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통에서는 이따금씩 비명소리가 울려퍼지고는 했다. 하지만 비명소리는 금세 멎어지고 사람들은 다시 제 갈길을 향해 걸었다. 사람들은 짐짓 땅으로 머리를 쳐박고 우는이에게서 매정히 발을 떼어냈다. 그것은, 어느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였다. 그저 양팔로 머리를 감싸안으며 흠씬 두들겨 맞을 수 밖에 없는 이들, 그들을 지켜보며 저만치서 눈물지을 수 밖에 는 또 다른 이들. 우리는 지금 혹한의 계절에 살고있다.
민석은 하얀 제복을 입은 이들이 물러가자 쓰러져있는 노인에게 황급히 달려갔다. 노인의 입에서는 검붉고 진한 피가 고여있었고, 그것은 볼기짝을 타고 바닥에 흘러 흙먼지와 뒤섞였다. 노인의 숨은 턱에 닿을 듯 아슬아슬 하다 이내 잦아들었다. 노인은 곧 남아있던 한 줌의 숨까지 모두 뽑아낼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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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에 돌아가셨던 아버지, 등이 점점 굽어가는 어머니, 유곽으로 팔려간 동생 옥이, 모든 것은 한 순간이었다. 간신히 버티고있던 벼랑에서 떨어져 운좋게 나뭇가지에 옷자락이 걸렸다고 한들, 곧 나뭇가지가 꺾여 함께 추락해버리고 말 것이었다. 모든게 부질없다고 느낀 민석이 이부자리에 누웠다. 깜깜한 시야사이로 루한의 얼굴이 잠깐 비췄다. 민석이 눈을 크게 뜨고는 눈을 비벼댔다. 하지만 루한의 잔상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하얀 제복을 입은 것들은 무조건적으로 벌레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어쩐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문득 정오 즈음에 그에게서 났던 체취가 민석의 코끝을 스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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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김민석, 너 정신차려."
"뭐?"
"루한 그 자식도 결국 돈이나 핥으려고 친일로 넘어간 놈이야. 그 자식이라고 뭐 다를게 있을 것 같냐? 그냥 이쯤에서 그만둬."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신경꺼."
민석이 조금 예민하게 반응했다. 종대의 말이 여간 신경을 거슬리게 했지만 애써 내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민석의 머릿속 어딘가의 심기를 어지럽혔다. 종대의 말은 연속적으로 민석의 귀를 괴롭혔고 어느새 그 말에 대해 곱씹어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종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을 결코 믿고 싶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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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장마철이었다. 빗물이 땅에 부딪혀 찰찰거리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민석의 어미 역시 좋아했던 장마날씨였다. 어머니는 눅눅하지만 가슴 언저리 어딘가에 은근히 따듯한 것이 피어오르는 느낌이 좋다고 하였다. 어린 날의 민석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가늠할 수 조차 없었지만, 그는 이제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장마는 날이 저물면서 더욱 거세졌다. 여느 날의 장마와는 조금 느낌이 달랐다. 거세고 음침하기까지 했다. 새벽 녁까지 내리던 빗소리는 울음소리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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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어줄래?"
"흐읍...루한.."
"다른 누구도 아닌."
"..."
"나를 위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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