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들이 떠나간 후의 빈자리는
생각날 때마다 가슴 한 켠이 따갑게 아려올 정도로 너무나도 컸다.
여러가지 일들로 시끌벅적하며 소란스러웠던 집안은 리바이 병장님과 나만 남긴 채 고요한 정적만이 흘렀다.
결벽증이 있는 병장님조차도 어느샌가부터 하얗게 집을 틀어놓은 거미줄이 낡은 나무 천장에 빼곡히 걸려도,
가끔 삐걱거리긴 했지만 깨끗했던 탁자에 회갈빛 먼지가 수북히 쌓여도
그저 임무를 받을때까지 묵묵히 자신의 자리만 지키고 계셨다.
선배들의 시끄러운 목소리를 싫어하셨던 병장님의 조용히해. 하는 낮은목소리가 문득 그리워졌다.
"병장님"
팔짱을 끼고 가느다란 다리를 꼰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언뜻보면 잠들어 있는것같은 병장님을 부르자
숙였던 고개를 천천히 들더니 여전히 삐딱한 표정으로 입을 여신다.
바깥의 거친 빗소리와 천둥소리가 현재의 내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것 같았다.
"왜"
"힘들어요"
어두운 분위기만이 채우는 집안에 내 목소리가 울리자
병장님은 그 어느때보다도 차가움이 서려있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셨다.
우리 둘을 가로막고있는 식탁이 병장님과 나의 관계를 현저히 실감나게 해주는것만 같았다.
싸늘한 병장님의 반응에 말없이 입꼬리를 올려 웃다가 의자 등받이에 힘을 실어 몸을 기대자 끼익 거리며 의자가 흔들렸다.
"힘들어서 병장님한테 기대고싶은데"
"‥‥‥"
"병장님은 단장님만 바라보셔서 기댈수가 없네요"
천장에 시선을 꽂고 입만 달싹이며 말했다.
병장님은 내게 아무런 대답조차 해주지 않으셨다.
지랄하지말라며 말 한 마디라도 내뱉으셨으면 좋겠는데, 장난처럼 다가와서 내게 주먹질이라도 해주셨으면 좋겠는데
나를 더 짜증나고 화나게 하는것은
내 말에 틀린것 하나 없다는듯 묵묵히 내 목소리를 귀에 담고만 계시는 병장님의 싸늘한 태도였다.
끼익‥‥.
나무 의자가 바닥에 밀려나는 소리와 함께 나는 고개를 내려 병장님을 응시했다.
내게 보이는것은 자리에서 일어나 집을 나가려는 듯 문쪽으로 향하는 병장님의 뒷모습이었다.
슬프지 않았다, 그렇다고 두렵지도 않았고 무섭지도 않았다.
너무나도 익숙한 뒷모습이었으니까
임무가 끝난 뒤 내가 뒤돌아보면 병장님은 내게 언제나 같은 뒷모습만 보이셨다.
그리고 그런 병장님의 앞에 서있는건 수고했다며 병장님 얼굴의 생채기를 어루만지는 엘빈 단장님이셨다.
난 늘 그렇게 살아왔다.
"병장님"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고리를 돌리려는 병장님의 작은 손을 등 뒤에서 꽉 잡았다.
그러자 예상대로 병장님은 너무 쉽게도 내 손을 쳐내버리고는 다시 문 손잡이에 손을 올리셨고,
나는 병장님의 손목을 잡아채고 그대로 침대맡으로 끌고 갔다.
이내 덜컹거리며 내 발에 발이 걸린 병장님이 하얀 침대시트 위로 넘어지며 신음했다.
"좋아해요."
내 두 손에 힘 없이 잡힌 인류 최강의 얇고 하얀 손목에 힘이 들어갔다.
고개를 숙여 귓가에 속삭이자 병장님은 이를 악문채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차가운 눈빛으로 날 노려보았다.
이제 막 어린티를 벗어나려는 15살 연하에게 깔린다는것은 대체 어떤 기분일까
"놔라"
"제가 더 잘할수 있어요."
"놓으라고 말했다, 엘런"
"병장님!!"
내 소리침과 동시에 따가운 소리가 방안 전체를 울렸다.
얻어 맞은 뺨이 욱신거리고 얼얼했다.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깨물었다, 여전히 병장님은 말없이 숨만 고르고 계셨다.
몇년동안 병장님만 바라봤던 결과물이 고작 뺨을 얻어맞는것이었던가?
억울한 마음에 눈가에서 눈물이 흐르고
입속으로 끅끅 거리며 소리를 내려는것을 참았다.
"명령이다, 내려와라"
"병장님은 단장님밖에 모르시죠!!!!!"
병장님의 마지막 한마디에 이성의 끈을 그만 놓치고 말았다.
눈물이 범벅되어버린 얼굴을 들고 병장님의 손목을 부러질듯이 세게 잡은 채 소리쳤다.
병장님의 표정에는 변화 하나 없었다, 오히려 더러운 쓰레기를 올려다보는듯한 눈빛이었다.
조금 따뜻한 눈물이 병장님의 뺨에 떨어져 식어버린채 흘러내렸다.
색색이는 병장님의 숨이 입술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것을 바라보다 그대로 병장님의 입술을 내 입술로 덮었다.
작은 체구지만 어른이라 그런지 힘이 꽤 강했다.
잡힌 손목을 풀어 내 가슴팍을 주먹으로 때리고 밀며 반항했다.
맞붙은 병장님의 입술을 깨물고 혀로 햝아올리며 눈을 꾹 감았다.
내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이 맞닿은 병장님의 얼굴에 하나 둘 닿는것이 느껴졌다.
병장님의 몸부림에 침대가 들썩거렸고 나는 병장님의 얼굴을 붙잡고 얼굴을 이리저리 돌리며 혀를 삽입했다.
곧이어 병장님의 반항과 몸짓이 점점 잠잠해졌다.
오히려 나는 더욱 더 슬퍼졌다.
끼익‥‥‥쿵.
문이 열리는 소리에 병장님과 나는 동시에 고개를 돌렸고, 보이는 것은
빗소리와 천둥소리를 뒤로한 채 그대로 서 있는 엘빈 단장님 이셨다.
손에는 우산을 들고 계셨지만, 왠일인지 온 몸이 모두 젖은 상태였다.
단장님의 모습에 병장님은 날 밀고 바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셨고 놀란듯한 눈빛을 한 채 단장님을 바라보셨다.
한번도 나를 향해 보인적 없는, 걱정스런 마음이 가득찬 눈빛이었다.
"엘빈‥‥."
"오늘 일이다."
단장님은 우리 둘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으시더니 품에 안고 있던 서류를 바닥에 던지시곤 그대로 다시 문을 닫고 나가셨다.
그 모습을 보던 병장님은, 침대에서 일어나 옷걸이에 걸린 채 마르지 못한 겉옷을 걸치고 문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나는, 병장님의 익숙한 뒷모습을 보며 애타게 소리내어 불렀다.
"‥‥리바이‥병장님‥‥."
병장님은
여전히
평소처럼
늘 그랬던듯이
익숙하다는듯이
문을 열고 빗속으로 뛰쳐 들어갔고
덜컹거리며 나무문이 바람에 의해 벽에 부딪히고 찬바람과 세찬 비가 집안으로 흘러들어왔다.
병장님은 시끄러운 천둥과 세차게 내리는 빗속에서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진짜 혼자라는것은, 빗소리와 천둥소리만이 창밖에서 요란히 울리고 있는 병장님이 떠나버린 집안에 혼자남은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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