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백현] 닿을 수 없는 별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5/6/3/563d0c7f3d9c0ffaf7872e01da83aad5.png)
닿을 수 없는 별
w. 라이트리스
언제 누가 그랬던가. 짝사랑조차도 행복하다고. 그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면 뭐든 행복일거라고. 지금에서야 느끼는 것이지만 그 말은 사실이 아니다. 짝사랑이 행복하기는 무슨. 조금 오그라들기는 하지만 짝사랑은 고독의 연속이다. 버림받고, 아프고, 조금 더 처절해지는 것. 적어도 나한테는 그랬다.
" 안녕, 백현아. "
" …어. "
나는 변백현을 미치도록 사랑했다. 고등학교때 느끼는 감정이 얼마나 깊겠냐만은 적어도 나한테는 그랬다. 모두에게 친절한 모습, 사랑스러운 눈매. 어느 누구나 변백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 뻔하게 사랑에 빠진 여자들 중 하나였다. 다가가고 싶다고 느낀 후, 난 바로 행동을 취했다. 너와, 가까워지고 싶어. 대놓고 드러내며 다가가는 여자들, 나는 그 사람들 중 하나였고 변백현은 그 많은 사람들 중 한명으로 나를 마주했다. 변백현은 매우 사랑스러웠으며 모든 여자에게 상냥했다. 아. 예외가 있다면 오직 나 하나 뿐이었다고나 할까. 나만 보면 표정이 굳고, 실컷 웃다가도 나와 눈이 마주치면 웃음을 잃었다. 왜? 자문해봐도 나오는 답은 없었다. 그냥. 변백현은 나를 싫어했다. 나는 한마디 관심이라도 받아보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을 대하듯 나를 보며 웃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큰 바람인가.
" 오늘 일찍왔네? "
" …… "
" 아.. 피곤하면 쉬어, 미안. "
"…어. "
말없이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는 변백현의 눈빛에 왠지 오금이 저릿했다. 주눅이 들어 쉬라는 말과 함께 고개를 돌리자 그제야 편해진듯 변백현이 은은한 미소와 함께 제 친구와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아. 역시 귀찮아하는구나. 속상했지만 딱히 티내지는 않았다. 어짜피 이래놓고 조금 뒤 좋다며 말을 걸 내가 눈에 보여서. 차라리 힘들어 하지 않고 나중을 기대하는게 낫겠지. 한숨과 함께 돌아선 내 뒷모습에는 한사람의 눈동자가 머물렀다.
***
" 뭐야, 너 왜울어. "
" ...아무것도 아니야. "
" 아무것도 아닌애가 울기는 왜 우는데, 왜. 변백현이 너한테 뭐래? "
" ..... "
" 맞구나, 뭐있지? 있었지? "
" ....진주야.. "
여느날과 같은 날이었다. 변백현에게 태연하게 인사를 건네고, 무시당하고, 상처받은 마음 치유할 곳도 없이 나는 관심을 받고 싶어. 관심을 구걸하려 변백현에게 다가갔다. 그냥 평범했다. 조금 평소와 다른것이 있다면 내가 매점에서 오는 길에 변백현에게 주려고 딸기우유 하나를 사서 슬쩍 건내주었다는 것 뿐이었다. 뭐, 지금까지 금전적으로 나름대로 조공이랍시고 바쳐댄 녀석들이 즐비하니 나정도는 그냥 지나가는 행인이 이거 드세요, 하고 넘겨주는거나 별 다름 없었다. 정말로. 나는 평범한 하루였다. 그런데 체육시간이 끝난 후. 여지까지 책상 위 그대로 남아있는 딸기우유에 괜히 혼자 조마조마 하고 있을 때. 변백현의 최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여사친 박지연이 내가 준 우유를 집어 들었을때. 그때였다. 내가 나락으로 떨어진것은.
" 이거 뭐야? 니취향? "
" 아니. 그냥. "
" 뭐가 그냥인데, 그 여자들이 준거? "
" 어, 똑같지 뭐. "
" 너랑 잘어울리네, 취향 저격. 빨대 꽂아서 빨아먹어라. 푸하하 "
" 디져. "
" 왜, 너랑 잘어울리는데. 귀엽네 우리 백현이~ "
" 아, 좀 닥치지? 이거 그냥 버릴거야. "
내가 좋아하는걸 너에게 주면 너도 좋아해줄거라는 것은 철저한 내 착각이었나. 변백현은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박지연을 향해 그냥 버릴거라며 내 선물을 쓰레기 보듯 했다.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적어도 다른 애들건 고맙다고 말이라도 해줬는데. 맛있게 먹겠다며 웃음이라도 지어줬는데. 그런데 나에게는.
" …… "
그렇다. 변백현은 나를 싫어함이 분명했다. 부인하려고 해도 너무 생생하게 귓가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부인할 수 조차 없었다. 내 옆에 앉아있던 박찬열이 나를 안쓰럽게 보며 등을 토닥였다. 왠지 동정받는 느낌이 들어 더욱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눈물도 한웅큼 떠올랐다. 드르륵. 의자끄는 소리를 내며 다급히 밖으로 뛰쳐나왔다. 달리는 두 다리가 바위라도 달린 양 무겁기만 했다. 딱히 갈곳이 없어 이리저리 돌다 근처 벤치로 향했다. 다행히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만약 누군가라도 있었으면 편히 울지 못했을거야. 서러운 감정이 폭발해 벤치에 내 몸을 앉히자 마자 울음이 터져나왔다. 한번 터지기 시작한 울음을 멈출 줄 몰랐다. 지금까지 받아온 서러운 것보다 비참함보다 오늘이 더했다. 분명 변백현은 버릴거라는 말을 할때 나를 바라봤다. 눈이 마주쳤고, 변백현은 미안한 기색도 없이 박지연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 사실이 너무 와닿아서, 피하고 있던 변백현의 감정이 온전히 느껴지는듯 해서. 그래서 나는 한참동안 그 곳에서 있었다. 세상은 안타깝게도 자꾸만 흔들렸다.
****
어느덧 졸업하는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날 이후로 난 한번도 변백현에게 먼저 다가간 적 없다. 그리고 변백현의 태도 또한 전과 같아 조금 허무했다. 어짜피 수능이 백일밖에 안남았을 때의 일이라 나는 힘든 생각을 접으려 더욱 공부에 매달렸고 나름 성적도 좋게 유지하며 마쳤다. 불같은 사랑이라 자부했던 내 마음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했다. 그냥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는 것 뿐 우리 사이에 변함은 없었지만. 변백현은 여전히 여자들의 스타였고, 나는 여전히 뒤에서 바라보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지금까지 해온 것들이 오늘로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자 조금은 씁쓸해졌다. 다시는 볼 수 없을거라는 생각에 코끝이 아린걸 보면 내가 정말 많이 좋아했기는 했나보다. 선생님들, 친구들,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들과 사진을 찍고 안부를 나누니 정말 졸업이 실감이 났다. 마지막. 입에 담자 왠지 입안이 텁텁해졌다. 이제 가자. 엄마가 내 손을 끌며 나를 재촉했다. 응. 무의식적으로 대답하다 책상 위에 올려놓은 졸업앨범이 떠올랐다. 엄마, 잠시만! 대답을 들을 새도 없이 뛰어 교실로 향했다. 마지막 추억. 후에 앨범 속에 있는 변백현을 보며 나도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는데, 하고 추억하고 싶었다. 쉬지 않고 교실로 뛰어갔다. 학교 안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교실앞에 다다르자 안에 익숙한 인영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변백현은 지금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던 사물함을 정리하고 있었다. 창문 밖에서 그 모습을 구경하며 조금은 고민스러워졌다. 태연하게 들어가서 앨범을 챙겨올까? 그냥 조금 있다가 올까? 혼자서 안절부절 제자리에서 바라보고만 있는데 어디서 많이 본 물건이 변백현 손에 들렸다.
" ...저건. "
내가 오래전 줬던 딸기우유였다. 예쁘게 쓴다고 노력했던 포스트잇 속 글씨마저 여전했다. 왜 아직까지 저게 안쪽에 있는지 모르겠다.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어느정도 변백현이 정리를 끝낸것 같아 보이자 슬쩍 문을 열고 교실로 들어섰다. 변백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그 모습이 마치 강아지 같았다. 비참하게 지나온 순간들을 기억하려 애써도 순간적으로 내게 보인 순한 웃음에 눈녹듯 가슴이 떨려왔다. 나는 억지로 태연한척 하며 내 자리로 가 앨범을 챙겼다. 내 자리가 뒷자리인 것에 감사했다. 변백현에게서는 겨울같은 냄새가 났다.
" ...잘가. "
" ...응, 너도. "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나가기 전 잘가라 인사를 건넸다. 처음으로 돌아온 따스한 대답에 어딘가 울컥해 뒤돌아볼 수 없었다. 인사를 듣자마자 학교를 빠져나와 엄마가 기다리는 차로 뛰어갔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 왜 그렇게 급하게 와. 늦어도 괜찮은데. "
" 아니야, 엄마 가자. "
여직까지 달려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최대한 태연한척 말을 꺼내자 엄마가 웃으며 차를 몰았다. 한번도 열어보지 못한 졸업사진이 생각나 가슴을 가라앉히려 가방 속에서 앨범을 꺼내 하나하나 짚어가며 사진을 구경했다. 체육대회, 축제, 교내 행사. 그리고 반 별 졸업사진. 형식적이었다. 다들 똑같은 자세에 같은 미소. 그 사이에서도 유독 너는 빛났다. 달뜬 숨이 빠져나왔다. 그러다 잠시 멈칫. 앨범 뒤편에 예고없이 찍은 사진들 몇장이 있었다. 그 곳에는 나도 있었다. 아마도 졸업사진을 찍을 때, 장난을 치고 있던 모습인 것 같았다.
그 곳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나와, 나를 바라보며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는 변백현이 있었다.
아마도. 그 별은 나와 닿아있었나보다. 사진을 바라보는 두 눈이 조금 따가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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