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한 너는, 내 인생 최고의 여우
#처음 본 너는
내가 김여주를 만난 건 정말 멀리 보자면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작은 동네에 학년 당 두 학급밖에 없던 작은 학교. 마마초등학교에 10살의 김여주는 전학 왔었다. 나랑 같은 반이었던 건 아니고, 워낙 작은 학교라 얼굴은 자주 보였다. 도시의 큰 학교에서 왔다던 돈 많아 보이는 예쁜 여자애. 김여주를 처음 봤을 때 첫 인상이었다. 이제껏 봐온 같은 학년의 여자애들이랑은 많이 달라서, 자연스레 그 애한테 시선이 갔었다.
우리 학교 애들이 순수하고 착한 편이긴 했지만 우리 학교에도 왕따가 있었다. 항상 더럽게 입고 다니고 더럽게 행동하는 애가 있었는데, 그 누구도 걔랑 엮이고 싶지 않아했다. 이름도 기억이 안 난다. 아, 맞아, 이름도 이명구라서 명구벌레야! 하고 애들한테 불리며 놀림을 당했었다. 사실 가난하고 할머니랑만 같이 사는 애라서 그렇게 더러운 옷 입고 다니고 씻지도 못했던 아이였는데. 어린 애들이라서 뭣 모르고 싫어하는, 그런 거였다. 이명구는 항상 남자애들한텐 얻어맞고, 여자애들한텐 시비를 받았다. 나도 뭐. 관심이 없던 방관자였고.
그런데 어느 토요일날. (이 때는 학교 가는 토요일과 놀토가 나뉘던 시절이었다.) 학교가 끝나고 고요해진 학교에서 나는 뒤늦게야 집으로 가려고 나가는 중이었다. 마침 저 계단 입구에 이명구가 앉아있었고, 나는 재수도 없지, 라고 생각하면서 다른 길로 가려고 뒤 돌은 참이었다. 그 순간 김여주도 옆 반에서 나왔다. 청소하고 혼자 가는 것 같았는데.
"안녕?"
나는 솔직히 내 눈을 의심했다. 너무 예쁘게 웃어주면서, 인사를 하고 있었다. 내가 아니라, 이명구한테. 나도 모르게 멍하니 서서 계단에 서있는 둘을 바라봤다.
전학 온 지 얼마 안 돼서 이명구를 모르나보다. 근데 그럴 리가 없는데.
"...꺼져 병신아!"
그 당시 '바보, 멍청이' 밖에 모르던 우리였는데, 이명구는 심한 욕도 할 줄 알았다. 쟤는 호의도 구분을 못하나. 그렇게 김여주에게 욕을 내뱉고 뛰어가는 명구를 이상하게 내가 때려버리고 싶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김여주를 바라봤을 때는 멍한 얼굴로 이명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곧, 나랑 눈이 마주쳤다.
"..."
"저런 이명구나, 놀리는 너희나."
"...?"
"다 거지같아!"
눈에는 눈물이 맺혀있는 얼굴로 못된 말을 잘도 한 김여주는 그렇게 계단을 내려갔다. 나는 얼떨결에 한대 맞은 듯 한 얼굴로 멍하니, 가는 김여주를 바라봤다. 다음 날 보인 김여주는 너무 멀쩡했다. 애들이랑 웃고 떠들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했다. 아. 가끔 이명구를 경멸하던 것 빼고는.
6학년이 되고 같은 반이 이었지만 나랑은 별로 말을 섞은 적이 없었다. 남자애들이랑도 잘 어울리면서 나랑은 이상하게 접점이 없었다. 김여주가 그때의 일을 기억할까, 나는 항상 궁금했다. 하지만 그 일을 언급하면 나까지 경멸할 것 같아서, 말하지 못했다. 김여주는 인기가 많았다. 남자애들끼리 순수하게- 진실게임을 하면 2명은 꼭 김여주를 좋아한다고 말했었다. 달리기를 잘하는 잘생긴 애도, 싸움을 제일 잘하던 애도, 김여주는 거절했다. 남자를 싫어하는 건지, 남자친구를 만들기 싫어하는 건지, 친구인 남자애들은 많으면서.
한 때는 난리난 적도 있었다. 이 작은 학교에서 주먹을 매번 험하게 쓰는 남자애가 김여주에게 고백한 다음 날. 고백할 때 준 반지를 쓰레기통에 넣은 김여주 때문에 남자애는 어떻게 반지를 버리냐고 노발대발하면서 달려왔었다.
"난 책상에 놓여진 게 니가 그런 의미로 논 건줄 몰랐어. 또, 그 반지 문방구에서 천원이면 사는 거잖아."
"...뭐?! 아니거든? 만원짜리 거든? 맞기 전에 물어내, 개년아!"
"니가 쓰레기통 뒤지던가, 나 때리기 전에 우리 엄마랑 통화할래?"
이상하게 나는 왜 그런 당돌한 너가 멋있어보였는지. 아니. 예뻐 보인 걸까.
#재회
중학생이 되고 김여주는 이사를 했는지 멀리 있는 중학교를 갔다. 우리지역은 촌이라고 어떤 특혜가 있었는데, 그나마 가까운 중학교에 지원하면 바로 붙는 거였다. 난 그렇게 그 학교에 붙었다. 김여주는 이 학교가 아닌 다른 중학교에 지원을 했고 그렇게 난 김여주를 다신 볼 수 없었다. 종종 우연히 들려오는 소식이라곤, 많이 예뻐졌다는 거. 초등학교 동창 여자애들이 김여주 얘기를 하며 툴툴대는 걸 몰래 들었었다.
그런 김여주를 다시 본 건 고등학교에 입학한 날이었다. 난 단번에 저 단상 위에서 대표 글을 읽고 있는 김여주를 알아봤다. 여전하구나. 신기하게도 같은 반이었다. 교실 문을 열었을 때 뒷자리에 앉은 김여주를 보고, 나도 모르게 바로 옆 분단에 앉아버렸다. 핸드폰을 들고 뭘 그리 열심히 하는지, 김여주를 몰래 힐끔힐끔 바라봤다.
"김여주!"
"아, 왜 이제와."
박찬열이 그 큰 키와 시원스런 미소를 자랑하며 김여주 옆에 털썩, 앉았다. 이 때는 박찬열의 이름도 몰랐던 시기였기에 둘이 사귀는 건가, 추측했었다. 김여주 너는 그런 박찬열이 편한지 핸드폰을 내려놓고 화사하게 웃었다. 장난끼도 언뜻 보이는, 밝은 얼굴.
"헬로-."
"...뭐야, 같은 반이야 우리?"
내 옆에 앉는 김종인을 보고 놀란 내가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유일하게 같은 중 나온 둘이 같은 반이 됬대. 김종인은 씩 웃더니 내 옆의 분단한테도 인사했다. 놀란 나도 그 쪽을 바라봤다.
"박찬열!"
"헐, 김종인?"
박찬열과 김종인이 아는 사이였는지 반갑게 인사했다. 박찬열이 호들갑떨면서 김종인에게 인사를 건넸다. 둘만의 대화가 오고가던 중, 박찬열을 보다 김여주에게 시선을 옮긴 나는 그대로 김여주와 눈이 마주쳤다. 그 고요한 눈빛이 이상하게, 날 묶어놓는 느낌이었다.
"옆엔, 이름 뭐야?"
"아, 어?"
김종인과 떠들던 박찬열이 그제야 시선을 돌려 나한테 물어봤다. 깜짝 놀라 김여주한테서 눈을 떼고 박찬열을 바라봤다. 김종인이 날 대신해 어, 얘는, 하고 말을 뗐다.
"도경수?"
하지만 내 이름이 나온 건 김종인 입이 아닌 김여주 입에서였다. 솔직히 나를 못 알아 볼 줄 알았다. 나보다 더 놀란 박찬열이 눈을 휘둥그레 뜨곤 물었다. 아는 사이야 둘이?! 당황한 나와는 달리 김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초딩 때 친구."
친구, 친구였던가. 김여주의 말에 다시 김여주를 쳐다보자 김여주는 씩, 웃었다. 꼭 어릴 적 이명구한테 웃어줬던 것처럼, 예쁘게.
아니. 안 웃어도 예쁘던 너지만.
"우와, 대박, 무슨 우리 인연이 이렇다냐."
"그러게, 신기하다."
"야, 넷이 지내면 되겠네! 존좋!"
박찬열이 신난 듯 몸을 덩실거리고 김종인이 푸하하 웃었다. 나도 따라 어색하게 웃었고, 김여주는 얘 왜 이러냐며 박찬열을 퍽퍽 때렸다.
그렇게 나는 너에게, 오랜 시간을 거쳐서야 스며들어갔다.
1편 2편 새벽 내내 미리 써놨는데..
바로 날리는 기분은, 참, 올리지 말라는 계시인건지... 처음처럼 쓰기 힘들어서 덕분에 짧아져버렸어요, 1,2편이. 그래서 2편도 빨리 올게요.
이 곳에 글 쓰는게 처음이라 읽기에 편한지 모르겠어요. 사실 가운데 정렬하고 쓴 건 처음이라...하하.
이미 읽고 오셨겠지만 경수시점이에요, 핳. 경수야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