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등을 올곧게 펴고는 글을 써 내려갔다. 그의 얇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노트북 위를 돌아다니며 춤을 추고 있었다. [나의 시작은 18세의 여름, 그 여름이었다.] 이 짧은 한 문장을 쓰는 것이 무엇이 그렇게 힘들다고 썼다, 지웠다 를 계속해서 반복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동그란 안경을 다시 한 번 고쳐 쓰고는 글을 이어나갔다 [나의 시작은 18세의 여름, 그 여름이었다. 봄비에 식어가던 나에게 태양은 아찔하게 나를 뜨겁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의 여름은, 그의 여름은 시작하였다. ]
뜨거운 여름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느낌이 들 정도의 뜨거운 여름이었다.
나의 조금은 헐렁한 와이셔츠는 땀에 젖어갔고, 우리는 그런 날씨에도 불구하고 신경 쓰지 않은 채 계속해서 농구공을 튕겨가며 숨을 헐떡거렸다.
여름 낮 1시 20분의 뜨거운 태양은 끓어 넘치는 우리들의 욕구를 잠재우기에 충분했다. 표출하지 못하는 우리의 욕구는 하나의 농구공에 던져버렸다.
뜨거웠다. 너무나도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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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물”
수업을 시작하는 예비종이 치고 모두들 끝나지도 않은 경기를 중단시키고 그늘에 앉아 뜨거운 몸을 헐떡거리고 있는 내게 K는 차가운 물을 주었다.
“땡큐”
씨익 웃으며 K에게 고마움을 표시했고 K는 이내 나무 벤치에 누워버렸다.
“와 이렇게 열심히 했던 날은 처음이야. 수업은 어떻게 들어 가냐.”
그러게 말이다. K가 준 물만 벌컥벌컥 마시는 나는 대답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날씨는 창문 열어놓고 잠이나 자면 좋은데 말이야-
다음시간이 담임 시간만 아니라면 반장 놈 꼬셔서 양호실이라고 뻥치고 쉴 텐데 아 아쉽다-
“다음 시간 담임이지?”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듯한 K는 한숨을 쉬며 이내 자신의 물을 머리위로 부어버린다. 으 시원하겠다.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농구할걸. 괜히 후회되는 날씨였다. 남자고등학교니 땀 냄새는 별 신경 안 쓰이는데 온몸이 찝찝해지는 느낌에 와이셔츠가 내 기를 쭉쭉 빠져가는 느낌이었다.
“가자”
“더워 가기 싫어-”
칭얼대는 내 손목을 부여잡고 K는 앞으로 나아갔다. K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서 K의 체육복으로 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아 시원하겠다.
교실에 도착한 나는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온 몸을 놓았다.
역시 교실이 짱이라니까. 언제 얼굴이 빨개졌는지, 농구하자던 제안을 거절한 D가 뭐 야한거 보고 왔냐며 시비걸기 시작했다.
간단하게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고 차가운 물만 계속해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 다들 조용, 아침에 소개 못한 전학생이 방금 왔다- 수업해야하니까 간단하게 자기소개하고 들어가 ”
“ 김종인.”
모두가 그에게 집중했다. 나 또한 그에게 집중했다. 남고에 남자한명 더 온다고 해서 별 신경 쓸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당혹스럽게도 처음 들어올 때부터 마주친 눈은 그 짧은 시간사이에 내 몸을 훑어보는 느낌을 받았다. 낮은 톤의 목소리는 다른 어느 남자들보다 낮고 굵게 흘러나왔고, 모델같이 큰 키에 약간은 검은 듯한 피부는 그를 더 강렬하게 하는데 도움을 줬다.
계속해서 고정된 김종인의 눈에 어찌 해야 할 바를 모르겠어서 K가준 물만 계속해서 벌컥벌컥 마시며 그의 눈빛을 무시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노트북 안의 소설을 빠른속도로 써 내려갔다.
[그는 처음부터 나를 눈빛으로 제압하고 훑어갔다.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그 느낌에 숨이 턱턱-막혀갔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나에게 명령했고, 나를 숨 막히게 했다.]
하지만 18세 여름날 처음 보았던 그의 모습에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뜨겁게 다가오는 그의 눈빛에 그는 순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몇년이 지난 지금도 그를 생각하면 손가락이 떨리고 숨이 막혀왔다. 그는 노트북을 덮어버린채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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