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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너를 좋아해주는 것, 그게 삶의 가장 큰 기적이란다.

- 생텍쥐페리

 

 

 

spontania - 같은 하늘을 바라보는 당신에게

 

 

 

[2화]

 

 

 

 

[EXO/백도] esperar 2 | 인스티즈

 

 

 

"뭡니까. 이거."

 

 

서류와 함께 건넨 사직서를 본 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까보다 더욱 굳은 표정은 펴질 줄을 모른다.

 

어째서 그런 표정을 짓는지 이해가 잘 안 되었다. 예전의 너라면 몰라도 지금의 너는 나에게 아무 감정이 없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내가 낸 사직서를 태울 듯이 노려보는 네가 이해가 되질 않는다. 너의 실력이라면 나보다 유능한 사람을 몇 명 혹은 몇십 명씩 데리고 올 수도 있을 건데 말이다. 연말이나 가끔 일이 고되긴 하지만 그만큼 회사 내 분위기도 좋고, 급료도 세고 안정적이다. 무엇보다 직원들을 아끼는 너이기에 스카우트를 하면 열의 아홉은 오려고 할 텐데.

 

 

"보시다시피 사직서입니다."

"그러니까. 왜. 냈느냐는 말입니다."

 

 

담담하게 뱉은 나의 말에 고개를 든 너는 느릿하게 고개를 들고 나를 노려본다. 까드득하는 소리가 들리고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말한다. 항상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오는 너의 행동에 의아함도 잠시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한 것을 좋아하는 너이기에 이맘때에 사직서를 낸 내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를 노려보는 너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말을 건넨다. 내가 떠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하는 실없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며.

 

 

"걱정 마십시오. 물건들은 이미 정리했고 평소 하던 대로 1월 말까지 계획안은 모두 작성했습니다. 이번 달의 일정 역시 모두 정리해서 그 서류에 넣어두었으니…."

"내가! 지금 그것 때문에 화가 났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화가 나신 겁니까?"

"보면. 모릅니까. 도경수 씨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게 아니면 어째서 네가 화를 내는지 정말로 모르겠다. 백현아.

너와 나의 인연은 네가 기억을 잃은 후 나 혼자서 붙잡고 있었기에

나만 놓으면 끝이 나는 인연이다.

그래서 이제 놓으려고 하는 것인데 왜 너는 화를 내는 거지?

 

 

"정말로…. 몰라서 묻습니까."

 

 

허탈하게 한숨을 쉬듯 말을 내뱉는 너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손에 들고 있던 다른 서류를 건넨다. 그리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안녕히 계십시오."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한 뒤 몸을 들자 여전히 입술을 깨물며 나를 노려보는 네가 보인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으로 너에게 뒷모습을 보인다. 이게 마지막이다.

 

 

"도경수!"

 

 

-쾅!!

 

 

책상을 내려치는 듯한 커다란 소리와 무언가 깨지는 소리, 나를 부르는 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뒤로하고 문을 닫았다.

 

 

이렇게. 우리의 인연은 끝이 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으로 너에게 뒷모습을 보인다.

 

 

 

 

 

[EXO/백도] esperar 2 | 인스티즈

 

 

 

 

마른세수를 하고 벽에 기대어 아주 잠깐, 너와 내가 함께 했던 날들을 회상한다.

 

나에게 회사를 세울 거라고 당찬 포부를 말하던 너, 그 말에 네가 어떻게 회사를 세울 거라며 너를 비웃던 나.

환하게 웃으며 자신의 회사의 첫 번째 직원이 되어달라던 너, 나같이 유능한 사람을 데려가는 것에 감사히 여기라며 웃던 나.

1주년, 2주년, 3주년. 나의 생일. 너의 생일. 매일같이 함께하던 나날들.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 네가 기억을 잃은 날.

너를 좋아한다던 내 말을 듣고 어색한 표정을 짓던 찬열이와 종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나눈 키스까지.

 

 

 

순식간에 눈 앞을 지나가는 추억들을 생각하면,

아마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있던 부서로 가서 많지 않은 짐이 담겨있는 상자를 들자 다른 곳까지 퍼졌는지 회사 내 사람들이 다 모인듯 나를 보고 있었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신용있고 꾸준히 커져가는 기업으로 유명해 믿을 만한 소수의 사람들이 이뤄가는 회사라 그런가 다들 눈물이 맺혀있다. 모든 부서는 최대한 적은 인원으로 함께 하는데 아무리 적어도 부서가 여러 개다 보니 모두 모이니 사람이 많았다.

 

 

끝까지 가지 말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과 연락하라는 사람들을 보며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회사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함께해서 저는 끝까지 갈 줄 알았는데 저와의 인연은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당신들은 믿을 만한 사람이니까. 여러분들이 사장님을 잘 보필해줄 거라 믿습니다."

 

 

결국, 내 말에 눈물이 터진 것인지 황급히 고개를 숙이거나 돌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마지막으로 사장실을 한 번 쳐다보고 말을 이었다.

 

 

"사장님은 본인은 모르시지만 매달 24일만 되면 날카롭게 벼려져 있는 칼처럼 되어 있으니 단 것을 주십시오. 그러면 항상 기분이 풀렸으니 말입니다. 또 회식 갈 때는 나이트클럽 같은 곳은 삼가주십시오. 사람이 부대끼는 걸 싫어하시고 담배냄새를 특히나 싫어하시니까 말입니다. 환절기면 항상 감기에 잘 걸리시니 공기청정기랑 가습기 점검은 그때그때 하도록 하세요. 완벽한 것을 좋아하니 오타 하나라도 있는지 제대로 확인하고 서류 제출하시고 일정은 일주일, 한 달을 기점으로 정식 일정을 알려드려야 하고 매일 아침마다 다시 세세한 일정까지 알려드리도록 하세요. 또 아침에는 아메리카노나 핸드드립을 주로 마시지만,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일 때는 부드러운 카페라테나 밀크티를 드리도록 하세요. 남자는 안주 없이 먹는다고 술을 그냥 드시는 분이니 옆에 앉는 사람이 안주를 꼬박꼬박 챙겨주세요. 싫다면서 챙겨주는 건 꼭 먹으니 말입니다. 천둥·번개가 치는 날에 야근하는 것은 혼자 있기 싫어서니 너무 투덜대지는 말아주십시오. 또…."

 

 

말을 이어나갈 때마다 더욱 울음을 터뜨리는 직원들의 모습에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다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저를 보는 찬열과 종대를 보고 말을 멈췄다. 왜인지 목이 턱 막혀서 목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이 회사 내에서 자신과 백현의 사이를 알고 있는 사람은 몇 명 없었는데 그중에 두 사람이었다. 찬열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서 자신을 보고 있었고 종대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더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저 두 사람에게 참 고마운 것도 많고 미안한 것도 많다. 서로 짝사랑하는 줄도 모르고 힘들어하던 백현이와 저를 이어준 게 저 두 사람이니까.

 

 

"..아닙니다. 그냥. 다들 아실 내용이니 생략하겠습니다. 나중에…. 만약 다시 볼 일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침을 꿀꺽 삼키고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길을 비켜준다. 직원들이 비켜준 길을 컴퓨터 모니터만 한 상자 하나만을 들고 걸어간다. 이게 마지막일 테다. 이 부서를 걷는 것도, 이 회사를 걷는 것도. 그래도 찬열이와 종대의 곁을 지나갈 때는 나도 모르게 희미하게 웃었던 것 같았다.

 

 

 

 

 

백현아.

이번만큼은 내가 먼저 떠난다.

너와의 추억이 있으니 나는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수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고 후회하고 돌아오려 마음먹지만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이번만

내가 먼저 너를 떠난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없이 무겁기만 했던 어깨가 가벼웠다.

어째서인지 발걸음도 오늘따라 가벼웠다.

그런데 왜 왼쪽 가슴 한구석은 이리도 무거운 걸까.

 

 

백현아. 너는 알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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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다음편을 기다리고있습니당!!!! 좋어용
9년 전
독자2
경수 너무 슬플거 같아요...백현이가 기억을 어쩌다 잃게 됐는지도 궁금해지네요ㅠㅠㅠㅠㅠㅠㅠㅠ
9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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