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와요 부산항에
카디찬백
프롤로그
W. 비비안
무거운 머리를 기댄 창 밖으로 시끌벅적한 소음이 들려왔다. 아마도 무언가 실수를 한 것인지 미안하다며 연신 허리를 굽혀대는 아저씨를 향해
할아버지의 꾸지람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오랜 운전으로 지친 듯 보이는 아빠는 집안으로 이삿짐을 옮기면서도 뒤돌아 한 번 인상을 찡그러트렸다.
할아버지 옆에선 엄마가 안절부절 못하며 연신 허리를 굽혀대는 아저씨와 마주선 채 아저씨가 허리를 굽힐 때마다 같이 허리를 굽혀대며 괜찮다고,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다.
죄송해요, 아버님이 노망끼가 있으셔서...
"...집에 가고 싶어."
그런 광경이 지긋지긋한 듯 종인은 이내 고개를 휙 반대편으로 돌려버렸다. 종인의 손 안엔 오랜 시간 쥐고 있어서인지 꾸깃꾸깃해진 편지 한 장이 있었다.
갑작스러운 이사로 인해 어이없게 헤어지게 된 여자친구 혜진의 편지였다.
헤어지던 날 꼭 손에 쥐어주며 절대로 잊어버리지 말라고. 부산으로 이사가도 꼭 자주자주 통화하자고 버디버디로 꼭 연락하자고 억지로 눈물을 꾹 참은 채로 말했던 혜진.
하지만 이제 종인한테는 따로 연락할 최신형 칼라 핸드폰도, 버디버디며 스타 크래프트 1같은 최신형 게임이 깔려있는 컴퓨터도 없었다.
하루 아침에 무슨 일이 벌어진건지 어린 종인은 잘 몰랐다. 그저 밤에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몰래 들은 얘기로는 돌아오는 어음을 막지 못했다고 했다.
파산 신청을 해야한다는 엄마와 조금 더,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는 아빠의 고함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어찌되었든 확실한 건 하루 아침에 집안의 모든 가구에 빨간 딱지가 붙었다는 것과 멀쩡하시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신 후 이상해졌다는 것 뿐이었다.
나름대로 화목하고 단란했던 집안에서 어느 때부터인가 조금씩 큰 소리가 나고 밤늦게 술에 취해 들어오는 아버지 손에 어느 것도 들려있지 않던 날이 많아지던 몇 달전부터, 그렇게도 가지 않던 시간은 화살처럼 날라가 결국 몇 달만에 종인은 원래 살던 서울의 집에서 나와
반짝반짝 광이 나고 항상 새 시트 냄새가 나던 차가 아닌 문짝에 녹이 슨 퀘퀘한 냄새가 나는 파란 트럭에 실려서 이 곳, 한 번도 와 본 적 없었던 부산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좀처럼 생선은 입에도 대지 않고 비린내만 맡아도 토기가 올라오는 종인에게 밤낮으로 짠 바닷바람이 몰아치는 부산은 정말이지 최악이였다.
더욱이 다닥다닥 녹이 슨 철문들이 붙어서 어느 골목과 어느 골목이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어디에 개똥이 떨어져 있는 지 몰라 항상 발 아래를 살피고 다녀야 하는 촌동네라면 더더욱.
정말, 정말로 집에 가고 싶다.
...
그렇게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종인은 어느덧 옆으로 다가와 창문을 쿵쾅쿵쾅 내려치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벌컥 종인이 앉아있던 옆 좌석의 문을 연 할아버지는 종인을 차 밖으로 끌어당기며 아으우으..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해댔다.
이에 누런 박스 세 개를 쌓아 올린 채 집안으로 옮기고 있던 종인의 아버지가 깜짝 놀란 채 박스들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종인을 향해 달려왔다.
"아버지 뭐 하시는거에요! 그만 좀 하세요, 종인이가 무서워 하잖아요!"
"우으...으으!!"
할아버지의 손에 팔을 붙잡힌 채 깜짝 놀라 곧 울음을 터뜨릴 듯한 종인을 품에서 떼어낸 그는 종인을 자신의 뒤로 감추면서 할아버지를 향해 소리쳤다.
뒤로 밀린 종인은 곧바로 뒤를 돌아 아까전엔 발도 들여놓기 싫다고 생각했던 집안으로 급하게 뛰어들어갔다.
"엄마! 엄마!"
자기는 절대로 제 또래 친구들과 같지 않다고, 남들보다 조금 더 똑똑한 머리와 나이답지 않은 성숙함을 지닌 종인이였지만 그래봤자 아직은 아홉살 먹은 어린애였다.
잔뜩 겁에 질린 채 급하게 엄마를 찾은 종인은 곧 엄마 품에 안겨서 울음을 터뜨렸다.
학교에 갔다오면 항상 가정부 아줌마보다도 먼저 저를 반겨주는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보통 3층의 서재에 계시는 일이 많았지만
그래도 밖에서 노는 것보단 집에 있는 걸 더 좋아하는 종인을 위해 꼭 틈틈히 1층으로 내려와 같이 놀아주기도 하고 맛있는 걸 챙겨주시곤 했다.
그랬던 할아버지가 집안의 모든 가구에 빨간 딱지들이 붙은 날 쓰러지시고 나선 마치 저를 처음 보는 마냥,
아무런 의미있는 말도 내뱉지 않고 그르렁 거리는 모습이 낯설고 무서울 뿐이었다.
정말로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어. 한번 터뜨린 울음이 기폭제가 되었는지 한참을 지나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종인의 어머니는 종인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게 한숨을 쉬며 그런 종인의 등을 가만히 토닥거릴 뿐이었다.
하루 아침에 달라진 할아버지, 하루 아침에 헤어지게 된 여자친구, 하루 아침에 바뀐 집,
하루 아침에 모두 잃어버린 친구들, 보고 싶은 학교….
끅끅 거리는 소리와 함께 들썩이는 종인의 조그만 등을 토닥이던 그녀의 입 밖으로 조금씩 작은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종인이 어렸을 때부터 그녀가 자주 불러주곤 했던 노래였다.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메기 같이 앉아서 놀던 곳
물레방아소리 들린다
메기야 내 희미한 옛 생각
동산수풀은 없어지고
장미화만 피어 만발하였다
물레방아 소리 그쳤다
메기 내사랑하는 메기야….
...
노랫소리가 그쳐감에 따라 그칠 것 같지 않던 종인의 흐느낌도 조금씩 잦아들었다. 여전히 자신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조용한 종인의 얼굴을 살짝 들어올린 그녀는 일부러 밝게 웃으며 물었다.
"우리 종인이, 놀이터 가볼래? 거기 종인이 새 친구들이 많을거야."
"…이런 후진데 놀이터도 있어?"
"그럼, 여기가 전에 살던 곳 만큼 좋지는 않지만 우리 종인이한테 필요한 건 모두 다 있어!"
잠깐 생각에 잠긴 듯 하던 종인은 이내 고개를 끄덕거리곤 그녀의 품안에서 빠져나왔다. 눈가에 맺힌 눈물을 슬쩍 팔로 닦아낸 종인은 좁은 마당을 가로 질러 뛰어가며 다녀오겠다고 소리쳤다.
그녀의 시선은 이내 닫힌 문을 통해 사라진 종인의 뒷모습을 향해 있었다.
어린 종인, 충격으로 정신이 이상해진 시아버지, 젊었을 적 자신이 반했던 용기와 열정의 모습은 모두 사라진 남편,
아직 남은 빚더미를 갚아나가야 할 수 많은 날들….
부디 자신의 아들이 아버지의 모습을 따르지 않길. 제발 평범한 삶을 살아가길. 모질고 독한 세상에 어떤 상처도 받지 않고 세상의 맞은 편엔 되도록이면 서지 않길.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이미 한 번 그녀를 등진 신께 기도했다.
...
종인은 작은 발을 투닥거리며 좁은 골목을 뛰어내려왔다. 차를 타고 오면서 이 골목 아래에서 놀이터 같은 것을 본 것도 같았다.
종인은 자신의 기억을 더듬으며 주변을 살폈다.이 골목 아래에 지붕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작은 슈퍼를 지나...
오른 쪽 이었나? 왼쪽이었나?
종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두리번 거렸다. 그 때 슈퍼를 끼고 왼쪽 언덕길에서 작은 노랫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운 종인은 슬며시 그 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날에 금잔디…서 놀던 ㄱ…."
경사가 완만한 언덕길의 왼쪽으론 온갖 무성한 풀과 군데군데 뒤섞인 코스모스 꽃이 피어있었다. 그리고 언덕길의 위쪽에는 녹이 슨 건지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낡은 미끄럼틀이 있었다. 그러고보니 그보다 더 위쪽엔 그네도 있는 것 같다.
그럼 저 쪽이 놀이터 인건가?
종인은 붉어진 하늘을 마주하며 서서히 언덕길을 올랐다. 해가 지려는건지 붉어진 하늘을 쳐다보며 언덕길을 걷자 마치 하늘을 향해 걸어가는 것 같았다.
코 끝에선 옅은 코스모스 향과 저 멀리 밥 짓는 냄새가 났다. 차갑지도 덥지도 않은 적당한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기분 좋게 종인의 머리를 헤집고 지나갔다.
언덕길을 오를수록 처음엔 잘못 들은 것 같았던 노랫소리가 점점 또렷히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다지 크지 않은 목소리 였지만 또박또박 가사 소리가 들렸다. 고운 목소리였다.
낭랑하지만 경박스럽지 않고 깨끗한 목소리. 종인은 저가 마주보고 있는 하늘처럼 붉어진 제 볼을 모르는 듯 했다.
"메기 내 사랑하는 메기야…."
마침내 언덕길을 올라 놀이터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그 곳에 닿았을때, 종인은 보았다.
짧은 단발머리에 흰 피부, 데르르르 굴러갈 듯 커다란 두 눈, 오똑한 콧날과 동그랗게 모은 빠알간 두 입술, 맑고 깨끗한 노랫소리.
그리고 종인은 그 순간 혜진 따위는 머릿속에서 깨끗이 날아가는 걸 느꼈다.
* * *
"야, 도경수! 빨리 안 나오냐!"
종인은 경수의 집 앞에 선 채로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얼핏 확인한 손목시계는 벌써 7시 25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여기서 아무리 뛰어가도 그 마의 언덕길을 올라가는데 족히 5분은 걸린다. 교문은 간신히 통과한다고 해도 교실까지는 무리다.
종인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가 저는 매일 새벽 6시에 꼬박꼬박 일어나는데도 어떻게 된 게 매번 지각이다. 이게 다 도경수 때문이지.
종인은 짜증이 솟구쳐 오르는 걸 느끼며 그냥 경수를 두고 갈것인가 말것인가를 두고 고민했다.
그 때 종인의 앞에 있던 대문이 벌컥 열리고, 경수네 아주머니가 가방도 제대로 매지 못하고 신발도 채 신지 못한 경수의 등을 밀어 재꼈다.
경수는 입에 문 식빵을 떨어뜨릴 뻔 한것을 간신히 낚아채며 뒤를 홱 째려봤다.
"아, 진짜 내가 엄마때매 몬산다! 내가 6시까지 깨우라 했나 안했나!"
"이 문디자슥이 어따대고 지랄이고 지랄이! 내가 니 6시 반에 깨웠나 안깨웠나! 깨워도 깨워도 디비자는 걸 내가 우짜노!"
"아 됐다, 됐다!"
경수는 씻지도 못한 건지 까치집이 다 된 머리를 헤집으며 짜증을 냈다. 종인은 그 사이에 어정쩡하게 끼어있다가 눈이 마주친 경수네 아주머니께 꾸벅 인사를 했다.
종인의 얼굴을 본 아주머니는 곧 엄마웃음을 지으며 종인의 두 손을 꼭 잡았다.
하이고, 니가 내 아들이면 참말로 좋을 것인디…, 매번 경수땜시 욕본데이. 종인은 멋적은 웃음을 지으며 아니라고 손사래 쳤다.
"아, 엄마! 우리 지각이다, 지각! 빨리 종인이 손 놔라!"
"아따, 맞다. 참말로. 퍼뜩 가그라!"
안 그래도 머릿속으로 지각인데, 이럴 시간 없는데…. 라고 생각하고 있던 종인의 손을 낚아챈 경수가 골목길을 가로 질러 뛰어갔다.
어차피 지각인데…,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주잡은 경수의 손이 오랜만이여서 종인은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 경수와 함께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자신때매 또 지각하게 생긴 종인에게 미안한지 경수는 계속 아씨, 난 6시에 일어날라캤는데 엄마가 안 깨웠다, 참말로. 라고 중얼거렸다.
아까 아주머니랑 하는 얘기 다 들었는데. 종인은 뻔히 보이는 경수의 변명에 피식 웃음이 났다.
골목길을 빠져나와 곧바로 이어진 골목길을 따라 뛰어 내려가자 도로 바로 건너편으로 넓은 바다가 한눈에 찼다.
습기를 머금어 피부에 닿자마자 찐득거리는 바닷바람과 약간의 짠내와 비린내가 섞인 바닷내음이 여전히 좋은 건 아니였지만, 종인은 방금까지만 해도 미안한지 잔뜩 인상을 쓰고 있었으면서 바다를 보자마자 인상이 풀어지는 경수를 보며 그래도 경수와 같이 있어서 이 바다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
안녕하세영ㅋㅋㅋ처음 글잡에서 글을 쓰는 비비안이라고 합니다ㅋㅋ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달달한 카디랑 항상 써보고 싶었던 사투리쓰는 엑소를 위해서 쓴 글입니당ㅋㅋ
근데 제가 대전토박이사람이라ㅋㅋㅋ부산 사투리..........저렇게 쓰는 거 맞져? 아닌가여? 아니라면 죄송해여...ㅠ
아무튼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달달한 카디(랑 찬백)가 될 것 같구요, 근데 또 마냥 달달하지만은 않은...좀 현실적이고 달달한..??으잉..??머라는거지??
암튼 뭐 네..그런 글이 될것 같아요ㅋㅋㅋ열심히 완결까지 달려보도록 할게여! 감사합니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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