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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파에 늘어진 채 옆으로 누워 편히 TV를 보던 성종은 갑작스레 집안에 요란하게 울려퍼지는 새소리에 몸을 일으켜 세웠다. 손에 쥐고 있던 리모콘을 소파에 내려놓았다. 터벅터벅, 어깨에서 흘러내린 가디건을 위로 끌어당기며 현관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신발 벗는 곳 앞에 멈춰서서는, 누구세요? 했는데 대답이 없다. 누구세요? 다시 한 번 물었지만 대답이 없었다. 어떤 놈이야,하며 현관문을 벌컥 열자 그 앞에는 명수가 서있었다.

 왔어? 반가웠는지 성종이 웃어 보이며 묻자, 명수는 대답을 생략한 채 우악스럽게 집안으로 들이닥쳤다. 화난 걸음으로 인터폰 앞에 멈추더니 현관문을 닫고 들어오는 성종을 향해 뒤를 돌았다.

 

"인터폰 제대로 확인 안하지, 이성종. 대체 안전 의식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여 보이는 성종을 뒤로 하고 인터폰 버튼을 눌러 새소리를 멈추게 하였다. 모르는 사람한테 절대로 문 열어주지 말라고 했잖아,라고 말하자, 형인 거 다 알고 열어준거야,하고 받아치는 성종이었다. 좀 더 그럴싸한 다른 거짓말은 없어? 명수가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한탄하듯이 말했다. 그러던 말던 성종은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형은 비밀번호 알고 있잖아. 일부러 초인종 누르지나 마."

 

 명수가 눈을 가늘게 떴다. 다 너를 위한 연습이야. 그 말에 성종이 웃음을 터뜨렸다. 좀 더 그럴싸한 다른 이유는 없어?

 명수의 눈이 더욱 가늘어졌다. 내 말 따라하지마.

 

"저녁 안 먹었지? 차려 놨어."

 

 식탁으로 휘리릭 가버린 성종은 의자에 앉으며 얼른 오라고 손짓했다. 그 와중에 가디건이 어깨에서 또 흘러내리자 손짓을 멈추고는 가디건을 끌어당겼다. 피식, 웃음이 새어나온 명수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맞은편에 앉았다.

 예쁜 그릇에 담겨 식탁에 곱게 차려진 음식들을 한 번 둘러보니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계란찜, 계란 스크램블, 계란 후라이, 계란말이, 그리고 한 쪽 구석에 후식으로 있는 설탕 듬뿍 뿌린 계란 토스트. 또 그 옆에는 취향을 고려하여 조그마한 접시에 내놓은 토마토 케찹도 자리 잡고 있었다. 오늘은 계란 후라이에 케찹을 찍어 먹어 볼까? 즐거운 상상을 하며 잘 먹을게,하는 명수였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성종은 살포시 웃었다.

 명수가 젓가락으로 계란 후라이의 한 귀퉁이를 잘라내더니 케찹을 살짝 묻히고는 입으로 쏙 넣었다. 해놓은지 조금 됐는지 차갑지는 않을 정도로 미지근했다. 이어서 밥을 떠 넣었다. 그 모습을 흐믓하게 바라본 성종은 젓가락을 들었다가, 문득 무언가 생각났는지 아!, 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냄비에서 국을 퍼왔다.

 계란국이었다.

 

"너 진짜 못 말린다!"

 

 평소에 좀처럼 웃질 않는 명수가 웃어젖히자 이유를 모르는 성종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갑자기 왜 웃는거지?

 명수는 신경쓰지 말라는 듯이 손을 휘젓더니 고개를 숙여 예쁜 그릇에 담겨있는 계란국을 쳐다봤다. 상아빛을 띄고 있는 묽은 물 안에는 형식없이 뭉쳐진 계란들이 동동 떠있었다. 명수는 짙은 초록색 남방의 소매를 팔꿈치 위로 접어 올리며 말했다. 맛있겠다, 잘 먹을게. 성종은 살짝 삐친 척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돼.

 유일하게 할 줄 아는 요리가 계란 요리와 라면 밖에 없을 정도로 성종이는 여러 요리들을 할 줄 몰랐다. 하지만 본인이 확실하게 요리할 줄 아는 것은 정말 맛있게 만드는 성종이었다. 요리는 명수가 더 잘하는 편이었지만, 남들이 보기에 별거 아닌 요리일지언정 열심히 만드는 성종의 모습이 귀여워서 가만 놔두는 식이었다. 덕분에 매일 계란 요리만 먹지만 말이다. 명수는 그저 그런 성종이 귀엽게만 느껴졌다. 매일 먹는 계란 요리지만 단 한 번도 질린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일반 가정집의 식탁에는 매 끼니 때 마다 어떤 반찬이 나오는지 쉽사리 상상이 가지 않았다. 어렸을 적부터 보육원에서 자란 명수와 성종였기 때문에 그러할 수 밖에 없었다.

 명수는 숟가락을 들고는 기분 좋게 계란국을 떠서 한 입 먹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맛있다.

 

 

 

 

 

*


"내일 나갈 수 있겠어?"

 성종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며 후식으로 만들어 놓은 계란 토스트를 한 입 베어무는 명수였다. 토스트에서 입을 떼는 순간 설탕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정확히 포착한 성종은 발을 동동 굴렀다. 의자 당겨 앉으란 말이야, 설탕 떨어지잖아. 명수는 군말없이 의자를 앞으로 당겨 앉았다. 동생 말을 잘 듣는 형이었다. 그리고는 좀 전에 했던 질문을 다시 했다. 내일 나갈 수 있겠어?

 그 말에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리며 침묵하는 성종이었다. 손을 가만히 두지 않는지 손톱끼리 딱딱딱, 부딪히는 소리가 명수의 귀로 들려왔다.

 어제 일로 다시 한 번 마음의 상처를 입은 성종이었기에 연습실에 나가는 걸 꺼려했다. 물론 호원과 동우가 성종의 행방을 물었을 때는 감기에 걸려서 나오지 못했다고 명수가 대충 둘러대긴 했지만 말이다. 성종은 워낙 심성이 여린 탓에 쉽게 상처받기 일쑤였다. 쉽게 상처받고, 마음을 추스리는데도 시간을 필요로 했다.

 먹고 있던 계란 토스트를 접시에 내려놓은 명수가 여기를 보라는 듯이 식탁 유리를 똑똑 두드렸다. 그 소리에 성종이 고개를 들어 명수를 바라봤다.

 

"또 같은 일로 힘들어하고 있지? 나도 그 맘 알아."

 

 명수는 성종과 눈을 맞추며 지그시 바라봤다. 하지만 우리가 이대로 계속 피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라며 하던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정말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성종아. 여기마저 나가게 된다면 우린 더 이상 갈 수 있는 기획사도 없어. 너 어렸을 때부터 노래하는거 좋아했잖아."

 

 진심 어린 명수의 말을 들으면서도 성종은 입을 꾹 다물고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다시 시선을 내리깐 채 손가락을 꼼지락대고 있을 뿐이었다. 저렇게 여려서 어떡하지 싶다.

 

"TV 틀었는데 우리 무시했던 애들이 노래 부르고 있으면 화나지 않아? 팬들은 걔네들 뭐가 좋은지, 목이 터져라 환호하고 있고. 걔네들은 이미 오래전에 데뷔했는데 우리는 왜 아직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 특히 너는 목소리도 고운 애가 왜 이러고 있어. 남들에게 들려줘야 할 거 아냐."

 

 무거운 침묵으로 얼마나 지났을까. 고요함으로 휩싸인 집안에는 어느 순간부터 시계판을 째깍째깍 달리고 있는 초침 소리만이 들리고 있었다. 명수는 아무리 스스로 생각해봐도 아까전 성종에게 내뱉은 말이 낯간지러웠다. 괜히 깊게 말했나? 이 때 무언가 어려운 결정을 한 듯 성종이 힘겹게 끄덕이는 모습이 보였다. 나갈게,라는 말과 함께.

 

 

 

 

*


"안 먹어?"

 엄지와 검지손가락만으로 닭다리를 집고는 맛있게 한 입 물어뜯으며 묻는 우현이었다. 알아서 먹을거야, 떨떠름하게 대답하며 닭다리를 집은 성규도 한 입 뜯었다. 냠냠. 맛은 있긴 있다만 손톱 안으로 양념이 들어가는 건 질색이었다. 아무리 꼼꼼하게 손을 씻어도, 손톱 사이에 낀 양념은 한 번에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한 입 더 물어뜯는 와중에도 그저 손톱에 양념이 깊게 낄까봐 조마조마했다. 이런 몹쓸 유리심장..☆★ 마음 같아선 당장 비닐장갑이라도 껴야할 판이었다. 하지만 고시원에서 자취하는 마당에 절대로 비닐장갑이 있을리 없다. 어쨌든 본인의 스타일은 깔끔한 후라이드 치킨이었다. 차라리 후라이드에 소스를 찍어 먹는 게 낫겠어. 그나저나 쟤는 그리도 맛있는가?

 성규는 마주 앉아 날개를 뜯고 있는 우현을 바라보았다. 우현의 앞에는 방금전까지만 해도 쥐고있던 닭다리의 잔해가, 바닥에 깔아놓은 지하철 신문지 위로 나뒹굴고 있었다. 닭다리는 언제 다 먹었대.. 우현에게 최후를 맞이하고 있는 날개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데 그 느낌을 받았는지 우현이 먹는 걸 잠시 멈추고는 쳐다봤다.


"치킨 먹는 내 모습이 사랑스러워?"

 

 뭐?, 어이없음을 느낀 성규가 제대로 코웃음을 치며 확인차 되물었다. 사랑스럽긴 개뿔.. 입가에 양념 묻었다 이놈아. 묻은 양념이나 닦고 말하시지 그래.

 

"아니면 치킨이나 먹어."

 

 그게 아니라 입가에 양념 묻었다고 이놈아. 한심한 듯 쳐다보는 성규의 시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알 턱이 없는 우현은 능청스레 말하고는 뜯고있던 날개를 마저 뜯기 시작했다. 멍청한 놈. 쯧쯧쯧, 성규는 속으로 혀를 마구마구 찼다.

 

"근데 왜 온거야?"

 

 싱크대에서 손톱 사이를 꼼꼼히 씻고 있던 성규가 치킨을 치우고 있는 우현에게 물었다. 저녁 같이 먹으려고,라는 대답이 뒤에서 들려왔다. 저녁? 성규가 반색하며 우현을 향해 반쯤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쓰레기통 옆에 서있는 우현과 눈이 마주쳤다. 가난한 고시원 자취생이자 기획사 연습생인 성규에게는 그저 밥 사준다는 말이 가장 귀가 번쩍 뜨이는 말이었다. 이건 마치 자신에게 처한 궁핍한 상황에서 살아남으려고 철저하게 적응하게된 생존 본능과 같은 것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우현은 대각선 아래를 가리켰다. 손끝이 향하는 곳을 보니, 아까 먹었던 치킨 브랜드의 비닐봉투가 보였다. 그럼 그렇지.

 

"집에 가라."

 

 우현을 째려보더니 다시 싱크대로 고개를 돌려 손톱 사이를 빡빡 씻는 성규였다. 물을 틀어 손을 헹구고는 양념이 제대로 사라졌는지 확인했다. 실패. 에라, 모르겠다. 짜증이 솟구친 성규는 손 씻기 2차 도전을 포기하고 손에 묻은 물기를 티셔츠에다가 대충 쓱쓱 닦았다. 그런 게 어딨어,하며 옆으로 불쑥 다가온 우현은 물을 틀어 손을 씻기 시작한다. 그런 우현의 옆모습을 째려보더니 이를 악 물고는, 좋은 말로 할 때 가라며 성규가 경고했다.

 그 말을 듣곤 손 씻는 것을 멈춘 우현이 고개를 반쯤 돌려 옆에 서있는 성규를 빤히 쳐다봤다. 윽. 얼굴과의 거리가 가까워서 부담스럽긴 했지만, 이에 질세라 성규도 우현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런데도 우현은 눈을 피하지 않는다. 어라? 이러면 내가 점점 부담스러워서 눈을 피하게 될 판인데..

 그 때였다.

 

"한 마리 더 시킬까?"

 

 

 

 

 

*

 

 사나이 김성규가 고작 후라이드 치킨 앞에서 무너지다니.. 성규는 속으로 탄식을 하면서 닭다리를 한 입 뜯었다. 후라이드 특유의 바삭, 소리가 났다. 바로 이 맛이야.. 너무 맛있어서 당장이라도 몸이 흐물흐물 녹아버릴 것만 같았다. 우물우물 씹으며 자신이 쥐고 있는 닭다리를 한바퀴 빙그르 돌려보았다. 오호라, 튀김 입힌 때깔이 고운 걸 보아하니 TV에서 거창하게 광고하는대로 좋은 올리브유 좀 썼나 보네.

 

"기분 탓인가? 형 지금 되게 재밌어 보인다."

 

 이 때 성규를 보고있던 우현이 같이 웃자며 옆으로 바짝 달라붙었다. 우현의 입가에는 아까 먹었던 치킨의 양념이 그대로 말라 붙어있었다. 싫은데?라고 아무 생각없이 말한 성규는 잠시 당황한 기색을 표했다. 그 말을 할거라는 걸 직감했는지, 성규의 말투를 똑같이 흉내내며 동시에 말한 우현이 때문이었다. 꽤나 재미를 느꼈는지 우현은 배를 부여잡고 눈이 애굣살로 덮일 정도로 크게 웃어젖히기 시작했다. 뭐지? 당황한 성규의 머릿속 회로는 그 생각 외에는 아무런 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고장난 것 처럼 버벅대고 있었다.
 성규는 방금전 자신이 우현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났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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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봄봄이에효ㅎㅎ 와!!처음이라♥ 계란은완전식품이니 건강에 디게디게좋으니 명수능 매우건강하겟어요ㅋㅋㅋ 동생말잘듣는형ㅋㅋㅋㅋㅋ성규가 치킨먹는거보고 저도 땡겨서죽을듯ㅠㅠㅠㅠㅠㅠ나도가치먹쟈엉엉ㅜㅠ
1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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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똥말똥
오왕ㅋㅋㅋㅋㅋ 안녕하세여 봄봄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원하는 에피소드 있으신가여?ㅋㅋㅋㅋㅋㅋㅋㅋ
13년 전
대표 사진
독자2
ㅋㅋㅋㅋㅋ 김성규 농락당했어 ㅋㅋㄱㄲ 안녕하세요 감성 이에요 아 완전웃겨 김성규 농락하기 ㅋㅋㄱㅋㅋ 아웃겨 그대 다음화기다릴게요 ㅠㅠ
1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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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똥말똥
감성님이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뭔가 상큼하고 달달한 에피소드를 쓰고 싶은데 떠오르지 않ㄴㅔ유ㅠㅠㅠㅠㅠ
13년 전
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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