 3일동안 한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그 동안 자기집 천사 좀 잘 돌봐달라고 했는데.."
"하으.. 윽..."
"울어요. 맘껏 울어요."
세훈이 준면과 이런 생활을 시작한건 불과 6개월 전 일이었다. 한 한기를 휴학하게 되었다는 준면에게 자신과 어떤 일 하나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과 함께 악몽이 시작되었다. 뒤틀리고,베이고,강간과 비슷한 의식,폭력과 비슷한 정화. 아마 이 남자를 따라 밖에 나가도 평생 없어지지 않을 흉터는 분명 있을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아무 생각도 없이 끌려가고 싶다.
"나.. 내일 다시 찾아올게요. 그때까지만 기다려줄래요?"
"오.. 오늘은.. 아.. 안돼요...?"
"일단 세훈이가 집에 올지 안올지 확실하게 알아야해요. 그리고 통장도 세훈이랑 공용인게 있어서 그것도 찾아와야해요."
"꼭 올거죠..."
"당연하죠. 내일 저녁 7시에 올게요. 세훈이가 올수도 있으니까 당황하면 안돼요."
이마에 포근한 입술을 꾹 누르고 몸을 일으킨다. 준면은 올려다보았다. 문이 닫히고 현관문까지 닫히는 소리가 들렸을 때, 준면은 이름도 물어보지 않은게 생각났다. 내일 오면 물어봐야지. 준면은 이때까지 오기 전에 가끔 불렀던 노래 한소절이 생각났다.
"조그만 날갯짓, 널 향한 이끌림. 나에게 따라오라 손짓한것 같아서."
그렇게 가느다란 선율이 밤을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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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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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희귀하다는 모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