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텔라 03
“야, 나 화장실 좀.”
“내가 따라가줄까? 우리 엉아 무서워서 화장실 혼자 못가잖아.”
“이거나 먹어라.”
호원은 성규를 위해 쌍으로 가운데손가락을 올려주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에 가니 손을 씻고 있는 우현이 있었다.
“얼굴 뚫어지겠더라.”
호원이 다가가 옆구리를 툭치자 그제서야 호원을 알아챈 우현이었다.
“왔냐. 근데 뭐라고?”
“김성규 얼굴 뚫어지겠다고. 누가 하도 쳐다보는 바람에.”
“아.....”
“무슨일인데.”
“뭐가.”
“모르는척하긴. 하여간.....둘다...성격....거지....”
“뭐라고? 물소리때문에 못들었어.”
“아냐 아무것도. 세수라도 하고 정신차려라. 멍때리지말고.”
호원은 우현을 놔두고 먼저 나가버렸고, 우현은 호원의 말대로 가장 찬물을 틀었다.
“하여간. 이호원 눈치빠른 새끼”
얼마나 오랫동안 세수를 한건지 고개를 드니 앞머리까지 전부 젖어있었다. 거울을 계속 보고 있으니 성규의 얼굴이 스쳤다. 이곳으로 오는 중에 성규에게 먼저 걸려온 전화를 보고 기분이 풀렸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와보니 오히려 더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안그래도 어제 일 때문에 성규를 자꾸 의식하게 되어 신경이 쓰였는데 엎친데 덮친 격 이었다.
우현은 오늘 성규를 만나면 어제 일에 대해서 전부 설명해주고, 자신의 마음을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성규의 얼굴을 보니까 자신과 말도 하지 않으려는 그에게 차마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거부 당할거란걸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우현의 앞에 그 상황이 닥치니 도저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진심을 고백할 수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자신의 고백때문에 친구사이 마저 아닌 그저 보통의 사람들이 되어 버릴까 무서워졌다.
앞머리를 대충 털고 나가니 벌써 취한애들이 몇명 보였다.
“남우현도 왔으니까 집에가자. 벌써 열두시 넘었다. 재수생 여러분들 내일 또 학원 가고 독서실도 가고 도서관도 가고 다 가셔야 하잖아.”
뻗은 애들도 전부 깨우고 약속대로 늦은 우현이 술값을 계산하고 나왔다. 나와서도 한참이나 인사를 하곤 집 방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갔다. 집방향이 같은 성규와 우현도 천천히 밤길을 걸었다. 아무 말 없이 걸어가는데 정적을 먼저 깬건 성규였다.
“한잔 더 할래?”
“지금? 이제 다 문닫을 텐데..”
“좋은데가 있슴.”
어디냐고 물어도 대답해주지 않더니 편의점으로 들어가 술을 사왔다. 성규는 집에 다 와갈때까지 아무 말도 않하더니 갑자기 우현의 집으로 가자며 앞장을 섰다. 갑작스런 성규의 말에 당황한 우현은 안된다고 했지만 성규는 이미 술을 샀다며 들은체도 하지 않았다.
정말로 우현의 집 문앞까지 당도하자 성규가 우현을 향해 돌아섰다.
“진짜 안돼?”
우현은 한숨을 쉬곤 비밀번호를 눌렀다. 안으로 들어가 불을 켜자마자 성규는 거실바닥에 앉아 맥주 한 캔을 깠다. 한 모금 쭉 들이키더니 봉지 속에 들어있던 캔맥주와 소주를 꺼내놓았고, 그걸 본 우현은 소주잔 두개를 가져 왔다. 우현이 성규의 옆에 나란히 앉자 성규가 캔을 건네주었다. 그 후로 한참이나 아무말도 오가지 않았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할말이 없는건지.. 아니 오히려 그 반대인것 같기도 했다. 할말은 너무 많은데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지를 몰랐다.
우현이 갑자기 일어섰다.
“나 먼저 씻는다. 넌 알아서”
“좋았어?”
“뭐가.”
“키스.”
성규가 고개를 돌려 우현과 눈을 맞췄다.
“좋았다면?”
“아.. 그래?”
“어.”
“그래.”
성규는 우현을 쳐다볼수가 없어 고개를 떨어뜨렸다. 자신이 지금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무미건조한 우현과 같은 표정일까. 우현을 보자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우현에겐 어제의 일이 그저 단순한 해프닝에 불과했던 걸 수도 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평소에도 장난치는걸 좋아하던 우현이었고, 어제의 일도 그저 짖궂은 장난이었을 수도 있다. 우현과 성규에게 키스의 이미가 다를수도 있다는걸 이제서야 깨닳았다. 성규에게 키스란 좋아하는 사람과 나누는 사랑의 의미였을지 몰라도, 우현에겐 별 의미없는 일 일수도 있었다.
성규는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이틀은 짧은 시간일수도 있지만, 성규에게 어제와 오늘은 너무 힘이 들었다. 생각과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얽혀버린 실뭉치처럼 도저히 풀어질 기미가 안보였다. 오히려 한 매듭을 풀으면 그 뒤로 수십, 수백개의 매듭이 더 생겨났다. 실뭉치들은 점점 커져 성규의 목을 졸랐고, 잠을 앗아갔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며 생각해도 풀리지 않았던 매듭들이 우현을 마주하자 전부 다 풀렸다. 아니, 그가 날카로운 가위로 실을 전부 '잘라'버렸다. 이게 더 확실한 표현이었다. 성규에게 조금의 여지도 남기지 않고 통째로 잘라가버렸다. 마치 어제의 일따위 없었던 것처럼. 아무일도 아니었던 것처럼. 전부.
눈물이 나올것 같았다. 아무일도 아닌걸 가지고 죽도록 고민했다는 억울함 때문에? 그런 장난을 친 우현이 미워서? 아니면 혹시나 기대했던 자신이 한심스러워서?
가슴이 아팠다. 옆에 있던 소주를 까 벌컥벌컥 마셨다. 썼다. 너무 써서 눈물이 흘렀다. 성규는 혹시라도 우현이 볼까 얼른 소매로 눈가를 닦아버리곤 마셨다. 눈물이 나오지 않을때까지 계속 마셨다.
성규를 집에 바래다 줘야하나 고민하면서 나온 우현이 거실바닥에 누워 있는 성규를 발견했다. 자는건가 하며 다가가 보니 그제서야 옆에 굴러다니는 소주병들이 보였다.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다 비어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성규를 흔들었다.
“야 김성규. 괜찮아?”
한참을 깨우니 겨우 눈을 뜬 성규를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잠깐 손을 놓으면 다시 주저 앉았고, 이 상태로는 도저히 집에 갈 수 없을것 같았다. 우현은 성규를 데리고 화장실로 들어가 성규를 변기위에 앉혔다. 찬장에서 새 칫솔을 꺼내 성규의 손에 건네주었다. 치약까지 다 짜주었지만 눈을 감은 성규는 닦을 기미가 안 보였다. 우현은 한숨을 한 번 쉬곤 아이들에게 하는것처럼 닦아주었다. 자신이 하는 말을 알아듣고 행동하는 성규가 그저 귀여웠다.
성규를 침대에 눕히고 겉옷을 벗겼다. 이불을 덮어주고 나가려는데 성규가 우현을 불렀다. 우현이 성규에게 다가가자 성규는 우현의 목에 팔을 둘렀다. 당황한 우현이 뻣뻣하게 굳어있자 눈을 뜬 성규가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술에 취해 상기된 피부는 뜨거웠고, 자신을 비웃는것 같은 그 표정이 우현을 자극했다.
“내가 이런 새끼한테..”
“뭐?”
“키스해줘.”
“......그만 자.”
우현은 성규의 팔을 풀으려 했고 성규는 우현을 놓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우현의 머리를 이끌어 오더니 고개를 들어 입을 맞춰버렸다. 우현은 힘을 주어 성규의 어깨를 눌렀다. 겨우 입술이 떨어졌고, 우현은 언성을 높혔다.
“김성규! 도대체 왜이러는데!”
“지금.. 나한테 화내는 거야?”
“......”
“니가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화를 내는건데.”
“성규야.”
“왜 이러냐고? 그냥. 나도 너처럼 기분전환 좀 해볼려고.”
“뭐?”
성규는 우현을 밀치고 일어섰다.
“생각보다 별로네.”
“도대체 무슨말을”
“어쨌든 이걸로 어제일은 계산 끝난거다.”
어제일이라는 성규의 말에 그제서야 감이 잡힌 우현은 상황이 좋지않게 흘러간다는걸 느꼈다. 성규를 잡으려 방에서 나가니 벌써 현관문을 열고 있었다. 우현은 현관문 손잡이와 함께 열고 있는 성규의 손까지 한꺼번에 잡아 문을 닫았다.
“놔.”
“나좀 봐봐.”
“손 놔.”
짧은 대화였지만 성규의 목소리가 떨리는걸 알아차렸다. 우현은 나머지 팔로 성규를 품에 안았다. 성규의 흐느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런거 하지마... 니가 자꾸 이러니까 괜히 기대하게 되잖아...”
“할거야.”
“나 안지도 말고, 내 머리 만지지도 말고, 나보고 웃지도 마.”
“김성규.”
“내 이름도 부르지마.”
“성규야.”
“부르지 말라니!”
“사랑해.”
성규가 화를 내며 우현의 팔을 풀고 돌아서서 마주하는 순간, 우현은 '사랑해'라는 한마디와 함께 성규를 꽉 안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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