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천천히 너에게
|
학사모를 쓴 성열의 얼굴 위로 기쁨과 씁쓸함이 동시에 스쳤다. 자신은 학교에 남아 2년을 더 공부해야 했지만, 좋든 싫었든 1년 간 집보다 더 집 같은 총학생회실에서 살며 함께 했던 사람들과 흩어진다는 것이 싫었다. 총학 사람이 되면 학과 사람들과 멀어진다는 말이 맞는 듯 했다. 졸업식 전에 간단히 치러진 과 행사를 끝마치고, 졸업식이 끝난 뒤 제 과로 돌아가 학과 사람들과 기념사진을 찍는 것이 아닌 총학실로 갔다. 머리에 쓰고 있던 학사모를 벗어 제 옆구리에 꼈다. 졸업 가운을 입어서 옷끼리 마찰하는 소리가 평소보다 더 크게 들렸다. 사실상 이제 총학생회실에 드나들면 안 되었지만, 올해 회장으로 당선된 학우의 도움으로 마지막을 총학생회실에서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총학생회실 문 앞에 서서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분명 단체 사진을 찍으려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 분명했음에도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언제부터 이렇게 감정적이었나 하고 생각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 한숨 쉬면 주름살 는다니까. ” “ 아, 깜짝이야! 언제 왔어요? ” “ 놀라긴. 지금 왔어. ”
그렇게 말하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선 명수가 성열을 위 아래로 쭉 훑었다. 졸업 가운을 입고 학사모를 옆구리에 낀 모습이 생각보다 꽤, 아니 매우 잘 어울려서 놀랐다. 역시 사람은 키와 얼굴이 받쳐줘야 한다고 생각을 하며 성열의 어깨 위에 제 손을 얹었다. 그런 명수의 행동에 성열의 몸이 또 다시 얼어붙었다. 소공원에서 명수를 두고 도망친 그 날 이후로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던 사소한 스킨십에 과민반응을 일으켰다. 처음엔 누가 잡아 먹냐? 하고 말을 하던 명수도 이젠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무덤덤하던 성열의 반응이 다채로워져서 신기했던 것도 있었기 때문에. 또 다시 딱딱하게 굳은 성열의 어깨를 부드럽게 주무르며, 귓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 이성열. 졸업 축하한다. ” “ ……. ” “ 뭐해. 넌 할 말 없어? ” “ 없는데요. ”
몸만 굳을 뿐이지, 마지막 날까지 이성열답게 굴어서 웃기기도 했고, 한 편으로 씁쓸하기도 했다. 성열의 입가가 바들바들 떨리는 걸 보고는 못 본 척하며, 총학생회실 문을 벌컥 열었다. 성열과 어깨동무를 하고 등장하는 모습에 익숙한 야유 소리가 퍼져 나왔다. 그리고 자신들을 부르는 목소리에 동시에 고개를 돌리자, 찰칵- 하고 사진이 찍히는 경쾌한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성열이 제자리에서 파드득거렸다. 무방비하게 있을 때 찍는 것이 어디 있냐고 따졌지만, 사진을 찍은 사진담당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바글바글 했다. 좁은 총학생회실이 숨이 막힐 정도로 빽빽해졌다. 어떻게든 자신의 얼굴이 잘 나왔으면 하는 마음에 자리 쟁탈전이 있었다. 사진 한 장 찍는 것에도 온 힘을 쏟아 붓는 모습에 졸업식이 끝난 뒤부터 딱딱하게 굳어있던 입매가 유하게 풀어졌다. 이성열, 이제야 좀 웃네. 사진 담당으로 온 학우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언제 또 굳을지 모르니 얼른 찍으라는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예고도 하지 않고 셔터를 마구 눌렀다. 그에 아우성 치고 싶어도, 제 사진이 혹시나 웃기게 나올까 싶어 말은 하지 못하고 멋지고 예쁜 표정, 멋지고 예쁜 포즈를 취하려고 갖은 노력을 하며 한 장 한 장에 정성을 들였다. 가만히 서서 웃으며 카메라 렌즈를 보고 있을 때, 제 어깨 위로 낯익은 손 하나가 다시 올라왔다. 명수였다. 제 어깨에 손을 올릴 정도로 눈높이가 맞는 사람은 명수 한 명뿐이었다. 또 다시 굳으려는 몸을 알아차린 명수가 제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긴장을 풀라는 것 같은 그 행동에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 두드림에 거짓말 같이 굳으려고 했던 근육이 흐물흐물 녹는 것이 느껴졌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여태까지 생각을 해봤지만, 내려진 답이 없었다. 이 답답한 제 마음을 누가 좀 풀어서 설명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고는 용기를 내어 명수의 얼굴을 쳐다봤다. 제 얼굴을 뚫을 기세로 쳐다보고 있는 성열의 시선을 느끼고는 고개를 살짝 틀어 눈을 마주하자, 기다렸다는 듯 눈을 반달로 접으며 배시시 웃은 성열이 말했다.
“ 졸업 축하해요. 나 사무국장 하라고 쫓아다녀줘서 고마워요. ”
성열의 말을 들은 명수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이내 성열만 알아차릴 정도로 작은 끄덕임이 전해졌다.
* * *
“ 아, 아쉽다. ”
늦은 시간까지 졸업식 뒤풀이를 하고, 제 집 찾아 가는 총학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며 성열이 중얼거렸다. 오늘만 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서로 보내기 싫은지 발목을 잡으며 술잔이 오가다 늦은 시간에 다들 뭐에 쫓기듯 가버린 것이 섭섭했다. 제 주량보다 많이 마셔서 휘청거리다 계단에 주저앉은 성열이 고개를 푹 숙였다. 마지막 사람까지 택시를 태워서 보낸 명수가 성열의 앞에 다가와 섰다. 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앞뒤로 왔다 갔다 하고 있는 성열의 앞에 쪼그려 앉아 성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이 편안했던 것인지, 몸에 주고 있던 힘을 완전히 빼서 몸이 앞으로 쏠렸다. 그에 급하게 성열의 몸을 받은 명수가 고개를 저었다.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아쉽다는 것을 핑계로 꾸역꾸역 털어 넣을 때부터 알아봤다. 자기만한 성열을 어떻게 데리고 가야할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술을 먹으면 아무리 가벼운 사람이라도 물 먹은 솜 마냥 무거워지기에 벌써부터 잠시 뒤에 있을 제 미래가 걱정되었다.
“ 정신 차려봐.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입 돌아간다. ” “ 안 돌아가는데요. ” “ 취했으면서 말은 잘 하지. ”
꿀밤을 때리자마자 아프다고 평소보다 배로 징징대는 소리를 들으며 성열을 일으켜 세웠다. 제 딴에는 괜찮다고 부축하는 자신의 손을 뿌리치며, 걸으려고 했지만 얼마 걸어가지 못해서 휘청하는 모습에 고개를 저으며 성열에게 급히 달려갔다. 또 다시 괜찮다고 혼자 걸으려고 하는 성열의 말을 무시하고 부축을 하며 성열의 집을 향해 걸었다. 시내와 그리 멀지 않은 성열의 집 앞에 도착하자, 술기운이 얼추 달아난 듯 풀려 있던 두 눈은 어느새 생기를 되고 있었다. 오는 내내 아쉽다는 말을 어찌나 반복을 하던지, 집에 가는 길에 환청으로 들릴 것 같은 제 귀를 툭툭 두드렸다. 귀를 툭툭 두드리던 말든, 바닥을 구두코로 콕콕 찍으며 알코올 향이 가득한 숨을 뱉던 성열이 또 다시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갑작스런 행동에 놀란 명수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성열에게 팔을 뻗자, 제게 내민 명수의 손을 쳐낸 성열이 옹알거렸다.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가면 들릴 것 같다는 생각에 성열과 똑같은 자세로 쪼그려 앉아 귀를 기울였다. 멍한 눈을 하고,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내, 성열이 돌림 노래하듯 뱉는 그 말을 제대로 듣는 순간, 웃지도 그렇다고 울지도 못하는 이도 저도 아닌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 왜 대답이 없어요- ” “ 뭘 대답해야 하는데. 나 못 들었는데? ” “ 거짓말 치시네. 다 들었으면서. 그러니까 내 말은요. 졸업하고 나서 나 안 만나고 그럴 거냐는 거죠. 이해했어요? 들었죠? ”
들었냐구요. 대답하지 않고, 자신의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이 불만이었던 성열이 무릎에 손을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급하게 제 손을 낚아채는 명수 때문에 앉은 것도 아니고, 일어선 것도 아닌 엉거주춤한 자세가 되었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가 하고 잠시 생각하던 성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구부정하게 숙이고 있던 허리가 꽤 불편해 명수의 손을 떼어내고, 집에 들어가려고 몸을 돌렸을 때 명수가 다시 성열의 팔을 잡았다.
“ 대답도 안 듣고, 인사도 안 하고 그냥 가려고? ” “ 안 들을래요. 잘 가요. ” “ ……. ” “ 왜 이래요? 나 들어…. ”
사귀자. 명수의 말에 성열의 모든 것이 정지했다. 말을 하던 입도, 방향을 바꾸려던 몸도. 시간마저 멈춘 것처럼 한동안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눈치 없는 성열에게 너무 직격타를 날린 것은 아닌가 하고 잠시 후회를 했지만, 이내 그 후회는 사라졌다. 눈치는 빠르면서 이런 눈치는 전혀 빠르지 않은 성열이었기 때문에 배배 꼬지 않고, 그대로 꽂는 것이 가장 좋았다. 뭐라고 대답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성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조금 전 제 말을 듣고 놀라 굳은 표정이 다였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 얼굴만 쳐다보는 그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한 간지러운 느낌이 낯설었다. 어쩌다 성열에게 이런 감정을 품게 되었는지, 자신도 알지 못했다. 어쩌다가 좋아졌나요. 라고 자신에게 물어온다면 아마 처음엔 대답을 하지 못할 지도 몰랐다. 그 답변은 너무 허무했기 때문에. 어쩌다보니 좋아하고 있다는 걸 느꼈으니까. 시간은 자꾸만 가고, 술을 마신 직후이니 밖에서 찬바람을 더 쐬었다간 감기에 걸릴 것이 분명했기에 성열을 얼른 집안으로 들여보내야만 했다. 급한 사람이 지는 거라고. 좋아하는 사람이 지는 거라고. 틀린 말 하나 없었다. 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굽히고 들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니까 다시 한 번 말을 하자는 생각으로 입을 떼려고 할 때였다.
“ 저기, 잠시 만요. 나 생각 좀. ”
말을 할 것이란 걸 알아차린 것인지, 성열이 손을 들고 말을 하려던 명수를 막았다. 그에 입도 벙긋하지 못하고, 다시 앙 다물고는 가만히 성열을 쳐다봤다. 여기서 퇴짜 맞고 평생토록 못 볼 수도 있으니, 그 동안 많이 봐두자는 생각으로. 한편 성열은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명수 때문에 얼굴이 붉어질 것 같았다. 밤이 아니라면, 자신이 술을 마신 상태가 아니라면 부끄러워질 상황이 맞았다. 다짜고짜 이렇게 치고 들어오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아주 당당하게 대답할 것만 같아 그렇게 묻지도 못했다. 제 말솜씨는 명수의 말솜씨에 대적할 만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도 못하고 그저 어버버 거리다 끝이 날 것이 분명했다. 정리가 되지 않는 머릿속에서는 어떡하지 라는 단어만 둥둥 떠다녔다.
“ 그러니까 조금 전에 뭐라고…. ” “ 너도 못 들은 척 할래? ”
제 이마를 장난스럽게 튕기는 명수의 행동에 벌리고 있던 입이 다물어졌다. 평소엔 자신을 놀리기 좋아하는 명수가 항상 하는 행동이어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사귀자는 말을 들어서일까, 지금 이 상황이 되게 간질간질 했다. 명수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고 있을 때였다.
“ 나 취직했어. 그것도 꽤 높은 자리로. 알지? 나 돈 잘 벌어서 너한테 용돈도 줄 수 있고, 너 대학원 마치는 시간마다 데리러 갈 수도 있어. 뒷바라지는 당연한 거고. ”
대선 출마한 후보가 공약을 거는 것처럼 자신에게 공약을 내거는 명수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싶었다. 사탕 발린 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혹 하는 마음에 넘어갈 것 같았기 때문에. 명수의 향수 냄새를 맡고 두근거렸던 그 날 이후로 또 다시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명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 속상하게 안할 자신도 있어. 그러니까. ” “ 그러니까? ” “ 나랑 내일도 보고, 모레도 보고, 한 달 뒤에도 보고. 계속 보자고. ”
시익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는 명수 때문에 시선이 분주해 졌다.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자신이 보는 곳마다 명수의 시선이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지금 마음속에서 고개를 드는 간질간질한 이 기분이 단지 분위기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도 명수에게 마음이 있는 것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명수가 몸을 배배 꼬며, 분주한 성열의 두 팔을 잡자마자 불에 덴 것처럼 파드득거린 성열이 한 마디를 남기고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 아, 몰라요! ”
대답도 참 성열 같다는 생각에 웃음이 터졌다. 입을 막고 한참동안 성열이 들어간 문가를 쳐다보며 웃다, 문득 든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서 지금 자신이 좋다는 건지, 싫다는 건지. 모호한 대답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지만, 그래도 좋았다. 계속 해서 언제 이야기를 해야 할까 하고 눈치만 보다 던진 말이 생각보다 괜찮아 만족을 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 * *
대학원 입학식은 다음 달에 있지만, 나와서 적응하라는 교수님의 말에 학교에 나와 있었다. 여자 동기들이 자신을 볼 때마다, 하루 종일 실험실에 틀어박혀서 뭐 하냐고, 나와서 같이 놀고 밥도 먹으러가자고 자신을 꼬드겼지만 어설픈 웃음으로 때우고 도망치듯 실험실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지 1주일이 지났다. 그리고 명수에게서 고백을 받은 지도 벌써 1주일이 지났고. 책상 위에 올려둔 휴대폰 액정을 톡톡 건드리며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 날 이후로 명수에게서 연락이 없었다. 그 흔한, 집 잘 도착했다는 문자메시지도 오지 않았다. 집 가서 뻗었을 것이라고, 그 다음 날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궁금하면 먼저 보내면 됐지만, 끝에 달랑달랑 매달려 있는 자존심이라는 녀석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고백을 한 사람은 태평하게 연락을 하지 않고, 자신이 좌불안석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혹시 사귀자는 말을 했지만, 자신이 대답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차였다고 생각해서 연락이 없는 걸까 하고 생각했지만 자신이 아는 명수는 그럴 위인이 아니었다. 아무리 잘라내도 잡초처럼 언제 잘랐냐는 듯 자라는 사람이었기에. 휴대폰에 불이 날 정도로 연락을 해서 귀찮다고 생각할 때는 언제고, 이젠 허전하다 못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제 자신이 너무 웃겼다. 혹시 이것도 다 작전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작전이든 뭐든, 한 번 굽히고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용기를 내어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거뜬히 외운 명수의 전화번호까지는 쳤지만, 통화버튼을 누르는 것이 일이었다. 눈을 꼭 감고 누를까, 아니면 실수한 척 누를까. 그것도 아니면 복도에 가서 지나가는 후배 잡아서 눌러달라고 할까. 별에 별 생각을 다 하고 있을 때, 손에 든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깜짝 놀라 휴대폰을 위로 던져서 다시 받은 성열이 발신자를 확인하고는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숨을 크게 들이 마시며 통화 버튼을 꾹 눌렀다.
“ 여보세요? 왜 이제 전화해요! 손가락이 부러졌…. ” 「 나 기다렸어? 그럼 네가 전화하지. 」 “ 누가 언제 기다렸다고 했어요? ” 「 아님 말고. 괜히 김칫국 마셨네. 지금 어딘데? 」
1주일 만에 전화였다.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가 어딘가 모르게 더 근사해졌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돌 같은 제 머리를 세차게 때렸다. 1주일간의 공백이 있으면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구나 하고 웃어넘기고 싶었지만, 마냥 웃어넘길 수가 없어서 슬펐다. 아무렇지 않게 평소 명수처럼 자신에게 안부를 묻고 있지만, 둘 사이에 고백이라는 것이 깔려있어서인지 모든 것이 간질간질 했다. 심장을 벅벅 간질이고 싶을 정도로. 잠시 학교 근처에 볼 일이 있어서 나왔다가 제 생각이 나서 전화했다는 말에 웃음이 지어지기도 잠시, 뚱한 표정이 절로 나왔다. 그럼 그간 안하고 뭐했을까 하고. 목 끝까지 차오른 그 말을 안간힘을 쓰며 삼키고는 자신이 있는 곳을 말해줬다. 어떻게 전화할 때마다 실험실에 있냐는 명수의 타박에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물론 자신이 으쓱이는 걸 보진 못했겠지만. 먹을 것을 사서 실험실로 오겠다고 하고는 명수가 전화를 끊었다. 끊자마자 실험실에는 음식물 반입금지라는 문구가 제 눈에 들어왔지만, 모른 척 하고 고개를 돌렸다. 교수님에게만 걸리지 않으면 장땡이었다. 실험은 하지 않고, 주변에 찢어놓은 휴지 조각들을 제 손에 모아 휴지통에 버리고, 실험 종이를 정리하며 주변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실험을 하고 있었다고 눈속임을 하기 위해서 시료를 뜨려고 할 때였다. 실험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명수가 오기엔 너무 빠른 감이 없잖아있어, 교수님이라 생각을 하고 고개를 돌렸을 땐 교수님이 아닌 값 비싸 보이는 정장을 빼입은 명수가 서 있었다. 양손 가득 먹을거리를 들고.
“ 아, 맞다. 실험실에 먹을 것 들고 오면 안 되지. 전에 너한테 음료수 갖다 줬다가 욕먹은 적 있으면서 또 깜빡했네. ”
들어오는 입구에 적혀 있는 문구를 본 명수의 얼굴엔 낭패감이 서려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성열의 눈에는 간식이 보이지 않았다. 회사에 입사한지 고작 1주일 밖에 되지 않았으면서 회사 임원진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는 명수가 낯설었다.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고, 멀찍이 떨어져서 구경하고 있는 성열의 모습에 혀를 끌끌 차며 성열과 자신의 거리를 좁혀나갔다. 멍하게 자신을 보고 있으면서, 다가갈 때마다 뒷걸음질 쳐서 도망가는 것이 신기했다. 1주일 사이에 변한 것이 뭐 있겠느냐 만은 대학원생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모습에 입가에 웃음이 지어졌다.
“ 왜 웃어요. ” “ 도망가는 모습이 웃겨서. ” “ 내가 언제 도망갔어요! 도망간 건 그 쪽이지! ” “ 내가? 난 도망 간 적 없는데. ”
고개를 갸웃거리며, 도망간 기억을 찾았지만 전혀 없었다. 성열의 앞에서 제 등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항상 성열을 먼저 보내고 나서 자신이 갔기에 제 등을 볼 겨를도 없었고,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다. 은연중에 성열의 앞에서 든든해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았다. 인지하지 못할 때부터 등을 보이지 않고, 항상 성열을 먼저 보냈던 것을 생각하면. 그 때 성열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하얀 도화지에 빨간색 물감으로 색칠을 한 것처럼 붉었다. 어깨를 으쓱이며, 양 손에 들고 있던 간식거리를 책상 위에 올려놓음과 동시에 성열이 말했다.
“ 1주일 동안 연락 안한 거, 그게 도망간 거죠! ” “ 뭐야. 진짜 기다렸나보네? 근데 왜 아니라고 했어. ” “ 아, 안 기다렸대도! ” “ 은근슬쩍 말도 놓네. 그러는 네가 지금 도망가고 있잖아. 이리와. ”
언제나 성열을 놀리는 것은 재미있었다. 두 눈은 자신이 반갑다고 말을 하고 있는데, 성열의 못난 입은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아 괘씸하다 생각했다. 언젠가는 저 못난 입에서 예쁜 말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를 하며, 의자를 빼서 앉아 성열을 제 옆에 불렀다. 제 옆에 놓인 의자를 툭툭 치며 아무리 불러도 오지 않던 성열이 책상 가득 펼쳐놓은 분식들을 보자마자,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제 옆으로 다가왔다. 자신은 지금 제 옆에 왔다는 것을 생각도 못하고 있겠지만. 성열이 제 앞에 놓인 음식을 보며 정신이 없을 때, 은근슬쩍 성열의 허리를 감싸 안아 제 옆자리에 앉혔다. 오물오물 야무지게도 씹어 먹는 그 모습에 지금 사온 양은 턱도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렇게 한 참을 먹기에만 집중을 하던 성열이 먹던 것을 멈추고, 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고개를 살짝 돌려 자신의 허리에 감겨있는 제 팔을 힐끔. 또 다시 제 얼굴 힐끔. 그렇게 번갈아 보던 성열의 얼굴이 붉게 타들어가면서 일그러졌다.
“ 뭐예요. 먹고 있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던데. ” “ 넌 개 아니잖아. ”
일순 성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흡사 그것도 개그냐고 묻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에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성열의 허리를 콕콕 찔렀다.
“ 그럼 너 다 먹으면 건드려도 돼? ”
그 말에 멈추었던 젓가락질이 다시 시작되었다. 대답을 하지 않고, 볼이 터져라 꾸역꾸역 넣는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성열의 허리를 집요하게 콕콕 찔렀다. 그러자 다 삼키지도 못한 음식들을 꾸역꾸역 삼키고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 그러니까 빨리 먹고 있잖아요. 건드리지 좀 마요! ”
성열은 그 말이 무슨 뜻인 줄은 알고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오해가 가능한 말이었다. 고백을 한 자신을 비행기에 태울 만큼의 위력이 있는, 1주일 치 업무를 단 번에 끝낼 수 있는 힘을 주는 그런 말이었다. 야무지게 음식을 씹어 삼키는 그 모습을 가만히 보다, 주스를 부어 성열의 입가에 갖다 댔다. 그에 종이컵을 제 손에 들지도 않고, 입만 대고 받아 마시는 모습이 꽤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성열은 책상 위에 펼쳐놓은 음식을 다 먹어치우고, 명수는 성열에게 먹일 음료수를 종이컵에 계속 붓는 것을 반복하다보니 두 봉지를 가득 채우고 있었던 분식들이 동이 나 있었다. 부른 배를 통통 두드리며, 주변에 있는 휴지를 뜯어 입가를 톡톡 두드려 닦은 성열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제 허리에서 손을 뗀 명수의 팔을 허리에 감으며 말했다.
“ 내가 왜 이러는지 알겠어요? ”
당당한 성열의 물음에 슬며시 웃음을 흘렸다. 이내 확신에 찬 긍정의 대답을 내보였다.
“ 내가 왜 이러는데요? ” “ 오늘도 보고, 내일도 보고, 모레도 보고. 그러니까 매일매일 보자고 그러는 거잖아. ”
명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두 시선이 마주함과 동시에 웃음을 지으며 서로의 대답을 마음속에 깊이 새겼다.
|
또! 이렇게! 빨리! 왔네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제 한 편 남았습니다^*^... 그 한 편은 언제 올릴 지...
12시 넘어서 바로 올릴 지, 아니면 내일 학교 다녀와서 올릴 지!
담편에서 봐요! 네!
케헹 바카루 무럭자라 규잉 구염 꾸꾸미 파비 사과맛규 감성 월백 라우 김난 렝도찡 테라규
남군 또모또모 석류 사과맛규 까또 쑥 우현성규 사모 잉피 소금 키세스 오백원 31 카카라
익명인 불맠 타라 혁거세 테라규 몽몽몽 윤얀 규지지 설륜 복자 허니 열총버섯 오일 눈누난나
쭈롱 여리 장자녀 폭연 팥 구름 데헷

인스티즈앱 ![[인피니트/수열] 조금씩 천천히 너에게 中2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7/7/b/77bb79b99259e40b827d4544def488fe.png)
(주의) 현재 블라인드에서 난리난 딸아이 글..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