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실
차가운 자물쇠를 잠근 찬열이 문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안에서 경수가 자고 있을 것이었다. 전쟁이 끝난 지 삼 개월이 지났지만 그들은 아직 지하실에 살고 있었다. 경수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어서 전쟁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지하실은 너무 답답하다고. 그럴 때마다 찬열은 경수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아직 밖은 위험해. 찬열의 낮은 목소리가 지하실에 울렸다.
자물쇠가 잘 잠겼는지 확인한 찬열은 바지 주머니에 열쇠를 넣었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지상으로 올라가버린 사람들 덕분에 복도가 텅 비어있었다. 찬열은 긴 복도를 걸으며 어떻게 하면 경수를 계속 지하실에 가둬둘 수 있을 지 생각했다. 지하실에는 휴대폰도, 텔레비전도, 라디오도 없었다. 오로지 음식과 이불 휴지 같은 것들만 나뒹구는 곳에서 경수는 탈출 할 수 없었다. 경수가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전쟁.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런 경수가 종전 소식이라도 듣게 된다면……. 찬열은 계단 앞 두 번째 철문을 잠그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잠에서 깬 경수가 침대 위에서 뒤척였다. 햇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방, 전구가 흐릿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경수는 몸을 일으켜 작은 방을 둘러보았다. 찬열은 먹을 것을 받으러 간 것인지 방이 조용했다. 경수는 책상 앞에 가 삼월 십칠일 이라고 적었다. 벌써 봄이 온지 십칠일이나 지났는데 밖에서는 폭탄이 터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파왔다. 어머니와 손을 놓치던 들판이 생각났다. 바람이 귀와 머리카락을 스치는 순간 누군가가 세게 자신의 팔을 끌어당겼다. 중심을 잃어 짧은 갈대숲에 얼굴을 묻는 순간 등 뒤로 붉은 화염이 솟구쳤다. 어머니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로 자신을 불렀다. 고개를 들 수 없이 매캐한 연기가 눈 코 입으로 들어왔고 어머니의 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졌다. 벌써 일 년 전의 기억이었다. 그 때를 생각하자 경수의 눈 꼬리에 눈물이 맺혔다. 그 때 찬열이 팔을 끌지만 않았어도 가족과 같이 죽을 수 있었을 텐데. 경수는 억울했다.
한차례 공습이 끝나고 피난처로 이동하는 길에도 찬열은 제 옆에 있었다. 찬열은 경수의 얼굴을 힐끗 힐끗 훔쳐보았으나 경수는 앞만 보고 걸었다. 연합국의 국기를 가슴팍에 단 군인들은 피난민들을 대충 눈대중으로 나눴다. 나눠진 무리에는 찬열도 있었다. 백 명 남짓한 사람들이 군인을 따라 걸었다. 해가 거의 산 뒤로 넘어갔을 무렵 군인은 겹겹이 쌓여진 나뭇가지를 치웠다. 군인들이 앞장 서 걷자 커다란 철문이 나왔다. 사람들은 안도의 탄식을 내뱉었다. 그들은 순서대로 지하실 계단을 밟았다. 지하실은 생각 보다 꽤 넓었다. 방은 2인 1실로 배정되었다. 경수는 찬열만 아니면 누구와 같은 방이 돼도 상관없었다. 군모를 꾹 눌러쓴 연합군은 이번에도 손가락을 까딱이며 사람들을 나눴다. 여자는 여자끼리 부부는 부부끼리 형제는 형제끼리 그리고 나머지는 무작위로 방에 배치되었다. 연합군은 꼭 붙어있는 경수와 찬열을 가리키며 턱짓했다. 경수는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 찬열이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경수의 눈치를 살폈다. 경수는 쌩하니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찬열은 그런 경수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어색하게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여기까지 생각한 경수는 마른 눈 꼬리를 손으로 훔쳐냈다. 지금이야 찬열은 어딘가에서 먹을 것을 구해오고 필요한 물건을 가져오는 성실한 룸메이트였다. 어찌되었건 찬열이 자신의 생명의 은인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경수는 기지개를 한번 쭉 폈다. 요즘 찬열이 밖으로 드나드는 날이 많았지만 경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밖은 위험해. 찬열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찬열이 방을 비웠을 때마다 경수는 스케치북과 연필을 꺼내들었다. 미술 전공이었던 자신을 위해 어딘가에서 찬열이 구해온 것이었다. 전쟁 중에 그림이라니. 씁쓸한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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