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성급했다.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을 토하듯이 내뱉을 때 네가 어떤 표정이었는지, 그것마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좋아한다며 진심을 고백했을 때, 욕이란 욕은 다 들었고 너는 자리에서 떠났다. 괜찮다고 느꼈다. 그까짓 마음을 말하는 것이란,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남들과 같은 사랑이라고. 실은 아주 틀어 나간 비정상적인, 적어도 내가 지금 와 생각하기에는 그랬다. 너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고. 환상은 없었다. 현실에서 그 사랑은 용납될 수 없었던 것임이 분명했다.
/
원두막에 앉아 하늘을 바라봤다. 밤이라 컴컴한 하늘은 그나마 얕게 비추는 별이 있어 반짝거렸다. 힘없이 겨우 켜져 있는 가로등 불빛을 멍하니 바라보던 성규가 원두막 바닥에 자리 잡고 누웠다. 지붕이 있어서 하늘을 볼 수는 없었지만 눈을 떠도 검고, 눈을 감아도 검은 하늘을 꼭 보아 야만 하는 것은 아니어서 그냥 눈을 감았다. 개구리 소리와 매미 소리가 붙어 조용한 밤을 채우고 있었다.
나올 때 들고 왔던 커피는 차갑게 식어서 벗은 신발 옆에 놓여 있었다. 후두둑, 두둑. 빗줄기가 지붕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몸을 일으켜 신발 옆에 있던 종이컵을 들어올렸다. 빗소리도 거세지고 발에도 빗방울이 튀었다. 손에 쥐고 있던 종이컵을 들어 커피를 그대로 다 마신 성규가 종이컵을 구겼다. 볼품없던 흰색종이컵이 찌그러졌다. 남겨져 있던 소량의 커피가 발등위로 톡톡 떨어졌다. 내일 양말을 빨아야겠다고 생각한 성규는 자리에 엎드렸다.
옆으로 몸을 돌리니 거센 빗줄기 때문에 흐릿하게나마 넓은 밭과 논이 보였다. 밑쪽으로 더 내려가서는 도로도 있고, 주인없는 포크레인, 컨테이너 박스, 소 우리가 보였다. 일반적인 농촌의 풍경을 감상하던 성규가 낡아빠진 폴더폰을 들었다. 그 작은 배경화면 속에서 우현이 웃고 있었다.
녹음보관함에 들어갔다. 지난날 성규의 폰을 멋대로 가져가 싸구려 폰이라며 킥킥거리던 우현은 그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녹음했었다. 지지직, 오래되어 음향은 형편없었지만 돌아가긴 아직도 잘 돌아간다. 지나간 시간은 추억 속에 멈추면 그만인 것을- 나는 왜 이렇게 긴긴밤을- 그 부분에서 뚝 끊긴 소리가 다시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가사를 까먹었다며 팔자주름이 푹 패일 때 까지 웃던 얼굴을 회상하며 탁, 소리 나게 폰을 덮었다.
02:08 덮어진 폰 외부 액정위로 시간이 비춰지고 있었다. 보고 싶다, 우현아. 전해지지 못할 목소리가 빗소리 속에 감춰졌다.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모택 3까지 나온 마당에 이나은은 진짜 불쌍하다


