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시절 나의 친한 친구중 한명이었다.
유난히도 말이 없던 아이였지만 존재감만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만큼 뚜렷했다.
친해지기 전엔 몰랐던 그 아이의 모습은 나날이 날 놀라게 만들었다.
"종인아, 오늘 학교 끝나고 호숫가 가서 라면 먹을까?"
"그래"
친해지고 난 뒤 보여진 그 아이의 모습은 내가 알던 도경수가 맞나 싶을 정도로
잘 웃고 활발한, 여느 고등학생 남자애와 별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여느날처럼 하교 후 학교 근처 호숫가에 가 함께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함께 라면을 먹던 중 그 아이가 툭 하고 이야기를 꺼냈다.
"종인아, 난 나중에 죽으면 꼭 여기에 뿌려졌으면 좋겠어."
죽음은 머나 먼 이야기와도 같았던 그 시절, 그 아이는 나에게 죽음을 말했다.
진지한 표정도, 그렇다고 가벼운 표정도 아닌 딱 도경수같은 표정을 지은 채 조곤조곤 말을 하는 널 보며
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저 웃었던 기억만 어렴풋이 날 뿐.
몇 년이 지났는지 잘 모르겠다.
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이 호숫가에 다시 왔다.
늘 이 곳에 올 때면 그 아이와 함께 했었는데.. 오늘은 나 혼자다.
사실 혼자 왔다고는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혼자가 아니다.
"도경수, 니가 그렇게도 원하던 그 소원 들어주러 왔다."
"........."
"너 이러려고 그때 그 얘기 했냐? 나보고 뿌려달라고?"
딱히 눈물이 나진 않는다.
다만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 내가 조금 더 따뜻하게 말해줬다면..
그렇게 등돌리고 가지 않았다면 이 아인 지금 살아있지 않았을까 하는 조금의 후회가 든다.
남겨진 소지품이라곤 핸드폰과 지갑 하나가 전부였던 너.
통화기록에는 여러 번호가 찍혀있었지만 저장된 번호는 내 번호가 전부였다.
처음 너의 죽음을 들었을 때 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헤어진지 두시간도 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믿기지 않는 소식에 그저 멍하니 있었다.
그런 날 보고 내 어깨를 잡아 흔들던 박찬열이 아니었다면
난 스스로 정신이 들 때까지 계속 그러고 있었겠지..
장례랄것도 없었다.
그 아인 일가 친척도, 그 아이의 죽음을 슬퍼해주러 올 그 누구도 없었다.
핸드폰에 남아있던 통화 목록 중 아무 번호에나 전화를 걸어볼까 했으나
그 아이와 나의 마지막 만남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이나 그만 두었다.
번호를 저장하지 않은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가는 길에 적적하고 외로울 것 같아 미안해졌지만
어차피 올 사람 하나 없는 장례식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바로 화장을 해 품 안에 안고 이 곳에 오긴 했는데..
막상 뿌리려니 자꾸만 손이 멈칫거려진다.
결국 난 뿌리기를 포기하고 그냥 바닥에 철푸덕 주저 앉았다.
"도경수, 차라리 우리가 그때 서로 모르는 척 했더라면 지금 우린 더 편하지 않았을까?"
"........."
"왜 그때 너의 연락처를 받아서.. 그때 모르는 척 지나갔더라면 넌 살아있었겠지."
괜히 무거워지는 마음에 옆에 있는 돌을 하나 집어 물에 던졌다.
물수제비를 뜨려 했던 것은 아니라 그저 작은 파장만 잔잔히 남긴 채 그 돌은 가라앉았다.
파장이 완전히 사라질 때 까지 가만히 보고 있자니 자꾸만 그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도경수, 저 돌이 마치 너같다고 하면 넌 화내려나"
내 마음 속, 내 머리 속에 잔잔한 파장 하나 만들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너.
여러 절차들을 거치느라 널 이 곳으로 데려온게 해질 무렵이었는데 어느새 캄캄해진지 오래인 하늘을 잠시 올려보며
슬슬 너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려 준비를 해본다.
"경수야, 다음 생에선 그런 아프고 슬픈 일 하지말고 그냥 평범하게, 대학도 가고 여자친구도 사귀고
동창회도 떳떳하게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아이의 마지막을 담아 온 단지 뚜껑을 열어 잠시 기도하듯 두 눈을 감았다 떴다.
부디, 부디 다음 생이 있기를, 그 다음 생에선 이런 삶이 아니기를 바라며
한 줌 손에 담아 바람결에 스르르 보냈다.
더 보듬어주지 못했던 내 자신을 반성하고, 부디 다음 생에 그에게도 평범한 삶이라는 것이 허락되길 간절히 바란다.
경수야
내가 너의 이야기를 들어주기엔 아직 어른이 덜 되었었나보다
한번쯤 너의 이야기를 들어줄 법도 한데
난 왜 그것을 하지 못했을까
경수야
너의 뒷 모습마저 보지 않은 채 돌아섰던 날 네가 용서할 수 있을까?
경수야
내가 다음에 또 이 곳에 왔을 때, 이 곳이 그대로였으면 좋겠다
너와 나의 추억이 잊혀지지 않도록.
그 흔적이 사라지지 않도록.
경수야
너의 그 소원을 이렇게 빨리 들어주게 될 줄은 몰랐는데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이것 뿐이라 미안해
경수야
다음 생에서도 내가 너의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난 조금 더 좋은 친구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경수야
그 곳에선 행복했으면 좋겠다
아픈 일도 하고싶지 않은 일도 슬픈 일도 없을 그 곳에서
부디 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경수야
나의 친구 경수야
나의 친구 경수야
안녕하세요!!! 먹고 사는게 바빠 그간 못온거 미안해여...ㅜㅜㅜ 사실 이건 외전이 없었는데 며칠전 문득 이걸 다시 봤다가 꽂혀서... 카디글은 원래 쓰는데 오래걸리는데다가 요새 통 바빠서 한번에 많이 못썼어여ㅠㅠㅠㅠㅠ 이 글은 거의 유일하게 불맠미 없는 편이 될 것같아요~ 다음엔 핫한 내용을 생각해서 오도록 하겠습니다!! 매우 늦은감이 있지만 올 해엔 처음 보는거니까!!! 내 독자님들 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