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열성경련을 일으켰다는 종인이는 그 이유 때문인지 어딘가 나사 빠진 모양새를 하고 있을 때가 많았다. 누가 불러도 대답을 못한다던지, 아무것도 못하고 멍하니 서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럴 때마다 어깨를 톡- 하고 건드려주면 그 초점 없는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는 것이었다.
분명 뇌손상은 없다고 했다. 경련 후 5분이 채 되기 전 안정을 찾았고 혹시나 하여 해본 뇌파검사도 모두 정상이었다고 종인이 어머님은 그러셨다. 그런데도 애가 왜 이렇게 멍한지 모르겠다며 나에게 하소연하셨던 것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아마 중학교 때일 것이다. 종인이를 만난 것이.
Call Me Baby
중학교 2학년 때 종인이는 교탁 옆에서, 나는 교실의 중앙에서 처음 만났다. 그때 종인이는 막 전학 와 우리에게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었고 나는 흥미를 잃은 눈으로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종인이는 지금과 같이 멍한 표정으로 교실 저편을 바라보았다. 몇몇 아이들은 종인이가 뭘 보는지 확인하기위해 간간이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그냥 김종인이 멍 때린 것이다. 아무 말도 없이 풀린 눈으로 서있던 종인이를 보던 아이들도, 선생님도 당황하여 웅성거렸다. 나도 그러고 싶었으나 하필 중앙에 자리를 만들어주자는 반장의 의견을 적극반영해주신 선생님 덕에 나는 짝꿍이 없었다. 그렇단 말은,
"종인이가 많이 부끄러운가보다. 아, 저기 가운데에 비어있는 자리에 앉으렴."
정신을 차리신 선생님은 황급히 김종인을 내 옆자리로 앉혔다. 나는 다가오는 그를 흘끗 곁눈질로만 보고 말았다. 한참 중2병이 끝을 내달릴 때라 김종인 따위는 관심 밖이었다. 종인이도 다른의미에서 내쪽에는 관심이 없었던지라 우리는 그날 하고도 하루 더 지나고서야 통성명을 했다. 그것도 반장의 주선을 통해.
"얘가 태민이야. 이태민."
"……."
"그리고 넌 종인이 알지?"
"어."
"아우- 너는 좀 살갑게 해주고 그래."
넉살이 좋기로 유명했던 반장은 그땐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내 어깨를 퍽퍽 때리며 나를 나무랐다. 잠깐 울컥했지만 여자를 때릴 수는 없는 노릇이고 여전히 옆에 앉아 멍하니 있는 종인이를 보자니 조금 뭐하기도 했다. 나는 쿨한 척 김종인을 쳐다봤다.
"……."
"……."
반장과 나, 김종인은 몇 분을 그렇게 정적 속에 있었다. 주변은 시끄러웠고 난 김종인이 내 쪽을 봐주길 기다리고 있었으며, 김종인은 어디에도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반장은 그저 우리들 중 누구라도 액션을 취하면 바로 리액션을 취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거의 쉬는 시간이 끝나갈 때 쯤 화가 난 내가 김종인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그제서야 종인이의 고개가 삐거덕 거리는 소리를 낼 것만 같이 움직였다.
"……."
"이태민."
"……."
"내 이름이 뭐라고?"
"……."
"따라 해봐. 이. 태. 민."
"……."
김종인은 여물 먹고 늘어진 소처럼 눈만 끔뻑였다. 속이 뻥 터질 것만 같았다. 타이밍 좋게도 내가 다시 입을 열려 했을 때 종이 쳤고 반장도 찜찜한 표정으로 자리로 돌아갔다. 이렇게 말하면 안 되나 싶어 나는 방법을 달리 해보기로 했다. 일명 '쫑아작전' 이었는데 쫑아는 우리 집 강아지 이름이다. 내가 쫑아한테 하는 것 처럼 해보자는 취지에서 즉석으로 붙인 이름이었다.
"종인아. 내 이름은 태민이야."
활짝 웃으며 김종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효과는 없었다. 하지만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었던 게 눈 커플을 깜박이던 횟수가 줄긴 줄었었다. 정말 눈에서 눈물이 나오는게 아닌가 싶을정도로 나를 빤히 바라보는데 눈도 크고 까매서 송아지의 눈 같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내 작전이 실패했다는 것을 깨닫고 원래의 나로 돌아갔다. 아니, 돌아가려고 했다.
"좋은 이름이다."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움직이는 입술이 무척 느렸다. 그럼에도 김종인의 목소리는 매우 서늘했다. 나는 어딘가 소름이 돋아나는 듯 어깨를 들썩였다. 종인이는 내 모든 행동을 눈에 담듯 여전히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
짧아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