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mood ; Strawberry
김태형×전정국
고등학교에 올라와 햇수로 3년째 다니며 생긴 태형의 버릇이라고 하면, 돈이 생기는 대로 매점으로 달려가 딸기우유를 사 마신다는 것. 다들 초코우유에 열광하며 학년 계급 떼고 붙는 쟁탈전에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태형은 항상 여유로이 딸기우유를 집어 계산을 하고 제 교실로 돌아왔다. 오늘도 껄렁껄렁 매점으로 가 딸기우유를 집어 계산하려는데, 그런 것이 있지 않은가. 이상한 느낌에 눈을 돌려 확인하면 꼭 누군가가 저를 바라보고 있는 것 말이다. 태형은 멀지 않은 곳에서 느껴지는 시선을 확인하고 고개를 돌려 같이 눈을 마주했다. 똘망똘망한 눈, 저와는 다른 학년의 색으로 물든 명찰에 새겨진 전정국 세 글자, 두 손에 꼭 쥐고 있던 딸기우유. 태형은 그를 위아래로 쭉 훑어보고는 다시 눈을 맞췄다. 평소 태형의 눈이 매섭게 생겼다는 이유로 태형을 모르는 사람들은 눈을 잘 마주치려 하지 않았지만, 정국은 어째선지 눈을 피하지 않고 계속해서 태형을 쳐다봤다.
"...뭐야."
잠시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다 태형이 먼저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피했다기보다는 그러려니 하고 먼저 교실로 돌아간 거였다. 태형은 교실로 가며 아까 봤던 애는 뭔가, 들고 있던 딸기우유를 보아하니 새로운 적이 생긴 건가, 하며 참으로 저다운 생각을 했다.
그 뒤로 태형은 매점에 갈 때마다 정국과 눈을 마주쳤다. 우연인가 싶으면서도 너무 자주 보는 것 같아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역시 그러려니, 딸기우유를 집어 교실로 돌아갔다.
아침 등교 시간, 태형이 하품하며 껄렁하게 교실로 들어서자 몇몇 같은 반 학생들이 태형에게 인사했다. 태형은 제 머리를 정리하며 손을 들어 인사를 받아주고 자리에 털썩 앉는데, 책상 위에 놓인 딸기우유를 확인하곤 눈을 꿈벅였다. 어제 사놓고 안 먹었나. 가방을 내려놓을 생각도 않고 바로 딸기우유를 손에 잡으니 차가운 느낌이 이제 막 냉장고에서 꺼내온 것 같았다. 태형은 우유를 이리저리 살펴보다 자리 건너편에 이제 막 앉은 지민을 불렀다.
"야, 박지민. 내 자리에 우유 놔뒀어?"
"아니."
"그러냐."
지민은 태형의 말에 관심 없다는 듯 모르겠다며 책상에 엎드리고는 곧이어 잠에 빠졌다. 태형은 누가 놔둔 걸까 곰곰이 생각하다 우선 먹고 보자며 옆면에 붙어있는 빨대를 뜯어 꽂았다.
딸기우유는 매일 아침 태형의 책상 위에서 얌전히 자리의 주인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태형은 의문의 딸기우유를 먹은 첫날부터 며칠간은 공짜 딸기우유가 매일 생긴다며 좋아했지만, 어느 정도 받다 보니 문득 누가 보낸 건지 궁금해졌다. 사실 처음부터 궁금해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태형은 그저 좋아라, 행복하게 우유를 마실 뿐이었다. 태형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와 누가 놓고 가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아침 일찍 제정신으로 일어나는 건 쉽게 되지 않았다. 평소에도 일어나기 어려운데 더 일찍 일어나려니 완전 고문이었다. 태형의 엄마도 태형이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하자 뭐냐는 듯 쳐다보고는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하지만 태형은 일찍이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기에 침만 삼키며 집을 나섰다.
"흐아암. 어떤 놈이길래 아침부터 피곤하게 만들어. 잡히면 콱 그냥."
예뻐해 줘야지. 태형은 자신의 반 근처에 있는 간이 상담실 부스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누군가 오길 기다렸다. 슬쩍슬쩍 감기는 눈을 억지로 떠가며 기다린 지 몇십 분, 누군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자 태형은 조금씩 졸다 흠칫 놀라며 자세를 바로 했다. 부스 밖으로 얼굴을 빼꼼 내밀고 계단을 살피자 익숙한 얼굴의 정국이 손에 딸기우유를 꼭 쥐고 복도를 한 번 살핀 뒤, 태형의 교실을 열고 들어갔다. 저거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은데.
"아, 매점 소년."
이름이 전정국이었던가. 태형은 기억난다는 듯 제 손가락을 튕기고는 급히 따라 들어갔다. 소리가 나지 않게 살금살금 들어가 확인하자 정국은 태형의 자리에 우유를 두고는 뿌듯하다는 듯 웃었다. 태형이 가만히 문에 몸을 기대고 정국이 뭘 하나 보는데 정국이 뒤를 돌아 그런 태형을 보고는 깜짝 놀라며 짧은 비명을 지르자 태형도 덩달아 놀라며 같이 소리를 질렀다. 정국이 당황해 하며 할 말을 찾고 있자 태형이 먼저 정신을 되찾고 팔짱을 꼈다.
"너 매점에서 보는 애 아니냐?"
"네, 네? 네."
"우유 네가 매일 갖다놨어?"
"네... 제가 했어요..."
"왜?"
"어, 그게..."
"그게 뭐."
"...반했어요!"
"...엥?"
"반했어요! 엄청 멋있게 생기셔서!"
"어... 그래?"
"네! 제 롤모델이에요!"
태형은 정국의 말에 적잖게 당황했다. 당황스러운 것도 당황스러운 거지만 어떻게 또 뿌듯한 마음도 없지 않아 있어 정국이 마음에 들었다. 크으, 역시 이 얼굴은 어딜 가도 빛이 나는구나.
"너 이름이 전정국이었던가."
"네! 형은 김태형 맞죠?"
"너 어떻게 내 이름이랑 반까지 다 알고 있냐."
"아, 그 형 친구가 알려줬어요."
"친구?"
"성재 형아요."
육성재? 사실 성재는 매점에 갔다 우연히 태형을 쭉 지켜보던 정국을 발견하고는 먼저 말을 걸어 정국의 얘길 듣고 같은 반이라며 반을 알려주고 자리까지 알려줬다. 육성재, 오지랖은.
정국은 그 뒤로 쉬는 시간에 자주 태형의 반을 찾았다.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얼굴 덕분인지 다들 정국을 귀여워하며 잘 놀아줬다. 정국은 유난히 성재와 잘 붙어있었다. 성재는 남동생도 있고 하니 정국이 제 동생 같겠지, 하며 태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도 어김없이 정국이 제 반을 찾아오자 태형과 장난을 치던 성재가 정국을 반기며 자리에 앉아 제 다리를 툭툭 치며 정국을 그 위로 앉혔다.
"정국아, 오늘 형이랑 데이트할까? 맛있는 거 사줄게."
"와, 진짜요? 할래요!"
태형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뭔가 싶었지만 성재가 정국을 애 다루듯 잘 놀아주는 것 같고 정국도 까르륵 거리며 좋아하는 것 같으니 대충 넘겼다.
그 뒤로 둘의 스킨십 농도는 짙어져 갔다. 손으로 장난치는 건 기본이거니와, 껴안기도 하며 하하 호호 잘들 놀았다. 태형은 점점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너희 요즘 좀 심한 거 아니냐."
"뭐가?"
"붙어있는 거."
"우리 사귀는데?"
"무슨 소리에요."
태형이 책상에 반쯤 엎어져 턱을 괴고 불만이라는 듯 얘기하자 정국을 안고 있던 성재가 사귄다며 장난치니 정국이 성재의 허벅지를 탁 때렸다. 성재가 웃으며 정국의 귀를 깨물자 정국은 따끔한 듯 버둥거렸다. 태형은 인상을 찌푸렸다.
며칠 뒤, 태형의 반을 찾은 정국은 얼굴에 작은 상처를 달고 있었다. 태형은 이게 뭐냐며 물어보자 정국은 전날 성재와 놀다 다친 거라고 대답했다. 상처는 갈수록 점점 심해졌다. 계속해서 달고 온 건 아니었지만 한 번에 크게 다쳐서 온 것이다. 한동안 잠시 안 오던 정국이 다시 태형의 교실에 찾아왔을 때는 밴드 서너 개가 얼굴에 자리 잡고 있었다. 태형은 당황하며 정국의 얼굴을 살폈다.
"야, 너 얼굴 왜 그래."
"어... 계단에서 좀 굴렀,"
"내가 했어."
정국이 교실에 들어오는 걸 본 성재가 태형의 자리로 다가와 근처 의자에 앉고는 평소대로 정국을 제 위로 앉혀 끌어안았다. 성재는 자신이 그랬다며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자 태형은 어이가 없다는 듯 성재를 쳐다봤다.
"뭐?"
"내가 했다고. 얘가 좀 기어오르는 거 같길래. 이제 안 그럴 거니까 괜찮아."
성재가 웃으며 정국을 쳐다보자 정국은 어색하게 웃었다. 태형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또 다시 정국은 잠시 태형의 반에 찾아오지 않았다. 이번엔 조금 오래 찾아오지 않자 이상하게 생각한 태형이 정국의 반에 찾아가자 자리에 있어야 할 정국은 없고 가방도 보이지 않았다. 교실에 있는 아무나 붙잡아 물어보니 정국이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태형은 좋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여전히 정국은 태형의 반을 찾아오지 않았다. 정국의 반을 찾아간 뒤로 태형은 성재를 계속 살폈지만 성재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평소엔 정국을 그렇게 애지중지했으면서. 점심시간이 다 끝나갈 무렵 태형은 매점에 갔다 오는 계단에서 정국을 만났다. 반가움과 걱정되는 마음에 정국에게 다가갔지만, 정국은 상태가 좋지 않았다. 더 늘어난 상처와 손에 감긴 붕대가 태형의 눈에 띄었다. 태형은 그 순간 성재를 떠올렸다.
"누가 이랬어."
"..."
"육성재야?"
"..."
화를 참는 듯한 태형의 말에 정국은 애써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태형이 큰 소리를 내려 입을 여는 순간 수업종이 치며 많은 학생이 교실로 이동했다. 태형은 눈을 감고 한숨을 푹 쉬고는 교실로 돌아갔다. 태형이 가는 걸 지켜보던 정국은 태형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는 자신도 제 교실로 돌아갔다.
"육성재, 네가 그랬냐?"
"뭘."
"전정국한테 네가 그랬냐고."
"그 새끼가 존나 무시하잖아."
"그렇다고 애를 저따위로 패냐? 네가 깡패야?"
"군기 좀 잡을 수도 있는 거지, 존나."
성재는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태형의 어깨를 제 어깨로 툭 치고 지나갔다. 저 씨발새끼가. 태형은 당장에라도 성재에게 주먹을 갈기고 싶은 걸 참으며 여유롭게 걸어가는 성재의 뒷모습을 보며 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그날 태형은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과 피시방에 갔다가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의 잔소리를 무시하고 방에 들어가 편한 옷으로 갈아입으려는데 순간 제 핸드폰이 지잉, 울리며 최근에 바꾼 벨소리가 흘러나왔다. 가방을 침대 위로 내려놓은 태형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어 확인하니 정국의 이름이 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교복 재킷을 벗다 잠시 멈춰 정국의 전화를 받았다.
"어, 왜."
"...형."
"...전정국, 우냐?"
"형, 끄흑..."
"어디야. 빨리 대답해."
"학교, 윽, 학교 운동장, 흐윽..."
"기다려."
정국의 전화를 받은 태형은 벗던 옷을 급하게 바닥으로 내팽개치고는 서둘러 학교로 향했다. 나오면서 태형의 엄마가 뭐라고 한 것 같았지만, 태형은 들리지 않았다. 정국이 울고 있다. 그것도 엄청 고통스러운 듯. 태형은 이를 악물고 최대한 빠르게 달렸다. 뛰면서 근처 나뭇가지에 쓸려 얼굴에 자잘한 상처들이 생겼지만, 태형은 신경 쓰지 않았다.
교문을 통과하고 운동장을 향해 뛰다 저 구석에서 쓰러져 있는 정국을 발견하고는 그쪽으로 다가갔다. 정국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얼굴과 옷 여기저기에 흙과 피가 섞여 얼룩진 채 바닥에 누워있었다. 태형은 급한 숨을 고르며 조심조심 정국을 일으켜 앉혔다. 정국은 숨을 짧게 내쉬며 울었다.
"육성재 그 새끼가 이랬지."
"흐, 윽... 끅..."
"씨발..."
태형의 물음에 정국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자 태형은 작게 욕지거리를 내뱉곤 제 바지 주머니에 있던 손수건을 꺼내 근처 수돗가에서 물을 적혀 정국의 상처를 닦았다. 평소 손수건을 가지고 다니진 않지만, 태형의 엄마가 항상 들고 다니라며 잔소리한 것이 지금 도움이 된 모양이다. 정국은 앉아 있는 것도 힘겨운 듯 계속해서 앓는 소리를 냈다. 그 모습을 보며 화를 억누르던 태형이 어느 정도 피가 닦이자 손수건을 손에 꽉 쥐었다.
"병원 가자."
"..."
"아, 씨발. 어쩌자고!"
"아, 흐으..."
"육성재, 이 개새끼를...!"
"가지 마요."
정국이 병원을 가자는 말에 고개를 내젓다 큰 소리를 내는 태형에 다시 어깨를 떨며 눈물을 흘렸다. 태형은 잔뜩 화가 난 듯 성재를 찾아가려 하자 정국이 가지 말라며 태형의 옷깃을 잡았다. 씩씩대며 정국을 쳐다보자 정국은 울며 연신 고개를 저었다.
"그냥, 조금만, 흐, 조금만 더 같이 있어주세요."
"...씨발."
그런 정국의 모습에 태형은 울컥, 같이 눈물을 떨궜다. 그리곤 정국을 제 품에 끌어안고는 입술을 꾹 물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다치는 모습에 화가 났다. 그동안 그저 동생으로만 생각한 게 아니라 조금씩 뜨거운 마음을 키워왔었다. 태형은 자신이 좀 더 솔직했더라면, 좀 더 눈치가 빨랐더라면, 하며 정국을 힘주어 안았다.
"정국아, 형이랑 사귀자."
"흐으, 아... 끄윽..."
"너 아프게 안 할게. 이런 일 다시는, 죽어도 다시는 이런 일 없게, 지켜줄게."
"혀, 엉..."
"...미안해, 아프게 해서."
훌쩍거리던 정국이 태형의 말에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리곤 제 팔을 들어 태형의 허리에 조심스레 감아 끌어안았다. 정국은 안심했다. 이제 정말 이런 일은 없을 거라고, 태형이 저를 지켜줄 거라고 믿었다.
결국, 정국은 한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그동안 잠깐씩 학교로 나가 성재와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고 제 몸 회복에 힘썼다. 매일 정국의 병문안을 가던 태형은 정국을 도우며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나 자신의 얘기를 꺼내며 정국이 심심하지 않도록 했다. 나날이 회복하는 정국을 보며 태형은 다행이라는 듯 웃었다. 둘은 가끔 아무도 없을 때 짧게 입을 맞추거나 했는데 어쩌다 지민에게 들키거나 하면 따가운 눈초리를 받으며 태형은 격리 조치당했다. 성재는 결국 강제전학을 당했지만, 태형은 고작 강제전학이냐며 화를 내면 정국이 그것만으로도 어디냐며 태형을 말렸다. 여전히 태형은 성재만 생각하면 화가 치밀었지만 제 입에 딸기우유를 물리는 정국을 생각해서라도 얌전히 있으려고 노력했다. 정국은 다시 학교로 정상등교했고 태형의 경계심은 심해졌다. 정국은 제대로 보호받는다는 느낌에 슬쩍 웃었다.
"왜 웃어."
"좋아서요."
"...키스할래?"
"응."
입안 가득 딸기향이 퍼졌다.
--
(감기몸살)
♡마이 러버들♡
콩콩이, 김멋짐, 망고, 정국세쿠시, 타요, 꾸기, 권지용, 더럽, 콜라, 초코민트, 쿠키, 노예, 팝콘, 바비는 비아이, 설렘포인트


인스티즈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