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김동률 - 출발
뱃사공이라는 직업은 이제 어느 지역에서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 집안은 대대로 준준 마을에서 준우 마을로 사람들을 이동시켜주는 뱃사공 일을 했다.
난 이 일을 한다는 것에 큰 자부심 같은 건 없지만, 그렇다고 딱히 이 일에 대해서 귀찮다거나 하는 것도 없다.
워낙에 멀미가 없는 체질에 딱히 운동을 하지 않아도 어렸을 때부터 체구가 컸기 때문에 아버지는 가끔 나에게
넌 뱃사공 하기 좋은 체격이라고 말하곤 하셨다.
솔직히 한 일 년 전만 해도 이 일은 아버지의 일이였고, 나는 옆에서 아버지가 힘드실 때마다 노를 저어드리거나 돈 계산을 맡았었다.
가끔 가다 말을 걸어주시는 손님께 특유의 서글서글함으로 웃으며 대답해 드릴 때는 뱃사공이 딱 내 체질이구나 하기도 싶었는데,
딱 그 맘 때 뉴질랜드에서 비행기표가 두 장 날라왔다.
몇 년 전 쌩하고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더니 결혼에 골인한 큰 누나가 보낸 것이였다.
함께 보낸 편지에는 보고싶었다는 내용과 함께 1년간 뉴질랜드에서 살자는 말도 안되는 문장이 쓰여 있었다.
내가 편지를 발견하고 그것을 찢으려고 할 때는 이미 어머 니가 새로 산 선글라스를 끼시곤 나 어때? 라며 들떠계실 때였다.
뱃사공이 없으면 이마을 저마을 옮겨다니며 장사를 하시거나 친구를 만나러 가시는 손님들은 어떡하냐고 묻자,
아버지는 내가 손님들을 대할 때 짓는 표정으로 여태까지 배운 게 어디 가겠냐며
나에게 모든 일을 떠맡기셨다.
골치가 아파 한숨 자고 내일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따지려던 나는 다음날 아침 메모 한장만을 남기시고 떠나신 부모님에 뒷골이 땡기기 시작했고,
아마 그 때 처음으로 술을 마시지 않았나 싶다.
"혹시 배 탈수 있나요?"
뱃머리에 발을 대고 노를 베개삼아 자연을 느끼며 과거를 회상하고 있는데 뒷쪽에서 들리는 약간 앳된 남자의 목소리에
급히 자세를 바로잡으려다 노를 강에 빠트릴 뻔 했다.
배에 타시는 손 님들은 나에게 힘이 세고 운동 잘할것 같다고 하시지만,
사실 난 농구를 제외한 모든 운동에 대해서 잘 하지도 못했고, 별로 즐기는 편도 아니였다.
뒤를 돌아보자 반년 전인가부터 한 달에 두번씩은 꼭 배를 타시는 손님이시다.
저번에 물어보니, 이름은 이준호였고 준준마을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수우 마을에서 왔다고 했다.
아주 어릴 적에 큰누나에 의해서 이름만 몇 번 들어본 곳이였다.
나는 늘 그렇듯 미소를 지으며 타시라고 말했다.
고립된 지역에 있는 준우마을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준준 마을에서 유일하게 오는 단골손님이였기 때문에 묘한 정이 붙었다.
특히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오는 듯 해서, 내 나이 또래인 듯한 이 손님을 기다리는 맛에 노를 젓는다.
내가 살고있는 준준 마을에는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어르신 분들이셨기 때문에 살짝 심심했다.
사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5명 정도는 있었던 것 같은데,
다들 서울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쓸쓸히 나혼자 뱃사공 일을 했다.
"오늘도 준우 마을 가시는 거죠?"
"네."
말을 하며 쑥스럽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헤헤, 하고 웃는 준호씨를 보니 나도 웃음이 나오는 것만 같았다.
준우 마을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했는데,
얼마나 친구가 좋으면 그 멀리 사는데도 불구하고 주말마다 찾아오는 건지 그것 참 극성한 우정이라며 매번 놀랐었다.
그 때마다 준호씨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일관된 웃음.
준호씨의 웃는 모습은 솔직히 예뻤다.
물론 준호씨가 남자긴 하지만, 보는 사람마저 즐겁게 만드는 웃음이였다.
서로간에 대화가 없으면 답답함을 느끼는 내 성격과는 달리 준호씨는 별로 말이 없는 편이였다.
준우 마을로 가는 15분 간 대화를 주도하는 건 거의 나였다. 물론 오늘도.
준호 씨 나이는 몇이에요?
스물 셋이요.
아, 저도 스물 셋인데. 동갑이네요.
동갑인 걸 알았으면 보통, 그럼 동갑인데 말을 놓자는 반응이라는 것은
텔레비전과 중학교 때 친구들에 의해 알았는데 준호씨는 그런 것도 없다.
나도 이런 면에서는 인색한 편이라 준호씨가 먼저 말을 놓자는 말을 꺼내기 전까지는 별다른 말을 꺼내지 않았다.
사실, 나는 말을 놓자는 얘기를 잘 하는 편이다.
말 없이 노만 젓다보니 벌써 강의 중간에 다다랐다. 이제 5분정도 뒤면 도착이다.
매일 뱃일을 하다보니 노젓기는 그냥 하나의 습관에 지나지 않는다. 별로 힘이 드는 일도 아니고 손님도 하루에 많아야 스무명 정도이니
느긋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번 타는데 만 원, 준우마을 사람들은 팔천원, 단골 손님들은 오천원.
아버지와 나 나름대로 정한 가격인데, 먹고 살기 부족하지 않게 번다. 딱히 지출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딱 필요한 게 아니면
나머지는 두 달 후에 작년에 서울로 이사간 네 살 연상의 여자친구와의 두 달에 한번 있을 만남에 쓰기 위해 저축한다.
내 여자친구도 준호씨처럼 웃을 때 눈웃음이 참 예쁜데, 아버지가 떠나신 후 한 달에 두 번 있던 만남을 두 달에 한 번으로 줄여서 좀 그립다.
딱히 여자친구와 결혼을 약속하며 깊은 사랑을 하는 건 아니라 그다지 그리워하지 않을 줄 알았지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준호씨의 얼굴을 보면 여자친구가 떠오르는 게 이상한 일만은 아니다. 특히 준호씨의 이름은
내 여자친구 준숙이와도 비슷하다. 사실 준숙이에겐 네 살 연상이지만 누나라는 말은 쓰지 않았다. 어리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 라는 이유로.
뭍이 가까워 지는게 느껴져 준호씨를 따라 살짝 눈웃음을 치며 다 왔네요, 하자
그새 슬쩍 졸았는지 화들짝 놀라며 예, 예 한다. 그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자 준호씨의 귀가 빨개진다.
"오천원 입니다."
배가 뭍에 완전히 닿았는지 확인한 후 준호씨에게 손을 내밀며 말하자, 주머니에 손을 넣어 뒤적이더니
당황한 표정으로 가방 구석구석을 뒤져보다 이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데,
그 모습이 마치 슈렉에 나오는 고양이 같다.
"저기, 돈이 없는데..."
사실 돈이 없는 손님은 이래적으로 없었는지라 좀 당황했는데, 그 당황스러움 보다는
준호씨가 당황한 모습을 보는 재미가 더 컸다. 귀가 빨개진 채로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이 왠지 귀여워서 살짝 웃고는
그럼 어쩌지 하고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럼 이따 되돌아가실때 제가 드리는 편지좀 시내에 있는 우체통에 넣어주세요. 어때요?"
"아, 그래도 될까요? 정말 죄송해요...."
그제야 준호씨의 표정이 조금 풀린다. 괜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을 흔들자 표정을 풀고는
그럼 이만, 하고 주택가 쪽으로 쪼르르 달려간다. 여튼 귀엽다니까.
준호씨가 간지 6시간 정도 지났을까, 어쩐지 그 후로 손님이 한 명도 오지 않았다.
평소에 딱히 지루함을 느끼진 않는 편이지만, 6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배 위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일은 좀 따분했다.
이 근처엔 사람도 별로 없으니까.
배에서 내려 물가에 있는 납작한 돌 하나를 집어들어 물수제비를 던졌다.
통통거리며 몇 번 튕겨져 나가다 결국 가라앉아버리는 돌을 한 번, 슬슬 별이 보이려는 하늘을 한 번 보니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혹시 배 탈수 있나요?"
"물론이죠. 혹시 이번에도 돈 없으신 거 아니죠?"
장난스레 묻자 입술을 삐죽이며 친구한테 빌렸다구요, 하고는 선불이라며 미리 오천원을 건넨다.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티슈를 뽑듯 지폐를 가져가자 내 뒷자리에 새침한 표정으로 앉는다.
가만히 노를 젓는데, 준호씨 쪽에서 피아노 선율이 들린다. 배 위에서 피아노를 칠 리는 없고,
슬쩍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자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받는 준호씨가 보인다.
전화를 건 상대는 아마 준우 마을에 사는 친구인지 응응, 하며 상대방이 자신의 앞에 있기라도 한듯 고개까지 끄덕인다.
나는 딱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핸드폰을 사지 않았는데, 막상 준호씨가 사용하는 걸 보니 나도 필요한 것 같기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노를 젓다보니 준준마을 쪽에 도착했다.
"아, 이제 도착했다, 끊어!"
"흠... 돈은 아까 선불로 주셨고, 여기 편지요."
"예?"
아까 말씀 드렸잖아요. 편지좀 우체통에 넣어달라고.
내 말에 아아 그거, 하면서 자신의 가방에 편지를 잘 챙겨 넣더니 이내 나를 향해 고개를 까딱 하고선
그럼 안녕히 계세요, 하고는 버스 정류장 쪽으로 달려간다. 가만히 서서 달리는 뒷모습을 바라보니
어깨는 남자답게 넓고, 그 밑으로 떨어지는 허리선은 마른 듯 하면서도 통통하고, 그 밑으로 보이는 체형에 비해 큰 편인 오리 궁뎅이는 씰룩거린다.
전체적으로 잔근육이 있는 것 같아 여자들이 좋아할 체형이네, 하고 생각하고는 그대로 배에 누워 하늘을 바라봤다.
시간이 꽤 지났겠구나 생각이 들어 집에 들어와 시계를 보니 30분밖에 안 지났다.
리모컨을 들어 전원을 누르자 요즘 유행하는 개그 프로그램이 나온다. 몇 개 없는 채널을 다 돌려보고는, 볼게 이것밖에 없구나 싶어
개그 프로그램을 계속 봤다. 화려한 분장을 한 개그맨이 나와 아니 어떻게 알았지, 하며 자신의 유행어를 말하자 방청객들이 깔깔 웃는다.
적막감이 흐르는 집에서 깔깔대는 웃음 소리가 들리니 나만 다른 세계에 동떨어진 것 같아서 그냥 같이 웃었다.
아침부터 분주한 소리가 들려 인상을 살짝 찌푸리곤 저번에 준호씨가 농민이 봉기하는 것 같아요, 라는 명언을 남긴
일명 농민봉기 스타일로 머리를 묶고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처음보는 아저씨 몇분과 그 아저씨들 사이에
키가 나보다 좀 큰 듯한 남자가 피아노 건반만한 이빨을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이빨이 좀 커서 그렇지 얼굴은 꽤나 생겼구나 싶었는데
마치 수채화에 유화 물감으로 선을 한 줄 그은것 마냥 안경이 씌워져 있었다. 저 안경만 없었어도 모델 스카웃 제의가 5번은 들어왔겠다.
입맛을 쩝 다시며 남자를 위아래로 슬쩍 훑어보니 초록색 바지에 초록색 티셔츠, 초록색 모자와 초록색 신발이 저희는 한 몸이에요 라고 외치듯 입혀져 있었다.
아니, 장착되 있다고 하는게 더 맞는 표현 같다. 저게 티비에서 요즘 그렇게 유행이라고 강조하던 깔맞춤 패션인가? 요즘 세상도 참 말세다.
그 남자의 뒷편에는 가구들이 잔뜩 놓여져 있었다. 저게 뭔가 싶어 자세히 살펴보니 침대, 책상을 비롯한 각종 살림살이가 일사분란하게 놓여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건넛마을 이씨 아저씨가 준우마을에 지어진 전원주택으로 누가 이사 온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사람이 저 사람인가 싶어 옆으로 어슬렁 걸어가자 이제야 나를 발견했는지 자신의 이빨만큼 큰 손을 건네며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준우마을로 이사온 옥택연이라고 합니다."
"아, 저는 여기 뱃사공 황찬성이에요."
"뱃사공이요? 아직도 뱃사공이 있구나! 맞다. 저번에 광택이 아저씨가 말했던 분이신가보다. 잘생긴 뱃사공 청년, 맞죠?"
"예.. 광택이 아저씨..."
옥택연이라는 사람이 말하는 광택이 아저씨는 이씨 아저씨의 본명이다. 아, 이제서야 생각난다. 이씨 아저씨가 했던 말들이.
새마을 운동을 한다는 이상한 사람이 이사를 오는데, 이빨이 거짓말 안하고 피아노 건반만 한데다
웃을 때 모습이 미국산 큰쥐 같은데 집 문서 싸인란에 고양이 그림을 그리는 골때리는 놈이라고.
아저씨의 심정을 100% 이해하며 괜히 말걸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건반씨가 다시 말을 걸었다.
"혹시, 제가 저쪽으로 가구를 옮겨야 하는데 가구 옮길만한 배가 있을까요?"
"아 네..."
"다행이네요! 아 참, 찬성씨는 몇살이에요?"
"스물 셋이요."
"스물 셋이요? 저는 저랑 동갑인 줄 알았어요! 보기보다 젊으시네요. 나는 스물 넷인데, 말 놔도 되지?"
말 놔도 되냐고 물으면서 이미 말을 놓고 있는 저 보기보다 병신같은 남자에게 나는 일명 썩은 미소를 날려주곤
집 뒤편에 있는 창고에서 조금 커다란 보트를 꺼내 뭍으로 갔다.
한 번에 가구 두개는 실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나저나 내 뒤를 옥큼옥큼 따라오며 너도 말 놔도 돼! 으헝헝 이라는 대사를 날려주고 계시는 저 병신을 어떻게 처리해야 될지가 좀 걱정이다.
"찬성씨, 저기 초록색 옷 입으신 분은 누구예요?"
"아.. 오늘 준우 마을로 이사온 형인데 아까부터 들떠서 저래요."
"아 그러시구나.."
그때 이후로 정말 일주일만에 다시 오신 준호씨가 택연이형을 이상하게 쳐다보며 조용히 묻는다.
아까부터 계속 맑은 자연아 안녕? 난 너희들을 사랑해! 라며 별 같잖지도 않은 짓을 하는 택연이형 때문에 준호씨가 오기 전까지 시달려야 했다.
결국 만난 지 30분만에 말을 놓아버린 나는 택연이형의 성격을 모두 파악했다.
예의바른 병신 그 자체였다.
성격은 나름대로 좋은데 그 속은 만렙 병신이였다.
저번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 이번에도 선불로 오천원을 건네준 준호씨가 오늘따라 날씨가 좋네요, 하며 주위를 둘러본다.
주변에 사람이 별로 없는 것과 내가 모터달린 배를 마다하고 노를 저어가며 뱃사공 일을 해서인지는 몰라도
강은 1급수였고, 그에 걸맞게 깨끗했다. 오늘같이 햇볕이 쨍쨍한 날이면 강 가운데에 와도 바닥까지 다 보이곤 한다.
"강 물 만져봐도 되요?"
"그러세요."
"우와, 시원하다."
"잘 보시면 물고기도 보여요."
"어, 진짜 그러네요!"
준호씨의 작은 눈이 조금 커진다. 준호씨를 처음 봤을 때는 준호씨의 작고 옆으로 긴 눈이 사나워 보이는 인상을 줘서
아무리 성격이 좋다는 소릴 많이 들은 나라도 쉽게 말을 걸기가 어려울 줄 알았는데,
나에게 조심스럽게 혹시 배 탈수 있나요? 라고 물어보던 준호씨의 눈이 순수해 보여서 그 뒤론 말을 쉽게 건넬 수 있게 됐다.
준호씨가 만나러 간다는 친구는 가끔가다 타시는 준우마을 손님들께서 누누히 얘기하시는 이 동네에 한명 뿐인 내 또래의 남자일 것이다.
나름대로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어쩐 일인지 한 번도 배를 타러 온 적이 없다.
"맞다! 저번에 주신 편지는 우체통에 잘 넣어 드렸어요."
"아.. 감사해요."
아이고 ㅋㅋㅋㅋㅋ 브금 선택력도 병맛이고 문장도력 참 값싸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댓글 달아주시면 제 사랑드립니다♥ 사랑머겅 두번머겅
연재는 아마 지금은 학기중이니까 일주일에 한번정도일 것 같아요..뭐 봐주시는 분이 있으려나 허허 -_-a
그나저나 1화를 너무 길게 쓴것도같고 그르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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