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뭉멍뭉
김성규 X 남우현
축축한 아침 공기를 가르고 교실에 들어선 성규의 눈이 기계적으로 그 곳을 훑었다. 오호라, 오늘도 비었구만? 그래, 어디 해보자 이거지. 까득, 하며 가볍게 이를 맞부딪힌 성규가 껄렁한 걸음으로 교탁에 섰다.
“ 남우현 어디 갔어 이거. ”
“ 나무 안 왔어여. ”
이새끼 이거, 귀찮고 좋네요. 숨을 훅 하고 내쉰 성규가 미간을 좁히며 특유의 표정을 지었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끼워 넣은 성규가 다시 한 번 껄렁한 걸음으로 교실을 나섰다. 경고 준 날로부터 정확히 31일. 천하의 김성규가 참을 만큼 참았지, 암. 스스로 대견해하며 성규는 교문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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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쌤, 진짜. 한번만 봐주세요, 네? ”
“ 시끄러. 어디서 개새끼가 사람 옹알이를 하지? ”
조이다 만 넥타이에 두어 개 풀린 셔츠 단추, 하늘 어딘가로 증발한 명찰까지. 그러고서는 헐레벌떡 뛰어오며 헥헥대는 모습이라니. 눈썹을 축 내리고서는 저를 보채는 우현에 귀까지 틀어막은 성규는 그 냉정하고 단호한 말투로 우현의 애교를 단칼에 잘라냈다. 토끼 애교? 몇몇 넘어간다는 여선생도 있었지만, 그래봤자 성규에게는 콧방귀 감으로도 아까웠다.
“ 남우현. 너 내가 경고 했냐 안했냐. ”
“ …했어요. ”
“ 벌 준다고 했냐 안했냐. ”
“ ……했어요. ”
“ 어떻게 하루도 빠짐없이 이렇게 늦을 수가 있지? 너의 그 한결같음에 경외를 표하는 바다. ”
“ …아, 진짜. ”
“ 싸물어라. ”
…예. 그래얍죠. 이쯤하면 우현도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다. 입을 헤 벌린 책가방은 어느새 운동장 한구석에서 나뒹굴고 있다. 물론 남우현도 슬슬 운동장에서 나뒹굴 시간이다. 성규는 여유있는 얼굴을 하더니, 우현에게 친절하고 나긋한 음성으로 말했다.
“ 학교 끝나면 곧장 튀어 와라. 튀어 오라고 했는데 튀어 갔다간. ”
“ …에? ”
“ 알지? ”
시발, 당연히 알죠. 존나 잘 알죠. 김성규가 누군지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시발, 왜 자꾸 눈물이 나지. 결국 남우현이 발 디딜 곳은 어느 한곳도 없다는 것을 못 박아둔 김성규는, 처량한 모래바람이 부는 운동장을 상쾌한 숲바람 맞는 듯 가볍게 걸어갔다. 물론 우현은 성규의 뒤에 대고 자신의 짤막한 중지 손가락을 날리며 욕했다는 건 비밀. 귀신같은 김성규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 내려라, 소리친 것은 안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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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으, 시발, 아, 으아…. 진짜 죽겠네. 처음엔 별 거 아니겠지 생각했다. 전화해서 멈추라고 할 때까지 운동장 돌아. 튀면 죽는다. 찍어 누르듯 엄포를 하고 뒤 돌아선 김성규는 3층 교무실, 운동장 위의 자신이 훤히 보이는 창가자리에 앉아 저를 구경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두어 바퀴 돌때까지만 해도 코웃음을 쳤었다. 그렇게 겁주더니 뭐야 이게. 뭐야 이게, 아, 뭐야, 이게, 시발, 김, 성규, 망할, 노오오오옴…. 처음 7바퀴까진가 세다가 이제는 그것마저 셀 기운도 바닥난 우현이 눈치를 보며 조금씩 속력을 줄였다. …엉, 주머니 진동이… 아싸 김성규. 웅웅대는 휴대폰을 구세주 만난 듯 두 손으로 경건하게 쥐고 있던 우현이 조심스레 전화를 받았다.
“ 여보, 세여? ”
[ 얼씨구, 느려지지? 이게 진짜. 제대로 해라. ]
지 할말만 하고 끊어. 그것도 집에 가라, 하고 끊으면 좋으련만. 존나 매의 눈이네! 시발! 끊긴 전화를 허망하게 바라보던 우현이 결국 주머니에 휴대폰을 집어넣고 다시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다다다ㅡ 달리다 또 다시 눈에 띄게 속도가 줄어든다. 이만하면 좀 봐주지… 어, 전화왔다. 이번엔 제바알.
“ 여보세요오! ”
[ 잘한다 잘한다~ 뛰어라 남똥개~ ]
뭐야, 목소리 존나 신났어. 아오 진짜…. 결국 성규의 매의 눈이 무서워지기 시작한 우현이 울며 겨자먹기로 달렸다. 또 한참을 달리다보니 이 넓은 운동장엔 저밖엔 없다. 나밖에 없네. 김성규는 3층에 있지. …그래, 김성규는 3층에 있지. 그래! 그거야!! 낭랑 18세, 가진 거라곤 패기뿐이 없는 남우현의 머릿속에는 온통 김성규라는 마귀의 품을 벗어나는 방법밖엔 없다. 그래, 이렇게 뛰다가, 교문이랑 가까워지면, 시발, 그냥 튀는거야. 아… 난 천잰가봐. 호원아, 동우야, 이 형님이 금방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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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올려다 본 3층 교무실 창문엔 김성규가 없다. 후딱 책가방을 챙겨온 우현이 스퍼트를 낸다. 저 멀리 교문을 바라보며 우현은 침을 꼴깍 삼켰다. 하나, 둘, 셋. 전속력으로 뛰어가기. 이렇게 죽을만큼 집중했던 적이 인생에 몇 번이나 있었는가. 효리 누나가 탑 형아랑 키스했을 때? 다라 누나가 빛돌이 형아들과 키스했을 때? 아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그냥 존나 뛰어야지.
느긋한 동작으로 다시 창문 밖을 바라보니, 뭐야 저새끼. 책가방을 메고 교문 쪽으로 뛰고 있다. 미쳤구만, 저거? 귀찮다는 표정을 한 성규가 커피 잔을 탁 내려놓곤 전화를 걸었다. 멍멍이 같은 새끼가 멍멍이 같은 짓만 하네.
“ 남우현, 이새끼 누가 가래? 간이 부었지 아주, 붓다 못해 펑 터져서 정신줄 놓은 거지? ”
[ …허으, 읏, 후, 후아… ㅆ, 쌤… 흐어… ]
…?! 뭐지 이건. 순간적으로 놀라 휴대폰에서 뗀 성규의 귀가 급격히 달아올랐다. 당황한 덕에 의도치 않게 스피커 폰을 눌러버렸다.
[ 아으, 쌤, 진짜, 흐으, 죄ㅅ… 하아. ]
음질은 또렷했고, 실시간 폰섹스가 생중계 되는 것만 같은 현장이 연출되었다. 교무실에 몇 안 남은 선생님들의 눈길이 온통 저에게로 향하는 것을 느낀 성규가 그제서야 정신을 붙잡았다. 미치겠네, 진짜. 아, 썅, 남우현, 이게 진짜.
“ …ㅇ, 어, 그래. 우현아? 다음에 통화하자 다음에. ”
전화를 급히 끊은 성규가 아직도 저를 향해있는 시선들을 향해 어색한 미소를 던졌다. 일 보세요, 제발. 전 남우현 좀 족치러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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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김성규가 3층 교무실, 2층, 1층을 지나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교문을 통과하는 것까지 다 지켜본 학생은 증언했다.
“ 여기 2년 다니면서 김성규 그렇게 존나 투지 불타오르는 건 처음 봤는데, 무섭더라고여. 와, 누군지 존나 불쌍해. ”
정말 개취..어후 나 진자 현성은 못보갔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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