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TOPIA:01 |
유토피아
아마 이 짓거리를 하게 된 계기라면 제 밑에서 울고불고 떼를 쓰며 매달리던 그 소년 때문일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이 묻는다는 가정하에도 그렇게 답할 것이다. 나는 이곳 사람이 아니라 기차역이 어딘지. 안전한 곳은 어딘지라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지 못 할 것이다. 지금 저를 포함해 꽤 많은 사람이 몰려있어 복잡한 길마저 끝내 안전하지만은 않다는 사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그것 뿐이였다.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낡고 흙먼지가 눌러 붙은 담요나 이불 몇 장이 떨어져 있었다. 서둘러 이 나라를 떠나려 하는 사람들이 흘리고 가거나 버려진 모양이다. 어차피 이 곳을 떠나면, 평화로울 테니 짐이 될 양이니까.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그나마 새것인 태가 보이는 담요 한 장을 집어 들었다.
“아직, 새 것인데···.”
구멍이 몇 나긴 했지만 상당히 필요성은 있어보였다. 충분히 지칠 대로 지친 몸과 어젯밤 내린 눈 덕에 기온이 내려가 몸은 부르르 떨려왔다. 나는 주위를 둘러볼 틈도 없이 담요를 얼른 걸쳤다. 몇 걸음 더 걷다보니 이제야 주변 환경들이 눈에 보였다. 아직 이 곳은 평화롭다. 핏방울 하나 없이 희고 흰 눈들만이 있었고, 수많은 발자국들이 보였다.
“악! 아빠, 아버지! 아버지!”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살짝 앳된 목소리. 소름이 끼쳤지만 그 것도 순식간이였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해졌다. 시계를 챙기지 못해 지금 시간을 정확 히 알 순 없지만 하늘을 보아선 새벽. 아주 고요했다. 사람들은 저 앞으로 저보다 멀리 떠나있었고, 지나치게 고요한 주변에 긴장감은 끊기지 않았다. 황급히 몸을 챙기고 조심스럽게 걸음을 다시 옮겼다. 아까 그 비명소리. 귓가에 맴도는 그 찢어질듯한 소리가 자꾸 맴돌았다. 바람이 불어왔다. 얼음장 같이 차가운 새벽의 바람은 자신의 얼굴을 휘어갈귀듯 지나갔고, 항상 생각을 해왔다. 새벽의 바람은 차다. 그리고, 다시 나는 뒤를 돌았다. 아까의 비명소리가 들렸던 곳.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이 주변이다. 어쩌면 그는 살았을까. 아님 단순한 넘어짐이였을까. 습격일까. 벌써 이 곳을 떠난것인가. 나는 어깨에 간신히 걸쳐진 담요를 손에 쥐곤 속도를 높였다.
“아.”
어두워질대로 어두워진 다리 밑. 소년은 웅크린 자세를 한 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나는 소년을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였다. 그는 고개를 끝까지 들지 않았다. 고요한 새벽. 나는 아까보다 더 조심스럽게 그에게로 다가갔다. 제 그림자가 소년을 가리자 저 혼자 움찔거렸다.
작은 숨소리가 들린다.
‘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내가 알게 뭐람?’
고개를 돌리고, 몸을 돌렸다. 마음은 무거웠지만 지금 다른사람을 구할 시간에 제 몸조리를 잘 하는 편이 나았다고 생각했다.
“추····워.”
그리고 끝내 발걸음은 옮기지 못했다.
그의 몸은 그야말로 불덩이였다. 추운 날씨 탓에 열이 올랐는지 온몸엔 붉은 열꽃이 피어있었다. 소년을 억지로 일으켜 세워 제 손에 쥐었던 담요를 서둘러 소년에게 걸쳐주었다. 소년은 길을 가면서 연신 이상한 말을 중얼거렸고 나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온 몸의 힘이 풀려 다리가 휘청거림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제 곁에서 떨어질 기미조차 보이질 않았다. 아마 그도 제 정신이 아니겠지. 나는 몇 걸음 더 걸으면 보이는 지하철역에 잠시 몸을 맡기기로 하고 걸음을 더욱 빨리했다. 병신새끼···. 제 속도를 쫓지 못하고 제 뒤로 넘어져버린 소년이 보였다. 그는 잠시 휘청거리더니 나를 향해 손을 뻗었고, 나는 그 손을 잡으려다 괘씸한 마음에 그를 무시하고는 혼자 몸을 이끌고 역으로 향했다.
-
내가 역 안에 도착 했을 땐, 벌써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걸음 하나 옮기기조차 힘든 인파에 나는 겨우겨우 몸을 이끌어 구석진 바닥에 자리 잡았다. 몸의 피로가 쌓이면서 잠이 오려고 할 때 쯤, 소년의 얼굴이 제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는 죽었을까. 잠시 깊은 생각에 빠졌다. 자신이 저질러놓은 일에 나는 혼란에 빠졌다.
‘그 깟 병신새끼가 뭐라고···.’
나는 아까 식량배급을 할 때 받은 빵을 꺼내 한 입 베어 물었다. 더럽게 맛없네. 남은 빵을 꾸역꾸역 입안에 넣은 후 잠에 들으려 무수히 많은 양들을 세어보았지만 몸만 피곤할 뿐, 정신은 죽이고 싶게도 말똥말똥했다. 언제 습격 받을지도 모르고 안전하지도 못한 장소. 가벼운 생각으로 살다가는 나도, 사람들도 모조리 죽고 말겠지.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나는 챙겨온 작은 가방을 열어 무엇인가를 찾았다. 사이즈가 살짝 작지만 입을수는 있는 옷들과 함께 나온것은 색이 누렇게 변조된 봉투. 나는 서둘러 봉투의 끝을 이로 뜯어 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 했다. 봉투를 열자마자 보인 것은 수표 몇 장이였다. 나는 대충 금액을 확인하려 봉투를 아래쪽으로 쏠리게 하자 수표사이에 껴있던 흰 종이쪼가리가 떨어졌다.
[아이의 이름은 변백현이예요. 96년생 5월 6일. 이 아이의 생일이구요. 심성이 착하고 고운아이예요. 잘 부탁 드려요.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어쩌면 나에게는 살아남은 사람이라는 말 보단, 버려진 아이라는 말이 맞았다. 그 날 나는, 울음에 지쳐 잠이 들었다.
-
“엄마. 아버지는요?”
“짐은 다 쌌니?”
어릴적부터 나는 무관심속에서 자라왔다. 잘살지는 않지만 못살지도 않는 집안 속. 언제부턴가 엄마는 자꾸 나를 어디론가 보내려했다. 나는 그럴 때 마다 몰래 집안을 빠져나와 담 밖에서 숨을 헐떡였다. 사람들은 숨을 헐떡여 몸을 숨기는 나를 보고는 항상 혀를 찼다.
“어머, 백현. 너 여기서 뭐하니?”
“누나, 날 숨겨줘! 우리 엄마가 미쳤어!”
“얘 얘, 내가 또 너한테 당할 줄 알아? 너희 엄마가 너 많이 찾아. 얼른 집에 돌아가.”
“아니야! 이번은 아니야.나에게 화분을 던졌어! 난 그걸 피해 도망 나온거라고!”
나를 못미덥단 듯이 흘깃 본 누나는 잠시 고민하는듯 싶더니 나를 누나의 집 마당으로 데려왔다. 나는 누나의 무릎에 누워 두 다리를 길게 뻗었다. 그리 길지도 않은 다리지만 무엇이 이보다 편할수 있으랴. 나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양팔을 뻗어 닿지도 않는 달을 잡는 시늉을 했다.
“너는 늘 이런식이지 변백현. 이것도 거짓말인거 다 아는데 너 숨겨준거야.”
“아니라니까! 진짜야! 믿어줘.”
“그래. 너희 엄마가 또 뭐라셨길래. 널 또 어디 보내려하니?”
나는 누나가 좋다. 하는 짓이 좀 병신같긴 하다만(4차원적이지만 심성은 착한듯했다)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나를 돌보아주고 위로해주는 사람은 누나 뿐이였다. 나는 그대로 눈을 감고 내일의 평화를 그려내었다. 오늘보다 밝은 달을 그리며.
이대로만 나는 행복하고 싶었다.
“엄마,나 왔어요.”
엄마의 눈을 보아하니 매우 화가 난 듯 치켜뜨고 있었다. 나는 그런 엄마의 눈을 잘 마주보지 못하고 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엄마는 나를 보더니 날 못 본 척. 무시하고 하던 청소를 다시 하였다.
“엄마?”
“······.”
“엄마.”
“시끄럽게 할꺼면 나가라! 방해되니깐!”
어쩌면 엄마는 날 애초에 이렇게 내보내려했는지. 신발장 앞엔 내가 아끼던 가방이 놓여져있었고 내가 무슨 행동을 하건 엄마는 항상 나를 무시했다. 나는 괘씸한 마음에 가방을 치켜들고는 쿵쿵대며 문을 열고 집을 나왔다.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사람들의 시선에 가방을 매고는 무작정 뛰었다.
그리고, 나는 그날의 악몽을 다시 꾸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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