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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어났어, 이름아? " 

 " ... 지민아." 

 

 이른 아침부터 화들짝 놀라고야 말았다. 평소라면 눈도 뜨지 못했을 시간이었지만, 몸에 익은 익숙함이 먼저 반응한 탓이었다. 잔뜩 잠긴 목으로 지민의 이름을 불렀다. 얼마만이야. 꾸물거리며 품을 파고 들어 껴안자 단단한 팔이 등을 감싸 안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안정감에 까무룩 다시 잠이 들 뻔 했다. 지민을 못 본지도 꼬박 일주일이었다. 결혼한지 일년이 갓 넘어간 신혼부부였지만, 함께 한 시간은 그 반도 되지 않을 터였다. 그렇기에 더 애틋한 감정이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 이번엔 어디로 다녀왔어?" 

 " 음, 조선 초중기쯤 되는 것 같던데? 내가 내관중에 한 명이 된 것 같았어. 난 당연히 명단에 없으니까 잔머리 굴려가며 상관 눈총 피하느라 죽는 줄 알았다, 진짜."  

 " 나랏일은 잘 돌보셨구요?" 

 " 당연하지, 넌 날 뭘로 보구." 

 

 누가 보기엔 뜬구름 잡는 대화일테다. 일주일간의 외출을 가지고 조선시대니, 내관이니 종알대니 현실성이 부족하다 느낄지도 모르겠다. 뭐 선택은 그네들 몫이지만, 

 

 " 여보, 나 아침 해줘. 집밥 먹고 싶어." 

 " 나 피곤한데." 

 " 언제 또 빨려들어갈지 모른단 말야." 

 

 따뜻한 솜이불에서 나와 주방쪽으로 발을 옮겼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텅텅 빈 선반들만이 눈에 들어온다. 남편 없는 집에 새댁이 요리 할 맛이 나겠냐구. 대충 라면으로 때우던 일주일간의 기억을 반추하며 남은 달걀 갯수를 세아렸다. 

 

 " 지민아, 계란후라이는 안 돼?" 

 " ……." 

 

 불길한 기시감이 온 몸을 훑고 지나갔다. 유난히 서늘하게 느껴지는 대리석바닥을 사뿐사뿐 밟으며 침실을 빼꼼히 들여다 보았다. 새하얀 솜이불은 지민이 덮었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온기조차 그대로인 침대를 허망하게 내려다 보았다.  

 

 " 여보?" 

 

 믿건 말건, 선택은 그네들의 몫이지만,  

 

 내 남편은 시간여행자다. ​ 

 

 

 

 

  

[방탄소년단/지민] 두번째 단추 | 인스티즈

 

 

 

 

 

 

 

 

 " 이놈의 머스마, 또 학교 지각할라꼬 그라제, 퍼뜩 일어나 밥 무라." 

​ " ...엄마?" 

 " 맞다, 느그 엄마. 첨 보나? 갑자기 와 이라노. 얼른 밥 무라니깐." 

 

 지민은 어질거리는 관자놀이를 받쳐들었다. 시간에 빨려들어간 후엔 늘상 느껴지는 편두통이었다. 시공간이 통째로 뒤바뀌니 이정도의 저항반응이면 양호한 편이었다. 어렸을 때 처음 시간여행을 하고 난 날엔 몇 시간을 기절한채로 있었는데 가벼운 편두통이라니 감사할 따름이지.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이렇게 적응을 해나가는구나. 이렇게나 비현실적이고 공상적인 타임워프에 적응하다니. 

 

 그러면서도 이번 타임워프가 낯선 이유는 지민 본인이 살아왔던 생의 과거는 처음 와보기 때문이었다. 수도없는 타임 워프 속, 시대, 국경을 초월하며 수백번 낯선 환경속에 닥쳐봤지만 이런 경우는 생전 처음이었다. 게다가 여태까지 힘겹게 세워왔던 가설과도 완전 딴판이다. 지민의 가설에 의하면 본인의 생은 접근 자체가 불가했다. 지민은 어디에서나 이방인이었고 있으나 없으나 하는 존재였다. 어느때건 사라질 수 있어야 하고 사람들의 기억에 잊혀져야 하는 존재였다. 그런데 이런식으로 자신의 삶에 개입해버리면 자신이 한 선택에 의해서 미래가 뒤틀릴 수도 있었다. 제가 원래의 시간으로 가도 이 시간을 살던 지민이 다시 살아갈거고, 한수라도 까딱 잘못뒀다간 제가 돌아가야 할 미래가 송두리째 사라질 수도 있는 거니깐.  

 

 " 히야, 여덟시 다 됐다꼬!!" 

​  

 일단 그런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지민은 고교시절 유난히 큰 몽둥이를 자랑하던 학주를 떠올리며 냅다 뛰었다.  

 

 

 

 

- 

 

 

 

 

 " 결국엔 세이프네? 운도 좋다." 

​ " 어.... 어!" 

 

 지민은 교복 앞섶을 쥐고 팔락이다 가까이로 다가오는 이름에 조심스레 손을 내렸다. 뒷머리를 긁적이자 이름이 또 보채기 시작한다.  

 

 " 빡찌. 나 오늘도 아침 못 먹고 나왔어. 나랑 매점 가자." 

 " ...어? 그, 그래." 

 " 뭐야, 갑자기 반응이 왜 이렇게 순순해, 재미없게. 원래 너 나 혼자 가라고 츤츤거리잖아." 

 " 내가... 용돈 받았거든!" 

 " 뭐래, 너 용돈 15일날 받는거 다 알아." 

 

 혀를 쏙 내미는 이름이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터져버렸다. 물론 집에서 절 기다려주는 아내가 된 이름도 여전히 아름답지만 고등학생인 이름이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그저 깨끗하고 맑기만 한, 청춘만이 가질 수 있는 말간 얼굴. 붉어지는 얼굴을 감추려 홱 뒤를 트는 이름이의 모습이 귀엽게만 느껴졌다. 스물 아홉의 이름이는 어느정도 사람과 타협하는 법도 체득해서 누구에게나 서글서글 했었는데 열 일곱의 그녀는 뻣뻣한 면이 있었다. 맘에도 없는 소리로 틱틱 거리고, 낯 가린다고 솔직히 인정하면 이해해 줄걸, 남들에게 가시치고. 그러느라 입방아에 많이 오르내렸던 그녀였지만, 지민은 그녀의 속을 빤히 알고 있었기에 입에 쓴 말을 하지 못했다. 물러터지고 맘 약한, 그녈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지민과 이름이의 교실은 3층이었다. 매점을 향해 내려가는 계단이며 통로 내내 이름이는 쉴새없이 말을 붙였다. 지민은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며 넘어갔다. 십년이 지났으니 어지간히 퇴색됐을 기억들인데 그녀의 목소리를 입고 흘러나오면 어느새 형형하게 빛나며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한창 그녀한테 면박을 줬다던 음악선생 얘기가 끝났을 무렵에 매점에 도착했다. 매점엔 사람이 와글와글 해서 대개 지민이 그녀를 대신해 인파를 뚫고 사오곤 했다. 지민의 몇안되는 학창시절의 기억이었다.  

 

 " 너. 대답 해주기로 한 거 얼마 안 남은 거 알지?" 

 " ... 뭐 먹을거야." 

 

 얼굴을 붉게 달이며 재차 질문하는 그녀의 의중을 알 수 없었다. 동문서답으로 대꾸하자, 그게 지민의 평소 태도였는지 다행히 그녀는 별 말 없이 '초코우유' 하고 대답했다. 지민은 인파를 가르며 머릿속 폴더를 뒤적였다. 대답? 무슨 대답? 내 대답을 그녀가 기다렸던 적이 있었나. 까마득한 십이년 전의 이야기였다. 정확한 전후사정없이 단순히 대답, 이라고만 지칭한 그 일을 지민은 도통 기억해 낼 수가 없었다.  

 

 " 야, 먹어." 

​ " 나 초코에몽밖에 안 먹는데!! 왜 이거 사왔어?" 

 " 다 떨어졌더라." 

 

 머쓱하게 콧잔등을 긁적이니 군말 없이 우유곽에 빨대를 꽂아넣는 그녀였다. 까탈스러워. 지금 제가 참는 이유는 열 일곱의 그녀가 어리기 때문이다. 절대로 예쁘고 귀여워서 그런건 아니구. 생각해보니 스물 일곱의 그녀도 입맛이 좀 까다로웠다. 지민의 입엔 그게 그거 같은데 미묘한 차이를 운운하며 한가지 브랜드만 고집했다. 예를 들면 초코에몽이라던가, 트윅스라던가…, 

 

 " 빡찌! 내 말 들었어?" 

 " … 어? 아니, 뭐라고 했지?" 

 " 할 말 있으니까 오늘 하교 후에 좀 남아 있으라구." 

 

 공상속에 빠져 있던 지민을 건져낸건 그녀의 산뜻한 음성이었다. 무언가 선전포고라도 할 듯 굳게 다문 일자 입술마저 귀여웠다. 드물게 볼 수 있는 그녀의 진지한 표정에 되려 웃음이 새어 나왔다. 기억을 되짚어보니 고 1때 그녀는 제 옆반 이었다. 길게 뻗은 하얀 팔을 높게 흔들며 제 반으로 향하는 이름이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핏 되는 셔츠와 팔락이던 감색 스커트 자락. 사진이라도 찍듯, 머릿속의 필름에 꼭꼭 저장해둔 후에야 고개를 틀었다. 스물 아홉의 그녀에게 교복을 입어달라 부탁하면 뺨이라도 맞을까. 최소한 미친 놈 소린 듣겠지?  

 

 

 

- 

 

 

 

 

 이게 뭐람. 일요일 아침을 허망하게 날려버리고야 말았다. 박지민 새끼. 올거면 아주 오던가. 최소한 며칠은 있어야지, 삼십분은 됐을라나? 그 짧은 시간동안 날 온통 헝클이고 떠났구나. 아침부터 느적하게 영화나 보려고 했는데. 하릴없이 주방을 거닐다 아일랜드 식탁의 스툴을 잡아 끌어 앉았다.  

 

" 이번엔 내관으로 가서 안심했는데. 또 과거로 가서 여자 만나고 다니는 거 아냐?" 

 

 내가 하다하다 시공의 여편네들한테까지 질투를 해야 쓰겠냐고오오. 관자놀이를 받친 채 일정한 속도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정갈한 손톱이 테이블과 부딪혀 연신 소리를 만들어내고 방아를 찧었다. 불안해 죽겠네. 무의식적으로 입가로 가져갔던 손을 내려놓았다. 지민이가 손톱 물어뜯지 말라고 그랬었는데.  

 

 이렇게 몸뚱이를 놀릴 바에야 차라리 청소라도 하는 게 낫겠단 생각이 문득 스쳤다. 몸을 벌떡 일으켜 드레스룸으로 향했다. 옷장 정리 하고, 빨래 하고, 청소 하고, 밀린 설거지도 해야지. 생각이 많을땐 몸을 움직이는게 가장 현명한 처사랬다. 아 이것도 박지민이 한 말인데.  

 

" 헐. 이거 아직도 있네?" 

 

 둘의 교복을 손에 쥐고 감탄을 지었다. 둘의 첫 교집합이었다. 고교 동문. 그 땐 칙칙하다고 한참을 투덜거렸는데 막상 입어보니 괜찮아서 나름 만족했던 교복이었다. 게다가 생의 마지막 교복이란 점이 더 아쉬움을 자아냈더랬다.  

 

 나란히 둘째 단추가 떨어진 셔츠 두장은 겨울 옷들과 함께 침대에 쌓여갔다.  

 

 

 

 

- 

 

 

 

 

 지민은 그 날 하루종일 수업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일단 첫째 십여년이 흐른 지금, 당시의 수업 내용이 기억 날리가 없고, 둘째 설사 기억난다 해도 저는 당시에도 공부를 열렬히 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오히려 열심히 한다면 되려 의심을 사게 될 터였다. 역시 현명해. 중식은 아까 이름과 함께 먹었고, 나른해질 5교시엔 책상에 얼굴을 묻고 그냥 잤다. 지금은 잠도 통 오질 않고 심심해 멍하니 창 밖만 바라보았다.  

 

 지민의 학교는 공학 분반이었다. 체육복도 남녀 다르게 나왔는데 여자는 하얀색과 버건디색의 조화였고 남자는 하얀색과 네이비색이 섞여 있었다. 낯익은 인영을 확인하고 눈을 가늘게 떴다. 이름이다!  

 

 남색 체육복을 보니 남자 체육복인데, 등짝에 흐릿하게 보이는 글자는 그녀가 줄기차게 불러대는 '빡찌' 였다. 저거 저거, 또 내 옷 훔쳐 입고 갔구만. 지금이야 서로의 옷을 터치할 일이 없으니, (가끔 지민의 와이셔츠를 입고 예쁜 짓을 하기도 하지만) 그럴 일이 없지만 고등학생때만 하더라도 그녀는 늘상 제 체육복을 입고 갔다. 빨았다, 뭐가 묻었다, 안 가지고 왔다. 갖은 핑계를 대며 다 빌려갔는데 뒤늦게 밝히길 지민의 옷 냄새가 좋았다고 했더랬다. 연애 도중에 밝혔던 사항이라 화를 내기도 뻘했고, 뭣보다 얼굴이 붉어져서 고백하는 그녀가 귀여웠길래 넘어갔었는데. 마침 지금도 그러고 있단 말이지.  

 

 지금 생각하면 영 나쁘지만은 않았던게, 저도 그녀의 차림에 꽤나 만족 했었다. 지민에게 키가 작다, 작다 놀려도 여자치고도 작은 그녀보다야 훌쩍 컸고, 몸집 역시 비례했다. 그녀는 보기보다 덩치가 있는 지민에겐 꼭 한품에 안길 사이즈였다. 그런 그녀가 허구헌날 지민의 체육복을 빌려갔으니 차림은 말안해도 뻔했다. 바지도 한번 접고, 팔도 한번 접고. 그럼에도 벙벙한 어깨핏은 커버할 수가 없어서 자동으로 가오리 핏으로 완성됐다. 그런 차림으로 팔락이며 손을 흔들면 이제 제대로 폭격을 당하는거다. 귀여운데 귀엽다 말도 못하고 속에만 담아두고 넘어갔었지. 지민은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며 피식거렸다. 하여간.  

 

 " 16번! 다음 페이지 읽어봐라."  

 

 지민은 허둥지둥하며 일어나 교과서를 펴들었다.  

 

 " 아, 일어나진 말고." 

 

 젠장. 

 

 

 

 

[방탄소년단/지민] 두번째 단추 | 인스티즈

 

 

 

 

 

 

 

 

  ​   

​ " 오늘 단축 수업이었어?" 

 " 맨날 지각 하니까 조회, 종례를 못 듣지." 

 

 쯧쯧, 하며 혀를 차는 그녀의 목소리가 묘하게 상기되어 있었다. 지민은 한나절 고민했던 답을 여직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제가 해야할 '대답' 말이다. 이걸 어떤식으로 물어야 된담. 직접적으로 말하지도 않는거 보면 엄청 중요한 일이라 일부러 돌려 말하는 것 같잖아. 지민은 지민 나름대로 고뇌중이었다. 초가을이라고 하기엔 아직 열기가 후끈후끈 했다. 가방끈 부근이 축축해지는 걸 느끼며 지민은 걸음을 뗐다.  

 

 늦여름의 노을을 바라보며 하교하는 일은 생각보다 운치있는 일이었다. 지민과 이름이의 집 방향은 학생들도 거의 없고 사람도 많이 돌아다니지 않아 거리는 금세 고요와 노을빛으로 물들었다. 지민은 아침에 타고 왔던 자전거를 손잡이만 잡고 걸어가며 끌었다. 걸음이 느린 #이름에게 맞추기 위해서였다.  

 

 " 그러니까아, 내가 일주일 전에 물어봤잖아.." 

 " … 응." 

 " 그래서 네가 대답해주기로 한 날이 오늘이잖아." 

 " 그렇지.." 

 

 그림자도, 말꼬리도 한껏 늘어졌다. 망설이는 공백속에 얼만큼의 떨림이 담겨 있는지, 그녀의 목소리가 살짝살짝 갈라지고 떨렸다. 순간 지민의 뇌리에 스친 기억조각이 있었다. 애써 붙잡으며 생각을 이어나갔다.  

 

 " 그래서어.. 대답을! 들으려구." 

 

 비장하게 말하며 홱 뒤를 돈 그녀는 양쪽 눈을 꼭 감은 채였다. 지민은 겨우 기억해냈다. 그러니까 12년 하고도 일주일 전 꼭 이렇게 하교하며 그녀는 지나가는 말로 물었었다. ' 너, 나랑 사귈래?' 지민은 난데없이 뒷통수를 맞은 사람처럼 가만히 서있었다. 순식간에 만감이 교차했다. 당시에도 타임 워프를 하고 있었던 지민은 이기심과 그녀의 미래를 두고 저울질 하느라 미처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 사이 그녀는 복잡한 얼굴로 울먹였고, 갑작스럽다고, 일주일만 시간을 달라고 했던 건 저였다. 낱낱이 기억되는, 편린처럼 쏟아지는 기억에 지민 역시 눈을 꼭 감았다. 굳이 따지자면 그녀는 일주일이 아닌 십이년을 기다렸을 테다. 전혀 사고구조에 발전이 없는 제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 이름아." 

 

 지민은 다정하게 그녀의 이름을 먼저 불렀다. 이름이는 눈꺼풀을 파르르 떨다가 이내 고운 눈망울을 비췄다.  

 

 " 나는 널 외롭게 혼자 둘지도 몰라. 아니, 그럴거야. 사귀어도, 그리고 혹여나 결혼하고 나서도 일년의 반 넘게 널 못볼 수도 있어." 

 " … 마음이 변할거란 말이야?" 

 " 아니. 전혀 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가 널 엄청 좋아해도, 네 곁에 머물고 싶어도, 난 불가항력을 이기지 못하고 널 혼자 둘거야. 그래도 괜찮겠어?" 

 

 미적지근하고 텁텁한 바람이 불었다. 이름이의 긴 생머리가 흩날렸다.  

 

 " 좋아해. 그래서 더 미안해." 

 

 고백했다. 그리고 사과했다. 12년 전의 너에게. 혼자 둬서, 외롭게 해서, 미안하다고. 내 이기적인 선택에 속만 끓일 널 알고 있어. 아마 열일곱의 넌 이해하지 못했을테지만. 

  

 " 난 시간을 넘나들 수 있어." 

 " … 근데?" 

 " 그런데 내가 좋아? 난 널 줄곧 혼자 둘거야. 그래도 내가 좋아?"   

 

 바람이 한차례 더 불었다. 줄곧 지민의 어깨죽지만 노려보는 이름이었다. 분명 생각이 많을테지. 그녀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어쩌면 지민의 미래는 모두 뒤틀릴 수 있었다. 이 한번의 고백이, 잠깐의 선택이 지민을 살게 할테고, 혹은 죽게 할테다. 그럼에도 지민은 기회를 주기로 결정했다. 줘야만 했다. 잠든 그녀의 곁에 앉아 수도없이 머릿결을 쓰다듬던 저를 기억한다. 시공간의 불가항력에 이끌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날이 태반이었다. 무능력하고 그보다 더 이기적이었다. 함께 하고 싶단 열망이 저를 이렇게 이기적으로 만들었다. 저는 이럴 운명이었다손 치더라도, 그녀는 충분히 항로를 변경할 수 있었다. 천날만날 외롭고 백일몽을 꾼 듯 허망해 하지 않아도 될 운명이었다. 자전거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이내 그녀는 자신의 셔츠께로 손을 가져갔다. 그에 지민은 흠칫 놀라 눈알만 굴렸다.  

 

 " 니가 어디에 있든, 어느 시간을 살든, 내가 좋아하는 박지민이란건 변하지 않아."  

 

 지민의 손에 쥐어진 것은 이름이의 두번째 교복 단추였다.  

 

 " 심장에서 가장 가까운 단추야."  

 

​ 좋아해.  

 

 달보드레하게 입안에서부터 주변의 공기까지 울려퍼지는 음파였다. 그녀는 생그럽게 웃었다. 스치는 바람마저도 달콤했다.  

 

 지민과 이름이의 두번째 교복 단추는 달려있지 않았다.  

 

 

 

 

- 

 

 

​안녕하세요, 스칼렛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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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사진
비회원3.138
헐 좋아요ㅠㅠㅠㅠㅠ!!!!!
10년 전
대표 사진
독자1
와...아련해요ㅜㅜㅠ두번째단추라는 것도 너무 이쁘고 진짜 소년소년하고 소녀소녀하니 간질거리고 좋다 브금이랑 내용 너무잘어울리고 뭔가 약간 슬프기도하고 으으...재밌어요할튼ㅠ.ㅡㅜ.·
10년 전
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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