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열과 거의 반강제적으로 아는 사이가 된 것은 꽤 오래되었다. 그러니까 2년 전, 백현이 중학교 3학년일 때였다. 연합고사가 끝나는 날 백현은 친구들과 함께 노래방에 갔다. 신나게 노래를 부르던 백현이 화장실에 가기위해 문을 열고 나갔고, 한참이나 화장실을 찾아 헤매더니 결국에는 화장실을 찾아 들어갔다. 시원하게 일을 마친 백현이 손까지 깨끗하게 씻고 다시 친구들이 있는 룸의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곧 백현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자신을 포함한 자신의 친구들은 담배를 피지 않는데, 이상하게 방 안은 담배 냄새와 연기로 가득 차있었다. 흠칫 놀란 백현이 안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는 더 깜짝 놀랐다. 혼자서 앉은 키가 우뚝 솟은 저 놈은……. 소문의 박찬열이 분명했다. 후배인 것을 알면서도 존댓말을 한 것은 쪽팔렸지만, 우선 자신의 안전이 더 중요했던 백현은 무작정 큰 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방을 잘못들어왔어요!"
그리고 백현은 곧바로 뒤를 돌아 나오려고 했지만, 자신을 부르는 낮은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야."
"…네?"
백현이 대답하자 찬열이 무어라고 말했지만 노랫소리에 묻혀 찬열의 말을 듣지 못한 백현이 알아듣지 못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찬열이 옆에 있는 친구에게 아, 노래 좀 꺼봐! 하고 소리쳤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방 안에 오로지 찬열의 목소리만 가득 울려퍼졌다.
"이리와봐."
백현이 쭈뼛거리며 그 자리에 서서 찬열을 바라보자 찬열이 손가락을 까딱까딱 했다. 백현이 느릿한 걸음으로 다가가자 찬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현은 자신보다 한참 큰 찬열에 더 위축되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몸을 움츠렸다. 백현의 얼굴을 보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이름이 뭐야?"
"…변백현."
"그래, 백현이."
"……."
"백현아 핸드폰 좀 줘봐."
"……."
"얼른."
백현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주자 순식간에 낚아챈 찬열이 키패드를 재빠르게 누르더니 자신의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이 울리는 것을 확인하고 핸드폰을 다시 백현에게 돌려주었다.
"교복 보니까 우리학교는 아닌 것 같고……."
"……."
"몇 학년?"
"…3학년."
"어, 나보다 형이네."
순식간에 몇 배는 더 창피해진 백현이 나 그럼 이만 가볼게…! 하며 뒤돌아 나가자 찬열이 백현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연락할게."
"……."
"씹으면 쫓아가요."
[형 나 박찬열인데 알아요? 그 노래방]
[아..웅!]
[고등학교 어디로 가요?]
백현은 고등학교 이름을 말하자 인문계에 가냐며 놀라던 찬열에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의외네요, 형 하며 백현을 약올리듯 답장하는 찬열에 백현은 계속해서 답장했고, 찬열은 그런 백현을 이용하듯 자꾸만 놀리는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백현이 무서움과 약오름이 섞여 문자를 주고받는 것도 잠시, 찬열이 곧 만만해진 백현은 문자를 씹는 것이 일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참다못한 찬열이 백현의 학교에 찾아오기도 했었다.
"변백현."
"……?"
뒷문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본 백현은 곧 요상한 표정을 지으며 놀랐다. 문 윗 모서리에 머리가 닿을것만 같은 찬열이 백현을 노려보며 서있었다. 나오라는 찬열의 말에도 백현이 그 자리에 그저 서있기만 하자 교실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온 찬열이 백현을 끌고 나갔다. 그 광경을 본 학생들은 저마다 수군수군 거리기 시작했다. 변백현이 박찬열한테 찍혔더랬다, 지금도 실컷 맞으러 가는거란다, 삥도 엄청 뜯긴단다…….
"너 왜 문자 씹어."
"너? 넌 왜 반말이야."
"지금 내가 꼬박꼬박 존댓말 하게 생겼냐?"
"…나 갈거야."
"아, 야!"
자신에게 손목을 붙잡혀 뒤돌려진 채 자신을 노려보는 백현을 보며 찬열이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답장 안해요."
"……."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야…,"
"나는 뭐 먼저하는게 자존심 안상하는 줄 알아요?"
백현은 찬열이 지금 자신에게 하는 말이 마치 썸씽(?)이 있는 여자에게 하는 말 같다고 느꼈지만, 원래 특이한 놈이니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다. 앞으로 꼬박꼬박 답장을 잘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서야 돌아간 찬열의 뒷모습에 가운데 손가락을 펼쳐보인 것은 아직까지도 비밀이다. 그리고 백현은 그 날 이후로 자신을 슬금슬금 피하기 시작하는 친구들을 보며 약간의 서운함을 느꼈지만 곧 고등학교에 가면 안볼 놈들이 더 많으니까! 하며 자신을 다독이며 별 신경 쓰지 않았다.
***
그리고 몇달 후 고등학교에 들어온 백현은 전처럼 자신을 기피하지 않는 친구들에 본래의 성격대로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다. 활발한 성격 탓에 자신에게 버금가는 활발함을 지닌 친구들을 몇몇 사귀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경수였다. 그렇게 고등학교 1년이라는 시간을 까불기 바빠하며 지나보낸 후 2학년이 된 첫 날, 바로 오늘.
박찬열이 자신의 학교 신입생 대표로 선서하는 것을 본 백현은 설마 아니겠지, 했지만 조회대를 내려오며 눈이 마주친 찬열이 씨익 웃는 모습을 본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로 향했다. 하지만 곧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움찔한 백현은 그 자리에 서버리고 말았다.
"선―배."
이 목소리는…….
"선배, 왜 나 모른척해요. 서운하게."
"……."
"선배 때문에 공부해서 이 학교 온건데."
비상사태!
박찬열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